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행복한 날
박래여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행복은 지속적일 수 없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선물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내 마음이 흡족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단감을 수확하면 나는 그냥 즐겁다. 마음이 꽉 찬 느낌이다. 못난이 한 봉지라도 나눌 수 있을 때 마냥 좋다. 주문 들어온 것 정리해 택배로 부치고 못난이든지 작은 단감이든지 이웃에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그 행복은 며칠 째 이어진다. 별 거 아니라도 선물이란 이름으로 건네면 받아 기분 좋고, 줘서 기분 좋다. 그 좋음이 행복 아닐까.
사천 공군 비행장에서 에어쇼를 한단다. 딸과 남편이 준비하고 나는 따라만 나섰다.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종횡무진 하는 것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고 어린애처럼 손뼉을 쳤다. 비행기가 내 머리위로 낮게 날 때는 두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들이 군중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이 흥겨우면 저절로 소리도 지르고 손뼉도 치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앉는 의자까지 준비해 간 딸이다. 남편과 딸은 자리를 깔고 앉고 나는 편안히 의자에 앉아 하늘의 비행기 쇼를 즐겼다. 둑 아래 늪에 모였던 청둥오리 떼가 비행기와 같이 날아오른다. 비행기와 새떼가 닮았다.
블랙 이글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조종사들은 어떤 기분일까.
나도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귀마개를 준비해 갔지만 나는 끼지 않았다. 찢어질 듯 내 머리 위를 가르는 굉음도 즐길만 했다. 하늘이 새파랗게 맑았으면 한층 빛났으련만 구름이 살짝 어우러진 것이 못 내 아쉽다. 비행기 쇼는 끝나고 사천 선진리 성에 올랐다. 잎사귀를 몽땅 털어버린 벚나무 단지. 하얀 검버섯이 핀 늙은 벚나무들 사이 젊은 벚나무도 보인다. 고목 벚나무 옆에 물오른 벚나무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왠지 나는 늙고 볼품없어진 몸뚱이로 버티고 있는 늙은 고목나무 곁에 더 오래 머문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쌓았다는 왜성, 그들이 심었다는 벚나무, 그 성위에 올라서면 사천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봄에 벚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 벚꽃 잎을 머릿결에 앉히고 앉아 쑥을 캐는 아낙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딸의 손을 잡고 나목이 된 벚나무 사이를 걷는다.
눈 오면 더 멋지겠다. 올 겨울에 한 번 더 오자.
나는 딸에게 속삭인다. 벚꽃이 절정을 이룰 때도 좋고, 가녀린 가지만 무성한 겨울 선진리 성도 운치가 있다. 미어터지는 차량 사이를 거북이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비행기 8대가 20여분 보여준 하늘 쇼, 그 잔상을 안고 집으로 오던 길에 저녁을 해결했다. 맛집에 들러 땀을 뻘뻘 흘리며 곱창전골을 먹었다. 이런 저런 음식을 먹어도 허기가 졌던 속이 비로소 꽉 찬 느낌이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남매가 보내준 생일선물이 나붓이 엎드려 나를 반겼다. 소설 책 세 권과 남매가 쓴 편지를 읽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 잘 살고 있구나. 행복해. 이런 게 행복이지. 행복이 별 건가. 불행하지 않으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닐까. 가진 것이 있거나 없거나.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거나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