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과의 경기를 짧게 논평하자면, 심판의, 심판을 위한, 심판에 의한 경기였다. 지독한 변명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손이 안으로 굽는 심정에서 보자면 그럴 수 밖에 없을 만큼 우리나라는 잘했다. 초반 20분 주도권을 쥐고 공세를 펼칠 때에 마무리로 나왔어야 할 골은 지동원에 대한 명백한 위험한 플레이를 불지 않은 심판에 의해 만들어지지 못했다. 또한 전반 초반의 김보경의 움직임은 정말 훌륭했고, 명백하게 반칙을 당한 것이 분명했으나 또 지나갔다. 경기내내 찾아왔던 최고의 기회가 상대 파울과 이를 그냥 진행시킨 심판이 날려버렸다는 점을 볼 때 이번 경기에서 심판은 주인공임에 분명했다. 1:0 상황을 먼저 만들었더라면, 1:1 동점 상황을 먼저 만들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지울 수 없다. 아쉽다.
홍명보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데, 장단점이 있겠으나 브라질에게 정말 이길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드필더 수를 1명 줄인 것과 전방에 김현성이라는 제공권 좋은 공격수를 투입하여 영국전과는 다르게 경기를 운영했는데 나쁘지 않았던 선택으로 보인다. 브라질 전은 이전의 경기들과 달리 철저히 라인을 낮추고 시작한 것이 특징이다. 다른 경기들에서는 박주영과 구자철이 수비에게 적극적으로 달려주면서 상대편의 패스 각도를 좁히고 한 방향으로 공격방향을 유도하다가 롱킥을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브라질 전에서의 김현성과 지동원은 상대편 수비에 대한 압박을 강하게 걸지 않고 미드필더진 앞에 포진하여 수비적인 도움을 주었다. 김현성의 투입은 또한 세트피스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동원이 가슴 트래핑 후 날린 슛은 뒤로 돌아간 김현성이 떨어뜨려준 볼이었다.) 이건 경기 내에서 들어났듯 압도적인 브라질의 개인기와 기본기에 대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엉덩이를 빼고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선 것이 우리 팀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수비시에는 철저히 기다리다가도 공 점유권을 빼앗은 이후엔 공을 차분히 돌리며 우리의 공격을 풀어나갔다. 경기 초반 20분 그리고 후반 초반의 한국의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논점이랑 벗어난 브라질전 리뷰는 이 쯔음에서 마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곳이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 이런 식의 글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나은 팀임에 분명하다. 지난 예선부터 8강까지의 경기는 일본의 경기가 훨씬 수월하고 잘 풀어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기 전적만 보더라도 일본은 4강까지 3승 1무, 한국은 1승 3무. 빈공에 시달리며 꾸역꾸역 올라왔다는 느낌을 주는 대한민국 팀이다. 한국의 경우 멕시코, 무엇보다도 개최국 영국과의 경기를 끈끈한 수비력을 중심으로 풀어나갔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여유있는 전력을 선보이며 상대를 압도한 것처럼 보이는 일본이 있다. 일본이 이룬 결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지난 경기를 돌려보건데 상대가 정확히 어느 수준의 팀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을 압도하며 경기를 치른 것이 사실이다.(어느 기사를 보니 스페인전은 상대 퇴장으로, 모로코와 이집트는 선수들이 라마단 기간이라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 대회 내내 상대를 압박하고 윽박지르며 경기를 치른 것이다. 멕시코와의 4강 경기도 초반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아니 경기 중반까지도 꽤 괜찮았다. 패스 플레이는 화려했으며 박스 근처까지의 접근도 훌륭했다. 어쩌면 선굵은 축구를 구사하는 대한민국 축구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리드를 당하자 무너졌다. 연장전도 한 번 가지 않았고, 온두라스 전에서는 체력 안배까지 할 수 있었던 일본이 멕시코에 체력적으로 밀렸다고 보긴 힘들다. 그정도 체력이라면 이번 3,4위전에서도 우리나라가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겐 리더가 없었다. 역전골을 허용하자 점차 멈추는 다리들, 교체로 들어와서 팀을 살리기보다 자기가 해결하려는 듯한 플레이, 또한 그것을 반전시켜줄 리더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한발씩 더 움직여서 공을 받으러 부지런히 움직여줘야 했고, 수비 시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했다. 수동적으로 서서 기다리는 선수들이 늘어나자 패스미스가 늘어나고 패스 줄 곳도 마땅치 않았으며, 적극적인 수비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한발 늦은 수비(예의상의 수비라고 칭하고 싶다.)는 개인기가 훌륭한 멕시코 선수들이 한번의 드리블로 제쳐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일본 스스로가 강한 팀이며 해낼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리더도 없었고, 메달에 대한 의욕, 결승전에 대한 의욕도 점차 떨어질 때 이를 붙잡아줄 리더도 없어보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피지컬과 테크닉이 중요한 스포츠임에도 언제나 강조되는 조직력과 팀 스피릿의 모습을 그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 축구로 돌아오자. 브라질에 3-0 완패를 했지만 긍정적인 요소들은 위에서 이야기 했듯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발견한 것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리더 박주영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3-0이라는 점수가 사실상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3,4위전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그것이 전부여서는 안되겠지만, 우리 선수들에겐 병역면제가 탐날 수밖에 없지 않나.) 체력적으로 브라질에게 달려들어 공을 빼앗기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브라질에 대한 압박은 쉽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워낙 좋아서 압박을 쉽게 풀어버렸다. 일례로 박주영이 기껏 달려서 마르셀로를 코너플랙 쪽으로 몰아놨더니 패스 몇번 주고 받더니 드리블로 압박을 풀어버렸다. 압박에 있어서 개인 기량의 차이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3번째 골 역시 압박을 하기 위해 수비진 전체가 올라온 상황에서 나왔다. 수비진이 올라온 뒷 공간에 롱킥이 전달되었고 허겁지겁 내려오던 수비진은 흔히 동네 축구에서 말하는 45도 방향에 서있던 다미앙에게 걸렸다. 진형을 유지하면서 기술적으로 우월한 팀을 압박하는 것은 어렵다. 어찌보면 진형을 지키며 움직였던 후반 말미의 움직임은 3-0이 되어 브라질이 여유마저 찾은 마당에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긍정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박주영을 비롯한 올림픽 팀원들의 정신력이었다. 박주영이 올림픽팀 내에서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선배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그러한 모습은 필드 위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체되어 들어오면서 포기하지말라며 독려하는 모습이나 공격진에서 필요한 때에 적극적으로 압박하여 볼을 빼앗도록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리더의 모습이었다. 리더가 움직이자 다른 선수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영패한 것은 현실적인 문제로 놔두자. 상대는 브라질이다.) 그리고 경기 끝난 후의 모습은 늠름했다. 비록 패배했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결코 3:0으로 패한 이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경기 후에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이번 경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은 이번 올림픽팀이 얼마나 단결된 팀인지를 반영해주는 좋은 단면이다. 경기는 크게 졌지만 '멘붕'은 없었다.
사실 축구에 있어서 예상이란 것이 얼마나 빗나가기 좋은 것인가. 경기를 우리가 이기기가 쉽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일본이 우리를 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과는 신만이 알 것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다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한국이 3위로 대회를 마칠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결과일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신나게 할 것이다. 선수들에게도 만족할만한 결과일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동메달이 아니라 4위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면 나를 비롯한 한국의 축구팬들은 '우아아아악!!'하는 절규를 내지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선수들은 병역 면제라는 달콤한 열매를 눈 앞에서 놓치게 될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존심의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혹시라도 그렇다해도 우리나라의 올림픽팀의 엉덩이를 힘껏 두드려주고 싶다. 경기력 역시 훌륭하지만 어느 팀을 만나더라도 당당히 우리 축구를 보여주는 모습이 빛난다. 나와 동년배인 그들이 만들어낸 팀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늘 최고의 팀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토너먼트 최강의 팀이 아니라더라도 최고의 팀은 대한민국임에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훨씬 나은 팀이며 우리는 일본을 이길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남은 일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최고다! (그래도 지면 안돼... 지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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