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事裁判長崔元淳蒙惠碑
위치 ; 월림리 소공원. 월림교(橋) 남쪽 길가에서 보이는 비석 2개 중에 하나임.
유형 ; 비석(선정비)
시대 ; 조선(1906)
규격 ; 높이 80㎝, 너비 37㎝, 두께 15.5㎝
비문 앞 중앙 檢事裁判長崔公元淳蒙惠碑(검사재판장 최원순의 은혜를 생각하는 비석)
앞 오른쪽 律典持正 刑獄必公(법을 바르게 유지하고 형옥을 공정하게 하다)
앞 왼쪽 惟能惟賢 僉頌厥功(능률과 어짊을 생각하니 모두 공덕을 칭송하다)
뒤 光武十一年二月日 月林里(광무11년은 1906년, 월림리에서 세우다.)
광무11년은 1906년이고 월림리라는 마을 이름은 1935년에 처음 생긴 것이다. 북제주군 비석총람에는 건립년대를 1963년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의 말을 들어보니 원래 비석은 깨어져 버렸기 때문에 이 때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검사재판장이라는 직책 이름도 낯설다. 우리 나라에서 행정과 사법이 분리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재판소구성법」(법률 제1호) 제정부터이다. 재판소라는 새로운 명칭과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비로소 사법권이 행정권으로부터 형식상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지방재판소는 당해 지방 관할구역 내 일체의 민사·형사를 재판하며 원칙적으로 단독판사가 재판권을 행사하는데, 당시 판검사의 자격시험이 없었으므로 여전히 지방 수령이 맡았다.
제주재판소는 1896년 1월 20일 개설되어 같은 해 8월 15일 제주목재판소로 바뀌었다가, 을사보호조약 이듬해인 1907년 12월 23일 법률 제10호로 제주구재판소로 명칭을 변경하고 대구공소원(大邱控訴院) 광주지방재판소 관하에 두었다.
조선총독부 관제하인 1912년 4월 1일 제령(制令) 제4호에 따라 제주구재판소가 폐지되고 대신,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으로 개칭되었다. 이와 동시에, 제주지청에 검사분국(檢事分局)이 나란히 설치되었다. 따라서 1912년 이전에는 검사와 판사가 분리되지 않았었다.
8·15해방과 더불어 미군정이 실시되던 1945년 10월 11일 군정청 임명사령 제12호는 종전의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을 폐지하고 제주지방법원으로 승격 개원했다. 8·15해방과 더불어 미군정이 실시되던 1945년 10월 11일 군정청 임명사령 제12호에 의해 종전의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은 폐지되고 제주지방법원으로 승격 개원하였다. 초대 법원장으로는 최원순(崔元淳, 일명 최창순)을 임명했다.(검사장 양홍기, 검사 박종훈, 서기장 송두현) 최원순은 초대 제주도교육감 최정숙의 부친이다.(디제문)
최원순 재판장이 월림리에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미상(未詳)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비문 내용이 서로 달라 혼란스럽다. 광무11년은 1906년, 최원순이 제주법원장을 맡은 것은 1945년, 비문에는 ‘검사재판장’이라고 되어 있는데 검사와 판사는 이미 1912년에 분리되었다. ‘검사재판장’이라는 명칭이 실제로 쓰였기 때문에 비석에도 썼을 텐데 제주에서는 이미 공식적으로 법원장이라고 쓰고 있었음에도 민간에서는 일제초기에 쓰던 용어를 40여 년 넘게 계속 썼다는 것일까?
《작성 1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