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니나입니다.
요즘 생각보다 시간이 딸려서 자주 글을 못 올리네요
멜 주신 슬기님 감사드리구요....
격려 멜 받으니까 기분 무지 좋군요....신랑한테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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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망의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는 날이다.
애초에 신랑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자랑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주를
신혼여행지로 정했었고 그 동안 갖은 사진과 엽서, 팜플렛 등을 이용해
예습까지 시켰다.
신랑도 불국사와 석굴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했다.
서둘러 아침을 먹으러 호텔 1층의 식당으로 갔다.
호텔 투숙객에게는 공짜 아침 식사가 나와서 짠돌이 신랑이 기쁨을 감추지
못할 줄 알았는데 표정이 별로다.
어제 저녁에 같은 식당에서 뷔페를 사먹었는데 가격만 비싸고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공짜가 어디냐고 내려가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신랑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어떻게 된 호텔이 공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냐고 하면서 무지하게
먹어댔다.
한국에 온 이후 신랑은 이렇게 오락가락 한다.
대한 항공 기내식이 최고인 줄 알았다가 두 번째로 나온 기내식을 먹고는
최악이라고 했던 것을 비롯해서 피자헛에 갔다가는 한국 사람들 정말
피자 못 만든다고 투정하더니 미스터 피자에 가서는 맛있다고 한 판을
다 먹고....
아직까지도 신랑은 한국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우선은 오락가락한 나라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불국사에 도착했더니 과연 신랑이 감탄을 한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여행을 왔었던 나로서는 불국사가 이번이 네
번째인데 역시 신랑과 오니까 기분이 틀리다.
신랑은 불국사에 있는 수많은 방을 하나 하나씩 다 들여다 보고 사진도
엄청 찍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나올 때까지 불국사 뒤 쪽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안내소에서 나눠주는 종이도 토씨 하나 안 빼고 다 읽었다.
세 시간이 넘게 불국사를 돌아다녔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어보니까 불국사 답사는 한시간 반으로 되어
있던데 그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밖으로 나와서 석굴암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낭떠러지를 옆에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 석굴암 주차장에서 내렸더니
이슬비가 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겨울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고 있던 우리는 그 비를 꼼짝없이
맞으며 덜덜 떨었다.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 올라가는 오솔길은 그래도 운치가 있었다.
이슬비 때문에 안개가 자욱한 게 멋있었던지 신랑은 안개를 배경으로
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막상 석굴암에 도착한 신랑의 표정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팜플렛을 보면서 사실 불국사보다 석굴암을 더 기대하고 있었는데 유리
칸막이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고 한마디로 썰렁함의 극치라는 것이었다.
이게 뭐냐고 찡찡대면서 짠돌이답게 입장료가 불국사랑 같다니 순 사기라고
야단이다.
불국사의 감동이 스러지면서 신랑은 다시 한번 한국의 문화 유산에
대해서도 오락가락 하는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다시 나오니 버스가 오려면 20분쯤 기다려야 하는데 비는
계속 내린다.
젖은 스웨터는 춥고 무겁고.....
가지도 별로 없는 빈약한 나무 아래에 둘이 서서 떨고 있었다.
갑자기 웬 아줌마가 우리 쪽으로 뛰어온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뽀글뽀글 아줌마 머리를 찾아내는 신랑은 단번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뜻밖에도 아줌마는 우리에게 우산을 씌워주려고 오고 계셨다.
아줌마: 아니고 세상에.... 다 젖었네, 불쌍해라
그러면서 가지고 온 우산을 우리에게 씌워주시고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것이었다.
막 감동이 되면서 또 막 자랑스럽기도 했다.
(거봐라, 한국 사람 마음씨가 얼마나 좋은데...... ^^)
기다리는 김에 아줌마한테 어느 식당이 맛있냐고 물어봤더니 아줌마가
아는 곳을 추천해 주셨다.
사실 지나갈 때마다 사람이 뛰쳐나와서 붙잡는 식당은 들어가기가
무서웠던 것이다.
버스가 오자 아줌마도 우리와 함께 뛰었다.
니나: 고맙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아줌마: 이 우산 가져가라
니나: 아줌마는 어떡해요?
아줌마: 괜찮아, 나는 요기서 일하고 나중에 또 데리러 오는 사람도 있고
니나: 아, 그래도..... 아줌마 비 맞으시고 가시면...
아줌마: 괜찮아, 괜찮아. 가져가라
아줌마가 억지로 버스에 우산을 밀어주고는 가버리셨다.
신랑은 어떨떨한 표정이다.
아프리카 머리의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천사로 보이나부다.
다시 한번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줌마가 가르쳐 준 식당으로 갔다.
조금만 상가 안이었는데 조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상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역시나 문들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열리고 사람들이 막 튀어나와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가르쳐준 식당은 간판도 작아서 잘 안 보이는데 튀어나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겨우 구석에 밖힌 집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러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 식당에 딸린 방에서 화투들을 치고 계셨다. -_-
뭐이래, 하고 나오려는데 순식간에, (정말로 놀라운 속도였다) 화다닥
방을 치우더니 식당은 춥다고 한사코 그 방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따뜻한 온돌방에 들어가자 신랑은 눈이 풀리면서 늘어졌다.
양말을 벗어 아랫목에 말리고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메뉴가 나왔는데 몽땅 5천원이다.
신랑은 역시나 젤 좋아하는 비빔밥을 시키고 나는 추워서 된장 찌개를
시켰더니 아줌마가 찌개는 그냥 끓여 줄 테니까 둘 다 비빔밥 먹으라고
하신다.
배고프고 추워서 그랬는지 여태 먹어본 식사 중 최고였다.
신랑은 거의 찌개를 마시다 시피 했다.
밥을 먹고 나서 내가 만원을 놓자 신랑은 깜짝 놀랐다.
이 많은 반찬에다가 찌개도 먹었는데 겨우 미국 돈으로 9달러?
찌개는 그냥 끓여주셨다니까 짠돌이의 눈에 다시 감동이 서렸다.
우산 아줌마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중에 미국에 돌아와서 신랑에게 한국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뭐냐고
물었다.
불국사라고 그럴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물건 살 때 세금 안 내는 것과
식당이랑 택시에서 팁 안줘도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지독한 인간이다)
점심을 먹은 뒤 통일전에 들렀다.
김유신 장군의 업적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
벽의 한 쪽 끝에서부터 걸어가면서 읽게 되어있었다.
나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별 생각 없이 그냥 걷고 있는데 신랑은
스토리를 읽어보더니 이해하지 못한다.
신랑: 이거 이상해.... 왜 세 나라가 싸워?
니나: 서로 영토 넓히려구 싸우겠지 뭐....
신랑: 이제는 한 나라인데도 싸워?
니나: 뭔 소리여? 통일이 안 됐으니까 세 나라지....
신랑: 이상하다.....
영어로 쓰여진 내용이 문법상 틀린 점이 많은가, 하고 읽어보았더니
우리가 그림의 끝부분부터 거꾸로 돌고 있었다. -_-
신라 역사 박물관에 갔다.
앗, 박물관에 도착하니 아줌마들 보다 더 무서운 패거리들이 와 있었다.
바로 수학 여행 온 여학생들이었다.
예감이 불길했다.
신랑은 석굴암 모형 전시실에서 아까의 실망을 되살려 보기 위해
진지하게 석굴암의 구조를 검토하고 있었다.
팜플렛의 화려한 예찬에 비해 너무 썰렁했던 석굴암이 믿어지지 않았던
가 보다.
뭔가가 더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여학생들은 (나도 예전에 그랬지만) 코스가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들어왔는지 구경은 제대로 안 하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중 한 여학생이 신랑은 보더니 소리쳤다.
여학생 1: 어, 멋쟁이!!!!
여학생 2: 뭐라구?
여학생 1: 저기봐! 얘들아, 멋쟁이다
나머지 여학생들: 꺄아아아아 ~
나도 저 시절엔 세상에 무서운 것도 쪽팔린 것도 없었다.
여학생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학생 1 : Oh, ye!!!! Hello, handsome!!!
발음이 엉망이다.
신랑은 자기한테 하는 소린지도 모르고 석굴암 모형만 보고 있다.
여학생 2 : Hello, hello, oh ye~
신랑, 여전히 모르고 있다.
나도 덩달아 못 들은 척 석굴암 모형을 노려보았다.
아~ 이곳에서 다시 한국인의 이미지가.... 하는 생각이 들며 식은땀이
흘렀다.
여학생 1 : English, oh ye~
근데 이것들이 발음도 엉망인데 말끝마다 오,예~ 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신랑이 낌새가 이상했는지 여학생들을 돌아본다.
여학생들: 끼아아아아아 ~
신랑은 혼비백산한 표정이 되었다.
여학생 3: You, very handsome~ Oh~ ye!!!!
신랑: ......hhh Hi.....
여학생들: 끼아아아아아아~
신랑이 석굴암 모형 옆 구석에 서 있는 동안 단체 관람 온 여학생들은
지나가면서 차례로 손을 흔들었다.
신랑도 구석에 박혀서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가끔씩 여학생들이 저 꾀죄죄한 여자는 뭐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나도 같이 째려 주었다.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영어를 마구 지껄이기도 했다.
신랑이 박물관에서는 조용히 하는 거라며 내 입을 막았다. (-_-)
박물관을 나와서 신랑에게 말했다.
니나: 저 나이 때는 원래 저래, 이해해....
신랑: 뭘 이해해?
니나: 소리 지르고 그러는 거.... 무서워 하지마.... 좋아서 그러는 거야....
신랑: 안 무서워...... 나 잘생겼다구 그러는 거지?
내가 무섭게 째려보는데도 신랑은 흐뭇한 표정이다.
아줌마들은 무서워하면서 젊은 처자들은 좋다 이거지....
나보군 박물관에서 떠든다고 그러더니 소리 지르는 것들한테는 손
흔들어주고 말이야....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니다가 호텔에 돌아왔더니 둘다 지쳐 쓰러졌다.
몸도 으슬으슬 추웠다.
그래도 신랑은 흐뭇한 표정이다.
니나: 애들한테 인기 많아서 좋아?
신랑: 아니, 이 우산 땜에 기분이 좋아.
그 후로도 신랑은 한국을 돌아다니며 매너 없는 아줌마들 땜에
여러 번 기분이 상했었다.
아줌마의 본색에 대해서 경주에서 잠깐 오락가락 한 걸 빼면 대부분은
두려운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신랑은 첨 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아줌마 땜에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누가 신혼 여행 이야기를 하면 경주에서 가져온 우산부터
보여준다.
불국사나 석굴암보다 더 좋은 걸 보여주신 아줌마, 고맙습니다. ^^
계속 펄레니까 자꾸 출처쓰는걸 잊네여 ^^;
<<펌-www.puh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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