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을 기념하는 열반재일입니다. 동시에 8일 출가열반 정진 중 마지막 8일째 날입니다.
오늘도 스님은 서울 공동체 대중과 함께 법당에서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발우를 펴고 공양을 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부처님께서는 룸비니에서 태어나셨고, 마가다국 보드가야에서 도를 이루셨고, 바라나시국 사르나트에서 처음 설법하셨고, 쿠시나가라 사라수 숲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다시 발우를 싸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어서 오전 10시 정각에 열반재일 기념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했는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전법을 해야 하는지 강조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
“부처님은 몸이 병들었지만 대중의 앞에 서서 사자처럼 당당히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쿠시나가라에 이르러 사라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라(śāla)나무’는 지금 인도말로 ‘살(śāl)나무’라고 부르는데, 보리수처럼 옆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미루나무처럼 위로 올라가는 모양의 나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라나무 두 그루 사이에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자리를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머리는 북쪽을 향하고, 발은 남쪽을, 얼굴은 서쪽을 향해서 누웠습니다. 그런 후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겠노라. 마을에 가서 여래가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 것이니 마지막으로 친견하고 싶은 사람은 친견을 하라고 알려라.’
마을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고 돌아온 아난다는 너무나 슬퍼서 울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를 부르셨습니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너는 지난 25년 동안 입 안의 혀처럼 나를 잘 시봉했다. 그러니 자책도 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마라.’
그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 우리는 정진하다 어려운 것이 있으면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정진을 했는데, 이제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지를 생각하라.
여기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태어나실 때 모습은 이러하다.
여기가 부처님이 도를 이루신 곳이다. 도를 이루신 내용은 이러하다.
여기가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곳이다. 설법의 내용은 이러하다.
여기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 열반의 모습은 이러하다.
이 네 가지만 잊지 않고 늘 생각하면 어긋날래야 어긋날 수가 없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매년 인도성지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발우공양을 할 때도 맨 먼저 이 네 가지 옛 일을 생각합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부처님께서는 룸비니에서 태어나셨고, 마가다국 보드가야에서 도를 이루셨고, 바라나시국 사르나트에서 처음 설법하셨고, 쿠시나가라 사라수 숲에서 열반에 드셨다는 이 게송을 가장 먼저 외우고 발우공양을 시작하죠.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
부처님을 친견하러 온 사람들이 다 가고 밤이 깊었습니다. 기력이 쇠잔하신 부처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편안히 계시도록 제자들은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늙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헐레벌떡 와서 고타마를 만나야겠다고 소란을 피웠어요.
‘사문 고타마가 열반에 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평소에 물어볼 것이 있었는데, 오늘 안 물어보면 이제 물을 수가 없으니 만나게 해 달라.’
이 사람의 이름은 ‘수바드라’였습니다. 이교도였기 때문에 부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타마라고 속세의 이름을 부른 거예요. 아난다가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친견 시간이 끝났으니 돌아가세요. 부처님을 귀찮게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도 수바드라가 돌아가지 않고 옥신각신 하니까 소란을 들으시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그를 들여보내라. 그는 나를 귀찮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의문이 있어서 물으러 온 것이다.’
수바드라는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문 고타마여, 세상에는 많은 사문들이 각기 다른 주장을 합니다. 누가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틀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이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틀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백 가지 견해가 있는데, 고타마가 보기에는 그중에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그릅니까? 너무나 궁금합니다.’
경전에 나오는 이 장면은 그 당시 인도 사상계에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혼란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질문을 듣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바드라여, 마음속에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어리석음이 있는 한,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해도 그것은 진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나는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수바드라여,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마라. 마음속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여덟 가지를 행해야 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그 바탕 위에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바른 정진을 하고, 바른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바른 선정에 들어야 한다. 나는 지난 51년 간 성실하게 꾸준히 정진해서 여기에 이르렀노라.’
보통 어떤 스승이나 지도자를 찾아가서 물으면 ‘내 주장이 옳고 다른 사람의 말이 틀렸다’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절대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의 말을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자신을 잘 챙겨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해서 출가하기를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출가시켜라.’
이교도가 출가를 청하면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당시 규칙이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바로 계를 안 주고 3개월 간 같이 살아보고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때 계를 주었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바드라여, 3개월은 같이 살아야 되느니라. 그 후에 계를 받을 수 있다.’
수바드라는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3개월이 아니라 저를 받아만 준다면 3년이라도 기꺼이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수바드라까지 교화를 하고 부처님께서는 대중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하자 대중이 침묵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어려워하지 말고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그냥 편안하게 물어라. 여래가 열반에 든 이후에는 물을 수가 없으니 물을 것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세 번을 물어도 대중이 대답이 없자, 아난다가 말했습니다.
‘저희는 부처님 가르침에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부처님의 최후 유언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것이 부처님의 최후 유언입니다. 이 짧은 글만 봐도 법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어떤 것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공이 뭐냐’, ‘화두가 뭐냐’ 하고 안 따져도 됩니다. 이 말씀에는 죽음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고, 죽은 뒤에 대한 걱정도 전혀 없습니다.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었을 때도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장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재가자들이 그들의 풍속대로 알아서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육신의 흔적은 탑으로 남았고, 말씀의 흔적은 제1결집을 통해 불경으로 남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기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암송을 했습니다. 오백 명의 아라한들이 모여서 결집을 했는데,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모은 것을 ‘수트라’ 또는 ‘경’이라고 합니다. 법문을 제일 많이 들은 아난다가 경의 초안을 내고, 오백 아라한이 검증을 해서 하나하나 결집을 했습니다. 율은 우파리가 가장 잘 지켰기 때문에 우파리가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대중이 그것을 인정해서 율이 결집됐습니다.
오백 대중이 모여서 안거 기간인 3개월 동안 결집을 했는데, 마을까지 탁발을 가면 시간이 없으니까 아자타삿투 왕이 식사를 후원했습니다. 경전 결집 장소인 칠엽굴은 외진 곳이어서 쉽게 찾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결집에 참여하겠다고 하니까 오백 아라한만 따로 모이기 위해서 멀리까지 간 것 같아요.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한 분으로부터 시작된 이 가르침은 부처님의 열반 이후 전 세계로 전해지게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한쪽으로는 불교라는 종교로 정착이 되어 나갔습니다. 부처님이 신처럼 인식되었고, 신자들은 복을 비는 쪽으로 갔고, 스님들은 수행자가 아니라 브라만처럼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쪽으로는 철학이 됐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과 분석, 논리가 철학으로 발전해서 불교철학이라는 학문이 됐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화엄 철학이나 천태 철학 등 많은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심오한 철학 중 하나가 되었죠.
그러나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은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수행’입니다. 수행이란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해서 괴로움이 없는 삶을 실제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하지 않고, 복이나 지식을 얻기 위해 불교를 찾습니다. 지식을 알고자 하거나 복을 얻고자 하는 것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과 거리가 멀어요. 다만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발전해 갔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괴로움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 주어진 조건이 어떻든 능동적으로 대응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이것이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이런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을 이 땅에 재현해내고자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많은 전법사들에 의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듯이, 이 좋은 법이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널리 퍼져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면서 정토불교대학을 많은 국민들에게 전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적든 많든, 기독교든 불교든, 사상, 이념,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법을 전하면 좋겠어요. 나부터 행복해지고 그다음에 타인도 행복할 수 있도록 법을 전하자는 것이 정토회의 목표입니다. 또 우리나라를 넘어서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바른 법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2차 만일결사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오늘 열반재일을 맞아서 다시 한번 전법을 발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다 함께 전법을 발원하면서 8일 출가열반 정진 중 마지막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넓고 깊은 원력 세워 보살도를 닦고 닦아...”
스님이 카메라 앞에 방석을 깔고 절을 하기 시작하자 화면 속 대중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했습니다.
“사생육도 법계중생 다겁생래 지은업장 지금 내가 참회하니 모두 소멸하여지고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지이다.”
300배를 다한 후 사홍서원으로 열반재일 기념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지난 8일간의 정진을 돌아보며 마음나누기를 했고,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낮 12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전문가포럼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님을 모시고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을 주제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송 전 장관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점심 식사를 한 후 스튜디오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생중계가 진행되고 있는 카메라 뒤편에 앉아서 송 전 장관님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송 전 장관님은 두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정말 소중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는 송 장관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합니다. 다음에 또 오셔서 이야기 나눠주세요.”
생방송을 마치고 차담을 나누며 여러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송 전 장관님을 배웅했습니다.
오후 5시부터는 용성조사님과 함께 3.1운동을 이끌었던 민족의 지도자 천도교 손병희 선생님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학술 세미나를 어떻게 준비할지 회의를 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해 온 분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EBS 클래스e 프로그램 제작 스튜디오에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강의를 녹화한 후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