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새말④ ‘빨리빨리 문화’와 산업화의 결합이 만든 말 급-急
깍듯한 인사에 문○○ '급방긋' 《오마이뉴스2013. 4. 26.》 ‘급방긋’의 ‘급-’은 명사와 결합하여 ‘갑작스러운’, ‘매우 급한’, ‘매우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사이다.
이들은 모두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말로, ‘ㄱ’은 주로 신문 기사들을 통해서, ‘ㄴ’은 주로 방송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 중 어떤 말이 끝까지 살아남아 사전에 실리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급물결 친 이 강변 쫓기는 참새떼들. 《이청준, 흰옷》
‘급물결, 급반전, 급발진, 급속력, 급수정, 급처방, 급처분, 급추락, 급하강, 급환자’를 제외한 다른 말들은 아직 문학 작품 속에서 그 쓰임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ㄴ’의 부류는 더욱 그러하다.
작품 속 길다는 급사랑하고 급이별하는 엉뚱한 인물이지만 사건의 주요 힌트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 《노컷뉴스2008. 4. 16.》
국민들의 유의유식을 걱정했던 일제 강점기에 1920년 조선 총독부에서 간행된 《조선어사전》에는 ‘급-’이 결합된 단어는 ‘급선무’ 하나뿐이며, 1942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는 ‘급경풍, 급병, 급선무’가 전부이다. 이후 1957년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큰사전》에는 ‘급경사, 급구배’, 1961년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말사전》에는 ‘급상승, 급속도, 급침하, 급회전’이 추가되었다. 1961년 산업화 이전에 간행된 국어사전에 ‘급-’이 결합된 단어는 ‘급경사, 급경풍, 급병, 급상승, 급선무, 급속도, 급침하, 급회전’ 등 고작 여덟 개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1999년에 간행된 《표준국어대전》에는 ‘급-’이 결합된 복합어가 대거 수록된다.
급가속, 급각도, 급강하, 급기류, 급매물, 급부상, 급선봉, 급선회, 급성장, 급속도, 급신장, 급실속, 급유아, 급전환, 급정거, 급정지, 급정차, 급제동, 급진전, 급체포, 급출발, 급템포, 급행군, 급회전 ‘급-’이 결합된 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빨리빨리 문화’는 단순히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화 이전에 간행된 사전에 실린 단어와 이후에 실린 단어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이웃 나라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덩샤오핑의 개방 개혁 정책 이후 중국인들도 '만만디慢慢的'가 아닌 '콰이콰이快快'를 부르짖고 있다고 한다.
‘빨리빨리 문화’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대충대충’이 ‘철저함’으로 무장되면서 정보화 시대 한국인의 미덕으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급매물’이나 ‘급매매’도 부족해서 ‘급-’에 ‘급-’을 더해 ‘급급매물’, ‘급급매매’라는 말을 서슴없이 만들어 쓴다.
매매시장 '꽁꽁'…… '급급매물'도 안 팔려. 《아주경제2012. 12. 9.》
산업화 이후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매체의 표현 능력을 극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급-’의 결합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기폭제 역할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표현의 자유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른다. 다만, ‘급-’의 홍수 속에서 사전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단어의 생명을 쥐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뿐이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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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각산의 바람과 노래 원문보기 글쓴이: 흐르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