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904)... 100세까지 살고 싶다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장수의 비결
조선일보가 설문조사기관(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우리나라 20-60대 성인 남녀 5023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에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50.1%가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답했다. 한편 일본인은 호스피스재단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22.0%만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貧困率)은 39%로 주요국 중 최악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100세 인생을 기대하는 사람이 전체의 절반이나 됐다.
‘100세까지 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복수 응답)은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한국 31.9%, 일본 68.2%), ▲자녀나 손주들이 크는 걸 보고 싶어서(한국 24.3%, 일본 38.6%), ▲세상이 발전하는 걸 보고 싶어서(한국 22.1%, 일본 25.0%), ▲죽기 싫어서(한국 18.1%, 일본 23.2%), ▲100세가 되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한국 17.4%, 일본 20.5%) 등이다.
노인(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 고령사회, 20% 이상 초고령사회라고 부른다. 이미 초고령사회(超高齡社會)로 접어든 일본은 100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많아서 장수가 축복이 아니란 걸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2022년 기준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약9만명으로 우리나라보다 10배쯤 많다. 총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高齡化率)은 한국이 17.5%로 일본(29.9%)보다는 아직 낮지만 2045년엔 일본을 추월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KBS-1에서 방송되는 TV 프로그램 중에 <시이어 토크 쇼 황금연못>이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30분에 방송되며, 어르신들이 살아온 경험담 등을 시청하다 보면 부모님 생각도 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동창회 부회장 문승권 박사가 5월 27일 황금연못 프로에 어머니(윤광남, 93세)가 출연하며 자신(67세)도 화면에 나온다고 알려왔기에 재미있게 시청했다.
지난 5월 27일 <황금연못> 프로그램에는 90세부터 105세에 이르는 어르신 8명이 출연하여 노래, 춤, 연기 등 자신의 특기를 보여주었다. 문승권 박사의 모친은 ‘93세 최고령 트롯트 가수’로 소개되어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힘찬 목소리로 노래(이자연의 ‘찰랑찰랑’)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문 박사는 “가수가 된 어머니 덕분에 형제들 우애가 아주 좋아졌다”고 말했다.
출연자들은 <100세 장수 비결>로 가족, 음식, 운동, 노래, 친구, 경로당 등을 꼽았다. 젊음은 자연이 준 선물이고, 아름다운 노년은 스스로 만든 예술이다. KBS 방송국은 출연자 어르신들께 ‘황금장수상’ 상장과 장수메달을 드렸다. “<황금장수상> 인생에 대한 진솔한 태도와 열정으로 삶의 지혜를 전하며 세대 간 소통에 앞장서 온 대한민국 시니어! 황금빛 여정을 응원합니다.”
서울특별시(시장 오세훈)는 고령화 시대에 효행(孝行) 실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100세 이상 노인 부양가족에 대한 표창 수여식을 마련했다. 올해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사위·손주 등 34명에게 표창장(表彰狀)을 수여했다. 오세훈 시장은 축사를 통해 “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는 등 더욱 노력하겠다”는 뜻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채현씨는 치매와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111세 모친을 봉양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았다. 김씨는 “어머니가 연세가 많은 만큼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적다고 생각해 직접 수발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박옥래씨는 올해 102세인 시어머니를 20년간 부양하고 있다. 시상식은 5월 31일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주최로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렸다.
전통사회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여겼던 다섯 가지 복인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상의 생활용구를 수(壽)와 복(福)자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자연물은 태양, 산, 물, 돌, 구름을, 생명체로는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을 그린 십장생(十長生)병풍을 두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영국 런던임페리얼칼리지 연구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가입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남녀의 평균수명이 10여년 후 선진국 중에서 최고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30년 출생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성 84.07세, 여성 90.82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100세인 미국 제56대 국무장관(1973년9월-1977년1월)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는 1923년 5월 27일 독일(구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8년 나치(Nazi,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 나치당)의 유대인 이주정책에 의해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키신저는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사(1950), 석사(1952), 박사(1954) 학위를 취득했다.
‘외교의 전설’ 키신저는 100세가 된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인터뷰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신임 주미 중국대사 셰펑(謝鋒)은 부임하자마자 키신저를 찾아 인사를 하고 중국 정부의 100세 축하를 전했다. 키신저의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키신저 아들 데이비드(TV 제작사 대표)는 ‘100세가 된 아버지, 헨리 키신저의 장수 지침서’라는 제목으로 워싱턴포스트(WP)에 쓴 기고문에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일화를 소개했다.
키신저가 100세가 되도록 지속적인 정신적, 육체적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데이비드는 “지치지 않는 호기심(unquenchable curiosity)으로 세상과 역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5년 전 95세를 맞은 키신저는 인공지능(AI) 문제를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데이비드가 아버지의 또 다른 장수 비결로 꼽은 것은 사명감(sense of mission)이다. 키신저는 “애국주의나 충성심, 초당파주의 같은 근본적 가치들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뛰어난 두뇌와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써가며 나라에 봉사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시멘트산업을 세계 5위로 키워 국가건설의 기간으로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서울대 공대 1회 졸업생 남기동(1919-2020)님은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되었다. 그는 한양대에 최초 요업(窯業)학과를 개설했으며, 고려양회와 쌍용양회를 건설하였고 인도네시아에도 시멘트공장을 세운 요업계의 태두이다.
그는 ‘아직 100살밖에 안 먹었습니다만(I am 100 years young)’이란 제목의 저서에 평생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으며 살아온 ‘일곱 가지 T’를 소개했다. Talent(재능은 모두를 위해서) Training(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Truth(진실 앞에 겸허 하라) Trying other’s shoes on(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라) Together(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Time(시간을 믿고 기다려라) Thanks(공경하고 감사하라) 등이다.
남기동 님이 평생 지켜온 건강비결의 핵심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 식보보다 행보(行補)’로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기를 즐겼다. ‘죽은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앉아있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발가락이라도 꼼지락거렸다고 한다. 젊어서는 매일 줄넘기를 오른발 1500번 왼발 1500번 도합 3000번을 하였으며, 여든살이 넘어서도 매일 1000번씩 줄넘기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장수과학을 연구하는 박상철 교수(전남대 연구석좌교수)는 오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서 ‘축복받는 장수’ 혹은 ‘불행한 장수’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널리 알리고 있는 75세 현역이다. 박상철 교수는 오랜 시간 ‘장수의 비밀을 아는 사람’으로 불려왔다. 그는 1980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대 의과대학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노화고령사회연구소를 이끌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인 인구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실제로 노인 중에는 아픈 사람보다 건강한 사람의 비중이 훨씬 높아지고 있다. 70-80대에도 건강하게 팔팔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70이 넘으면 아픈 데가 많아질 탠데’라는 걱정에서 ‘70대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화(老化), 늙음은 죽기 위한 변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변화라고 인식해야 한다. 즉, 나이 듦은 두려워할 현상이 아니라 생존의 과정일 뿐이다. 이에 생명이 허락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늙음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나의 선택이다. 나는 늙어서 못 한다고 포기해 버리면 늙음이 되는 것이다. 단순한 수명 연장보다 건강한 장수가 중요하다.
박상철 교수는 건강한 장수를 위한 기본 원칙으로 3가지를 강조한다. 첫 번째는 ‘하자’이다. 뭐든지 해야 한다. ‘나는 나이가 많고 기운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주자’이다. 예전의 노인과는 달리 이제는 독립적으로 살면서 가진 것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재능을 나눠 주는 것도 좋다. 세 번째는 ‘배우자’이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세상은 격변하고 있고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
박상철 교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00세를 준비하는 행동 강령>을 만들었다. 8조목으로 구성된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1)움직이자! 움직인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을 하고, 운동을 하고, 집안일를 하면서 몸을 계속 써야 한다. (2)마음을 쏟자! 늙었다고 주변 사람에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해지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변화하는 것에 마음을 써야 한다.
(3)변화에 적응하자! 왕년에는 얼마나 잘 나갔는지를 과시하면서 그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4)절제하자!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된다. 아직 젊다고 체력을 과시하는 것도 금물이다. 과음, 과식은 자제해야 하고, 운동도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절제가 필요하다. (5)나이 탓하지 말자! 무엇을 할지 말지는 나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6)남 탓하지 말자!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내가 해야 한다. 또 이런저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실컷 해도 된다. (7)어울리자! 나이가 들면 혼자 있지 말고 어울려야 한다.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외로움은 마음의 병을 부르게 된다. (8)규칙적으로 살자! 100세 어르신을 보면 대부분 규칙적으로 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식사 시간은 꼭 지킨다. 나이가 들수록 생체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망각하면 안 될 세 문장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만하지 말고 현재를 가치 있게 살라!,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Love of Fate, 運命愛)! 등 세 가지이다. 이에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고, 운명을 사랑하고, 오늘에 충실하여야 한다. 인류의 흥망성쇠가 교만(驕慢)의 악순환에서 비롯되므로 우리는 겸손(謙遜)하여야 한다.
<사진> (1) 100세 맞은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2) 신임 중국대사의 키신저 박사 예방, (3) 황금연못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르신들과 가족, (4) 93세 윤광남 출연자와 가족(문승권 박사와 동생).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904) 2023.6.3.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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