어느새 찾아온 이 가을은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발을 떼지 못한 이가 많았으리.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 오늘이라도 문득 나설 수 있는 게 여행이니 말이다. 경기 가평은 며칠이 아니라 단 하루 동안에도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즈넉한 자연미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여행이 주는 멋과 맛을 즐기기에도 적격이다.
숲과 정원의 운치 가득한 아침고요수목원
가평군 상면 축령산 자락에 위치한 아침고요수목원.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가 가득해 수채화에 비견될 만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마주한 갈림길에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33㏊(10만평)에 달하는 부지를 메운 28개의 테마정원이 여러 갈래 길을 따라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까. 어쩌면 행복한 고민일 듯싶었다. 어디를 가도 아름다울 테니 말이다.
지도를 살핀 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로 향했다.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귀를 촉촉히 적시고 길을 따라 펼쳐진 고즈넉한 풍경은 눈을 맑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일상에 지쳤던 귀와 눈, 그리고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을 붙들고 싶어서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졌다. 머릿속뿐만 아니라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걷는 여행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몸에 쌓였던 각박함이나 피로 등을 한꺼번에 비워내는 여행이라고.
그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수목원 제일 안쪽에 자리한 연못정원 서화연에 닿았다.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우리 고유의 연못과 정자를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겼다. 그리고는 달빛정원으로 향했다. 뾰족하게 솟은 하얀 목조건물이 숲길과 어우러진 달빛정원은 수목원의 명소로 손색이 없다. 정원은 부슬부슬 내린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초함을 뽐냈다. 오히려 비가 내려 운치가 더해진 모습이다. 여행에서 맞닥뜨린 비가 사뭇 매력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장소. 그곳이 바로 아침고요수목원이다.
하늘과 맞닿은 산 정상의 호수, 호명호수
청평면 호명산 해발 535m 지점에 자리한 호명호수는 1980년에 조성된 인공 저수지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발전소인 청평양수발전소 상부에 양수발전을 위한 물 저장공간으로 만들어진 게 유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은 가평8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경치가 일품인 곳으로 거듭났다.
호수로 가는 길은 버스 외에는 차량이 통제되기 때문에 호수공원 제1주차장에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3.8㎞ 거리의 경사진 산길을 오르며 본 차창 밖 산세는 스산했다. 그 옛날 ‘호랑이가 많이 살아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호명산(虎鳴山)’이라 이름 붙여질 만했다.
하지만 버스가 10여분을 달려 다다른 정상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호수가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했다. 비가 내려 호수 맞은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낀 희뿌연 안개가 신비로움을 곁들여 더욱 그랬다. 산 위에 펼쳐진 약 15㏊(4만5000평)에 달하는 저수지를 두눈으로 보고도 인공호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한 이가 어디 혼자뿐이였을까.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은 여행객들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으리. 그렇게 경이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호숫가 둘레길을 정처없이 오래도록 걸었다. 덕분에 자연이라는 미술관에 전시된 한폭의 빼어난 수묵화를 온몸으로 감상한 듯한 매력에 빠진 채 하산했다.
가평=김동욱, 사진=김덕영 기자 jk815@nongmin.com
가평에서 꼭 맛봐야 할…
잣향 은은한 ‘잣묵사발’, 치즈 찍어 먹는 고소한 ‘숯불닭갈비’
◆잣묵사발
가평의 특산물은 뭐니뭐니 해도 잣이다. 이 잣과 콩을 이용해 만든 가평의 별미가 바로 잣묵사발이다. 뽀얀 국물에 가지런히 담긴 묵의 모습은 언뜻 보면 콩국물에 두부가 담긴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살짝 시큼한 끝맛에는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독특함이 배어 있다. 여기에 공깃밥 한그릇 말면 잣묵밥으로 변해 주린 배를 든든히 채우기에 딱이다.
◆숯불닭갈비
가평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소개된 맛집 메뉴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음식은 다름 아닌 숯불닭갈비다.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닭고기를 숯불 위에 올려 구워 먹는 닭갈비는 양념·소금구이 가릴 것 없이 맛있다. 거기에다 풍미 가득한 치즈를 녹여 소스처럼 찍어 먹으면 불판 위의 고기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첫댓글 여러 번 가봤는데 갈때마다 좋았어요.
그래도 꽃 많은 봄이 가장 화려하더라구요
산모퉁이 바로 옆동네인데도 아직 가보질 못했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