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애국심을 탈탈 털어 ‘말모이’를 보려고 극장을 찾아갔습니다.
영화는 ‘택시운전사’만든 엄유나 씨가 감독을 했고 유해진이 주연을 맡았으니
기본 이상은 갈 것이고 흥행데드라인 300만을 넘길 것입니다. 개봉한지 두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오피박스 1위를 지키고 있다니 다른 사람들도 저 같은 마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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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에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 우리 말글을 지키는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극로’ 선생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김두환은 주먹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는 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언어 독립운동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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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같으면 이 양반들이 저랑 다른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은 다릅니다. 신념이나 명분을 갖고 그렇게 살았구나 라고 생각할 뿐,
위대하다거나 모법 답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미스터선사인‘을
보면서도 만약 제가 일제 강점기를 살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저도 독립에 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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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것입니다. 윤 계상이 맡았던 류정환 이극로가 공헌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은
우리 말글의 규범을 수립해 조선 민족과 민족성을 영구히 유지하는 언어 독립운동을
완수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그는 언어 독립운동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김성수가 제안한 보성전문학교 교장 직(지금의 고려대 총장)도 사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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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때 성문 각에서 나온 ‘국어 성문법’을 가지고 논 적이 있는데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사투리를 연구해보면 문화가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한글을 떼면 초등학교 내내 표준말과 사투리, 준말과 본디 말을
공책에 빽빽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엌-정개’ ‘솔지-부추김치‘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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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재미있어야지요. 책방, 나무 책장, 토마루, 토방마루가 완전 오리지널입니다.
광화문 말씀사에서 맡던 책방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저런
콘셉트로 서재를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말모이’에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은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고, 감옥에서 나온 이후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하여, 말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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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을 함께하다가 일제의 총을 맞고 산화한 '김 판수 동지(유해진역)'의 딸 순이에게
친필로 ‘김 판수 동지께’라고 쓴 ‘조선말 큰사전‘을 주는데 눈물이 와락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말모이 자료들을 모두 빼앗기게 된 이유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아내 때문에 편집위원인 막내가 고발한 것을 보면서 친일파 문인들에 대하여 약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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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 살겠다고 친일을 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역사 바로세우기는 시대의 사명이자 요청이니 반드시 해결할 과제입니다.
다만 분노와 감정으로 하지 말고 사실을 밝히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와 닿았던 것은 원본을 모두 일제에 빼앗기고 제기불능 상황에서 조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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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홍파 역)이 복사본을 매일 매일 10년 동안 30만 어휘를 기록했다는 대목입니다.
제가 15년 동안 쓴 글이 만장가량 됩니다. 좋아서 썼고 죽기 살기로 기록했는데
겨우 만장입니다. 조갑윤의 30만 어휘는 오직 그 일만 한 것입니다. 조갑윤의
어른스러움은 상대의 겉모습 너머를 통찰해 양아치 김 판수를 조선어학회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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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들이고, 자기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밀고자 민 우철(민 진웅 역)의 쓰라림을
다독이는 모습에서도 빛이 납니다. 언어와 관련해 세종대왕이나 주시경선생 같은
분들의 공도 컸지만 외세의 말살 정책에도 목숨을 걸고 우리 말을 지킨 선조들의
피눈물을 묵과 해선 안될 것입니다. 호떡이 왜 호떡이 됐는지, 민들레는 문들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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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민들레가 되었는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잊고 있던 우리말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다운 보수가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진짜 보수의 모델이‘미스터선사인’ 에서는 김 태리의 할아버지,
‘말모이‘에서는 조갑윤이 참 보수이고 진짜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녕, 이 시대의 보수는 다 죽은 것일까?
2019.1.19.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