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서 태백가는 기찻길. 태백산을 관통하는 시커먼 터널을 통과하면, 짙은 회색 마을이 그 끝에 가만히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맞이한다. 바로 철암. 강원도의 가장 전형적인 폐광촌.
새벽 3시 20분에 출반해서 5시에 도착했다. 어릴적 태백에 가기 위해 이 마을을 지날때마다 나는 괜히 우울해지곤 했다. 그 우울함의 근원을 찾아보고자 20살이 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여행의 테마는 - 흔적 -
내가 우울함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이곳 철원의 회색빛 이미지는 다름아닌 흔적의 이미지이다. 한때 탄을 캐기 위해 이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판잣집을 지어놓고 그들의 삶을 힘겹게 뿌리내렸다.이곳 주민들의 삶. 시커먼 석탄가루처럼 파먹혀 들어간 그들의 삶은 결국 그 가루만 남은채 공허한 흔적으로 남아 마을을 간신히 버텨나가게 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대한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좀더 구체적이고 진실한 숨결을 불어넣고 싶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매캐한 연탄냄새를 직접 맡으면서, 이 외딴 강원도 산골의 존재를 다시금 밝혀보기로 했다.
기둥이 무너져 내려 납작해진 건물들 사이로 깨어진 유리가 흩어져있었다. 아직 사람이 사는 집에서는 타고 남은 연탄재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기름 보일러를 쓰는 집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솟아오른 굴뚝에서 매케한 연탄냄새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교회로 가보았다. 교회는 간소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서 하얗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조그만 종소리가 딸랑 딸랑 들려왔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니 교육실이 있었다. 어둠 속에 뭍혀있는 사물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널부러진 이불들과 잡동사니들, 나는 그들의 시선이 민망해서 얼른 문을 닫았다. 꽈베기식 계단을 올라가자 예배당이 나왔다. 예배당에는 빨갛게 난로가 피어올라 있었고, 여인 두명이 새벽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맨 끝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성경책을 그냥 펼처두고 갔나보다. 나는 그 성경책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낡은 종이에 인쇄된 성경 구절 하나하나마다 빨갛게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줄이 진하게 여러번 그어진 부분이 있어 읽어보았다. 고린도전서 13장.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나는 뭔가 숨이 탁 하고 막히는 것을 느끼면서 그 자리를 일어서려했다. 마침 기도를 끝낸 신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쩐 일로 오셨냐고. 여행중이라고. 폐광촌이라 둘러보러 왔다고. 어디 마땅히 묵을 곳은 있냐고. 아니 괜찮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러 온 것이라고. 서울서 왔느냐고. 아니 영주에서 왔다고. 그럼 그리 먼 곳은 아니라고. 그렇다고. 이제 아침이나 먹으러 가야겠다고. 역전 앞에 가야 아침식사 할 거라고. 오면서 봐둔 곳 있다고. 웃으며, 좋은 여행 되라고. 감사하다고.
돌아오며 종교라는 것이 이곳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의지할 곳을 점점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 그러나 그 여인은 상당히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아무런 스스럼 없이 길가는 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그때 순수한 종교의 힘을 느꼈고. 그것이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된 것이 아님에 동의했다. 아직 나는 종교가 없지만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행복의 이정표를 던져 줄 수 있다면 궂이 그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역전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상당히 낡아보이는 건물이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누렇게 수명을 다한 연탄을 연탄집게로 집어 나오며 들어가시라고 나를 반겼다. 무엇이 되냐고 물었더니 순대국밥밖에 안된다고 해서 그걸 먹겠다고 했다. 집이 얼마나 된 거냐고 하니 한 70,80년 된 거라고 했다. 천장이 약간 내려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신문을 보며 잠시 기다리다 보니 순대국밥이 나왔다. 순대국밥에 순대는 거의 없었고 살점이 약간 붙어있는 비계덩이와 간, 창자 같은게 들어있었다. 나는 비유가 상해서 결국 다 비우질 못하고 그 가게를 일어섰다. 돈 4000원을 받아드는 할아버지의 어께가 참 초라해보였다.
많이 파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역사앞에 미니 갤러리라고 유리창으로 진열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안에 그림이 5작품 걸려있었다. 철길옆에 핀 꽃이 산뜻한 색감으로 그려져 있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맨 오른쪽의 마지막 작품을 보았다. 그것은 깊은 터널을 막 벗어나려는 순간의 섬광같은, 어떤 추상적인 이미지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제목은 "흔적"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은근한 놀라움이 느껴졌다.
마을을 가파른 산이 그야말로 병풍처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그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한참 올라가보니 산길이 시작되었고, 그 산길을 계속 올랐다. 산길에는 발자국 없는 뽀얀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눈이 얼어붙어 있었기에 발을 옮길때 마다 부스슥 부스슥 하고 눈가루 소리가 났다. 나는 그 바스라지는 기분을 충분이 만끽하면서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악사사"라는 왠 이상한 절이 하나 나왔고, 그 절 옆에 흐르는 도랑을 따라 다시 내려갔다. 도랑의 한쪽에는 왠 짐승의 발자국이 짧은 보폭으로 찍혀져있었다. 발자국 크기로 봤을때 고양이나 개는 아닌것 같았다. 도랑가에는 듬성듬성 폐가들이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그중 한 곳에 발걸음을 멈췄다. 문틈으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먼지를 머금고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방이 두개가 있었다. 왼쪽 방에 얼룩덜룩한 군복이 눈에 띄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보았다. 천장 한쪽이 무너져내려 희미한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에 의지에서 방을 둘러보았다. 빨간색 구식 전화기가 뒹굴고 있었고 시커먼 종이 박스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 박스 안에는 몇권의 노트같은 것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귀퉁이에는 만화책이 일곱 여덜권 정도 쌓여있었다. 아이큐 점프도 있었는데, 가장 최근 것이 1996년 4월 것이었다. 나는 박스를 들어서 무너진 천장쪽으로 갔다. 겨울 햇빛에 비춰가며 노트들을 펼쳤다. 노트의 주인공은 젊은 청년인 것 같았다. 낙서나 일기들,찬송가와 시 같은 것들이 볼펜으로 삐뚤삐둘하게 적혀있었다. 일기를 하나 읽어어보니,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용기가 없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악마를 물리쳐야 한다는 종교적인 메세지도 담겨있었다. 나는 노트 3권과 미니 노래가사집. 그리고 먼지가 잔뜩 묻은 성경책을 챙겨서 그 폐가를 나왔다. 굉장히 큰 소득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겨 도랑을 내려갔다. 도랑이 끝나는 곳에는 다시 조그만 길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조그만 길의 끝은 산을 올라오기 전의 골목길에 연결되어 있었다. 조그만 슈퍼에 들려 뜨뜻한 베지밀을 사 마시면서 기둥에 붙은 맥주 광고 포스터를 보았다. "힘내라 강원도! 힘겨워 질수록 강해지는 강원도의 힘! 이라는 카피아래 장동건이 주먹을 불끈쥐고 인상을 가지끈 쓰고 있었다. 나는 왠지 씁슬해졌다. 강원도에 도대체 무슨 힘이 남아있는 것일까. 태백시 관광지도에 크게 나와있는 강원랜드 따위를 강원도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모든 것이 살아갔다는 흔적이 될 것이고. 그 흔적에 사람들이 시선을 돌렸을때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쓰게 웃었다.
피곤이 물밀듯이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어제밤을 새워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역사로 향했다. 역 안에는 대기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정도 누울 만한 장소는 그곳 뿐인것 같았다. 3개로 이어만든 대기실 위자에 베낭을 베고 누웠다. 형광등 불빛이 감은 눈썹 사이로 파고 들어와 눈이 부셨다. 나는 마스크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이어폰을 찾아 귀에 꼽았다. 그리고 몇분후 잠들었다.
중간중간에 역원이 혹시 지금 가는 기차 타야하는 거 아니냐고 잠을 깨우긴 했지만, 나는 거기에서 3시간 정도를 그럭저럭 달콤하게 잤다. 화장실에서 멍 해진 얼굴에 물을 뭍혀 세수를 했다. 갑자기 모든게 귀찮아졌다. 흔적이고 뭐고... 잠도 못자고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싶었다. 이곳에 오래 머물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사실 나는 다음 목적지로 어디를 가야할지 정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한숨이 나왔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란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걸 세삼 느꼈다.
어쩔 수 없었다. 둘러봤던 곳을 다시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 시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시장에는 이른 아침에 느껴졌던 죽은 이미지가 사라지고, 비록 할머니들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정도 활기가 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조금 흥미가 생겨 그들을 유심히 보았다. 손님도 거의 없을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을 피우고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속에서 흔적이 남기고 간 슬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뭔가 생각을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산 위로 다시 올라가 철암 전체를 쭉 훝어보았다. 탄을 보관하기 위한 커다란 건물들 옆으로 철길이 여러갈래 쭉쭉 뻗어 있었고, 그 위로 사람들이 각자 뭔가를 쥐고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집단적이었고 목적성이 있는 작업이었다. 젊은 여자직원이 작업하는 남자들의 옆에 붙어 있었다. 무슨 농담이라도 주고받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이 그다지 처량해 보이지 않았다. 비록 가옥의 5할 이상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려앉은 흔적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살았다. 나는 정신이 버뜩 들었다. 흔적은 일종의 이정표를 제시하기도 하며, 그것은 곧 희망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닭았다. 비록 그 흔적이 너무나 비참하여 우울함의 감정만을 낳지 못한다 해도. 새벽에 기도하는 여인들의 간절함에서도 느껴지듯 흔적은 곧 가능성의 문을 두드리는 하나의 보증서인 셈이다. 그래도 이곳에 한때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오손도손 살아 갔었다는 거부못할 진실. 그래. 이곳을 그저 과거속으로만 뭍으려 한다면 막혀버린 탄광처럼 결국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보라. 이곳은 아직 인간의 삶이 있다. 작은 텃밭에 고추를 심는 노인에서부터 인부에게 농담을 건네는 젊은 여성도 있다. 모두들 싫든 좋든 삶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까 역사 갤러리에서 봤던 어느 작가의 그림을 떠올렸다. 터널을 벗어날때 그 순간적인 강렬한 빛. 그 그림의 제목이 흔적이었지. 과거에의 흔적. 우울함의 이미지를 쫓아 찾아온 이곳에서 나는 그 터널끝의 빛처럼 하나의 빛을 찾았다. 비록 이곳이 정말 아무도 살지 않는 폐촌이 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오랫동안 남아 내일로 그 손을 흔들것이다. 심지어 한참 젊은 나에게도 흔적은 희망의 메세지를 남겨주지 않았는가. 나는 여기서 희망을 배우고 간다. 그리고 다음 여행지를 순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바다.
바다를 보러 가자. 소주 한병 들고 바다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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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역앞 조그만 피씨방에서 뛰어다니는 꼬맹이들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