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3월7일 [(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제1독서 신명기 30,15-20
복음 루카 복음 9,22-25
◈ [서울]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2019년 다해 3월7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어린 친구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뽑기도 있었고, 구슬로 게임을 하는 것도 있었고,
문방구도 있었고, 빙수도 있었고, 설탕물도 있었고, 분식집도 있었고,
만화 가게도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런 모든 유혹을 알뜰하게
물리치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지각을 하곤 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저도
몇 번 지각했습니다. 50년이 지난 기억입니다. 유혹을 물리치고
학교에 도착한 친구들과 유혹에 넘어간 친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규칙을 잘 지키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었던
친구들이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규칙을 어기고 때로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던 친구들이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최인호 선생님은 문단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문학이 세상과
사회를 선도해야 한다는 문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학은 순수하게
인간의 감성을 이야기하면 된다는 문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인호
선생님은 진정한 작가는 어느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직과 문단은 작가를 보호하고 키워주는 장점이
있지만, 조직과 문단은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단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잘 드러나는 조직이 있는데 정당입니다.
정당은 공천을 줄 권한이 있고, 정당은 국회의원을 보호할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 정당의 정책과 입장이 비합리적일지라도
거수기처럼 따라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당의 입장과 다를지라도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당이 건전하고 건강한
정당일 것입니다.
오늘 제1 독서는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축복과 심판의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생명과 죽음의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법을 지키는지,
법을 어기는지의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은 분명히 입력된
방식으로 선택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류를 범할 확률이 낮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감성을 가졌습니다. 나약한 면이 있습니다.
항상 빛을 선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때로 어둠을 선택하고 후회를
합니다.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으며, 우리의 허물까지도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뜻을 따라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남을 탓하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원망하고
하느님과 멀어지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7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
복음: 루카 9,22-25: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어떤 길인지,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신다. 인간은 세상에서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고 무언가 더 누리려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온 천하를 얻을 수
있더라도 자기 목숨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선 내가 살아있고 나서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내가 없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 당신을 닮는 것만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하느님 안에 있을 때만이 진정으로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즉
한 마디로 한다면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떠난 삶으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만 자유로운
것이다.
이 행복과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이 된다. 하느님의 모상을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하느님의
모상은 매일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짐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즉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주님을 닮아가면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과거를 모두 잊고,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상대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 자신이 가장 큰
십자가이며, 이 십자가는 다른 누구도 대신 져줄 수가 없는 나만이
지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십자가도 꼭 나만이 질 수 있는 것이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성시켜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
생명을 우리가 마음대로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과 능력을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명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입으로만 주님을 부르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마음이
주님께로부터 멀리 있다면 주님께로부터 우리도 외면을 당할 것이다.
주님께서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마 우리가 그분을 외면하여
바라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순시기가 이제 진정으로
우리에게 은총의 때가 될 수 있도록, 즉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영광의 부활에 우리도 기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는 은혜를
청하면서 기도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세상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
2019년 다해 3월7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세상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
복음: 루카 9,22-25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마이클 저베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행능력과 성과를 보여주는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그 비결을 파헤치는
방송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특별한 성과를 낸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결과를 5가지 공통점으로
요약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첫 번째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책을 읽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만으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지혜가 부족하다는 겸손함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있지 말고 인생 선배들의 가르침을 배워야합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입이 놀라울 정도로 무겁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뢰를 줍니다. 그리고 편안함도 줍니다. 내가 말을 많이 하려는
사람은 내 주장이 강한 사람입니다. 잘 들어주기 위해서는 나보다는
타인에게 더 집중해야합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큰일은 물론 작은 일에도 몰입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몰입력은 다른 말로 ‘집중력’입니다. 이 집중력은 생각에
의해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능력입니다. 인간의 집중력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흐트러집니다. 집중력은 보통 명상이나 기도와
같은 훈련으로 기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잘 쉴 줄도 압니다.
집중력이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몸을 피곤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이 흐트러지면 집중력도 흐트러집니다. 분심을 이기려면 자신을
이겨야합니다.
네 번째 공통점은 ‘타인의 성장에 기꺼이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잘
나가던 팀도 이기적인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바로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에게 투자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인을 성장시키면서 자신도 성장합니다.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까지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은 돈을 좋아하면서도 돈만 아는 사람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공통점은 ‘거절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애정공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친절함이라 여기면 안 됩니다. 그것은 휘둘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휘둘리는 것이 곧 자신에게 휘둘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끊을 줄 알아야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게 만듭니다.
결국 모든 특별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과 싸워 이긴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 싸우지 않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그냥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며 흘려보냅니다. 그런 상태로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얻으려면
땀을 흘려야합니다. 자신을 이길 때 땀이 납니다. 이것이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면
나도 살고 이웃도 살게 됩니다. 더 생명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오류가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백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물론 순교의 때가 오면 가난해지고 박해받고
숨어야만 할 때도 있겠지만,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꼭 짓눌리고
억울한 패배자로 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성서신학 석사를 할 때 지금보다 훨씬 자아가 강한 상태였습니다.
이 석사를 통해 저의 생각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만 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교수님이
원하는 대로 하면 매우 당연한 내용만 쓴 논문이 될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내용을 넣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교수님은 빨간
볼펜으로 엑스 표를 하며 다 지우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 안에서
갈등이 심해졌고 결국 교수님은 제 논문에 최하 점수를 주었습니다.
교의신학으로 바꾸고 자세도 바꾸었습니다.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닌
교수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논문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꾹 참았다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쓰면 교수님이 재미있게 읽으실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상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도 다 논문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과도 아주 좋았습니다.
좋은 성과는 확실히 자신을 죽이는 데서 옵니다. 신앙도 그렇고
선교도 그렇고 세상에서의 삶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사장이라도 더 일찍 출근하여 회사를 위해 더 늦게 퇴근하는 사람을
승진시켜 줄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면
어쩌면 나를 이기는 싸움을 게을리 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의 등에
자신을 못 박는 십자가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만큼
세상을 바꾸신 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 23)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7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 23)
십자가가 없이는 기쁨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며
십자가로 주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용서를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가장 강력한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로 시작되는 우리의 삶입니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며 주님을 믿게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봉헌입니다.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한 주님의 선택은 십자가였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은총의 사순시기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마다의 십자가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며 십자가의 사랑을 닮아갑니다.
사랑의 참된 언어는 십자가의 언어뿐입니다.
십자가로 우리는 자아를 내려놓고 버리게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결국 가장 큰 관건은 잘 견디는 일입니다. 나 자신의
비참함, 나와 다른 이웃...
2019년 다해 3월7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결국 가장 큰 관건은 잘 견디는 일입니다. 나 자신의 비참함, 나와
다른 이웃...
요즘 항간에 많이 떠도는 우스갯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깨 위해 얹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던
나머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남편, 눈을 들어 먼 하늘을 한번
올려다 봅니다.
그리고 지갑 속에 들어있는 아내의 사진을 꺼내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다시 한번 힘을 낸답니다. 마음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하면서. “그래! 내가 이토록 무거운 십자가도 평생 견뎌왔는데, 더
이상 내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이 어디 있겠는가?”
자녀 교육, 시부모님과의 갈등, ‘그분’과의 다름으로 인한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나머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아내, 역시
눈을 들어 먼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남편의 사진을 꺼내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다시 한번 힘을 낸답니다. 마음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하면서. “그래! 내가 이런 사람도 잘 교육시켜 인간 만들어놨는데,
내가 극복 못할 고통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주님께서 건네시는 권고 말씀이 꽤나 의미 심장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한번 두번이 아니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다가오는 십자가가 어떤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십자가는 많은 경우 존재로서의 십자가이더군요. 특히
그 십자가는 멀리 바다 건너 뉴욕이나 시드니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붕 아래, 같은 이불 아래 계시는 존재더군요.
우리가 너무나 자주 체험한 바처럼 가장 무거운 십자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가장 가까이에 존재합니다. 함께 몸붙여 살아가는
가족들, 같은 공동체 구성원들, 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결국 가장 큰 관건은 잘 견디는 일입니다. 또 다시 맞이한 이 사순
시기, 우리는 좀 더 잘 견디는 노력을 거듭해야겠습니다. 나 자신의
나약함과 비참함을 잘 견디는 노력,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이웃들이
안겨주는 상처와 실망을 잘 견디는 노력, 매일 되풀이되는, 지극히
하찮아보이는 내가 행하는 일을 기꺼이 견디는 노력,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을 견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을 향한 기대는 크지만, 매일의 구체적인 삶의
실상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보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 지
모릅니다. 우리네 삶, 결코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함과 구차스러움을 기꺼이 견뎌내고,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삶의 현실이지만, 또 다시 너그럽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우리 삶을 바라보려는 노력, 그것이 이 사순 시기 우리가
되풀이해야 할 노력입니다.
이 사순 시기, 우리 각자가 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 존재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겠습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도 한
이방인이요, 나그네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는 죄투성이요
한없이 불완전한 존재, 결국 하느님의 지속적인 자비없이는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상기해야겠습니다.
“사순 시기는 늘 삶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교회적으로, 전례적으로,
성사적으로 그리스도 수난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으로 선포해야
합니다.”(칼 라너 신부님)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청주] 십자가는 천국의 열쇠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3월7일 재의예식 다음 목요일 (루카9,22-25)
십자가는 천국의 열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기도입니다. “나의 빈약하고 연약함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만 주님께 바라는 굳센 믿음으로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원컨대 저 십자가의 능력이 내게 힘을 주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이 십자가를 감당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십자가는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이며, 천당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성 요한 비안네).
예수님께서는“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4).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곧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버리면 모두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 앞에서 당신의 뜻을 버렸기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니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알퐁소
성인은 “당신이 제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를 맞추겠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힘들게
고생하면서 따라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자신의 뜻을
비우면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러나 막상 일상 안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주장, 뜻을
양보한다는 것이 정말 마음 같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공로를 내세우지 말고 또 내 생각에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의 봉헌을 요구합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
놓는다.”“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11,26;30,19-21).
마땅히 생명과 행복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양보하는 것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그 시작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요까짓
것’ 하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까짓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신중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든 것을 선택한다는 것이 지금은
십자가이지만 그 십자가가 더없이 큰 축복임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당신에게 증거 할
방법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가 여러분을 져줄 것입니다”
(성 토마스 아 켐퍼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3월 7일 (목) - 열매로 칭찬을 받으리라
오늘은 ‘열매로 칭찬을 받으리라’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잠언 31장 31절 말씀에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대박을 원하고 한방을 원하고,
땀 적게 흘리고 왕창 거두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러한
일들이 간혹 있을수 있으나 우리에게서 일어난다면 이것은 순간은
엄청난 기쁨의 소용돌이에 들어갈 수 있으나 결국은 그 소용돌이에
오히려 갇히고 맙니다. 또 실제 자신에게는 플러스가 되기보다
마이너스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심은대로 거둡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자 또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한 일로 인해서 칭찬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에 우리가 얼마나 땀흘린 만큼의 대가를 원했고 또 그 땀을
제대로 흘리고 제대로 대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을가졌는지요? 혹시
적게 심고 많이 거두고자 하는 도둑심보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점검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결코 적게 심고 왕창 거두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3자가 봤을 때 대박이라는 것은 제대로 심은 사람이
제대로 거두는 과정을 보지 못 하고 열매를 거둔 상황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심은데로 거두고 거둔만큼
칭찬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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