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경복 멤버로는 김윤호(192),포드 이회창(190),2m 신장 만으로도 화제였던 남상만,,등
이들이 함께 한 경복은 1학년 부터 유재학과 김윤호는 주전으로 기용 되었고...
경복은 유재학과 김윤호가 함께 뛴 대회에서는 거의 모든 고교 대회를 석권 하는 등...
최강의 전력을 보였던 팀이 였고...
각 대학의 스카웃 전이 전쟁으로 비화 될 만큼 엄청난 스포를 받았습니다.
경복의 라이벌로는 황준(195) 이라는 센터가 맹 활약했던 양정고 였지만 양정 역시 경복에는 늘 우승을 넘겨 줘야 했고 훗날 허재-한만성-이민형의 용산이 고교 모든 대회를 제패했을때 만큼의 초 고교급 전력 이었습니다.
유재학의 장점은 일단은 영리하고 A 패스를 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았고 김상식의 부친 이셨던 한국 농구의 전설로 알려진 김영기 선생님과 가장 비교를 많이 하는 정통 1번 가드 였습니다.
실제로 아래 유재학 관련글에 나왔던 가드들...(김동광-박수교-신동찬)은 정통 1번 이라기 보단 슈팅 가드내지 팀의 득점을 책임 질려하는 스코어러 가드들 이었습니다.
기업은행 시절 김동광의 플레이는 현재 울산 모비스의 양동근과 같은 파워풀 하고 최고의 테크니션 가드로 우리나라 선수중 최초로 비하인드 백패스 내지 드라이븐시 한손으로 공을 잡고 그대로 림을 향하는 NBA 줄리어스 어빙의 플레이를 가끔 흉내 내기도 할 만큼 우리 농구를 한단계 올려놀 만큼 탁월한 기량의 테크니션 파워 가드로 보고 싶습니다...
연대-해군 시절의 박수교는 정통 가드로 보기 어려운 만능 선수로 보고 싶습니다...
박수교 연대 시절엔 워낙 화려한 동료 멤버들이 함께 했기에 연대가 모든 대학 대회를 석권하던때 이였기에 박수교가 궂이 포인트 가드를 보지 않아도 연대팀을 이길 팀은 없었고 슛팅 폼이 가장 이상적이고 슛 정확도 또한 백발 백중 이었습니다...
박수교의 장점은 클러치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고 팀이 위기시에도 자유투 만큼은 거의 백프로일 만큼 스타 기질이 다분했고 특히 외모또한 하얀 피부에 영화 배우 뺨칠 만큼 뛰어나 스포츠 잡지에 단골로 기재 되었던 선수로 기억 됩니다...
연대-삼성 시절의 신동찬은 우리 나라 최초로 190의 장신 가드로 경복 시절 부터 알려진 김동광 만큼의 테크니션 가드로 속공 전개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날카롭게 찔러주는 패스가 일품 이었습니다.
190의 신장으로 뛰어난 리바운드 능력에 의한 빠른 패스는 바로 박인규에게 연결 쎄컨 브릭으로 알려진 득점을 가장 잘 만들어준 가드 였습니다.
코트의 멋쟁이로 수비 또한 뛰어난 선수 였습니다.
삼성 현대 라이벌전이 벌어질땐 이충희의 전담 마크맨으로 천하의 이충희도 신동찬이 마음 먹고 수비만 하는 날에는 10점도 못 넣을때도 있을만큼 수비에 관해선 제가 본 선수중 아직도 최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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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명 가드가 많았고 농구 전술이 비교적 자유 로왔던 연대로 유재학은 진로가 결정 되었고...
연세대 1년 시절 유재학은 송도 출신의 동기생 정덕화와 함께 고명화,오세웅,조명선,김인환 등과 함께...대학 강자로 자리 매김 했지만...
한기범,김유택,강정수를 스카웃 대학 무대를 서서히 평정 하던 중앙대 돌풍에 연-고대가 지배했던 50년 한국 농구의 강자 자리를 허재마저 입학 하며 그 구도가 중앙대로 넘어가는 불운과 함께 유재학 또한 경복 시절의 스포트 라이트 만큼 대학 시절엔 큰 평가를 받지 못 했습니다.
유재학은 이미 상명 초등 학교 시절 부터 가드로서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유명 했던 스타였고 그가 소속된 학교는 (용산중-경복고-연세대-기아) 늘 정상에서 큰 환호를 받을 만큼 유재학의 가드로서의 리딩,득점,경기를 보는 눈 만큼은 최고 였습니다.
기아 시절 여러 소문이 무성 했지만...
그가 은퇴를 결심 하게된 동기는 유재학-정덕화의 연이는 MVP 수상에 중앙대 동문들의 강력한 반대와 지나친 간섭으로 농구판에 회의를 느꼈고 방열 감독 마저 점점 기아와 등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보고 또 당시 무릎 연골이 안 좋았던 유재학 이었기에 만성적인 부상에 시달리며 여러 가지 정황들이 그의 조기 은퇴를 갖게한 계기가 되었다 말합니다.
경기 전체를 볼줄아는 뛰어난 농구 감각과 노마크로 만들어주는 탁월한 A 패스능력, 농구를 알면서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가드로서는 그 무엇하나 흠이 없던 불운한 천재 가드 였습니다.
허재와 동시대에 함께해 불운이라 말하는 것에는 어페가 있다 보고 싶고,,,
허재가 뛰어난 전천후 선수에 농구 기량이 출중 전체적으로 뛰어나 보였지...
가드로서의 리딩,어시스트 같은 능력은 유재학에 당연히 밀렸고,,,
슈터 로서 이충희,고 김현준 같은 클러치 능력 또한 두 사람에게는 턱 없이 부족 했습니다.
허재 만큼 전천후 적인 모든 포지션을 최고의 기량으로 가진 선수가 없을 만큼 한국 농구사에 최고로 기억 되지만 전문 분야 에서 만큼은 이 들 선수와 비교 해서는 안될거라 봅니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한 가지만 태클을 걸자면, 당시 경복고의 이회창은 190센티의 포워드가 아니고, 178센티의 단신 가드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