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드 칼릴(30)은 지난해 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어난 가자전쟁 및 이스라엘 반대 시위 대변인으로 나서 이름을 알렸다. 과격하게 캠퍼스 점거 투쟁을 벌이던 학생들과 활동가들을 설득해 대학 관리들과 협상을 주도해 사태를 해결하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학생비자와 영주권 박탈이었다. 그리고 지난 8일(현지시간)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돼 루이지애나주 (불법)이민 구금센터에서 국외 추방될 위기에 떨고 있다.
칼릴 등 체포에 나선 것은 취임하자마자 의회 폭동 가담자 1600여명을 무더기 사면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 이들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입틀막'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칼릴 체포가 "첫 사례일 뿐이며,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학 내 학생운동이라도 테러리스트 지지, 반유대주의, 반미국주의 활동가들은 다 잡아들여 추방한다는 것이다. 가자전쟁에 반대하거나 이스라엘을 겨냥한 시위도 마찬가지다.
이 대학의 한인 여학생 정모 양도 일 년 전 시위에 적극 가담한 혐의로 대학의 정학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칼릴 체포와 같은 날 ICE 요원들에게 체포될 위기에 몰렸으나 기숙사가 요원들의 진입을 막아 한숨 돌린 것으로 알려져 우리로서도 칼릴 추방이 강건너 불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소요 해결 앞장섰는데 돌아온 것은 추방 압박
12일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석사 학위를 딴 칼릴은 시리아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레바논의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를 딴 뒤 시리아계 미국 비영리단체 주수르(Jusoor)와 일했다. 베이루트 주재 영국대사관이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2년 남짓 유학하다 2022년 미국으로 이주해 지난해 12월 컬럼비아 대학의 국제공공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았다. 미국 시민인 아내는 임신 8개월이지만 아직 남편의 죄목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변호사에 따르면 아내 역시 추방 위협을 받았다.
대학은 그에게 일시 정학 처분을 내렸다. 대학은 많은 잘못을 들이댔는데 대부분 칼릴이 작성하지도 않은 소셜미디어(SNS) 글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칼릴은 학생비자가 취소될까 두려워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것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제 그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물론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공박했다.
칼릴 추방 벼르는 트럼프 정부
ICE가 칼릴 체포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이민 및 국적법의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은 추방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한 차례만 인용된 법 조항을 적용한 것이라며 칼릴 체포는 정부가 비판을 잠재우려는 의도라고 12일 비판했다.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은 칼릴이 정부의 불법적인 이민법 적용으로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추방되는 데 항의하고 있다고 그의 변호사는 말했다. 연방 법원의 한 판사는 12일 예심 청문회를 예고하며 그 전에 정부가 그를 추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스티븐 블라덱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한 차례 있었으나 칼릴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전 사례는 멕시코에서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 위기에 직면한 마리오 루이스 마시우 전 멕시코 법무 차관을 추방한 일이다. 그는 1995년 일회성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다가 워런 크리스토퍼 당시 국무장관이 추방을 추진했다. 그마저 루이스 마시우 전 차관이 항소해 추방이 지연됐다.
블라덱 교수에 따르면, 부패 혐의를 받는 외국 정부 관료였던 마시우는 일시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반면, 칼릴은 영주권자로 미국 영구 거주가 허용된 사람이며 그의 활동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제이미 래스킨 하원의원은 "공포와 협박을 무기 삼아 정치적 반대 세력을 짓밟으려는 정부의 위험하고도 위협적인 선례"라고 강조했다. 블라덱 교수도 "이민자들을 상대로 정부를 비판하면 체포, 구금, 추방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란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시위 막지 못했다며 대학에 재정지원 압박
백악관은 또 컬럼비아 대학이 연방 수사요원들의 학내 투입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폭력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았다며 연방 연구비와 거액 보조금을 박탈하겠다고 벌렸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대학내 캠퍼스 시위대가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반유대주의자 '친하마스' 분자들로 간주하고 모두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컬럼비아 대학이 체포 명단을 받고도 (이민국) 요원들이 캠퍼스 안에서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하는 데 협조할 것을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컬럼비아 대학이 캠퍼스의 반유대주의 운동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방 지원금 4억 달러를 몰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 가운데 2억 5000만 달러의 교부금을 제공하고 있던 국립보건원도 10일 밤 지원금을 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동안 장학금을 받고 있던 수천 명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