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한국에 신혼 여행 온 첫날밤의 이야기 입니다.
혹시나 얼레리 꼴레리 한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면 진정하세요
그런 이야기는 없으니께...
우리는 오누이 같은 사이...... 손만 잡고 자는......(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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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작은 아버지, 어머니께 부탁을 해서
스튜디오부터 들러야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바로 촬영을 들어가야 하와이로 돌아가기 전에 앨범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도착하자마자 드레스 고르고 장소 정하고 치수도
재야 했던 것이다.
한복은 자기 걸로 가지고 와야 한다고 해서 결혼식 때 입었던 것을
싸가지고 갔다.
울 신랑도 한복이 있냐구? 물론 있다.
하와이에서 치수를 재서 한국에 보냈더니 이모가 맞춰서 부쳐 주셨다.
스튜디오에서는 무엇보다도 신랑의 체격에 놀란 것 같았다.
한복을 맞출 때도 천이 더 들어가서 돈을 더 내야 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미리 예상을 했었기에 하와이에서 전화로 예약을 할 때 신랑의 키가
190 센티미터라고 말했었다.
그랬더니 기함을 하면서 바지는 맞는 것이 없으니까 까만색으로 자기 것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신랑 키가 190 센티미터라는 말에 놀라는 한편 역시
미국 사람은 키가 커, 라고 생각하겠지만 미국 사람이라고 다 키가 큰 건
아니고 신랑이 그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
시아버지 키가 175쯤 되시는데 미국에서 태어나셨으니까 우리나라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전쟁 땜에 못 먹어서 키가 덜 자란 게 아닌 이상
특별히 큰 키는 아니다.
시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엄마랑 비슷한 백 오십 몇 센티미터 수준이다.
신랑이 어쩌다가 키가 이렇게 자랐는지 모를 일이다.
얼마전 시아버지 친구 분이 놀러오셨다가 신랑을 보더니 얘가 이렇게 컸었나,
하고 놀라면서 시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했다.
"우체부 키가 컸나보죠?"
시아버지랑 무지 친한 사이인가 보다. 그런 농담을 다하다니... -_-
스튜디오에서 일을 마친 뒤 다음날 아침에 촬영을 하기로 하고
큰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10년 만에, 그것도 막 결혼해서 신랑과 함께 한국을 들어온다니까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신랑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한국어로 연습시켰는데
친척 어른들을 부르는 호칭도 연습시켰다.
근데 이게 무지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 쪽이 아홉 남매, 아빠 쪽이 다섯 남매인 대가족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아빠 쪽 어른들만 뵙게되었다.
아빠한테는 형제가 둘, 자매가 둘이다.
신랑에게 할머니, 큰아빠, 큰엄마, 작은 아빠, 작은 엄마, 큰고모, 작은 고모...
하는 식으로 열심히 연습을 시켰더니 곧잘 외웠다.
얼마나 잘 하는 보려구 테스트도 했다.
니나 : 우리 아빠의 형님을 뭐라구 하지?
신랑 : 컨 아바 (큰 아빠)
니나: 그럼 우리 아빠의 누나는?
신랑: 코우모 (고모)
니나: 그럼 우리 아빠의 남동생의 와이프는?
신랑: ......
니나: 힌트! 작은 아빠의 와이프라고도 할 수 있지.
신랑: 촨 오마 (작은 엄마)
생각보다 잘했다. 아이구 이뻐라,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이쁘다는 소리는 한국말로 해도 알아듣는다)
근데 막상 큰아버지 댁에 당도하니 연습한대로 먹혀들질 않았다.
어른들 외에 친척 오빠들과 동생들 5명도 모여 있었고 친척 오빠 2명은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자 우르르 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이...... - 그 때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지금 계산해 보아야 겠다 -....... 17명이나 되는 것이었다.
친척들이 반가와서 한국말로 막 떠들어대고 수선을 피우자 신랑은 벌써 넋이
반쯤 빠졌다.
어른들은 신랑이 한국말을 못 한다는 것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우리를 보며 마구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신다.
신랑은 말투나 억양으로 무슨 말들을 하는 건지 눈치로 때려잡으려는 듯
정신이 없었다.
어떤 감정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도만 대충 알아듣는 것 같았다.
어른들 : 우와~ 이 녀석은 왜 이리 키가 큰 거냐? (놀라움)
니나 : 좀 훤칠하죠.... 호호호 (우쭐~)
어른들 : 아이구 너무 보고싶었다, 얘야 (만남의 기쁨)
니나 : 저두요, 저두요... (감동)
어른들 : 미국에 식구들은 다 잘 있지? (그리움)
니나 : 네. 모두 건강하시죠 (뿌듯)
어른들 : 어쩌다가 이렇게 잘생긴 신랑을 만났냐? (호기심)
니나 : 아니, 뭐 잘생기긴요.... 호호호 (겸손)
어른들 : 니가 정말 신랑이랑 영어로 말이 통한단 말이냐? (의심 -_-)
니나 : 그, 그럼요...... Really! (당황 -_-;)
어른들 : 니가 먼저 좋아서 꼬셨지? (추궁)
니나 :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요.... 아, 배고프다.... (회피 -_-;;;)
한국 사람들 목소리 큰 거야 유명하지만 가뜩이나 우리 식구들은 목소리가
더 카랑카랑한 편이라서 아파트 복도가 진동하는 듯 했다.
할머니께 절부터 올리라고 끌어당기자 신랑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결혼할 때 폐백 드리면서 무수히 했던 절도 잊어버렸나 보다.
힐끔힐끔 날 쳐다보며 흉내내느라 여자가 하는 절을 하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다가 갑자기 식구들이 웃는 소리에 옆을 보니
190 센티미터의 거구가 다소곳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절을 하고 있었다. -_-
큰절을 안한게 다행이었다.
공항에서부터 배가 고파했던 우리는 정말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친척들은 신랑이 한국 음식도 잘 먹고 젓가락질까지 잘 하는 것이
신기했던지 저녁 식사보다는 신랑 구경에 더 정신이 없었다.
(신랑은 한국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고 실제로 하와이에는
한국 음식이 널리 퍼져 있어서 Yummy라는 한식 패스트푸드 점도 있다.
호돌이 마크가 로고인데 하와이 전역에 체인이 펴져 있다.
하와이 여행 가서 한국 음식 그리우면 꼭 한번 드셔보시길... 값도 괜찮고
먹을 만 하거든요...)
신랑은 정신 없이 저녁을 먹더니 얼마 못 가 몸이 불편해서 비비 꼬기 시작한다.
매일 소파 아니면 카페트가 깔린 푹신한 곳에 앉다가 딱딱한 마루에
책상다리를 하고 밥을 먹으려니 다리는 저리고 엉덩이와 허리는 쑤시는 것이다.
고모가 금방 신랑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더니 편하게 다리 피고 먹으라고
하시길래 내가 다시 다리 펴도 된다고 통역을 해주었다.
(내 영어로 말이 통한다는 걸 보여줄 수도 있었다. 뿌듯~ )
그랬더니 이제는 긴 다리가 상 반대쪽 끝에 계신 할머니한테로 빠져나왔다.
신랑은 발에 할머니가 닿자 놀라서 다시 굽히려 하지만 한번 쥐가 난 다리는
수습이 잘 되지 않는다.
긴 다리를 굽히려 하자 이번에는 상 가장 자리에 끼어 나오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괜찮다고 하시며 옆으로 돌아 앉으셔서 그제야 조금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롱다리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나를 숏다리라고 맨날 놀리더니...
(숏다리라는 한국말을 신랑에게 가르쳐 줄 때까지는 설마 신랑이 그 말을
나한테 써먹을 줄은 몰랐다. -_- )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하와이에서 사온 선물들을 꺼냈다.
하와이 특산물이 마카데미아 땅콩과 코나 커피 등등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행 다녀와서 주는 선물들은 쇼핑해서
사 가지고 가져오는데는 무지 신경 쓰이면서도 막상 나눠줄 때는
별로 생색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 들어갈 때 선물 다 생략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찾아가는 집 앞에서 그냥 과일 같은 걸 사가지고 들어간다고 한다.
들어보니 편하고 괜찮은 방법인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난 왠지
그러는 게 찔린다.
조금씩 밖에 못 나눠가져서 감질이 날 망정 그래도 멀리 하와이에서부터
특별히 염두에 두고 뭔가를 챙겨왔다는 게 얼마나 정겨운 일인가 말이다.
선물을 나누고 나니 어른들께서 결혼식은 참석 못했지만 축의금이라며
봉투를 여러 개 주신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집 앞 가게에서 과일 사가지고 들어오는 대신 무겁고 귀찮아도 하와이에서
선물 사가지고 오길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액수를 보니 더욱 눈물이 났다. -_-
역시 한국 어른들은 손이 커서 좋다. 신랑 쪽에선 이만큼씩 준 어른이
없던데... ^^
식구들과 밀린 얘기를 하며 그 동안 많이 못했던 한국말을 신나게
하고 있는데 옆을 돌아보니 신랑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눈은 충혈 됐고 딱딱한 마루 때문에 아픈 엉덩이는
계속 쑤시는지 몸을 비틀고 있다.
갑자기 불쌍한 생각이 든다.
명색이 신혼여행 첫날인데 별 다섯 개 짜리 고급 호텔은커녕 생전 처음
보는 딱딱한 마룻바닥에 앉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듣고 있다니...
신랑을 보니 그만 쉬러 가는 게 구해주는 것 같았다.
니나 : 신랑이 엉덩이가 아픈가 봐요. 일어서야겠네요....
그랬더니 친절한 큰어머니가 방석을 가져다 주셨다. (-_-)
어쨌든 그럭저럭 밤이 늦어 모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간다니까 신랑도 언제 다리가 저렸냐며 날아갈 듯 가볍게 일어선다.
오늘과 내일 밤은 일산의 작은 아버지 댁에서 자기로 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분명히 당신들 신혼 부부 맞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왜 계획을 그 따위로 짰는지 심히 궁금하다.
어쨌든 오늘은 일찍 자야 했다.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한국 3월의 차가운 바람을 뚫고 앨범촬영을
해야 했으므로...
(그저 앨범이 죄다.... 계획이 이렇게 된 것도... 남자들이여 결혼
앨범만큼은 무조건 신부가 하자는 데로 하시길.... 여자들 정말로
앨범에 목숨 건다.)
그리고 내일 밤을 여기서 자고 나면 진짜 신혼 여행지인 경주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병아리 골골 하는 모습으로 일산에 도착한 신랑은 그대로 깔아놓은
요 위에 쓰러져 버렸다.
그래, 푹 자라... 하고 나는 신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진짜다. 신랑은 자장 자장 우리 아가... 하는 자장가를 다 알아듣는다.)
그러나 신랑은 몇 분 안되어 다시 일어나 울상을 짓는다.
난생 처음 딱딱한 방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으니 등이 배겨 누워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랑은 슬픈 강아지 눈을 하고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더니 샤워를
한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자 신랑은 몸이 좀 개운한 모양이었지만 욕실을
나오는 표정은 무지 혼란스러웠다.
한국의 욕실 구조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신랑 : 왜 욕조에 샤워 커튼 없어?
미국의 욕실은 마루나 장판이 깔려 있어서 침실이나 거실처럼 맨발로
들어가게 되어있고 욕조나 샤워실은 커튼을 쳐서 물이 밖으로 튀지
않게 되어있다.
당연히 욕실 바닥에는 물이 빠지는 개수구도 없다.
니나 : 물이 튀어도 괜찮아. 바닥에 물이 빠지도록 돼있어.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니까
신랑 : 왜 그렇게 해?
니나 : 뭐가 왜야, 그럼 안 돼?
신랑 : 커튼만 치면 되는데 왜 바닥을 다 젖게 만들어? 귀찮게 신발까지 신고....
(하와이 사람들은 대부분 동양에서처럼 집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니나 : 욕실에서 빨래를 할 때도 있단 말야
신랑 : 집에 세탁기 있던데...
니나 : 어쨌든 굉장히 편리한 구조야
신랑 : 편리한 ....
니나 : 이렇게 편리한 욕실을 첨 보는 게로군?
신랑 : ......
나는 괜한 오기 같은 게 있어서 신랑이 행여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할 때에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척
하다가 결국은 한국 것이 더 좋다고 무조건 못 박으며 끝내곤 한다.
가끔은 그게 정말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주는 지 회의를
느낄 때도 있다....
오히려 한국 여자 성질 드럽다고 알려지지는 않을지......
고쳐야 할 버릇이다.
신랑은 이해할 수 없는 듯 했지만 피곤했는지 욕실에 대해선 더
이상의 질문이 없었고 대신 수건이 작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항상 샤워를 하고 나면 비치 타올 정도의 큰 타올을 사용하는데
할머니가 주로 쓰시는 그 욕실에는 조그만 세면 타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랑 : 타올이 너무 작아
니나 : 할 수 없어
신랑 : 왜 큰 타올 없어? 이걸로 모자라. 한국 사람은 샤워 안해?
니나 : 욕실에 새 타올 넣어둔 곳에서 더 꺼내서 써
신랑 : 다섯 개도 넘게 꺼내서 썼어. 근데 아직 축축해.
니나 : ......
가뜩이나 체격이 큰 신랑이 할머니의 조그만 수건으로 열심히
물기를 닦는 광경이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신혼 여행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앞으로 9일 동안 신랑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불쌍한 강아지 같이 낑낑거리며 잠든 신랑은 밤새 등이 배겨 뒤척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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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신랑은 정말 불쌍했습니다.
침대가 있는 호텔에 갈 것 그랬나 후회도 되고...
그렇지만 가난한 우리는... 진짜 신혼 여행은 경주에서부터라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신랑은 모든 고생을 참고 제 계획대로 따라 주었습니다.
정말 착하지요... 시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시듯이
"He has a soft heart"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