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燈明, 自歸依
* 아직 걸음마도 잘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등불이 되어 길잡이가 되고(自燈明), 어설픈 자신이 자신 스스로의 의지처가 되라(自歸依)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 문자적인 의미로서 '自'는 '자신'을 말합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남을 의지처로 하지 마라.] 입니다.
* 그러나 부처님 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문자적인 의미와는 약간 다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신 의미를 살려서 의역하면 '스스로(自) 수행하라(歸依). 스스로 수행의 길을 가라'입니다.
* 歸依는 문자적으로는 '돌아가 의지한다. 귀의한다.'는 뜻이 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의미를 보면 歸依는 ‘수행을 하라.’ 입니다.
* 얼핏 생각하면 '자신 atta'이라는 용어를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atta(싼스크리트어 atman)는 문맥에 따라 자아로 옮기기도 합니다.
* 自歸依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열심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수행하라는 부처님의 본 뜻을 알고 나면 '自歸依'의 '自'가 무엇를 지시하는지 분명해 집니다.
* 自燈明의 燈은 빨리어로는 '섬'의 뜻을 갖는 ‘dipa’의 번역어 입니다. 빨리(pali)어의 ‘dipa’는 싼스크리트어에서 ‘dvipa(섬)’과 ‘dipa(등불)’가 있는데, 상좌부에서는 自燈明 法燈明의 문맥에 나타나는 ‘dipa’를 모두 ‘섬’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방불교에서는 ‘등불’로 이해를 하였고, 그래서 이 부분을 自燈明과 法燈明으로 한역하게 된 것입니다.
* 自燈明은 부처님의 의중을 따라 의역하면 '흔들리지 마라.'입니다.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굳하게 자리를 지키는 섬과 같이 고해의 바다에 몰아치는 세찬 삼독심의 폭풍우에도 섬과 같이 굳굳하게 자리를 지키고 흔들리지 마라입니다.
* 아직 걸음마도 잘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등불이 되어 길잡이가 될 수 없음은 물론, 어설픈 자신이 자신 스스로의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두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 自燈明 自歸依는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수행을 하라'로, 法燈明 法歸依는 ‘가르침(法)을 따라 열심히 수행의 길을 가라’로 설명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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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자등명(自燈明) 자귀의(自歸依), 법등명(法燈明) 법귀의(法歸依)
자신과 법을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아라
2.26.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어떻게 비구는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마음에서 마을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 두 번째 바나와라가 끝났다.-
출처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 대반열반경’ (66쪽~68쪽)
각묵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펴냄, 2011. 8. 16. 초판 3쇄 발행
첫댓글 자귀의, 자등명을 "수행하라"와 연관하여 말씀하시는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받아들임(해석)은 다소 다릅니다.
물론 어문학적 해석이 아니라 문맥(맥락)에의한 해석입니다.
숫타니파타식으로 표현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입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위에든 경전에서 "석가의 열반 에언에대해
제자들 특히 아난존자는 매우 걱정을 한 것"으로 압니다.
석존의 입멸 후 과연 "무엇에 의지"하여 수행을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즉. 석존께서는 누구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여 독립, 독보하라는 것이 저의 해석입니다.
석존께서 승가를 이끌 지도자를 적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도 그러하다고 봅니다.
예...그렇습니다. ^^
* 自歸依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열심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 열심히 수행하라는 부처님의 본 뜻을 알고나면 '자귀의'의 '自'가 무엇를 지시하는지 분명해 집니다.
* 自燈明 自歸依의 自는 '오온(五蘊)'을 말합니다.
"스스로 수행의 길을 가라."
보리수님 넓게 보면 오온 이라고 할수 있지만 여기서 오온이라고 하면 뜻이 달라지게 됩니다. ()
@솔잎향 오온은 사람들이 지금 '나'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존재를 가르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법리를 따르면 그 존재는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오온'이라고 한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 자=나, 자신,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바로 알아듣겠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자등명 자귀의의 '자=오온 '이라고 해야하며 달리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솔잎향 보리수가 잘못 알고 있다면 바르게 알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_()_
여기서는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그런 곳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이 문재는 이미 오온이다. 자신에게 의지한다 하는 것도 좋지만 귀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알고 실천하는 행위가 자등명 자귀의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계속 해서 그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요.....
오온이라고 하면 뜻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렇다면 무엇이라고 해야하나요?
오온이라고 하면 뜻이 달라지는 것은 오온은 부처님께서 이름하여 나라고 하는 이 나와 우주모든 현상을 오온이라고 하셨 습니다. 이렇게 오온은 어느것하나 들어 가지 않는 것이 없는 우주 전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오온이라고 하면 뜻이 전혀 달라지게 되지요
부처님께서 '나'라고 하는 개념적 존재를 5온으로 해체해서 설명하셨으며, 5온 어느것도 실체가 없으므로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솔잎향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오온이 나와 우주 모든 현상을 오온이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시네요....
부처님께서는5온을 통해서 인간존재를 설명하신 것이며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시기 위해 5온을 말씀하신 것이 전혀 아닙니다 .
솔잎향님의 5온은 새로운 시각의 5온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럼 오온은 무엇입니까?
"自燈明 自歸依" 여기서 자는 오온이 아니라 이미 부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는 우리가 부처라고 하는 그런 부처는 없습니다. 부처의 행위를 하는 그런 부처는 있습니다. 그래서 自燈明 自歸依" 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모든 법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우리의 실상(부처의행)을 귀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自燈明 自歸依" 여기서 자는 오온이 아니라 이미 부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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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등명 법등명의 '자'는 오온이 아니라 이미 부처라는 뜻이라고 하시니 솔잎향님께는 자등명 법등명이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었네요.
대승불교에서 중생은 이미 성불해 있다고 하더니 솔잎향님의 말씀은 그와 동일한 논리입니다.
중생이 이미 성불해 있다는 이야기는 진아(참나, 불성)와 같은 실체적인 개념을 인정하는 논리에서 나온 말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수행하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쓸데없는 말장난이며, 허파에 바람넣는 이야기지요.
@보리수1 그럼 자등명 법등명이 어떻게 해야 허파에 바람넣는이야기가 안되는지 요?
@솔잎향 위에 보리수가 드린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시지요.
@보리수1 진아 참나 불성의 실체를 인정 하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실체를 인정하는 불성은 이몸은 죽어도 식은 살아 다음생을 받는 그러한 실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처님 께서 가장 실어 하시는 외 도중에 외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