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을 할 때에는 수행 상에서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현상들을 계속 관찰하여 집중이 이루어지면 거친 대상들이 사라지고(止) 고요와 안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 고요와 안정 속에서 더 정확하게 현상들을 관찰하게되면 더 고도의 고요와 안정이 이루어져 지속됩니다. 이 고요와 안정을 통해서 더 세밀하고 확실하게 무상, 고, 무아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무상, 고, 무아라고 판별하면서 관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집중이 거친 상태에서는 현상들에 대한 고도의 관찰이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이렇게 형성되고 향상되어지는 고요와 안정을 사마타의 요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samatha는 √Sam (to be quiet)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원 의미는 ‘고요함, 맑음’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고요와 안정(사마타)은 계속 유지되고 향상되어야 그 토대 위에서 정확한 내관(위빠사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요와 안정을 사마타로 또 무상, 고, 무아의 실재를 관찰하는 것을 위빠사나로 볼 때에 이 둘의 관계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것이지 서로 양분관계에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자들도 사마타를 필요로 하게되는 것입니다.
개념이나 고정된 대상에 집중하는 것만을 사마타라하고, 실재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을 위빠사나라고 하는 대상에 따른 양분논리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기에 고정된 대상이라는 것은 실천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개념이던 실재이던 마음이 그 대상에 집중되면 정이 일어납니다 이 정을 사마디로 사마타와 동의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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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불교 교학의 장 - Thambho 각묵스님 관리' 게시판에서 지금 토론하고 있는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관계에 대한 제 글의 일부입니다 (글번호 168번부터~). 각묵스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바른 불교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