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시즌 초 전문가들은 엘지를 중위권이라고 봤었다.
93 공수의 핵 송구홍은 부상에 군문제가 겹쳐, 한 게임도 나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포수 김동수 또한 방위복무로 인해 원정경기 참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었다. 그외 차명석도 방위병이었다.
반면 빙그레는 이정훈,장종훈이 다시 예전의 기량을 되찾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전력이 안정된 OB를 우승후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해태는 한대화를 내주었지만, 숙원이던 왼손거포 김상훈을 받고, 2루 비
력은 당시 최고라던 송인호를 영입했다.
그러나 94년 1월 박찬호의 미국진출로 인해, 선동열의 의욕이 떨어져 있었다. 2루수출신 홍현우의 첫 해 3루수비도 불안했다.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예상은 빗나갔다. 중위권이라던 태평양과 엘지가 나
란히 2강체제를 구축했다. 태평양은 안병원-최창호-김홍집에 신인 최상덕, 재기에 성공한 정민태와 정명원의 마운드를 내세웠다. 김경기-김동기의 홈런포도 불을 뿜었다.
엘지는 전지훈련당시 기대주로 꼽히긴 했으나, 무명에 가깝던 서용빈의 돌풍이 시작되었고, 사이클링히트로 스타가 된다. 이에 김재현-유지현이 나란히 자극을 받았다. 한대화의 해결능력은 여전했다.
김태원,정삼흠,이상훈의 93 구위는 여전한데다 타선의 지원까지 확실히 받으면서 승수를 쌓아나갔다. 93 가을부터 어깨에 맛이 간 듯했던 김기범을 대신해, 타선지원율 10 여점에 이르던 행운아 인현배가 나섰다.
차명석-차동철-민원기-강봉수의 중간계투진과 마무리 김용수의 구위도 여
전했다.
초반 마운드의 힘으로 버티던 1위를 달리던 태평양은 점차 한계에 부닥치
면서, 엘지에 1위자리를 내준다. 당시 태평양의 문제점은 방망이에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5월까지 팀도루 7개였던 기동력이었다. 윤덕규,김경기,김동기의 클린업과 마운드는 괜찮았지만, 뛸만한 선수가 없었고 하위타선은 약했다.
4월까지 1-2위를 다투던 태평양은, 공격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
국 5월 초 잠실 엘지전 3연전을 모두 내주면서, 2위로 떨어졌다. 이후 엘지는 안정된 전력을 과시한다. 94년 엘지의 최다 연승은 5연승이었지만, 최다연패는 3연패였다. 거의 모든 팀들과의 상대로 3연전 2승 1패를 했었다.신인 3인방은 5월 중순 잠시 고비를 맞았으나, 6월초 다시 서용빈의 20게임연속안타행진이 벌어지면서 고비를 넘어가버렸다. 이후 엘지는 별 고비없이 8월중순까지 2승 1패의 행진을 이어나가면서 1위를 지켜나갔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었지만, 신인들이 주축이 된 엘지... 젊음이 좋긴 좋았다. 유난히 행운도 뒤따랐다. 체력이 떨어진 8월 중순, 잠시 고비를 맞는다. 롯데와의 경기에서 김용수의 몇 차례 마무리실패로... 2위와 한때 8게임차였던 게임차가 4게임까지 줄어드는 고비를 맞았다. 극성팬들은 이광환감독을 불러내 청문회까지 벌이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고비에서, 대구에서 벌어진 삼성 3연전을 싹쓸이 하며 한숨을 돌렸다. 이때 한화와 태평양의 2위싸움도 어부지리였다. 이후 엘지는 승수쌓기에 다시 가속을 올렸고, 9월 9일 시즌내내 2위파트너였던 태평양을 상대로 매직넘버를 없애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었다.이날 2강에서 7위로 떨어진 옆집 OB에서는 항명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해태는 타력이 워낙 바닥권이었다. 기대를 걸었던 김상훈은 어깨부상으로 제대로 뛰지도 못했고, 송인호의 타격도 한계가 있었다. 3루전향 첫 해, 홍현우에게 많은 것을 바란 것은 무리였다.
설상가상으로 선동열은 박찬호의 해외진출로 인해 의욕이 상실된 상태였
다. 이대진은 2년차 징크스에 걸려 있었다. 이강철은 유난히 홈런을 많이 얻어맞으며 15패를 당했다. 조계현이 엘지전 5연승포함 18승으로 다승왕을 하면서 버텨주었고, 선동열의 부진은 송유석이 그나마 간신히 메꿔주었다.
4위까지 나갈 수 있었던 힘은, 이때부터 야구천재로 불리기 시작한 이종범의 활약덕분이었다. 전년도 4월, 광주일고 선배 박준태가 잠시 보여주었던 원맨쇼를 이종범은 시즌내내 펼쳤다. 5월 타격-홈런-최다안타-출루율-장타율-도루 1위, 여기에 현란한 유격수수비까지 여전했다. 4월 한때 꼴찌를 헤매던 해태는 이종범의 원맨쇼와 조계현의 분전으로 5월 12연승을 기록했고, 그 힘으로 4위에 턱걸이 했다.
해태와 함께 강으로 분류되던 한화 역시 시즌 초에 부진했다. 역시 이강
돈-이정훈 등의 노장들은 한계가 있었다. 정민철-한용덕의 투구와, 정민태와 함께 부활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구대성의 활약이 시작되긴 했지만, 장종훈 역시 부상에 신음하고 있었다. 한화가 살아난 것은, 기본 마운드의 힘
에 6월경부터 등장한 신예 박지상,이민호의 가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94년에 처음으로 4강에서 탈락한다. 포스트시즌진출도 실패한다.중
위권은 그럭저럭 갔다. 93 MVP 김성래는 전해 같지 않았다. 양준혁은 시즌
중반까지 부진하다가, 타율 3할을 간신히 채웠다. 노장 류중일-강기웅은 목
디스크에 허리부상으로 신음했다. 정경훈이 공백을 간간이 메꿔주긴 했다.
에이스 김상엽은 역시 짝수해에 고질병 허리부상으로 신음했다.
동봉철, 이종두는 평범한 야수로 전락했다.
시즌 중반 백인천인스트럭터를 영입해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우용득감독
과의 마찰이 생기면서, 결국 백인스트럭터는 팀을 떠났고, 포스트시즌진출
에 실패했다.
롯데는 5명의 방위병복무로 인한 공백을 극복하기는 무리였다. 타력은 그
렇다치고... 부상병동 염종석의 공백을 주형광이 메꿨으나, 윤학길에게만
존재했던 '4시즌차 징크스'가 찾아왔던 시즌이었다.
시즌초 2강으로 꼽혔던 OB는 윤동균감독의 이해되지 않는 선수단운영으로
인해 시즌내내 불협화음을 빚은 끝에, 감독은 경질되고 성적은 7위까지 떨
어졌다.
간신히 막차를 탄 한화와 해태의 준플레이오프... 포스트시즌에서 상대적
으로 약했던 선동열은 이번에도 여전했다. 해태는 94년, 포스트시즌에서도
역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한화 2연승
태평양과 한화의 플레이오프는 김경기의 원맨쇼였다. 김경기의 2-3차전 동
점-역전홈런포로 태평양은 한화를 간단하게 꺾었다. 태평양 3연승
엘지와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1차전은 김선진을 영웅으로 만들며, 엘지
승.
2차전은 몸이 다풀린 엘지타자들이 초반부터 안병원을 공략하며 7-0 완봉
승. 정삼흠은 역시 태평양 킬러였다.
3차전은 정민태에게 6회까지 1안타로 끌려가던 엘지가, 대타 김영직의 한
방으로 흐름을 돌리고, 4-0에서 5-4로 드라마틱한 역전승. 어깨부상으로 시
즌내내 부진했던 김기범은 이날 호투로 95시즌 부활을 예고했다.
4차전은 그때까지 시리즈 12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던 한대화의 2타점 적시
타와 서용빈의 솔로홈런으로 3점을 뽑고, 이상훈-김기범-김용수가 2점으로
막아냈다.
엘지는 96년까지 유독 롯데에게 약했다. 이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롯데전
10승 8패로 근소한 우위.
나머지 팀들은 모두 11승 7패(OB,해태,삼성), 12승 6패(한화), 13승 5패.
(태평양,쌍방울)
전년도 꼴찌팀 태평양에 9승 1무 8패를 했던 엘지는, 94년에 태평양이 2위
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엉뚱하게 상대전적으로는 13승 5패로 절대적인 우
위를 차지했다.
해태한테 당했던 7패중 5패가 조계현에게 당했던 패배였다. 엘지의 조계현
징크스는 여전했다. 해태는 이 시즌에는 태평양에게 철저히 발목을 잡혔
다. 93년 철저하게 패한데 대한 앙갚음이라고 보여진다. 반면 엘지는 태평
양을 철저하게 잡았다.
엘지는 전반기까지 거의 모든 팀들에게 3연전에서 2승 1패를 했었다. 7-8
월경 힘이 달렸을 때, 잠시 1승 2패를 했다가, 마지막 3연전에서 다시 2승
1패 혹은 3연승을 했다.
서용빈은 3-4차례의 더블헤더에서 9타수 7안타를 기록하며, 몰아치기의 진
수를 보여주었다. 이종범과 타율-최다안타 경쟁을 벌이다가 막판 힘이 부치
면서 타율 4위까지 떨어졌다.
유지현은 안정된 수비와 시즌내내 3할에 도루 51개로 톱타자의 역할을 했
으며, 고비마다 15개의 홈런을 터뜨려 신인왕에 등극했다. 김재현은 130m짜
리 다이내믹한 홈런들을 여러차례 보여주었다.
인현배는 타선의 지원을 유난히 받으며, 10승 1패까지 갔다가, 막판 한계
를 드러내며 4연패했다. 이후 수술을 몇 차례 받고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보
기 힘들어졌다. 행운이 94년에 다한 듯 하다.
김동수는 방위병임에도 불구하고 포수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물론 이때
의 혹사가 95년 봄 어깨부상을 불렀고, 이후 김동수의 어깨는 약해진다.
94년 페넌트레이스 마지막경기 파트너도 역시 공교롭게도 2위 태평양이었
다. 두 노장 한대화,정삼흠의 희비가 엇갈리는 경기다.
한대화가 첫타석이나 두번째타석에서 안타를 치면, 시즌 3할을 채우게 되
어 있었다. 그러나 한대화는 결국 4타수 무안타로 시즌 타율 0.297로 마감
했다.
반면 당시 14승을 기록하고 있던 정삼흠은 마지막 경기 9회초까지 1-2로
뒤진 상태로 모든 피칭을 끝냈다. 정삼흠의 완투패로 끝날 찰나, 94년 드라
마틱한 경기를 유난히 많이 했던 엘지는, 이날도 9회말 최훈재의 역전 끝내
기 2타점 적시타로, 정삼흠에게 드라마틱하게 15승째를 안겨주었다.
김태원은 6월 이후 더이상 조계현과의 승부를 피하면서 12연승을 이어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