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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세사(極細絲·사람 머리카락의 100분의 1보다 가는 실) 클리너 세계 1위 기업 웰크론. 모달 원사(너도밤나무에서 추출한 원사) 세계 2위 기업 삼일방직. 디지털 날염기(섬유에 무늬를 넣는 기기) 세계 3위 기업 디젠.
우리에겐 생소할지 모르지만, 모두 세계 섬유 시장에서 한가락하는 한국 기업들이다. 웰크론은 전 세계 40여 개국에 극세사로 만든 클리너를 매년 4500만달러 이상 수출한다.
삼일방직은 모달 원사 세계시장 점유율 25%로 갭, 바나나리퍼블릭 등 유명 글로벌 의류브랜드에 원사를 공급한다.
디젠은 독일 디지털 날염기 시장 점유율 95%를 기록하는 등 유럽·미국 시장을 공격적으로 파고든다. 덩치는 작지만 특이한 틈새 시장을 공략, 해당 분야 세계 시장 1~2위를 다툰다.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성공적인 기업 경영을 위해 당연히 따라야 할 정도(正道)를 밟았을 뿐이다. '끝없는 R&D 투자', '시장 흐름 포착',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는 삼박자를 충실히 따랐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섬유 산업 위기를 딛고 오늘날 글로벌 강자로 부상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런 기본 원칙을 굳게 지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탈출…. 거침없는 R&D 전략
섬유산업은 1960~70년대만 해도 외화벌이 일등 공신이었다. 1987년에는 단일 업종 최초로 수출 100억달러를 올릴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로 하락기로 접어들었다. 문 닫는 섬유 업체도 속출했다.
위기 속 일부 업체들은 노동집약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기술집약적인 상품 개발을 시작했다. 웰크론도 그중 하나. 웰크론 이경주 부사장은 "당시 중국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기술 개발을 통해 '선진국형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웰크론은 극세사 가공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극세사로 만든 클리너가 일반 면 제품에 비해 세정력이 뛰어나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유럽과 미국 시장으로 잡았다. '매출의 최소 5%는 R&D 재(再)투자, R&D 인력은 전체 인력의 20%'라는 원칙을 고집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극세사 분야에서만 17개 관련 특허를 따냈다.
그러자 고속 성장 기회가 찾아왔다. 2000년 다국적기업인 3M과 극세사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제품을 3M에 독점 공급하게 된 것. 극세사 클리너와 극세사 목욕용품, 청소용 극세사 섬유제품은 지식경제부의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웰크론은 극세사에서 축적된 가공기술을 바탕으로 나노섬유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 고효율 필터, 방탄복, 인조피부 등 고부가가치 산업용 소재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웰크론 이영규 대표는 "일본·중국 사이에 껴 있는 한국 업체들이 살 길은 끝없는 기술 투자"라며 "산업용 섬유 분야에선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약 10년 정도 난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의 흐름 읽고 과감히 사업 영역 재편
끝없는 기술 투자와 함께 섬유업계 관계자들이 성공의 무기로 꼽은 것은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것. 1979년 삼일방직은 면 방직 회사로 출발했지만 1990년대 초 중국 면사 업체들이 공격적 시장 확대에 나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삼일방직은 생존을 위해 사업 영역을 아예 바꿔 버렸다. 1992년부터 모달·텐셀 등 '레이온계(너도밤나무 등 목재 부스러기로 만든 펄프를 녹여 생산하는 인공 섬유)' 원사 생산을 시작한 것.
이 회사 이우경 부장은 "2000년대부터는 세계 시장에서 친환경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레이온계 원사는 목재 부스러기를 원료로 하는 일종의 재생 섬유로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부드러운 촉감에 면보다 땀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 고급 여성 의류나 속옷에 주로 사용된다.
삼일방직은 제품 개발과 함께 최첨단 생산 설비를 도입, 인력 구조도 확 바꿨다. 설비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는 낮추고 품질은 높인 것. 이는 곧 원가 경쟁력으로 이어졌고 삼일방직은 레이온 원사 부문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삼일방직 노희찬 회장은 "섬유산업도 전자산업처럼 시장변화를 빠르게 읽고 한발 앞서 투자에 나서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감한 글로벌 시장 개척
선진국 섬유 업체들의 '작업 환경'이 개선된다는 트렌드를 포착, 과감히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선 경우도 있다. 디젠은 디지털 날염기 시장을 공략했다. 디젠 이길헌 대표는 "한국·중국에서 섬유산업이라고 하면 3D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선진국만 해도 섬유 생산 과정의 작업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날염은 직물에 무늬를 입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날염 방식은 무늬를 넣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지만 디지털 날염기는 섬유에 기계로 무늬를 새긴다. 디지털 날염기는 일종의 '옷감 프린터'인 셈이다. 이 대표는 "이탈리아 등 섬유 선진국에서는 이미 디지털 날염기에 대한 수요가 높다"며 "디지털 날염기 시장은 2020년까지 연간 4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고속 성장 시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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