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9일(화) 외, 세곡천 주변
무성하던 고마리도 지난여름 그 심한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이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 걱정했는데 일부가
용케 살아남았다. 가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이들이 문을 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마리는 꽃이 매우 작다. 세곡천을 지나면서 언뜻 보면 다 똑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꽃모양, 꽃이 핀 정도, 꽃잎 색깔 등등 각양각색이다.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을 엮은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신경림 김명곤 장영희 최영미
외 지음, 2006)에서 몇 구절 골랐다.
<사랑의 새가 된 시인 … 박노자>
새가 되어
― 김남주
이 가을에
하늘을 보면 기러기 구천을 날고
진눈깨비 내릴 것 같은 이 가을에
잎도 지고 달도 지고
다리 위에는 가등도 꺼진
이 가을에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오직 되고 싶은 것은
새다
새가 되어
날개가 되어 사랑이 되어
불 꺼진 그대 창가에서 부서지고 싶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걸어갈 길
내 모든 것을 말하고
그대 전부를 껴안고 싶다.
* 나는 인류가 진화되어 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라크에서의 미 제국의 살육과 같은 국가적 대형 범죄를 보거나, 로마 시대의 검투사를 방불케 하는 근육질의
남성들이 이중 격투기의 이름으로 서로를 피멍투성이로 만드는 광경을 눈요깃감으로 삼아 즐기는 선남선녀의
경기 중의 눈빛을 보면 솔직히 진화론에 대해 의심이 든다. 지능이 아무리 진화했어도 심성이 토굴에서 살았던
시절보다 퇴보했으면 퇴보했지 선량해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나의 회의적 입장과 반대로 인간의 의식이 그래도 진화될 수 있다면, 진화된 인간의 이름은 아마도
‘시인’일 것이다.(…)
<꾸밈없는 이 시대의 목소리 … 최민식(1928~ , 사진작가)>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 나의 사진집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가난한 서민들이다. 모두 이름 없는 여인들이지만 그녀들 각자
마다에는 솔직하고 편안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삶의 진신이야말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시적 진실이 아닐까, 아름다움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긴
시간에 걸친 지적 훈련과 인간적인 각성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내 사진 역시 다른 사람
들이 살아온 진실의 기록이다.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기를 강구하는 요즘 사람들에 비해 노천명의 이 시 속에 담긴 풍경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지 새삼 느끼게 되니 한없이 행복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 신경림>
너희 사랑 ― 누이를 위하여
― 신경림
낡은 교회 담벼락에 씌어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 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망설임과 헤매임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깊어졌다
돌팔매와 최루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줏집과 생맥줏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씌어진
낙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훈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구나
골목길 오가며 싹튼 너희 사랑은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깊어지고 다져진 너희 사랑은
*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 당시 나는 자주 들르던 집 근처의 술집에서 가난한 젊은 노동자와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의 모순과 억압에 대해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 강단을 지닌
청년이면서도 가난과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을 못내 부끄러워하던 순박한 청년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청년에게
는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단골 술집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문제는 그가 너무 가난한 것이었다.
여자의 부모로서는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노동자를 사위로 선뜻 맞을 생각이 없었으리라. 청년과 여자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이미 여러 번째였다.
나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괴로워하는 청년에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결혼하게 된다면 주례도 해 주고, 둘을
위한 축시도 써 주마 흔쾌히 약속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둘은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때 내가 그들을
위해 쓴 축시가 바로 ‘너희 시랑’이다.
<내 정신의 비만을 도려내고, 빈곤함을 채워 준 두 시인 … 김지숙(연극배우)>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내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할 때, 내가 정한 내 삶의 ‘시작’은 내가 연극에 얼떨결에 입문하여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갈망하면서 한없이 불투명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스러움으로 보냈던 이십대 초반이다.
그 시절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자문하며 뼈를 깎은 고통과 견딜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이겨내는 데
동반자가 되어 준 시인이 바로 김수영 시인과 천상병이다.
김수영 시인만큼 근현대시 문학사를 통틀어 격렬한 논란을 일으킨 시인도 드믈 것이다. 그의 시에서 소시민성
에 대한 자탄과 절규가 냉소적으로 번들거리듯 김수영 시인은 타고난 싸움꾼이자 전투적이고 치열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한편 천상병 시인은 천상 시인이며, ‘천상 시인’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시를 재미있고 쉽게 표현하며 욕심 없이
행복을 부르짖었던 시인도 없는 듯하다.
(…) 김수영 시인의 시가 내 정신의 비만을 도려내 주었다면, 천상병 시인의 시는 내 정신의 빈곤함을 한없이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한 떨기 연꽃 같은 그녀 … 김명곤(1952 ~ )>
몽유광상산시(夢遊廣桑山詩)
― 허난설헌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파란 난새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芙蓉三九朶 연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 전주 촌놈이 서울에 올라와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고학 생활을 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연극반원이 되어
연극과 술, 밤샘 연습으로 질풍노도의 생활을 하다 보니 덜컥 결핵에 걸렸다. 대학 3학년이 끝나가는 겨울의
일이었다. 나는 즉시 휴학을 하고 고향집의 골방에 드러누운 환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각혈과 숨찬 느낌, 식은
땀, 주사약과 약병으로 가득 찬 내 방에서 나는 날개 꺾인 새처럼 외로웠다.
(…) 그 고통스럽고 고독한 긴 하루, 나는 열에 들떠 밤마다 시를 긁적거렸다.
그 무렵, 전주 시내의 한 서점에서 허난설헌의 시집 한 권을 사게 되었다. 무심코 들춰 본 시집 속의 주옥같은
시편들이 나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미칠 듯한 그리움과 우울과 고독으로 몸부림치던 나에게 그녀의 시들
은 마치 사랑스러운 누이의 속삭임 같기도 했고, 고독한 누이의 편지 같기도 했다.
(…) 그녀는 이 시를 지은 몇 년 뒤 스물일곱 살이 된 해에, 초당에 가득한 책들 속에서 향불을 피우고 고요하게
죽었다. (…) 그녀를 흠모하던 병약한 문학청년은 15년이 넘도록 병마와 싸우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오십이
넘도록 명줄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무슨 부끄러운 일인가.
첫댓글 김명곤배우가 노무현대통령 시절에 문화부장관을 했던 것 같은데요.
대단히 강한 연기를 하시는 분인데, 서편제가 생각이 나네요.
저도 고3말에 무리를 해서 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거의 죽는 병이었죠.
저야 좋은 시절을 만나서 1년간 약을 하루 10알씩 털어넣고 완쾌되긴 했지만요.
시인 이상도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지요.
김명곤배우가 각혈과 기침을 해대다가 요절한 허난설헌의 한시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니 같은 병을 앓은 한사람으로 조금은 이해를 할 것 같기도 하네요.
윤동주 시인의 "병원"이라는 시가 생각나네요.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니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