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동안 활동하였던 카페에 계신 모든 님들께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많은 격려해 주시고 기대해 주신 님들께 자주 인사 못해 드린 점을 사과드리며, 그래도 잊지 않고 종종 소식 전해 주셨던 님들께는 감사인사 올립니다.
저는 그간에도 건강한 몸으로 직장에 충실하며 제게 맡은 임무에는 충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바쁜 일에 연속이었고 짬이 안 나서 울 님들께 소홀하였음을 인정하고 죄송한 마음을 절감합니다.
앞으로는 틈틈이 함께 사연 나누며 즐거움은 물론 슬픔까지도 더불어 느끼기 원합니다.
그전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계신 님들과의 좋은 인연도 계속 되기 바랍니다.
거듭 거듭 그간의 소홀했음에 반성합니다.
최근에 저는 제가 거주하는 대전지역 인터넷 카페 몇 곳에만 저의
생활글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부디 님들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라며, 오랜만에 소개하는 저의 일상글을 올려 드리며 앞으로는 종종 소식 드리겠습니다.
날마다 즐거운 일만 많아지소서~! (넙죽~!!!)
지난 3월21일 점심식사 후에는 성모병원에 다녀왔어요.
아니 정확히는 대전성모병원 장례식장이라고 해야죠.
19일 선종하신 김동억 바오로 신부님을 위한 연도(=위령기도)를 드리고 왔어요.
한 평생을 성직자로 헌신하신 신부님을 저도 얼마 전에 특강에서 뵈웠었기에
이 세상을 떠나신 분을 위해 잠시 시간 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1986년 3월 22일 결혼하였으니, 며칠전이 바로 저의 26주년 결혼기념일이었어요.
인생의 중대사 가운데 하나가 “결혼”이지만, 어느덧 50대 중반의 나이다보니
세파에 찌들어 그런지 결혼기념일이라도 무덤덤하게 보내는 저희 부부입니다.
그저 결혼 날짜라도 잊지 않고 있는 걸 다행이라 생각할 뿐...
저희는 결혼반지는 물론, 금목걸이에 두 애들 백일반지 돌반지까지 금이라고 생긴 건 몽땅
IMF 국가위기때 한 "금모으기 운동"에 바쳤었기에 제게는 요즘 무지 비싸다는 금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몇 년 전에야 제 짝지(아녜스)에게 결혼20주년 기념으로 해준 금목걸이 1개가 있으니
남편구실을 좀은 했나싶어 그나마 다행이죠.
1986년에는 서울 아시안게임이 있었던 해였어요.
그해 결혼하여 딸애(세실리아)를 낳았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던 해에는 막내인 아들(요한)을 낳았으니...
국가적인 행사에 있을 때 저희 집도 경사가 있었다죠?
월드컵이 있던 2002년은 그냥 넘겼네요. (하하하)
아녜스, 세실리아, 요한은 저희 가족의 세례명입니다. 제 세례명은 대전 산성동성당 홈피에서 확인하시길...
저희는 신혼생활을 충북 청주시 복대동에 있는 청주공단주변 “벌집방”에서 시작했어요.
“벌집방”은 공단근처에 주로 독신자를 위한 조그만 방 하나에 부엌, 함께 쓰는 공용변소가
있는 집을 말하죠.
작은 다락이 있었지만 4평도 안되는 월세35,000원 짜리 남의집 셋방살이로 시작했죠..
물론, 26년전 35,000원이란 돈의 가치가 지금과 단순비교 안되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신혼시작이었음은 틀림없어요.
요즘 전세로 시작하시는 젊은 신혼부부들이 부러워요.
결혼 4개월 후에 월세 35,000원에서 전세 500,000원으로 이사할 때는 매월 내야하는 사글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부자”가 된 기분이었으니...
공단에서 생산직(보통 “공돌이”라 비하당하는...)으로 철야근무를 숱하게 하면서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하던 제가 말단 공무원시험(충북 지방직)에 합격하였고
충북 보은군으로 발령받아 이사할 때는 전세 300만원이었어요.
보은군 마로면에서 면사무소 직원(보통, 면서기라 하죠)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아들을 낳았고, 면직원을 그만둔 다음,
1989년 1월에는 대전 도마동(대전 대신고 아래)의 작은 방 두칸인 전세 700만원으로,
그 다음에는 도마동(배재대 아래)의 전세 800만원으로
1993년에는 대전 대사동 퇴미고개 윗동네(대사동 135-101번지)에서 월세7만5천원
(이 당시는 대전 서구 월평동 황실타운을 분양받은 상태로 아파트 입주시에 전세금 돌려받지 못할 염려에 월세로 1년 정도 갔었습니다.)
1994년 2월 21일은 제가 35년간의 남의 집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황실타운(31평) 아파트를 장만하여 입주했던 날입니다.
그후 비싼 대출금을 우선 갚기 위해 저희 집을 전세주고 하나로아파트(21평) 2년을 전세 살았고, 전세 차액으로 당시의 대출금을 모두 갚아서
저희 집에 다시 들어갈 때는 빚 하나 없는 순수한 제 집이 된 거였어요.
2002년 황실아파트를 8년 갖고 있다가 팔고서, 그 근처에 있는 한아름아파트 44평을 샀고,
2009년에는 한아름을 팔고, 현재 저희가 살고 있는 중구 문화동 삼성아파트 45평을 샀으니...
월세 35,000원 복대동 청주공단 4평짜리 벌집방에서 시작한 저희 집이 45평으로 된 겁니다.
물론, 1994년부터 2009년까지 1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아파트 매매시에 매도가와 매입가의 차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저희 가정이 이젠 4월30일부터 입주시작인 대전 중구 선화동의 센트럴뷰아파트로 갈 겁니다.
지금의 45평 아파트 생활에서 35평으로 무려 10평을 줄여가는 형편이지만,
새 아파트에서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오늘 이글을 올린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단지, 요즘 같이 서민이 집장만하기가 어렵다는 시기에, 20~30대 젊은 부부들께서
제 글을 통하여 힘을 얻고 더욱 행복해 지시길 바랄뿐입니다.
거듭 거듭 감사합니다.
날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시며, 행복을 나누어 주시는 날이시기 바랍니다.
두손 모아 합장~!
첫댓글 ㅎㅎㅎ님 글을 보고 힘내서 갑니다~~아자~~~ㅋㅋ
우와~! 멸챠님 무지 오랜만입니다. 저도 아자자~!!!
아자아자..ㅋㅋ
많이 축하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ㅎㅎ
네, 거듭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앞으론 시간 자주 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