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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8경의 으뜸이자 운선9곡(雲仙九曲)의 찬란한 백미
사인암(舍人岩) - 명승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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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8경(丹陽八景)은 단양의 이름난 경승지 8곳을 일컫는다. 조선 명종(明宗) 때 단양군수(丹陽
郡守)를 지낸 적이 있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명나라의 소상8경(瀟湘八景)보다 더 아름답다
고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했던 명승지이다. 단양8경은 도담삼봉(島潭三峯)과 석문(石門), 상선
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구담봉(龜潭峯), 옥순봉(玉荀峯)으로 이중 도담3봉과 석문을 제외
하고 모두 옛 단양의 중심지인 단성(丹城)에 몰려있다. 나는 그중에서 이번에 발걸음을 한 사인
암, 중선암을 포함하여 5곳에 발도장을 찍었다.
사인암은 단양8경의 으뜸으로 꼽히는 명소로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70m 높이의 기암절벽(奇巖
絶壁)이다. 기이한 것은 이 바위에 상하 좌우로 균형 있게 줄이 그어져 있어 마치 천연의 바둑
판을 보는
듯 하다. 하늘나라 신선(神仙)이 인간들이 자고 있을 때 살포시 내려와 이 절벽을 눕
혀 내기바둑 한판
두고 하늘로 올라갈 때는 인간들이 감히 손을 대지 못하게끔 하늘을 향해 세
워두고 가는 것은 아닐까? 절벽 꼭대기에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을 닮은 노송(老松)들이 사인암
의 운치를 가득 수식한다. 어떻게 저런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혹 절벽이 비와 눈에 젖
고 훼손될까봐 신선이 심어둔 작은 우산은 아닐까? 정말 보면 볼수록 탄성만 나올 뿐이다.
말로만 사진으로만 보던 사인암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대작
품을 인간의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정말 결례로 느껴질 정도이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
들 저런 작품까지는 만들지 못한다.
이곳은
고려 후기 대학자로 단양 출신인 역동 우탁(易東 禹倬, 1263~1342)이 사인(舍人) 벼슬에
있을 때 휴양했던 곳이라고 한다. 우탁은 단양우씨 집안으로 원나라에서 들어온 정주학(程朱學)
서적을 처음으로 터득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 이후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제광(林齊光)이 우
탁이
머무른 것을 기념하고자 그의 벼슬 이름을 따서 사인암이라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로
유명한 김홍도(金弘道)도 이곳을 다녀가 그림으로 남겼으며, 많은 시인묵
객(詩人墨客)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그림을 그리거나 바위에 낙서를 남겼다.
사인암은 남조천(南造川)을 따라 이어진 운선9곡의 하나로 유리처럼 맑은 남조천의 물이 이곳을
굽이쳐 흐르면서 정취를 더욱 수식해준다. 사인암 바로 옆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는 청련암(
靑蓮庵)이란 조그만 암자가 터를 닦았으며, 사인암 입구에는 1977년 6월에 지방 유림에서 세운
역동우탁기적비(易東禹倬紀績碑)가 서 있다.
인근 상선암과 중선암, 하선암에 밀려 찾는 이가 적었으나 근래에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사람과
수레의 발길이 부쩍 늘어 음식점과 민박이 다수 생겨났다. 특히 이곳은 시골 북하리와도 10리
거리로 가까워 외가 친척들이 자주 놀러왔던 곳이다.
※ 사인암 찾아가기 (2011년 11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단양행 직행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 서울 청량리역에서 단양행 열차가 1일 8~9회(6시 10분~21시) 다닌다.
* 대구(북부), 대전, 청주에서 단양행 직행버스가 서너 회 떠난다.
* 원주, 제천에서 단양행 직행버스가 1일 20여 회 있으며, 충주에서 1일 8회 운행한다.
* 단양터미널 건너편이나 부근 고수대교 종점, 단양역 입구에서 사인암 방면 군내버스가 1일 16
회(6:15~19:35) 운행한다.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주차장 있음, 주차비는 무료)
① 중앙고속도로 → 단양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 → 장림4거리에서 좌회전 → 사인암
★ 관람정보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사인암 왼쪽 옆구리에 자리한 청련암 삼성각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그 이상은 출입금지이다.
*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64 |
▲ 사인암 앞을 굽이쳐 흐르는 남조천과 늦가을이 내려앉은 주변 풍경
남한강을 향해 급하게 흘러가던 남조천의 물줄기도 이곳만큼은 서행하여
사인암의 절경을 즐긴다.
▲ 남조천에 걸린 구름다리
▲ 사인암 서쪽에 둥지를 튼 청련암이 사립문을 활짝 열어
사인암을 찾은 중생을 맞는다.
▲ 늦가을이 조용히 합장을 하며 머무는 청련암(靑蓮庵) |
사인암 옆구리에는 청련암이란 조그만 절집이 둥지를 트고 있다. 처음에는 근래에 지어진 절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제법 오래된 절집이었다.
이 절은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의 말사(末寺)로 1373년(공민왕 22년)에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허나 신빙성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710년에 중창
하여
청련암이라 했다고 하며, 원래는 인근 대강면 황정리에 있었다고 한다. 인근 대흥사(大興
寺)의 말사로 있다가 1954년 소백산 공비토벌 작전으로 황정리 일대에 소개령(疏開令)이 내려
지자 절의 대들보와 기둥을 가지고 사인암 옆에 새롭게 터를 닦았다.
청련암은 작고 조촐한 암자로 법당인 극락전과 삼성각이 전부이다. 그나마 극락전도 완전 여염
집 모습으로 절집의 품격이 많이 떨어진다. 다행히 옛 유물인 목조보살좌상이 하나 남아 2009년
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18세기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인암을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고 있어 사인암에 온 사람들은 꼭 절에 발을
들이기 마련이
다. 절을 거쳐야만 사인암의 뒷통수로 올라갈 수 있으며, 사인암과 청련암이 완전히 하나의 덩
어리가 되어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근래에 사인암 방문객이 늘고 있다고 하니 자연히 절을 찾는
발길도 정비례할 수 밖에 없으니 정말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사인암이 건재하는
동안은 청련
암도 법등(法燈)을 끌 일은 없을 것이다. |
▲ 경내 우측에 마련된 석불좌상과 넓은 뜨락
뜨락 좌우로 쌍사자석등 2기가 석불과 뜨락을 비춘다.
▲ 여염집 모습의 청련암 극락전(極樂殿)
법당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여염집 모습으로 중생을 맞는다. |
▲ 밝은 표정의 극락전 목조보살좌상(木彫菩薩坐像) -
충북 지방유형문화재 309호 |
이 불상은 원래 청련암 법당의 본존불인 아미타3존불의 하나로 만들어진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
薩像)이다. 1954년 황정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었을 때, 본존불(本尊佛)은 어디론가 사라
지고,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은 제천 원각사로 옮겨지고, 대세지보살상만 수습하여 가져왔다.
그러니까 협시불이 본존불이 되어 불단 중앙에 홀로 봉안된 것이다. 그 외에 복장(腹臟)도 얼마
전까지 있었으나 그것마저 도난당하고 없다.
근래에 도금한 것을 벗기고 새로 개금(改金)을 했는데, 그때 목불(木佛)의 형태를 확인했으며,
은행나무로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청련암의 옛 유물로 18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 시절 충청도 지역 불상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불상의 모습을 보면 마치 어린 동자가 관음보살의 의상과 보관(寶冠)을 쓰고 앉아있는 것 같다.
동자와 같은
귀여움과 해맑은 미소가 진하게 드리워진 그의 표정은 너무 밝아 보는 이의 눈을
눈부시게 만든다. 사인암과 청련암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화마(火魔)도 그의 표정 앞에서는 어
찌할 바를 모르고 돌아갈
것이다. |
▲ 물이 가득한 연꽃무늬 석조(石槽)
가을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 나오는 물줄기는 중생의 마음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수면 위에 살포시 떨어진 낙엽들은 올해의 마지막 물놀이를 즐기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만든다.
▲ 우탁의 탄로가(嘆老歌)가 쓰인 표석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우탁이 남긴 시조(時調) 중에 늙음을 탄식하는 '탄로가'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세월은
흐르고 자신은 늙는다는 뜻이다. 30대에 문턱에 갓 들어왔지만 탄로가의 시문 앞에 무책임하게
나이를 먹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직은 젊다고 안심을 하지만 빛의 속도로 내
달리는 세월 앞에서는 그 누구도 당할 존재가 없다. 생각하면 할 수록 무서운 일이다. 인간의
하루가 몇십~몇백 년에 이른다는 신선의 세계가 혹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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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암 뒷쪽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길
어떻게 경사가 가파른 바위 절벽인 사인암 뒤쪽
에 건물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적당한 자리에
터를 닦아 삼성각을 만들고, 계단을 만들어 그
곳에 이르게 했다. 계단이 보기와 달리 상당히
가파르고 고르지가 못하여 올라가고 내려갈 때
주의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삼성각 뒤쪽을 통해
서 사인암 정상으로 오를 수 있었으나 보존과
안전상의 이유로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애써 오르려고 하지 말 것 ~~
삼성각은
사인암에 왔다면 꼭 발도장을 찍어야
되는 이곳의 명물이다. |
▲ 사인암 뒤쪽에 둥지를 튼 삼성각(三聖閣)
예전 칠성각(七星閣)으로 산신(山神)과 독성(獨聖, 나반존자), 칠성(七星)을 봉안했다.
지붕에는 낙엽들이 모여 앉아 저물어가는 늦가을을 원망한다. 저들도 시를 안다면
우탁의 탄로가를 모방한 탄엽가(嘆葉歌)를 부르지는 않을까?
▲ 삼성각 우측 바위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바위글씨
'퇴장(退藏)' |
글씨의 모습이
한자이긴 한데 너무 유별나게 휘갈겨져 있어 일반 사람들은 해독이 어렵다. 그들
의 정체는 전서체(篆書體)로 쓰인 '退藏(퇴장, 스스로 물러나 숨는다)'이란 글씨로 조선 전기에
판교종사<判敎宗師, 불교 교종(敎宗)의 우두머리>를 지낸 운수의 낙관으로 추정된다. |
▲ 가을 단풍이 익어가는 삼성각 맞은편 바위에 중생의 조그만
소망이
깃들여진 돌탑이 심어져 있다. |
▲ 청련암을 지키는 견공(犬公)
혹시 불청객은 들어오지 않았는지 졸린 눈을 애써 가리며
뒤를 돌아보는 견공
▲ 꼬랑지를 흔들며 기지개를 켜는 견공
낮잠도 충분히 잤으니 이제 절을 지켜 볼까~~!! |
첫댓글 지난 주에 단양, 제천을 돌아 보려 했는데 비로 인하여 단양은 가질 못해 아쉬웠는데 사진으로나마 위안을 느낍니다. 감사 합니다.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정을 갈때 항상 지나치는곳을 이렇게 자세히 도움을 주셔셔 감사합니다
음악과함ㄲㅔ 가을의정취을 가슴시리게 울컥느끼고 갑니다
단양에 볼거리가 무지 많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흔쾌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단양생각을 잠시 했었는데요. ㅎ 가을은 어느곳이나 다~~그림입니다. 잘 보고 갑니디.^*^
늦가을도 거의 다 졌으니 이제 내년을 기약해야겠네여 ㅠㅠ
단양하면 고수동굴과 도담3봉이 생각나는데 그에 못지 않은 수려한 풍경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네요.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구경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