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부파일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증거기반 정책수립의 정의와 기본개념
진리 추구라는 궁극적인 목적 이외에 과학의 또다른 매우 중요한 역할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다. 제반환경의 불확실성과 의사결정의 위험성이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들의 역할은 정치적 행위자로서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논의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되었다(Funtowicz & Ravetz, 1993). 하지만 실증적 증거와 정책 사이의 괴리, 그리고 과학적 증거와 정책 결정 간의 직접적 연계 부재라는 문제 등은 과학-정책 협력을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로 만든다. 케어니(Cairney, 2016)는 증거와 정책 사이의 괴리 해소를 위한 요건으로 ▲유관증거의 객관적·포괄적 검토에 기반한 과학적 합의 도출 ▲결정권자가 소수로 제한되는 중앙화된 정책 프로세스 ▲지식의 근본 원천인 과학적 증거의 이해도 제고 ▲증거를 구체적 해법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촉진하는 동기 및 기회의 존재를 꼽았다.
하지만 정책수립에 증거를 직접 활용한다는 취지의 증거기반 정책수립(EBP, evidence-based policymaking)은 기존 증거가 정책 결정자들에게 별다른 지침이 되지 못할 경우, 그리고 정책 결정체계의 복잡한 성격으로 인해 증거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문제에 관해 올리버 등(Oliver et al., 2014)은 145개의 기존 연구를 분석해 정책수립에 증거를 활용하려는 노력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을 지적했는데, 여기에는 ▲(질 좋은) 연구의 가용도나 접근성 부족 및 비용 부담에서 기인하는 수요-공급 차원의 문제 ▲시간이나 기회 측면의 제약 ▲정책결정자가 지닌 연구 역량의 한계가 포함된다.
EBP는 합리성, 엄격성, 체계성을 갖춘 접근법을 선호하는 정책 프로세스상의 논의나 방법론을 의미하며(Sutcliffe et al., 2005), 사회과학과 생태과학을 공공정책 수립에 응용한다는 EBP의 비전은 합리적 지식 사용이 올바른 선택을 지원하고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Patton, 2023). 다만 자연과학과는 달리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도출된 결과는 상이한 해석과 이에 따른 논란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문제를 지니고, 그렇기에 하나의 실증적 증거가 서로 다른 해결방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발견이나 수집된 자료가 적합한 정책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EBP를 통해 획득한 정보를 정책 논의의 배경이자 지식기반으로 활용하여 개별 정책이슈의 이해를 돕거나 바람직한 정책수단 및 조치를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편 기존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정보가 신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책평가는 EBP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정책영향평가가 정책결정자들의 책임성을 확보하고 정책현장에서의 실시간적 학습을 지원하는 도구로서 각광받고 있으며, 특히 무작위 통제실험이나 여러 준실험적 방법론과 같은 반사실적(counterfactual) 영향평가가1) EBP 분야의 황금률로서 여러 국제개발기구에서 활용되고 있다.
정책결정자, 정책평가 전문가, 사회운동가, 연구가 모두에게 활용 잠재력을 지닌 EBP는 현재 유럽연합(EU)의 정책결정에도 적용되고 있으나, 아직 그 활용수준이 높지는 않다. EBP의 활용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소로는 ▲시행에 소요되는 자원 부담 ▲가용정보의 한계 ▲정책결정자 및 정책평가 전문가의 지식 및 역량 부족 ▲계획된 정책적 개입의 효과가 기대치에 미달할 경우 자신의 입장이 손상될 것을 우려하는 정책결정자들의 소극적 자세 등이 있다.
상술한 상황을 감안하면 EBP가 오늘날의 모든 정책이슈를 해결해줄 수 있는 이상적 해법이라 주장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EBP와 반사실적 영향평가의 활용도를 확대할 당위성이 존재한다는 논지를 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아래에서는 EBP 옹호론의 근거를 살펴보고, 현재 EBP가 EU 내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EU의 사례를 바탕으로 세르비아가 EBP를 어떻게 자체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지를 다뤄 보기로 한다.
EU의 주요 EBP 활용사례
EU 및 개별 회원국에서는 정책영향평가가 정부 프로그램, 공공정책, 전략안을 분석하는 표준적 도구로 자리잡았고(INES, 2021), 마이센(Majcen, 2016)은 EU에서 활용하고 있는 EBP가 EU 산하기관, EU 후원사업, 연구공동체의 3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고 소개한다. EU 집행위원회는 2017년 보고서에서 정부가 유용한 증거를 생성하고 이를 정책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신장할 것을 권고했으며, 패튼(Patton, 2023)은 이를 두고 “EU 집행위원회는 EBP를 바탕으로 일상적 거버넌스에서 엄격한 증거가 효율적으로 생산되어 효과적인 공공정책 수립에 활용되는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EU가 과학적 지식과 정책수립을 결합하는 방안에 대체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BP의 잠재력 실현에는 여전히 여러 도전요소가 존재한다. 이 측면에서 사이먼스와 슈나이더먼(Simons and Schniedermann, 2021)은 EBP가 과학적 이론 자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가 수행하는 역할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일견 간과하기 쉬운 이면의 정치성을 띠게 되면서,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의제로 비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엄격한 평가방법론을 공공정책적 목표 달성에 적절히 활용한 긍정적 사례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며, 따라서 EBP의 효용이 잠재적 악영향을 상회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EU 내에서 수행된 다수의 관련 사례를 살펴보면 정책영향평가가 미래 정책개선 용도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EU가 제공하는 지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농업기금과 촌락 개발 프로그램은 좋은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 2007~2013년 EU 촌락 개발 프로그램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 사례는 높은 수준의 반사실적 분석이 특정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통계적 증거 발굴은 물론, EU 수준에서의 촌락 개발정책 평가를 촉진하는 기준 수립에도 유용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Castano et al., 2019). 이외에 해당 보고서의 집필진은 정보 가용성, 재정적·인적 자원의 제약, 이론의 여지가 있는 방법론상 가정 사용을 비롯해 향후 유사한 성격의 정책개입을 계획할 때 유의할 사항을 지적하기도 했다.
반사실적 분석 방법론이 중요한 연구수단으로 자주 활용되는 또 하나의 분야는 노동시장 정책으로, EU는 지난 10여 년간 회원국 내 적극적 노동시장 개입조치의 효과를 분석해 정책 조정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왔다. 드옴브레스와 산탄겔로(D’Hombres and Santangelo, 2019)는 관련 연구에서 정부가 수집한 자료의 활용이 정책평가의 질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들의 연구에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효과를 나타내는 각종 수치를 추산하거나 정책개입의 장·단기적 효과를 추론함에 있어 정부가 수집한 자료, 혹은 복수의 정보원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의 활용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연구진은 기존 정책평가 연구에서 발견되는 양적·질적 차이의 원인으로 정보 가용성 등 여러 변수를 지적하고, 정책분석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개방형 데이터베이스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다음으로 국가원조의 효과, 그리고 특정 지역이나 주체의 경쟁력, 혁신성, 경제적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개입의 성과도 정책평가의 전통적 분야에 속한다. 일례로 국제원조 공여국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지원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개도국에서 이러한 분석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관해 세리디스와 코스토폴로스(Pseiridis and Kostopoulos, 2023)는 반사실적 정책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그리스에서 시행한 기업 국가원조의 성과가 기대치에 미달한 점을 들어 정부 프로그램의 전문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유사한 방법론을 활용한 드볼레티 등(Dvoulety et al., 2021) 연구진은 체코의 혁신지원 프로그램이 내는 성과가 수혜기업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여기에서 초소형 기업은 표본 평균을 넘어서는 뛰어난 성과를 낸 반면 대기업에서는 미미한 효과만이 관찰되었다.
상술한 여러 사례는 EBP 기법을 채택한 정책평가가 주는 혜택을 잘 보여준다. 지난 수십 년간 EU가 축적해온 정책평가 경험은 개별 연구의 시사점 발굴 이외에도 세르비아처럼 유관분야 경험이 부족한 국가에서 중요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책 가이드라인과 제언, 실질사례를 다수 만들어내는 부가적 혜택을 함께 가져왔다. 이 점에서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지식을 모아둔 EU 집행위원회의 정책지식포털은2) 기존·향후 협력에 유용한 자원을 제공해준다. 이외에 집행위원회 산하 기관과 프로그램에서 개발한 여러 도구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정책-과학 협력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정책결정자의 통계적 방법론 활용이나 바람직한 복합지표 개발 역량을 제고하는 복합지표·평가 역량센터3), 그리고 사후 인과분석과 데이터중심적 미시경제 분석을 통해 EU 정책결정에 자문을 제공하는 미시경제 평가 역량센터가4) 대표적 사례로 포함된다. 아울러 EU는 지역발전기금(Regional Development Fund), 응집력기금(Cohesion Fund), 정당이행기금(Just Transition Fund) 등 재정적 개입수단의 2021~2027년 운영안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젠더나 인권과 같이 여러 분야와 동시에 결부된 이슈를 고려하기 위한 구체적 메커니즘도 개발해둔 상태이다(Orfanidou et al., 2022). 이러한 과정을 거친 EU의 과학-정책 협력 경험이 지금도 만들어내고 있는 주요 결과문건들은5) EBP 관행을 더욱 강화해주는 핵심 수단이 되어준다(Farrel, 2022).
세르비아의 공공정책평가 현황과 문제점
현재 세르비아의 정책영향평가 분야는 여타 중동부유럽 국가들과 유사하게 발전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상태이지만, 지난 수년간에는 EU 차원의 사례를 국내에 도입할 기반을 마련하는 등의 기초적 진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세르비아는 계획체계법(Law on Planning System)을6) 법제화하고 공공정책실(Public Policy Secretariat)을7) 신설해 정책평가를 위한 제도적·법적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사전·후 정책평가 지침서 발행, 공공정책관리 분야 내 자체규정 제정 등의 노력을 이어왔다.
세르비아는 이미 공공정책문건과 국가개입 사례를 대상으로 복수의 영향평가를 진행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노동 및 청년정책 분야에서 두드러진 진전을 거뒀다. 이에 더해 정책수립 구상 참여의욕이 높은 세르비아 학계의 역량도 앞으로 정책평가 문화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며, 국가기관과 민간·연구단체 사이의 협력 모범사례가 이미 다수 존재함을 보여주는 연구보고서도 존재한다(INES, 2021). 다만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세르비아의 정책영향평가는 규정의 실제 적용이나 문화 측면에서 우려요소를 안고 있는데,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외부평가를 의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기관이 20개소 중 14개소에 그치는 등 세르비아 정책결정자들의 정책평가 의뢰 빈도가 여전히 낮다.
- 20개 기관 중에서 내부에 별도 평가부서를 보유한 기관은 6개소, 평가보고서를 대외에 공개하는 기관은 13개소에 불과한 데에서 알 수 있듯, 정책평가 업무가 국가기관의 공식 구조에 반영되지 않은 상태이다.
- 정책평가에 소요되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외부 기여금으로 충당된다.
- 공공정책평가 분야 역량개발 및 강좌 운영에 있어 개선의 여지가 상당하다.
결론 및 제언
엄밀한 분석에 기초한 기상예보를 결정에 참고하는 방안에는 별다른 이견이 존재하지 않듯이, 과학적 연구결과를 현실에 적용한다는 명제 자체는 상당한 직관성을 지닌다. 따라서 팬데믹과 같은 공중보건 이슈 대응이나 복잡한 건설사업 진행에 과학적 증거를 활용하는 방안은 폭넓은 사회적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주어진 사회·경제·지리적 맥락에 적합한 거버넌스 메커니즘 개발, 효과적 조세체계 입안, 기업가 정신 신장과 같은 과제에 어떻게 과학을 접목해야 할지는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처럼 과학을 현실의 정책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명료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복잡한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데 있어 EBP 기반 접근법이 여전히 큰 중요성을 지닌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여기서 비판적 사고력을 지닌 독자라면 EU 정책환경과 세르비아의 일부 모범사례를 소개한 위 내용을 바탕으로 세르비아가 앞으로 더욱 빈번하고 심도 있는 과학-정책계의 지식공유를 통해 정보의 격차를 좁히고 미해결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방면의 노력을 통해 세르비아가 답할 수 있는 대표적 질문의 사례로는 코로나19의 악영향 최소화를 위한 정부 보조금 지급정책이 얼마나 큰 효과를 보았는지를 들 수 있다. 세르비아는 여타 유럽국에 비해 상당히 큰 규모의 예산을 코로나19 보조금에 편성했는데, 여기서 반사실적 영향평가 기법을 활용하면 ‘무대응’이나 ‘기타 접근법’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대비되는 정책개입의 성과를 추론해볼 수 있게 된다. 이외에 세르비아 정책 당국이 EBP 적용을 고려해볼 만한 주요 분야에는 다음이 있다.
중요성이 높은 공공정책 이슈나 대규모(인프라) 사업을 대상으로 한 정책성과 및 사회적 영향평가: 특히 고도의 전문성을 지니거나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이슈를 포함해 국가예산이 투입된 정책개입 사례를 투명하고 엄격하게 평가해 도출한 결과는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농업부문 국가원조(보조금 지급) 프로그램이 기업의 성과와 혁신성, 수출 증진 등에 미친 영향 분석
재생에너지원으로의 이행을 촉진하고 취약계층이 탈탄소화로부터 입는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환경부문 사업의 성과 평가
교통, 수송수단, 인구유출, 교육의 질 등 각 지역에서 중요도가 높은 이슈에 대한 실증적 분석
EU를 중심으로 최근의 공공정책 경향을 파악해 정책결정 과정에 과학적 증거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노력이 확대되고 있으나, 동시에 과학적 증거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잘못 해석되거나 아직 정책개발에 충분한 수준으로 응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공공정책이론과 정책평가이론, 그리고 EU가 쌓아온 공공정책개발 분야의 제도적 기틀 형성 경험을 중심으로 세르비아에서도 반사실적 정책평가와 EBP 기반 접근법을 확대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
* 각주
1) 특정 정책의 영향을 받은 처리군, 그리고 다른 모든 여건은 같으면서도 해당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비교·통제군 사이의 결과를 서로 비교하는 연구방법론. 상세는 다음 링크 참조: https://joint-research-centre.ec.europa.eu/scientific-activities-z/counterfactual-impact-evaluation_en
3) https://knowledge4policy.ec.europa.eu/composite-indicators_en
4) https://knowledge4policy.ec.europa.eu/microeconomic-evaluation_en
5) 관련사례로는 에너지 부문의 국가지원 프로그램에 관한 다음 보고서가 있다: Energy State aid: A Toolbox on Counterfactual Impact Evaluation (https://publications.jrc.ec.europa.eu/repository/handle/JRC129621)
6) https://rsjp.gov.rs/wp-content/uploads/Law-on-Planning-System.pdf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