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08. 07. 오늘의 양식 : 땅에 사는 자들의 예물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202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86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580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
3. 신 앙 고 백---------- 사 도 신 경--------------------------------------------------------
4. 찬 송---------- 38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5. 기 도----------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계 11 : 10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7. 설 교---------- 땅에 사는 자들의 예물
두 증인의 설교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들의 죄를 회개치 않고 구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심한 고통이 되었다.
10) 두 증인이 조롱 받는 이유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두 증인 순교의 모습은 두 증인 시체가 조롱받는 일이다.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였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열왕기상 18장 17절에 그 배경이 나온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볼 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그러면 엘리야가 육적으로 괴롭게 했나?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진리를 선포했던 것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었다.
따라서 두 증인이 조롱과 아픔을 당하는 것이 그들이 선포하는 진리가 강력하기 때문에 반항도 크게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내일 인류 종말이 올 수 있다.
썬 마이크로 창업자 빌 조이란 분이 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 물 때문에 종말이 온다. 무엇을 읽어 보던지 모든 면에서 종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기술의 발전이 현재처럼 급속하게 이루어질 경우 두 세대 안에 인류의 종말과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더욱이 이 같은 비관론이 정보화 시대의 개막을 개척한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에게서 나왔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라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보도했다.
빌 조이는 "인터넷 잡지 와이워드에 발표할 '24초짜리 건물에서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라는 유나바모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30년에는 컴퓨터의 성능이 현재보다 1백만 배 이상 강해진다.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스스로 복제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대로 가면 60년 이후에 컴퓨터에 의한 지구의 종말이 올 수 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종들이 조롱받고 거기서 죽었다. 많은 사람들은 황제가 '죽여라!'는 손가락 동작 하나에 맹수들을 풀어 놓아 물려 뜯기는 참혹상을 바라보면서 관중들은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서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성경을 들추어 보면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예언이 있다. 그러나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독립하기전의 주석은 칼뱅뿐만 아니라 모든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독립할 것이라고 쓴 주석은 하나도 없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면 2000여 년 전에 전 세계에 흩어져서 그 씨족이 말린 상황이었다. 그 땅은 터키가 지배했으며, PLO가 살았다.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흩어진 사람들도 쫓겨 다니거나 600만 명이 히틀러에게 몰살당하는 현실이므로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것을 감히 주장할 수 없었다.
우리 주석가들도 성경을 믿고 쓰지 못했다.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했다. 무천년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재림의 확실성이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32절을 '재림이 확실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재림의 역사성이다.
'무화과나무가 싹이 나면 그 무화과나무를 보아라.' 그 무화과나무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1장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면서 길가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하자 곧 말라 죽었다.
마태복음 24장 32절에서 '무화과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죽었다 살아나면', '독립하면' 그러면 '내가 문밖에 곧 가까이 이른 줄 알라.' 이것도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 확 드러나고 있다. 믿습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늘 백성의 유익을 구했다.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교황을 보라. 가는 곳마다 축복하고, 평안을 빌고, 교황청의 문만 지나가면 죄가 다 없어져 버린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하늘을 치솟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변했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성도들(백성)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유익을 구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마지막 때 활동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다. 선지자다. 그래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새벽마다 기도하라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일에 회개하라고 한다. 철통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선포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대 환난 때는 제사장적 종이 아니라 선지자적 종이다. 제사장적 종은 부담이 없다고,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적으로 말하면 고난과 아픔이 따른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예레미야 6장 14절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사람에게 아첨한다.'고 말하고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선지자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경고했다.
지금도 제사장적 목회자는 인기가 많다. 사람이 좋다느니, 부담이 없다느니, 얼마나 인기가 많은 줄 모른다.
선지자적 종은 독재한다느니, 강하다느니, 별소리를 다 듣는다. 두 증인이 오늘 이렇게 조롱받고 마지막 역사 속에 순교의 재물로 사라진다.
(1)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했다.
두 선지자란 두 증인을 말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짐승에게 속한 자들을 말한다.
두 증인은 물이 피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심히 괴로운 일이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처럼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말하고 물이 피가 되게 하면서 새 언약을 증거하니 그들에게는 고문이요 고통이 되었던 것이다. 말씀과 진리로 회개를 촉구했다.
* 왕상 18: 17 -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 마 23: 33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 (3: 10. 6: 10. 8: 13. 13: 8,14. 17: 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믿는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이 항상 듣는 자들의 양심을 채찍질 했다. 그런대 두 증인이 죽음으로 질책할 종들이 없으므로 믿는 자들은 가책에서 놓임을 받은 것이다.
(3) 서로 예물을 보냈다.
두 증인의 죽음을 보고 잔치를 벌였다.
* 삿 16: 23-24 –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 느 8: 10-12 –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 시 89: 42 - 주께서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은 기쁘게 하셨으나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바로 왕은 모세를 미워하여 죽이고자 했으며, 아합 왕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도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고, 헤롯 왕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성 바벨론도 두 증인이 시체가 되어 길거리에 버려지는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 선물(은사)들을 교환하면서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이니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결국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때까지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계 18: 2-19).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496 새벅부터 우리 ------------------------------------------------
10. 폐 회 ---------- 주기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