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
남을 위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남과 나를 구별하여 판단하지 말고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爲 : 할 위(爪/8)
彼 : 저 피(彳/5)
猶 : 오히려 유(犭/9)
爲 : 할 위(爪/8)
己 : 자기 기(己/0)
출전 : 묵자(墨子) 겸애하(兼愛下)
이 성어는 자기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자신에 대해서와 같이 사랑한다면 이 세상에 다툼은 없어지고 인간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가 있다고 주장한 묵자(墨子)의 겸애(兼愛)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말이다.
공자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춘추시대의 사람들에게 인(仁)의 덕목을 내세웠다. 하지만 인이라는 덕목은 당시 사람들에게 아직 낯선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 조차도 인의 의미를 잘 몰라서 여러 차례 공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자는 먼저 '사람을 사랑한다'(안연)는 뜻으로 인을 풀이했다. 이 풀이만 보면 공자가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고 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절대적인 사랑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자의 다른 말을 보면 그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 '인한 사람만이 사람을 제대로 좋아할 수 있고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이인), '사람이 자발적으로 공동의 규범을 존중하면 인이 된다'(안연).
위의 두 말을 보면 공자는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규범을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는 인을 통해서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믿지만, 먼저 규범을 지키는 좋은 사람을 사랑하고 규범을 어기는 나쁜 사람을 미워하고자 한다. 즉 공자는 선악을 확실히 구분하고서 인의 덕목을 실천하면 평화의 세상이 찾아온다고 보았다.
공자보다 뒤에 활약했던 묵자는 공자의 주장에 대해 '선악에 바탕을 둔 인이 과연 세상을 평화로운 곳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묵자는 공자의 선악이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만약 공자의 선악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집안 어른에게 공경하는 행위에 있다고 한다면 선악은 철저하게 가족 윤리를 바탕으로 삼게 된다. 공자가 이 이외에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혈연 또는 종족의 경계 안에 갇히게 된다.
이제 묵자는 공자의 인에 대해 결정타를 날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공자는 인의 덕목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가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의 인은 충돌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자의 인은 차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보편 덕목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족 아닌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인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묵자는 단언했다. '남을 돌보기를 나를 돌보는 것과 같이 하라', 즉 '남과 나를 차별하지 마라'(爲彼猶爲己).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다
묵자는 53편의 '묵자(墨子)'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과학적인 지식을 남겼다. 묵자가 공자의 사상을 비판하기 위해서만 차별의 반대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말끝마다 백성을 위해서 이익을 일으키고 피해를 없애겠다며 '흥리제해(興利除害)'의 구호를 외쳤다. 제자백가는 하나같이 자신의 제안대로 한다면 세상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상황은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졌다.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과 약탈로 신음하고 특히 약자의 고통은 날로 심해졌다.
묵자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겨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는 먼저 전국시대의 5대 문제 상황을 지적했다. 强之劫弱, 富之侮貧, 衆之暴寡, 詐之謀愚, 貴之敖賤 詐之謀愚 . '겸애' 하편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겁주고(强之劫弱),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富之侮貧), 많은 자가 적은 자를 해치고(衆之暴寡), 머리 좋은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詐之謀愚), 귀한 자가 천한 자에게 건방지게 굴었다(詐之謀愚)."
이런 5대 문제 상황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묵자는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아마 묵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한다고 하면서 5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 되기 때문이다.
묵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전쟁과 약탈을 일삼는 시대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침해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을 공격하겠는가? 당신은 자신의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나라를 공격하겠는가?"
상당히 의표를 찌르는 질문이다. 결국 사람이 나와 남을 구분하고서 나만 살겠다는 차별의 논리(별애, 別愛)를 펼치는 한 약탈과 전쟁의 악순환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묵자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사유를 전환해야만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연대의 논리로 차별의 논리를 대체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兼以易別). 묵자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론 작업만이 아니라 실천 행위를 했다.
묵자는 연대의 논리를 주장했던 만큼 그에 상응해서 침략 전쟁을 부정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약소국을 침략하는 강대국의 의지를 제재할 수는 없다. 즉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억제할 수는 없다. 결국 묵자가 아무리 연대의 논리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당한 약자’의 고통을 해결할 수는 없다.
제자백가는 대부분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를 개혁하고자 했다. 이들 중에서도 묵자는 단연 남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들은 실제로 용병 집단을 결성하여 강대국의 침략으로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를 해결해 주는 천군(天軍)의 역할을 했다. 묵자도 송나라가 초나라의 공격 위기에 놓이자 실제로 초나라를 찾아서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 초나라의 공격을 저지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묵자는 먼저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해답을 찾는 이론화 작업을 수행한 뒤에, 현실의 전개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현실을 구원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묵자는 중국철학사에서 인간이면서 신적인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던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신군(神軍), 즉 신의 군대를 이끌고자 했던 사상가이다.
동시대의 이해를 넘어섰던 사상가
제자백가는 서로 다른 학파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공자는 초기 법가를 비판한 적이 있다. 맹자는 묵자와 양주 그리고 법가, 병가, 종횡가 등 수많은 사상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상앙은 유가와 묵가를 비판했다.
제자백가의 상호 비판 중에서도 묵자의 비판은 참으로 독특하다. 제자백가는 서로 다른 사상의 사회적 위험성, 논리적 허점, 반인문성 등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다른 사상가들은 묵자에게 '당신이 말하는 사상이 도대체 실현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퍼부었다. 달리 말하면 같은 시대의 사상가들조차도 묵자의 사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묵자를 자신의 애비를 모르는 짐승 같은 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차별을 부정하는 연대의 논리(겸애, 兼愛)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긍정은 따뜻한 긍정이 아니라 도대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감춘 부정에 가까웠다.
맹자 진심 상편에서, "묵자는 박애를 내세우며 자신의 머리 꼭대기부터 발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 爲之)."
맹자의 뉘앙스는 이렇다. 묵자의 겸애는 참으로 좋다. 하지만 극단적인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누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맹자의 이런 비판은 '묵자'에도 보인다. 묵자는 자신의 겸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사유 실험을 제안한다. 당신은 겸애를 반대하고 별애를 주장한다. 당신은 살아서 돌아올 기약이 없는 먼 타국에 사신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다. 당신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가족의 안전이 걱정된다. 당신은 겸애론자와 별애론자 중 누구에게 가족을 부탁할 것인가?
묵자는 위의 실험에서 별애론자라고 하더라도 가족을 겸애론자에게 부탁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되면 별애론자는 논리적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전에 별애를 주장했지만 가족을 부탁할 때 겸애를 긍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연대 논리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묵자는 사치와 향락을 부정하고 비용 절약을 외치며, 사람이 죽어도 비싼 상복을 입지 말고 대신 얇은 널을 쓰자고 제안했다. 또 공연에 많은 물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음악 행사를 폐지하고자 했다.
장자는 이에 대해 다음처럼 비평했다. '해폐' "살아서 뼈 빠지게 일하고 죽어서 모질게 하니 너무 몰인정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고 슬프게 만드니 그런 일은 실행하기 어렵다(蔽於用而不知文 /천하)." 순자는 묵자를 "실용에 빠져서 문화를 알지 못했다"라고 촌평했다.
무차별적인 사랑을 위해서 고행의 삶을 기꺼이 살려는 묵자를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찌 보면 묵자는 '자신의 일로 삼아서 그저 묵묵히 하기만 할 뿐 공을 자랑하지도 권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爲而不恃)'는 노자가 말한 성인(聖人)이었는지 모른다. 노자의 성인은 자연을 닮은 존재이기에 현실 세계에서 찾기 쉽지 않으니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묵가는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묵자의 사상은 시대마다 새롭게 재해석되어 왔다. 20세기 초 청나라를 대표했던 사상가 캉유웨이도 그 중 하나다. 묵자 집단은 다른 제자백가에 비해서 상당한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는 거자(鉅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조직을 갖추고 생필품을 생산하기도 하고 용병으로 개인과 국가의 위기 상황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진한제국이 등장한 뒤에도 유가, 법가, 도가 등은 주류적인 사상으로 그 지위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묵자(墨子) 또는 묵가(墨家)를 자칭하면서 사상적 활동을 전개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문에 철학사에서 진한제국의 등장과 더불어 묵가가 사라졌다고 보았다.
묵자 집단의 성격 중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유협(遊俠)과 군사 집단은 통일제국과 양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묵자는 살아 있는 사상으로서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다. 사망 선고는 사실과 다른 섣부른 판단이다. 묵자의 사상은 시대마다 다른 학자에 의해서 재해석되면서 부활되었다.
송나라의 성리학자였던 장재(張載, 1020~1077)는 공자와 맹자의 원시 유학을 존재론으로 탈바꿈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성리학의 기틀을 다지는 '서명(西銘)'에서 묵자의 무차별적 사랑을 펼치는 거대한 우주 가족을 노래했다.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나는 까마득한 존재로서 그 속에 뒤섞여서 존재한다. 천지에 가득 찬 기운이 나의 몸 그 자체이고, 천지를 이끄는 이치가 바로 나의 본성이다. 모든 사람들은 나의 형제이고, 만물은 모두 나의 동류인 것이다(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吾其體, 天地之帥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서명(西銘)'의 세계에서 나와 남의 구별은 없다. 사람은 모두 나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사물마저 나의 동류가 되고 있다. 물론 장재가 오늘날 학계의 관습처럼 공공연하게 각주를 달아서 자기 사고의 출처를 묵자로 명기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묵자의 무차별적 사랑 또 는 무한 연대의 논리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설명될 수 없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묵자의 겸애를 수용해서 세계의 절대 중심을 부정하고 범애(汎愛)로 나아갈 수 있었다.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는 남자와 여자, 나라와 나라 등 각종 경계의 철폐가 대동(大同)으로 불리는 세계 평화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묵자의 사상이 재해석되면서 부활되고 있었는데 어떻게 사망선고를 내릴 수 있겠는가? 서툰 외과의사의 말만 믿고 묵자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묵자를 두 번 죽이고 창조적 사유를 시도했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
다른 사람 대우하기를 자신과 똑같이 하라.
전국시대 사상가 묵자(墨子)는 사람이 절실히 바라는 것과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 사이의 어긋남을 깊이 있게 통찰했던 사람이다. 전쟁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것이다. 묵자는 전쟁의 밑바탕에 나와 남을 차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봤다.
자신이 자신을 때리고, 한 나라가 같은 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 그리고 공격하는 나라와 공격당하는 나라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자는 '다른 사람 대우하기를 자신과 똑같이 하라'는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를 주장했다.
묵자의 동시대 사람들은 '위피유위기'가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람은 남보다 자기 자신을 챙기기 마련이므로 나와 남을 똑같이 대우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묵자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듣고 생각해볼 문제를 한 가지 제안했다.
어떤 사람이 나라의 중대한 임무 수행을 위해 사신으로 먼 나라를 향해 떠나게 됐다. 교통이 불편하고 도적이 출몰하던 시절이므로 사신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 위험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신은 외국으로 길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가족을 돌봐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가'는 나와 남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람이고, '나'는 나와 남을 차별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사신은 누구에게 자기 가족의 안위를 부탁할까.
묵자는 사신이 '가'의 성향이든 '나'의 성향이든 모두 가족을 나와 남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람에게 부탁하게 된다고 봤다.
사신이 평소 '가'를 믿고 있었다면 길을 떠날 때 '가'에게 가족을 부탁할 것이고 사신이 평소 '나'를 믿고 있더라도 가족을 나와 남을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람에게 부탁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피유위기'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급할 경우 누구나 채택하게 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위피유위기'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조건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소중해 지키고자 하는 것이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사람으로서 동일한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직급, 직무, 직업, 소유, 취미, 외모 등 많은 측면에서 각기 다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함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묵자 (1) 타인도 나를 돌보듯…兼愛(겸애)의 사상가
묵자(墨子)는 노자의 사상과 견줘 볼 정도로 특징을 가진 인물이다. 묵자가 눈에 보이는 생생한 유(有)의 세계에 집중해 먹고사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노자는 사람들이 현실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고 한정되지 않는 무(無)의 세계에 주목하도록 했다. 하지만 ‘묵자’라고 하면 공자나 노자에 비해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무래도 공자, 맹자나 노자, 장자처럼 널리 알려진 사상가 중심으로 소개되다 보니 주목할 만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사상가가 나타나기 때문일 터다.
우리나라에선 기세춘 선생이 일찍이 1990년대부터 묵자와 예수를 비교하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이 묵자의 하느님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설파했다. 그는 ‘묵자 : 천하에 남이란 없다(1992년)’와 ‘우리는 왜 묵자인가(1994년)’를 잇달아 출판했다. 또 문익환, 홍근수 목사와 논쟁을 벌이고 ‘예수와 묵자(1994년)’라는 책도 냈다(그는 2009년에는 ‘묵자’를 완역해 묵자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을 보여줬다). 이런 논의를 통해 기세춘은 제도권의 학계에 있지 않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도 묵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제 중국 철학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묵자라는 사람과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묵자가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사상가인지, 아니면 이전처럼 계속해서 묻혀 있을 사상가인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묵자의 이름은 묵적(墨翟)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묵자에게 독립적인 ‘열전’을 주지 않았다. 그는 묵자를 맹자와 순자를 다루는 열전의 제일 뒷부분에 간략하게 언급했다. 묵자는 출신은 송나라 사람이고 활동은 공자와 비슷한 시기 또는 공자보다 조금 뒤에 했다. 이를 보면 묵자는 고향과 시기 면에서 공자와 겹치는 측면이 있다. 그 밖에 사마천은 묵자가 수성과 방어에 뛰어난 군사 전문가고 절약을 주장한 인물이라고 평했다(이는 다소 의외의 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음에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많고 많은 성 중에 묵자의 성이 ‘검다’ ‘먹물’을 뜻하는 묵(墨) 씨인 것은 왜일까? 이와 관련 묵자가 하층 노동 계층 출신이라는 설, 피부색이 먹처럼 검다는 설, 먹줄을 사용하는 직업과 관련이 있다는 설, 죄를 지어 이마에 묵형을 받았으리라는 설 등이 있다. 실로 흥미진진할 정도로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가 맞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재미있게도 이런 설에는 묵자가 유독 고상하게 책을 읽는 계층보다는 생산노동 계층과 관련돼 있는 듯한 내용이 많다. 이런 점은 묵자의 사상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신빙성 있다고 할 수 있다.
묵자의 사상은 오늘날 ‘묵자’로 알려진 책에 담겨 있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을 파악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책의 편명에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편명 열 가지는 묵자의 핵심 사상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묵자 십론(十論)’으로 불린다. 예를 들면 뛰어난 사람을 높이자는 상현(尙賢), 윗사람과 의견을 같이하라는 상동(尙同),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겸애(兼愛),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비공(非攻), 정부의 급하지 않은 비용을 아끼라는 절용(節用), 장례의 절차와 비용을 줄이자는 절장(節葬), 하느님의 뜻을 믿고 따르라는 천지(天志), 인과응보를 나타내는 귀신의 존재가 있다는 명귀(明鬼), 뚜렷한 효과도 없이 사치와 낭비로만 쓰이는 음악을 금지하라는 비악(非樂), 현재의 신분에 안주하는 숙명론을 비판하는 비명(非命) 등이 십론의 주제이자 내용이다.
묵자의 십론은 철저하게 춘추전국이라는 시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주장한 이론이다. 예컨대 ‘비악’은 생계와 전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왕족과 귀족 몇몇을 위한 호화로운 예술 공연이 이뤄지는 것을 비판했다. 묵자가 모든 상황에서 음악과 무용의 공연을 금지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시대와 발언의 문맥을 살피지 않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묵자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묵자 사상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생겨나게 된다.
시대와 동떨어진 묵자 이해는 묵자 사상을 왜곡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묵자는 초역사적인 이론을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연하게 여기는 삶의 길을 성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학문 분류로 보면 묵자 사상은 사회학의 특징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묵자는 왜 십론을 자기 사상의 핵심 주제로 삼았을까. 그것은 묵자의 시대 인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정치라고 하면 응당 ‘세상 사람의 이익을 일으키고 재해를 없애는 흥리제해(興利除害)’ ‘가난한 자를 풍족하게 하고 힘없는 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부빈중과(富貧衆寡)’ ‘위태로운 것을 안전하게 하고 혼란한 것을 질서 있게 만드는 안위치란(安危治亂)’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묵자가 볼 때 과거 정치 지도자들은 세 가지 정치적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말만 하지 않고 실제로 노력했다. 반면 현실의 정치 지도자들은 말로는 정치적 목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움직였다(‘상동’ 中편). 즉 “말과 행실이 서로 어긋나서 비난할 뿐 아니라 반대되는 형국인 셈이다(言則相非, 行則相反).”
그 결과 묵자는 자신의 시대가 시비를 가리는 기준을 상실했다고 봤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이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 자두, 참외 등을 훔쳤다고 하자. 공직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모두 그 사람이 나쁘다고 비판한다. 또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들어가 재물이나 소와 말을 훔쳤다고 하자. 사람들은 앞의 경우보다 더 비난할 것이다. 피해의 정도가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겸애’ 下편).
당시 제후들은 다른 나라로 쳐들어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거나 심지어 한 나라를 멸망시켜 자국의 행정 구역으로 삼았다. 피해가 앞의 두 경우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침략 전쟁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혁한 전공을 세운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바로 이런 전도된 현상이 묵자가 풀고자 했던 문제였다. 전쟁은 명백한 악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선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묵자는 이 같은 전도된 현상을 경험하면서 그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다음의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들이 타인을 해쳐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고 하는 약탈적 탐욕을 부리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그의 생각을 천천히 살펴보자.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물건이 아무리 탐이 난다고 해서 자신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아니 이런 말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내가 아니라 남이 갖고 있고, 탐나는 물건을 내가 아니라 남이 갖고 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남이 나에게 선뜻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남을 해쳐서라도 음식과 물건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개인의 경우가 아니라 집안과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는 자신의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의 땅과 재물이 탐나면 병사를 동원해서 그 나라의 땅과 재물을 빼앗으려고 한다.
여기서 묵자는 경쟁과 전쟁이 결국 나와 남의 이익과 피해를 구분하는 사고에서 생겨난다고 봤다. 따라서 나와 남의 이익과 피해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전쟁으로 치닫는 시대의 광기를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주장을 “나를 돌보는 것처럼 남을 돌보라(爲彼猶爲己. ‘겸애’ 下편)!”라는 테제로 표현해냈다. ‘爲彼猶爲己(위피유위기)’는 현대사회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평등과 박애 정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묵자 사상은 현대인의 바람직한 삶을 구성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묵자는 철저하게 묻혀 있었을까. 그의 사상이 중국 철학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비주류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묵자 사상이 비주류였다고 해서 과거에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주류로서 묵자 사상은 주류인 공자 사상이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자극과 에너지를 제공했다. 가령 공자 사상은 가족 윤리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묵자가 ‘위피유위기’를 외치는 한 공자의 후학들은 공자 사상이 가족 이기주의로 떨어지지 않는 길을 찾아내야 했다.
이처럼 공자는 묵자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묵자도 공자를 더 빛나는 별로 만드는 역할에 한정되지 않는, 자신만의 특성을 갖고 있었지만.
묵자 (2) 학문의 근본은 배움을 실천하는 것
소비자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은 기성제품과 달라야만 살아남는다. 스티브 잡스가 IT 분야를 개척하고 업그레이드된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신상품을 내놓으니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라도 물건을 사려고 했다. 냉장고, 세탁기, TV 같은 가전제품은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은 아니지만 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품으로 소비자 선택을 유도한다. 음식점도 차별화된 메뉴로 승부를 걸 때 찾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산업과 서비스업은 ‘남과 달라야 한다’는 사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사상 분야도 이전과 같은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를 내야 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주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고 남과 같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르기만 할 게 아니라 논리를 갖추고 근거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름으로 인해 한때 사람들 주목을 받더라도 시간의 검증에 의해 철학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묵자(墨子)의 사상에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상가와 공유하는 측면도 있고 그만의 독특한 주장도 뒤섞여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묵자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공자나 노자 같은 널리 알려진 인물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난다. 묵자의 책을 펼치면 첫 번째로 인재를 가까이 하라는 ‘친사(親士)’ 편이 나오고 두 번째로 ‘수신(修身)’ 편이 나온다. 이 두 편을 읽어보면 묵자는 시대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과 관련해서 공자와 비슷한 관점을 보이고 있다.
주(周)나라 천자가 정치적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 공동체는 천자-제후-경대부(卿大夫)-사(士)로 이어지는 계급적 질서에 의해 유지됐다. 오늘날 대통령제 정부에서 대통령-장관-비서-도지사-시장·군수로 직무가 이어지고, 기업에서 회장-사장-전무-상무-부장-과장-대리-사원의 조직으로 업무가 추진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약육강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천자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개별 제후국이 독립국가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늘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망하거나 인수합병되는 일이 생겨나는 것과 닮았다.
강한 나라가 등장하면 새로 점령한 지역에서 행정 업무를 맡고 세금을 관리하며 치안을 유지하는 실무자가 많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는 고위 관료보다도 실무를 탁월하게 처리하는 전문가가 환영받는다. 그 결과 기존에는 지배집단의 최하층에서 명령과 지시에 따라 제한된 업무를 하던 ‘사(士)’가 이제 특정 지역과 업무를 추진하는 재량권을 갖게 됐다. 천자의 주나라 중심 질서에서 개별 국가가 경쟁하던 춘추전국시대로 넘어오며 ‘사’는 사회적으로 환영을 받으면서도 실제로 가장 많이 성장한 계층이었다. 그들은 당시 시대의 총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논어’나 ‘묵자’를 읽으면 정치 지도자들이 ‘사’를 존중하라는 공통된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친사’는 오늘날의 말로 하면 대학의 창의 인재, 기업의 인재 경영과 같이 “인재를 키우라!”라는 요구와 통한다. 묵자의 전제는 이렇다.
“국정을 맡을 수 있는 인재를 찾아 옆에 두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 뛰어난 인물을 보고서도 서둘러 기용하지 않으면 그들도 군주를 홀대할 것이다. 뛰어난 인물을 홀대하고 인재를 잊고서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던 왕은 일찍이 없었다(緩賢忘士, 而能以其國存者, 未曾有也).” (‘친사’)
묵자는 정치 공동체의 운명이 인재와 뛰어난 인물을 활용하는 데 달려 있다고 봤다. 정치 분야를 비롯해 경제, 스포츠, 학계 모두 뛰어난 인물을 급하게 쓰고 인재를 가까이하는 급현친사(急賢親士)에 신경 쓰지 않고 뛰어난 인물을 홀대하며 인재를 잊어버리는 완현망사(緩賢忘士)에 빠져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이처럼 묵자는 시대의 문제를 헤쳐 나갈 뛰어난 인물과 인재가 있는데도 그들이 기회를 얻지 못해서 공동체가 위기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다. 인재를 널리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코앞에 있는 사람만을 찾으면서 “인재가 없다” “사람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면, ‘현안을 해결하지 못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 꽉 막혀 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두 번째 ‘수신’ 편에서 묵자는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군자가 전쟁을 할 때 진법의 운용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용기가 근본이고, 상례(喪禮)를 치를 때 예법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슬픔이 근본이고, 사(士)가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하더라도 실천이 근본이다(君子, 戰雖有陳, 而勇爲本焉. 喪雖有禮, 而哀爲本焉. 士雖有學, 而行爲本焉).”
전쟁은 많은 병사를 하나의 몸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장병이 제각각 움직인다면 병사가 많아도 전투 역량이 크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소 진법(陣法)을 갈고닦아야 한다. 진법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鶴翼陣)’처럼 병사를 부대와 임무별로 배치하고 작전에 따라 병사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다. 병사들이 아무리 진법을 숙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적을 만나 겁을 집어먹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진법은 무용지물이 된다.
상례는 죽은 자를 다른 세계로 보내는 절차다. 상례에 비싼 물건을 준비하고 화려한 장식을 갖추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다. 하지만 상례를 치를 때 상주나 가족들이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상례의 본령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묵자는 전쟁과 상례의 본령을 말하면서 초점을 학문으로 옮기고 있다. 인재는 당연히 학문을 갈고닦아야 한다. 하지만 그 학문은 ‘학문을 위한 학문’이 돼서는 안 된다. 학문은 반드시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본령으로 삼아야 한다. 즉 묵자는 학문이 삶에서 ‘살아 있는 학문’이 되려면 반드시 ‘실천하는 학문’이 돼야 한다는 방향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사실 묵자 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묵자는 침략 전쟁을 반대했다. 그는 “침략 전쟁을 반대한다”는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군사 집단을 조직해 실제로 침략을 당하는 나라를 군사적으로 돕는 용병 역할을 했다. 이처럼 묵자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자기 사상의 요체로 삼았다. 사실 이런 특성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묵자 사상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부당한 침략 전쟁을 응징하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하자고 주장하는 정도에 그쳤다. 노자는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지 고발하는 목소리를 높였을 뿐이다.
세 번째 ‘소염(所染)’ 편에 이르면 묵자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이제까지 누구도 내놓지 않았던 환경결정론을 주장했다. 묵자는 옷감을 염색하는 광경을 눈여겨본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옷감을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랗게 되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랗게 된다. 넣는 물감이 바뀌면 옷감의 색깔도 다르게 된다. 옷감을 다섯 차례 물감의 통에 넣으니 마침내 다섯 가지 색깔이 나왔다. 따라서 염색은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 所入者變, 其色亦變. 五入畢, 則爲五色. 故染不可不愼也).”
아이가 염색 광경을 봤더라면 신기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묵자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의 눈으로 염색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문학적 사고를 했다. 그는 하얀색의 천이 어떤 염색 물통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그것을 국가 운영으로 옮겨가 생각했다. 군주가 현신(賢臣)을 만나면 명군(明君)이 될 것이고 간신을 만나면 암군(暗君)이 될 것이다. 현신은 군주가 나쁜 길로 가면 내버려두지 않고 올바른 길로 견인하려 하는 반면 간신은 올바른 길을 가려는 군주마저 나쁜 길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묵자는 염색을 염색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그의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고의 연상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묵자는 사(士)라는 인재의 가치를 높이 친다는 점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와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실천적 학문과 환경결정론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묵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특히 창의적인 인재를 찾는 소리가 드높은 요즘, 시대를 이끌 인재를 키우고자 했던 묵자의 이야기는 더욱더 관심을 끌 만하다.
묵자 (3) 경쟁에서 협력으로…兼以易別(편가름을 아우름으로 바꾸다)
경쟁(전쟁)이 일상화되면 그것 이외의 다른 길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합의와 조정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해오던 관성 때문에 경쟁(전쟁)에 의지하게 된다. 이렇게 관습과 문화 그리고 법률과 제도만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에 이르기까지 삶의 틀이 한번 모습을 드러내면, 외부 자극을 받아 환경과 조건이 변해도 과거로부터 익숙한 틀이 그대로 살아남게 된다. 이처럼 과거의 틀이 관성으로 작용해 패턴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한다.
경쟁(전쟁)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힘을 키워야 하고, 그 힘을 키우려면 나의 역량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남을 공격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즉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논리가 생겨난다. 묵자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시대의 관성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성찰하고자 했다. 아울러 생존을 위한 길이 과연 전쟁 이외에 다른 것은 없는지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의문은 기업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보통 경쟁 업체는 제품 개발과 영업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이 선(善)인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동종 업체만이 아니라 이종 업체 간 협력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한번 전쟁에서 진 나라가 다음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전쟁에 의한 생존은 결국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상대를 완전히 멸망시키거나 대항할 의지를 철저하게 꺾어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힘을 길러 언젠가 다시 싸움을 걸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은 안전한 생존을 위한 좋은 길이 아니라 일시적인 길일 뿐이다. 결국 안전한 생존을 위해서는 전쟁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때문에 묵자는 사람들이 전쟁의 한계를 알면서도 다시 전쟁에 의존하게 될까 봐 “꼭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안전한 생존을 위한 다른 길은 의외로 쉽다. 내가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상대도 나를 공격하지 않으면 평화가 유지된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바로 안전한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손쉬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전쟁에 의존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내가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대가 나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결국 전쟁으로 향하는 동시대 사람들 사고에는 나는 믿을 수 있지만 남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이 불신은 나와 남을 함께 묶어주는 공동의 가치가 부재하고 나와 남을 운명공동체로 여기지 않는 습관에서 생겨난다.
묵자는 동시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전제에서 출발해 새로운 공동의 가치를 세우고자 했다. 나와 남이 동일한 운명공동체에 속해 있고 공통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내가 남을, 남이 나를 공격할 이유가 없어진다. 묵자는 비유를 통해 이런 사고의 타당성을 밝히고자 했다.
내가 아무리 공격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나 자신을 침략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의 나라에 아무리 많은 재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다. 이처럼 나와 남을 단일한 공동체로 여기게 되면 내가 남을 공격해 힘을 약화시킨다든지, 남의 것을 빼앗아 나를 살찌운다든지, 나와 남을 구별하는 사고와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묵자는 이를 ‘나를 돌보는 것과 똑같이 남을 돌보라!’는 의미의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란 말로 강조했다. 위피와 위기를 구별하는 사람은 묵자의 이런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별하는 사고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의 반론을 따라가 볼 만하다.
묵자는 ‘위피유위기’에서 출발해 다시 독특한 개념을 내놨다. 겸(兼)과 별(別)이 바로 그것이다. 별은 ‘나누다’ ‘가르다’라는 뜻이고, 겸은 ‘아우르다’ ‘합치다’라는 뜻이다. 특히 겸(兼)자는 글자 안에 사람이 손(手)으로 두 포기의 벼(禾)를 움켜쥐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즉 겸(兼)자는 두 병(秉)자가 합쳐진 꼴이다. 묵자는 별과 겸에 애(愛)자를 결합해 별애(別愛)와 겸애(兼愛)의 개념을 만들었다. 별애는 사람이 혈연과 국가 등의 개별적 소속에 따라 타인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고, 겸애는 소속을 따지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묵자는 당시의 혼란과 전쟁이 결국 다른 소속들이 적대적 경쟁을 벌이면서 생겨났다고 봤다. 그의 해결 방향은 분명하다. 소속에 따른 무한경쟁을 소속을 초월하는 연대로 바꾸는 것이다. 그는 ‘겸으로 별을 바꾸자!’는 의미로 ‘겸이역별(兼以易別)’을 주장했다. 묵자는 겸이역별을 단순히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이런 노력의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묵자 집단의 용병화다. 약한 공동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강한 상대의 공격을 받는 것은 겸이역별에 어긋나는 일이다. 묵자 집단은 침략을 받아 위기를 겪는 약한 나라에 용병을 보내 공동방위를 실시했다. 이론과 실천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 집단은 자신들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 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묵자 집단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전위 조직이자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학문공동체였다.
묵자 집단의 이론과 실천은 당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주나라 천자가 정치·군사적 구심점 노력을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맘껏 유린하는 상황에서 묵자 집단은 공격받는 약자를 지켜주는 구세주와 같았다. 그래서 묵자보다 뒤에 활약했지만 역사적 사정에 밝았던 한비자는 묵자를 당시에 가장 잘나가는 학문, 즉 ‘현학(顯學)’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아무런 까닭 없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의 땅과 자원을 욕심내서 침략을 벌이려고 한다. 약한 나라는 주위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지만 아무런 호응이 없다. 대부분 나라가 강한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국제 질서는 이상보다 힘 위주로 유지된다. 그런 상황에서 묵자 집단이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는 강한 나라의 침략에 맞서 약한 나라의 위기를 구해주려고 했으니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묵자 집단의 빛나는 성과에 따른 백성들의 굳건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겸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컸다. 당시 비판의 목소리를 복원하면 다음과 같다.
“겸애의 가치와 방향은 분명 옳다. 하지만 사람은 가족과 국가처럼 자신의 소속 집단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겸애가 현실에서 보편적으로 실천될 수 있을까?”
겸애가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의 집 아이보다 내 아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주위 사람이 잘사는 것이 보이지 않는 먼 곳 사람의 사정보다 더 절실하고, 내 나라 사람의 안전이 다른 나라 사람의 생명 유지보다 더 관심이 많다. 사람이 이성적으로는 겸애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선 겸애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묵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유 실험을 제안했다. 어떤 사람이 사신의 임무를 띠고 조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를 위험한 길을 떠난다고 가정해보라.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별애론자와 겸애론자 중 누구에게 자신의 가족을 부탁하고 길을 떠날까. 묵자의 답은 이렇다. 사신이 겸애론자면 당연히 가족의 신변을 겸애론자에게 부탁할 것이다. 설혹 사신이 별애론자라고 하더라도 겸애론자에게 가족의 안전을 부탁할 것이다. 별애론자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서도 오히려 그 가족을 해치고 재산을 빼앗을 수 있지만 겸애론자는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신이 어떤 가치를 믿느냐에 상관없이 겸애론자를 선택한다면, 겸애는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
묵자는 전쟁의 시대를 살면서 적대적인 경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경로의존성을 타파하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묵자가 기성 사상가와 달리 경쟁보다 연대에 주목하게 된 배경이다.
오늘날 우리는 변화와 창조를 외치면서도 늘 그렇게 살아온 관성에 따라 반대로 나아가는 역설적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 창조의 시대에 모방과 답습의 패턴을 따르는 꼴이다. 묵자라면 사람들에게 시대의 전체를 뒤집는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물질적, 제도적 장치까지 대비하라고 주문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변화를 일굴 비전만이 아니라 용기와 실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 볼 일이다.
묵자 (4) ‘전쟁 반대’ 말보단 행동으로 실천
우리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서 “전쟁을 바라느냐 평화를 바라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평화를 바란다고 대답할 것이다.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없는 것이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묵자는 인류사에서 “어떻게 하면 침략 전쟁을 없앨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나와 남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적대적 대립’에서 찾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세력을 응징하는 국제연합과 같은 역할을 실제로 수행했다. 즉 그는 말로만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면 그것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묵자가 전쟁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오늘날 중국 전도를 보면 주(周)나라, 진나라, 한나라는 모두 시안(西安), 즉 서쪽으로 치우진 곳에 수도를 세웠다. 주나라 천자(天子)는 동쪽에서 변란이 일어나면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걱정했다. 이 때문에 주나라는 140여명의 왕족과 건국 공신들을 군사적, 정치적 요충지에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제후(諸侯)로 세웠다. 그들은 유사시에 외적이 주나라 천자를 공격하지 못하게 중도에서 막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제후들은 애초 목적과 달리 각자 자국의 영토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됐다. 그 결과 140여개 나라는 강한 나라의 공격을 받아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자기 보존’의 과제를 풀어야 했다. 자기 보존의 욕망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면 7대 강국만이 살아남게 된다. 이들을 옛날에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중원지역의 ‘G7’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를 일컫는 전국시대는 ‘전국책(戰國策)’이란 책 이름에서 연유했지만 그 자체는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라는 뜻이다.
통계자료로 살펴보면 춘추시대(기원전 722~464년)에는 1년에 약 5개국이 서로 전쟁을 벌였고, ‘좌씨전(左氏傳)’의 기사(기원전 722~468년)에는 전쟁이 모두 531회, 즉 연평균 2회 이상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람다움의 발견’ 115쪽, 신정근)
전쟁이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면서 그 비중은 나날이 늘어났다. 급기야는 전쟁 만능론까지 제기됐다. 상앙은 이를 ‘전쟁으로 전쟁을 끝장낸다’는 ‘이전식전(以戰息戰)’으로 표현했다. 이 때문에 전략을 짜고 군사를 지휘하는 병가나 외국과 협상을 하는 종횡가는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됐다.
묵자의 생각은 상앙과 같은 전쟁 만능론자와 달랐다. 그는 전쟁을 비롯한 적대적 경쟁이 자기 보존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는 불신과 혼란을 낳을 뿐이라고 봤다. 상앙이 생각하기에 묵자의 주장은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묵자도 상앙의 반론에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이 한 번의 승리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는 없다. 결국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끊임없는 전쟁의 악순환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묵자는 상호 적대적인 대립에 바탕을 둔 전쟁 만능론자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그는 ‘나와 남을 동등하게 대우하자!’는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에 바탕을 둔 겸애(兼愛)를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겸애가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묵자의 말을 일단 믿고 겸애가 과연 전쟁 억지로 이어질 수 있는지, 다시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묵자가 아무리 겸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도 현실에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에 따라 여전히 전쟁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약속을 하면 지키는 사람이 있지만 꼭 어기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묵자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전쟁의 폐해와 허구성을 밝히면 사람들이 전쟁이 아닌 다른 길, 즉 평화에 이르는 겸애를 선택할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평화의 세계를 만들려면 겸애만으로는 부족하다.
묵자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맹렬하게 비판했는데 그것이 바로 침략 전쟁을 반대한다는 ‘비공(非攻)’이다. 그러나 비공도 겸애와 똑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겸애에 반하는 침략 전쟁을 아무리 비판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지도자는 묵자와 달리 여전히 선제와 기습의 전쟁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쟁의 폐해를 알지만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전쟁을 결코 없앨 수 없는 것일까. 묵자는 오로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관성을 멈추거나 침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신과 불안을 잠재우지 않으면 전쟁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묵자는 실로 담대한 기획을 했다. 그는 전쟁은 그것의 부당성을 앞세우는 것만으로 억제될 수 없으니, ‘전쟁을 일으키면 결코 이익을 얻지 못하고 결국 패배를 당해 큰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경험에 의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풀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응징하거나 침략을 받는 나라를 군사적으로 직접 도와서 패배를 막아내는 일이었다. 말과 논리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힘과 행동의 영역에 뛰어든 것이다. 이것은 전쟁의 폐해를 원론적으로 비판했던 노자(老子) 등과 다른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는 자신의 이론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군사 집단이 됐다. 이런 시도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실로 획기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말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몸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었다.
‘묵협(墨俠)’은 묵자가 이론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현실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성향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은 묵자가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 집단의 특성에 한정되지 않고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 무기를 쓰는 용병, 군사 조직을 운용하는 지도자를 포함하는 ‘자발적 결사체(Voluntary Association)’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은 시대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전위부대(Vanguard)기도 했다.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남쪽의 강한 초나라가 중원의 약한 송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초나라는 당시 묵자 집단과 함께 성을 공격하는 공성(攻城)과 성을 지키는 수성(守城)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공수반(公輸般)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공수반은 성 밖에서 큰 돌을 성벽이나 성안으로 던져서 공격하는 운제(雲梯)를 제작해 송나라의 성을 깨뜨리려고 했다. 만약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송나라가 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초나라의 국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누구 하나 나서서 송나라 침략이 부당하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이미 전쟁은 국제 관계에서 한 나라의 이해를 추구하는 선택지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누가 “당신은 왜 전쟁을 일으켜서 다른 나라를 괴롭히느냐?”라고 물으면 “너도 힘이 있으면 전쟁을 일으켜서 한몫을 잡으면 될 게 아닌가?”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시대였다.
묵자는 열흘 밤낮을 걸어서 초나라에 도착했다. 그는 초나라 혜왕을 만나 전쟁을 만류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혜왕이 보는 앞에서 공수반의 운제에 대항하는 수성의 전술을 펼쳤다. 공수반이 공격할 때마다 묵자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이때 공수반은 묵자를 죽이면 송나라를 깨뜨릴 수 있다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묵자는 자신의 동료가 송나라에서 초나라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다면서 자신을 죽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묵자의 노력을 통해 초나라는 송나라 공격을 멈추게 된다. 이것은 묵자가 당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말과 행동,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웅변하듯 보여준다.
우리 시대에도 시대의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주장이 단지 말만 번지르르하지 않고 실제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이를 판정하려면 이론이 현실을 만나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경로가 명확하게 제시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장은 잠깐 주목을 받다가 금세 사라지는 소음일 뿐이다. 묵자처럼 현실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론을 내놓는다면, 이론은 현실을 이끌어가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
墨子 第16篇 兼愛·下 (1)
分名乎天下惡人而賊人者兼與別與. 卽必曰別也. 然則之交別 者果生天下之大害者與. 是故別非也.
천하의 사람을 미워하고 해치는 자는 평등주의자인가? 차별주의자인가? 반드시 차별주의자이다. 그러므로 서로 차별하는 것은 천하에 크게 해롭다. 따라서 차별은 그른 것이다.
(原文)
子墨子言曰: 仁人之資, 必務求與天下之利, 除天下之害. 然富今之時, 天下之害孰爲大. 曰: 若大國之攻小國也, 大家之亂小家也, 强之怯弱, 衆之暴寡, 詐之謀愚, 貴之敖賤, 此天下之害也. 又與爲人君者之不惠也, 臣子之不忠也, 父者之不慈也, 子者之不孝也, 此又天下之害也. 又與今人之賤人, 執具兵刃毒藥水火, 以交相虧賊, 此又天下之害也. 姑嘗本源若衆害之所自生. 此胡自生. 此自愛人利人生與. 卽必曰非然也, 必曰從惡人賊人生. 分名乎天下惡人而賊人者 兼與 別與. 卽必曰 別也. 然卽之交別者, 果生天下之大害者與. 是故子墨子曰 別非也.
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이 할 일은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천하의 가장 큰 나쁜 것은 무엇인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고 큰 가문이 작은 가문을 어지럽히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겁탈하고, 다수가 소수를 폭압하며,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고, 귀한 자가 천한 자를 능멸하는 것이 천하의 큰 폐해인 것이다.
또한 임금 된 자가 은혜롭지 않고, 신하 된 자가 충성스럽지 않고, 아비 된 자가 자애롭지 않고, 자식 된 자가 효성스럽지 않은 것 또한 천하의 큰 폐해다. 또한 오늘날 화급한 폐해는 사람이 사람을 천하게 여겨 무기와 독약과 물과 불을 가지고 서로 해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폐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치는 데에 원인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천하의 사람을 미워하고 해치는 자는 평등주의자인가? 차별주의자인가? 반드시 그들은 사람을 차별하는 자이다.
墨子 제16편 兼愛·下(2)
分名乎天下愛人而利人者別與. 卽必曰兼也. 然卽之交兼者果生天下之大利者與. 是故子墨子曰兼是也.
사람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자는 평등주의자인가? 차별주의자인가? 반드시 평등주의자이다. 그러므로 서로 평등한 것은 천하에 크게 이롭다. 따라서 평등은 옳은 것이다.
(原文)
子墨子曰: 非人者, 必有以易之. 若非人而易之 譬之揂以水救水 以火救火也. 其說將必無可焉. 是故子墨子曰, 兼以易別. 然卽兼之可以易別之故何也. 曰; 藉爲人之國若爲其國, 夫誰獨擧其國, 以攻人之國者哉. 爲彼者由爲已也. 愛人之都 若爲其都, 夫誰獨擧其都, 以伐人之都者哉. 爲彼揂爲已也. 愛人之家 若爲其家, 夫誰獨擧其家, 以亂人之家者哉. 爲彼揂爲已也. 然則國都不相攻伐, 人家不相亂賊, 此天下之害與. 天下之利與. 卽必曰 天下之利也. 姑嘗本原若衆利之所自生. 此胡自生. 此自惡人賊生與. 卽必曰, 非然也. 必曰, 從愛人利人生. 分名乎天下愛人而利人者別與. 卽必曰兼也. 然卽之交兼者, 果生天下之大利者與. 是故子墨子曰 兼是也.
남을 그르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옳은 것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비유컨대 물을 물로써 그치게 하고, 불을 불로써 끄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남을 그르다고 비판하는 것 자체도 역시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묵자께서는 차별하는 것[別]을 두루 평등한 것[兼]으로 바꿀 것을 주장한다.
그러면 이 차별[別]을 평등[兼]으로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남의 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평등하게 위한다면 대체 누가 제 나라를 온통 들어 남의 나라를 공격하겠는가? 왜냐하면 남의 나라를 위하는 것이 자기 나라를 위한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남의 도읍을 제 도읍 위하듯 한다면, 대저 누가 제 도읍을 온통 들어 남의 도읍을 정벌하겠는가? 평등주의자에겐 제 도읍이나 남의 도읍이 같은 것이 아닌가? 남의 가문을 위하기를 제 가문같이 한다면, 대저 누가 제 가문을 온통 들어 남의 가문을 어지럽게 하겠는가? 이들에겐 남을 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이로움이 생겨나는 근원은 어디서 나오는가? 남을 미워하고 해치는 데서 생기는가? 반드시 아닐 것이다. 분명히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천하에 남을 이롭게 하고 사랑하는 것을 구분하여 이름 붙인다면 '차별'이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兼]'이라고 할 것인가? 반드시 그것은 '두루 평등하게 아우르는 것[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즉 어울려 두루 평등하게 아우르는 것[兼]이야말로 천하에 큰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고로 묵자께서는 겸[兼]이란 옳은 것[是]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墨子 제16편 兼愛·下(3)
是以聰耳明目相爲聽乎. 今唯毋以兼爲正即若利也.
귀머거리와 장님이 차별 없이 아우르면 장님도 볼 수 있고, 귀머거리도 들을 수 있다. 지금 평등만이 바른 정치라 함은 이와 같이 다 같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原文)
且郷吾本言曰, 仁人之事者, 必務求與天下之利, 除天下之害. 今吾本原兼之所生, 天下之大利者也. 吾本原別之所生, 天下之大害者也. 是故子墨子曰, 別非而兼是者, 出乎若方也. 今吾將正求與天下之利而取之, 以兼爲正. 是以聰耳明目 相爲視聽乎. 是以股肱畢強 相爲動宰乎. 而有道 肆相敎誨. 是以老而無妻子者, 有所侍養以終其壽, 幼弱孤童之無父母者, 有所放依以長其身. 今唯毋以兼爲正, 即若其利. 不織天下之士 所以皆聞兼而非者, 其故何也.
또한 앞서 내가 말하기를 '어진 사람의 할 일은 반드시 천하에 이익을 일으키고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라 하였고, 지금 또 나는 '근본적으로 평등하게 아우름이 낳는 것은 천하의 큰 이로룸이요, 서로 차별하는 것이 낳은 것은 천하의 큰 해로움'이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래서 묵자께서 '차별은 그른 것이요, 평등은 옳은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도리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장차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그것을 옳게 취하려면 오직 평등하게 아우르는 길[平等思想]만이 바른길이다. 이 같은 평등사상은 귀와 눈을 차별 없이 밝게 할 것이며, 나아가 귀 밝은 장님과 눈 밝은 귀머거리도 서로 아울러 협동할 것이고, 모두가 잘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평등사상은 팔과 다리를 차별하지 않고, 다 강하게 할 것이며, 나아가 팔이 없는 사람과 다리가 없는 사람도 서로 어울려 협동할 것이므로 모두가 동작을 온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평등사상을 가진 자는 '道'를 터득하면 이것을 널리 펴[展開] 서로서로 가르쳐 모두에게 깨우쳐 줄 것이다.
이러한 평등사상이 있음으로써 처자가 없는 늙은이도 부양 받을 수 있어 수명을 다 할 수 있고, 어리고 약한 고아들도 모두 부모가 없지만 의지하여 살 곳이 있어 장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차별 없이 두루 아우르는 것[兼]만이 바른 정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서로에게 두루 다 같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천하의 선비들이 이러함 '겸(兼)'을 듣고도 비난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墨子 제16편 兼愛·下(4)
即善矣用而不可 雖我亦將非之, 提挈妻子而寄託之 不識於兼之友是乎.
평등한 아우름이 옳다 해도 쓸모가 없다면 버려야 하리라. 네가 전쟁에 나갈 때 네 부모와 처자식을 맡기고자 한다면 평등주의자인 친구에게 맡길 것인가? 차별주의자인 친구에게 맡길 것인가?
(原文)
然而天下之士, 非兼者之言, 揂末止也, 曰; 即善矣. 雖然, 豈加用哉. 子墨子曰; 用而不可 雖我亦將非之. 且焉有善而不可用者. 故嘗兩而進之, 誰以爲二士, 使其一士者執別, 使其一士者執兼. 是故別士之言曰; 吾豈能爲吾友之身, 若爲吾身; 爲吾友之親, 若爲吾親. 是故退睹其友, 飢即不食, 寒即不衣, 疾病不侍養, 死喪不葬埋. 別士之言若此, 行若此. 兼士之言不然, 行亦不然. 曰; 吾聞爲高士於天下者, 必爲之其友之身, 若爲其身. 爲其友之親, 若爲其親, 然後可以爲高士於天下. 是高退睹其友, 飢即食之, 寒即衣之, 疾病侍養之, 死喪葬埋之. 兼士之言若此, 行若此. 若之二士者言相非而行相反與, 嘗使若二士者 言必信, 行必果, 使言行之合, 揂合符節也, 無言而不行也. 然則敢問 今有平原廣野於此, 被甲嬰胄將往戰, 死生之權, 末可識也; 又有君大夫之遠使於巴越齊刑, 往來及否, 末可識也 然則敢問 不識將惡從也. 家室奉承親戚, 提挈妻子而寄託之. 不識於兼之友是乎. 於別之友是乎. 我以爲當其於此也, 天下無愚夫愚婦, 雖非兼之人 必寄托之于兼之有, 是也. 此言而非兼, 擇即取兼, 即此言行拂也. 不識天下之士, 所以皆聞兼而非之者, 其故何也.
그러나 천하의 선비들 가운데 아직도 평등한 아우름을 비난하는 말이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평등한 아우름 즉 兼은 훌륭한 것이나 어찌 실제로 쓸모가 있겠는가?' 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쓸모가 없다면 나 역시 그것을 비난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찌 좋은 것이라면 쓸모가 없겠는가?
그러면 일단 두 사람이 각각 평등주의와 차별주의를 주장한다고 가정하자. 두 선비 중 한 선비는 차별하는 것을 고집하고 한 선비는 평등하게 아우르는 것을 고집한다.
그래서 차별을 고집하는 선비는 말하기를 '내가 어찌 내 벗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벗의 부모를 내 부모같이 모실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벗을 돌보지 않을 것이므로, 굶주려도 먹여주지 않고, 헐벗고 추위에 떨어도 입혀주지 않고, 병들어도 돌보지 않고, 죽어도 장사를 치러주지 않을 것이다. 차별하는 사람의 주장은 이와 같을 것이며 행동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평등하게 아우르는 선비의 말은 그렇지 않고 행동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듣건대 천하의 높은 선비가 되려면 반드시 벗을 위하기를 제 몸같이 하고 벗의 부모를 위하기를 제 부모같이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실천한 연후에야 천하의 고귀한 선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선비는 그의 벗을 먼저 돌보아 줄 것이니, 굶주리면 먹여주고, 추위에 떨면 입혀주고, 병들면 보살피고, 죽으면 장사 지내줄 것이다. 평등하게 아우르는 선비의 말은 이와 같고, 행동도 이와 같은 것이다.
시험 삼아 그들의 말이 반드시 진실하고 행동이 반드시 결과가 있어 언행이 부절과 같이 합치되어 실천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가정하면 감히 물어보자. 지금 이들이 평원과 광야에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전장에 나가, 죽고 사는 것을 알 수 없는 처지라 하자. 또는 임금의 대부가 되어 멀리 파촉과 원나라 혹은 제나라, 형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처지라 하자. 그러면 평등주의자와 차별주의자 중에서 누구에게 부탁할지 궁금한 일이다.
이들 병사와 사신이 제 집안의 부모와 처자식을 이끌고 누구에게 부탁하려 할 때, 평등한 아우름을 주장하는 친구에게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인가? 아니면 차별을 주장하는 친구에게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인가?
내 생각으로는 차별주의자보다는 평등주의자에게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필부라 할지라도, 또는 그 자신이 비록 평등한 아우름을 비난했을지라도, 제 부모와 처자식을 위해서는 반드시 평등하게 아우르는 친구에게 맡겨야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말로는 평등을 비난했지만 행동은 평등을 선택한 셈이다. 즉 이것은 말과 행동이 어긋난 것이다. 그런데도 천하의 선비들이 이러한 평등사상을 듣고도 그것을 비난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墨子 제16편 兼愛·下(5)
必擇兼君 是也.
평등하게 아우르는 사람을 임금으로 선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原文)
然而天下之士, 非兼者之言, 揂末止也, 曰; 意可以擇士, 而不可以擇君乎. 姑嘗兩而進之, 設以爲二君, 使其一君者執兼, 使其一君者執別, 是故別君之言曰; 吾惡能爲五萬民之身, 若爲吾身, 此泰非天下之情也. 人之生乎地上之無幾何也, 譬揂駟馳而過隙也. 是故退睹其萬民, 飢即不食, 寒即不衣, 疾病不侍養, 死喪不葬埋. 別君之言若此, 行若此. 兼君之言不然, 行亦不然. 曰; 吾聞爲明君於天下者, 必先萬民之身, 後爲其身, 然後可以爲明君於天下. 是故退睹其萬民, 飢即食之寒即衣之, 疾病侍養之, 死喪葬埋之. 兼君之言若此, 行若此. 然即交若之二君者, 言相非而行相反, 與常使若二君者, 言必信, 行必果, 使言行之合, 揂合符節也, 無言而不行也. 然則敢問. 今歲有癘疫, 萬民多有勤苦凍餒, 轉死溝壑中者, 旣已衆矣. 不識將擇之二君者, 將何從也. 我以爲當其於此也, 天下無愚夫愚婦, 雖非兼者, 必從兼君是也. 言而非兼, 擇即取兼此言行拂也. 不識天下所以皆聞兼而非之者, 其故何也.
그러나 천하의 선비들 중에는 평등한 아우름을 비난하는 말이 그치지 않는다. 혹시 선비를 선택한다고 하면 가한 일이나 그런 식으로 임금을 선출하는 것은 불가하지 않는가? 그러면 시험 삼아 두 가지로 나누어 그중 한 임금은 평등한 아우름을 고집하고, 한 임금은 차별하는 것을 고집한다고 가정해 보자.
차별주의자인 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내 어찌 만 백성들의 몸을 내 몸같이 위할 수 있겠는가? 이런 평등주의는 천하의 인정과 너무도 어긋나는 말이다. 사람이란 땅 위에 얼마 동안 살아있을지 모르는 존재로 마치 빠르게 달리는 수레가 벽 틈새를 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그의 백성을 버릴 것이니, 굶주려도 먹여주지 않고, 헐벗어도 옷을 입혀주지 않고, 병들어도 돌보지 않고 죽어도 장사를 지내주지 않을 것이다.
반면 평등하게 아우르는 임금의 말은 그렇지 않으며 행동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듣건대 천하의 밝은 임금이 되려면 반드시 만 백성의 몸을 먼저 생각한 연후에 제 몸을 생각한다고 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먼저 돌볼 것이니, 굶주리면 먹여주고, 헐벗으면 입혀주고, 병이 나면 보살펴 주고, 죽으면 장사 지내줄 것이다.
평등주의자인 임금의 말은 이와 같고 행동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들 두 임금을 비교해 보면 이같이 말과 행동이 상반될 것이니, 만일 이들 두 임금들의 말과 행동이 구절과 같이 그대로 실행된다고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 대해서 물어보자.
지금 세상에는 전염병이 나돌고 백성들은 노역과 고통에 시달리고 헐벗고 굶주려 도랑에 굴러 죽는 자가 허다하다면, 두 임금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고 따를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마땅히 차별하는 임금을 버리고 평등하게 아우르는 임금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천하에 어리석은 필부라 해도 혹은 자신은 평등한 아우름을 비난했을지라도 반드시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아우르는 임금을 선택할 것이며 이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말로는 평등한 아우름을 비난했으나 선택은 그것을 취할 것이니 언행이 일치되지 않고 어긋날 것이다. 그러함에도 천하의 선비들이 평등한 아우름을 비난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墨子 제16편 兼愛·下(6)
兼即仁矣 然豈不可爲也 自先聖六王者親行之.
평등은 어질고 의로운 것이다. 어찌 실행할 수 없다 하는가? 평등한 아우름은 옛 성왕들이 이미 실천한 일이다.
(原文)
然而天下之士, 非兼者之言也 揂末止也, 曰, 兼即仁矣義矣, 雖然豈可爲哉. 吾譬兼之不可爲也, 揂挈泰山以超江河也. 故兼者直願之也, 夫豈可爲之物哉. 子墨子曰; 夫挈泰山而超江河, 自古之及今, 民而來, 未嘗有也. 今若夫兼相愛, 交相利, 此自先聖六王者親行之. 何知先聖六王者親行之也. 子墨子曰; 吾非與之並世同時, 親聞其聲 見基色也. 以其所書於竹帛. 鏤於金石, 琢於槃盂, 傳遺後世子孫者知之. 泰誓曰; 文王若日若月乍照, 光于四方, 于四土. 即此言文王之兼愛天下之傳大也, 譬之日月. 兼照天下之無有私也. 即此文王兼也. 雖子墨子之所謂兼者, 於文王取法焉. 且不唯泰誓爲然, 雖禹誓即亦揂是也. 禹曰; 濟濟有衆, 咸聽朕言; 非惟小子, 敢行称亂, 蠢玆有苗, 用天之罰, 若予旣率爾群封諸君, 以征有苗. 禹之征有苗也, 非以求以重富貴, 于福祿, 樂耳目也, 以求與天下之利, 除天下之害, 即此禹兼也. 雖子墨子之所謂兼者, 於茂求焉. 且不唯禹誓爲然, 雖湯說即亦揂是也. 湯曰; 惟子小字履, 敢用玄牡, 告於上天后, 曰; 今天大旱, 即當朕身履, 末知得罪于上下. 油善不敢蔽, 有罪敢赦, 簡在帝心. 萬邦有罪, 即當朕身; 朕身有罪, 無及萬邦. 即此言湯貴爲村者, 富有天下, 然且不憚以身犧牲, 以祠說于上帝鬼神, 即此湯兼也. 雖子墨子之所謂兼者, 於湯取法焉. 且不唯誓命與湯說爲然, 周詩即亦揂是也. 周詩曰; 王道蕩蕩, 不偏不黨; 王道平平, 不黨不偏. 其直若矢, 其易若底. 君子之所履 小人之所視. 若吾言非語道之謂也, 古者文武爲正, 均分, 賞賢罸暴, 勿有親戚弟兄之所何, 即此文武兼也. 雖子墨子之所謂兼者, 於文武取法焉. 不識天下之人, 所以皆聞兼而非之者, 其故何也.
그러나 천하의 선비들 중에는 아우름을 비난하는 말이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평등한 아우름은 어질고 의로운 것이지만 그러나 어찌 실행할 일인가? 그 불가능함을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그것은 마치 태산을 끼고 장강이나 황하를 건너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두루 평등한 아우름 즉, 겸[兼]은 꼭 소망스럽지만 대저 어찌 이를 수 있는 일이겠는가?'라고 비난한다.
묵자는 이에 대해 말씀하신다. 태산을 끼고 강을 건너뛰는 것은 자고 이래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평등한 아우름과 서로를 이롭게 하는 일은 옛날 요 · 순 · 우 · 탕 · 문 · 무왕들께서 이미 실행하셨던 일이다. 나는 그 같은 성왕들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친히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본 것은 아니지만 책과 돌과 쇠와 쟁반과 대야 등에 쓰여 있고 새겨져 있는 것들을 통해 후세에 전해진 것을 알고 있다.
書痙 泰誓篇의 기록은 '문왕(文王)은 해와 같이, 달과 같이, 흔연히 비추어 천하사방과 서방까지 빛났다'라고 했다. 곧 이것은 문왕이 천하를 차별하지 않고 두루 평등하게 사랑하심이 마치 해와 달같이 넓고 커서 천하를 사사로움이 없이 두루 평등하게 비추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이 곧 문왕의 평등한 아우름 즉 겸[兼]이었던 것이다. 묵자의 이른바 평등주의[兼]도 이 같이 문왕에게 본받은 것이다.
태서 뿐만 아니고 우서(寓書/大禹謨篇)에도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우임금께서 훈시하기를 '백성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같이 작은 사람이 감히 난리를 일으키려 함이 아니라, 준동하는 苗(묘)족의 임금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 내리려는 것이다. 이제 여러 군주들과 힘을 합해 묘족을 징벌하자.'
우임금이 묘족을 징벌한 것은 부귀와 보록을 더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자 하려는 것도 아니며, 오직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재해를 없애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임금의 평등한 아우름이었다. 묵자의 이른바 평등주의도 이 같이 우임금을 본받은 것이다.
또한 우서(禹書)만이 아니고 '탕서'편의 말씀도 역시 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탕임금은 '소자 이(履)가 감히 검은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하느님께 아룁니다. 지금 하늘에서는 큰 가뭄이 내리는데 이것은 곧 짐의 죄입니다. 하늘과 땅에 지은 죄를 알지 못하오나, 좋은 일은 감히 감추지 못하고 나쁜 죄는 감히 사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만방에 죄가 있으면 짐을 벌하시고 짐에게 죄가 있다 해도 만백성에게 미치지 않게 하소서'라고 빌었다.
탕임금은 천자라는 존귀한 몸이요, 천하를 소유한 부유한 몸으로써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꺼리지 않고 하느님과 귀신에게 제 몸을 바쳤던 것이니, 곧 이것이 탕임금의 '평등한 아우름'이다. 묵자의 이른바 두루 평등한 아우름도 이 같은 탕임금을 본받은 것이다.
또 '우서'나 '탕서' 뿐 아니고 '주서(周書/洪範篇)'의 글도 같은 기록이 있다. '왕도는 넓고 넓어라!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도 않네! 곧기는 화살 같고 평평하기 반석과 같네! 군자의 가야 할 길! 소인이 본받아야 할 '도'로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도리가 아니고 옛 문왕과 무왕의 정치를 말한 것이다.
옛날 문왕의 정치는 고르게 나누고, 어진 이에게 상을 주고, 포악한 자에게 벌을 주고, 친척이나 측근에게 사사로움이 없었으니, 이것이 곧 문왕과 무왕의 평등한 아우름 즉, 겸[兼]이다. 묵자가 말하는 평등주의도 이것을 본받은 것이다. 이러한 평등한 아우름을 듣고도 비난한다면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다.
墨子 제16편 兼愛·下(7)
然即之交孝子 果不得已乎.
진정한 효자는 남의 부모에게도 효자다.
(原文)
然而天下之非兼者之言 揂末止, 曰;意不忠親之二而害 爲孝乎. 子墨子曰;姑嘗本原之 孝子之爲親度者, 吾不識孝子之爲親度者, 亦欲人愛利其親與. 意欲人之惡賊其親與. 以設觀之, 即欲人愛利其親與. 然即吾惡先從事即得此 若我先從事乎愛利人之親, 然後人報我愛利吾親乎. 意我先從事惡人之親 我以愛利吾親乎. 即必吾先從事乎愛利人之親, 然後人報我以愛利吾親乎. 然即之交孝子 果不得已乎. 毋先從事愛利人之親者與, 意以天下之孝子爲遇, 而不足以爲正乎. 姑嘗本原之 先王之所書, 大雅之所道, 曰; 無言而不讐. 無德而不報. 投我以桃. 報之以孝. 即此言 愛人者必見愛也, 而惡人者必見惡也. 不知天下之士所以皆聞兼而非之者, 其故何也.
그러나 천하에 평등한 아우름[兼]을 비난하는 말은 아직 그치지 않는다. '만일 어버이에게 이롭지 않고 해롭다면 효도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비난한다.
이에 묵자께서 대답하신다. 잠시 효자로써 어버이이를 위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깊이 헤아려 보자. 효자로서 어버이를 위한다면, 남이 자기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라겠는가? 아니면 남이 자기 어버이를 미워하고 해롭게 하기를 바라겠는가? 논리적으로 본다 해도 곧 남이 제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남이 제 부모를 사랑하겠는가? 내가 먼저 남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한 다음, 남이 내 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보답하기를 바랄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내가 먼저 남의 부모를 미워하고 해친 다음에 남이 내 부모를 사랑하고 이롭게 보답해주기를 바라겠는가?
만약 효자라면 반드시 내가 먼저 남의 부모를 사랑하고 남도 내 부모를 사랑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므로 효자는 서로 남의 부모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이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면 남의 부모를 먼저 사랑하고 이롭게 한 자가 아무도 없었는가? 아니면 천하의 효자는 어리석어 올바로 하지 못한 것인가?
잠시 시발점으로 돌아가 선왕의 글인 詩經 大雅篇(大雅/抑篇)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말(話)은 메아리가 없을 수 없고, 덕은 보답이 없을 수 없다네. 내가 복숭아를 던져주면, 그는 자두로 갚네! 곧 이 말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사랑으로 받고, 남을 미워하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이른 것이다. 나는 천하의 선비들이 이러한 평등한 아우름[兼]을 듣고도 비난하는 까닭을 알 수가 없다.
墨子 제16편 兼愛·下(8)
意以爲難而不可爲邪. 末踰於世而民可移也. 何故也. 即求以鄕其上也.
평등이란 어려워서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세상은 변하지 않아도 민심은 바꿀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행동은 윗사람이 지향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原文)
意以爲難而不可爲邪. 嘗有難此而可爲者. 昔荊靈王好小腰, 當靈王之身, 荊國之士, 飯不踰乎一固, 據而後興 扶垣而後行. 故約食爲甚難爲也. 然衆爲而靈王說之, 末踰於世, 而民可移也, 即求以鄕其上也. 昔者越王句踐好勇, 敎其士臣二年, 以其知爲未足以知之也, 焚舟失火, 敲而進之, 其士偃前列, 伏水火而死者不可勝數. 當此之時, 不鼓而退也. 越國之士可謂顫矣. 故焚身爲甚難爲也, 然衆爲而越王說之. 末踰於世, 而民可移也, 即求以鄕其上也. 昔者晋文公好苴服, 當文公之時, 晋國之士, 大布之衣, 䍧羊之裘, 且苴之屢, 人見文公, 出以踐之朝. 故苴服爲甚難爲也, 然衆爲而文公說之. 末踰於世, 而民可移也, 即求以鄕上也. 是故約食, 焚舟, 苴服, 此天下之至難爲也, 然衆爲而上說之, 末渝於世而民可移也, 何故也. 即求以鄕其上也. 今若夫兼相愛, 交相利, 此其有利且易爲也, 不可勝計也. 我以爲則無有上說之者而已矣. 苟有上說之者, 勤之以刑罰, 我以爲人之於就兼相愛, 交相利也, 譬揂火之就上, 水之就下也, 不可防止於天下.
아니면 그들은 어려워서 실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찍이 이보다 어려운 일도 실행한 사람들이 있다.
옛날 초나라 영왕은 가는 허리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영왕 때, 초나라 선비들은 밥을 하루 한 끼 밖에 먹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서야 일어날 수 있고 담장을 붙잡아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먹는 것을 절약한다는 것은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임금[楚靈王]이 기뻐하였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지 않고 백성의 습속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곧 사람들은 그 윗사람을 지향하여 추구하기 때문이다.
옛날 월왕 구천(句踐)은 용감한 것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의 신하들을 삼 년 동안 가르쳤으나 그들의 용기가 아직 흡족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알고자 배에 불을 질러 화재를 일으키고 북을 치며 전진을 명하니 군사들은 대열 앞에 넘어지며 물과 불에 쓸려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제서야 북을 그치고 후퇴시켰다. 월나라 군사들도 두려웠을 것이나 그처럼 몸을 태우는 어려운 일을 한 까닭은 그렇게 하는 것을 임금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아도 민심의 습속은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윗사람이 지향하는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또 옛날 진나라 문공은 거친 옷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문공시절에 진나라 선비들은 거친 베로 옷을 짓고 암 양가죽의 옷을 걸치고, 거친 비단의 모자를 쓰고 거친 신을 신고 들어와서는 왕을 알현하고 조회에 참석하였다. 그처럼 거친 옷차림은 어려운 일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진나라 임금인 문공이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은 바뀌지 않아도 사람의 습속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윗사람이 지향하는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먹는 것을 절제하고 몸을 불태우고 험한 옷을 입는 것은 천하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위에서 좋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은 바꿀 수 없어도 사람의 습속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람의 행동은 그들의 윗사람이 지향하는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 평등한 사랑과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뿐 아니라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을 기뻐하는 임금이 없었을 뿐이다. 진실로 임금이 그것을 좋아하고 상과 명예로 권면하고, 형벌로써 두렵게 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도리를 행할 것이다. 이것은 불이 위로 오르고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천하에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墨子 제16편 兼愛·下(9)
故兼者聖王之道也 王公大人之所以安也, 萬民衣食之所以足也.
평등은 성왕의 도리며, 왕공대인의 편안할 수 있는 수단이며, 백성의 의식주 등 경제생활을 충족하게 하는 도구이다.
(原文)
故兼者聖王之道也 王公大人之所以安也, 萬民衣食之所以足也. 故君子莫若審兼而務行之. 爲人君必惠, 爲人臣必臣, 爲人父必慈, 爲人子必孝, 爲人兄必友, 爲人弟必悌. 故君子若欲爲惠君, 忠臣, 慈父, 孝子, 友兄, 悌弟, 當若兼之不可不行也. 此聖王之道, 而萬民之大利也.
평등하게 아우르는 것[兼]은 성왕의 도리며, 왕공대인이 편안케되는 수단이며 백성의 의식주 등 경제생활을 충족하게 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평등하게 아우르는 것을 힘써 행하면, 임금은 반드시 은혜롭고, 신하는 충직하며, 어버이는 반드시 자애롭고, 자식은 반드시 효도하며, 형은 반드시 우애하고, 아우는 반드시 공손할 것이다.
군자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평등하게 아우르는 도를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왕의 도리며 백성에게는 큰 이익인 것이다.
▶️ 爲(할 위)는 ❶상형문자로 为(위), 為(위)는 통자(通字), 为(위)는 간자(簡字)이다.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양을 본떴다. 전(轉)하여 하다, 이루다, 만들다, 다스리다의 뜻으로 삼고 다시 전(轉)하여 남을 위하다, 나라를 위하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爲자는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爲자는 원숭이가 발톱을 쳐들고 할퀴려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爲자를 보면 본래는 코끼리와 손이 함께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코끼리를 조련시킨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爲자의 본래 의미는 '길들이다'였다. 하지만 후에 코끼리에게 무언가를 하게 시킨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을 하다'나 ~을 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爲(위)는 ①하다 ②위하다 ③다스리다 ④되다, 이루어지다 ⑤생각하다 ⑥삼다 ⑦배우다 ⑧가장(假裝)하다 ⑨속하다 ⑩있다 ⑪행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사(徙),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들 거(擧),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구를 전(轉)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를 위함을 위국(爲國),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 다른 것에 앞서 우선하는 일이라는 위선(爲先), 힘을 다함을 위력(爲力), 첫번을 삼아 시작함을 위시(爲始),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생업을 삼음 또는 사업을 경영함을 위업(爲業), 사람의 됨됨이를 위인(爲人), 정치를 행함을 위정(爲政), 주되는 것으로 삼는 것을 위주(爲主), 예정임 또는 작정임을 위계(爲計), 진실한 즐거움을 위락(爲樂), 어떤 것을 첫 자리나 으뜸으로 함을 위수(爲首), 기준으로 삼음을 위준(爲準), 나라를 위한 기도를 위축(爲祝), 부모를 위함을 위친(爲親), 자기를 이롭게 하려다가 도리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위총구작(爲叢驅雀), 치부致富하려면 자연히 어질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을 위부불인(爲富不仁), 바퀴도 되고 탄환도 된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대로 맡겨 둠을 이르는 말을 위륜위탄(爲輪爲彈), 겉으로는 그것을 위하는 체하면서 실상은 다른 것을 위함 곧 속과 겉이 다름을 일컫는 말을 위초비위조(爲楚非爲趙), 되거나 안 되거나 좌우 간 또는 하든지 아니 하든지를 일컫는 말을 위불위간(爲不爲間), 선을 행함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말을 위선최락(爲善最樂), 도마 위의 물고기가 된다는 뜻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어육(爲魚肉), 어떤 사람을 위해 벼슬자리를 새로이 마련함이나 남을 위해 정성껏 꾀함을 일컫는 말을 위인설관(爲人設官),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가난을 면하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위귀소소(爲鬼所笑),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을 전화위복(轉禍爲福),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에 따라 기질이 변한다는 말을 귤화위지(橘化爲枳),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인공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또는 그런 이상적인 경지를 일컫는 말을 무위자연(無爲自然),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는 뜻으로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진적위산(塵積爲山),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또는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무위도식(無爲徒食) 등에 쓰인다.
▶️ 彼(저 피)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皮(피; 원줄기에서 갈라지는 뜻)로 이루어졌다. 갈라진 길의 뜻으로 원줄기에서 갈라져 가는 데서, 먼 곳의 물건 또는 사람을 가리킨다. ❷회의문자로 彼자는 '저'나 '저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彼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皮(가죽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皮자는 동물의 생가죽을 벗겨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죽'이나 '겉'이라는 뜻이 있다. 彼자는 본래 '길 바깥쪽으로 걷다'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겉'이라는 뜻을 가진 皮자에 彳자를 결합해 '길 바깥쪽'이라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彼자는 '저'나 '저쪽', '그'와 같이 바깥쪽이라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彼(피)는 ①저 ②그 ③저쪽 ④덮다 ⑤아니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아(我), 이 차(此)이다. 용례로는 저것과 이것을 이르는 말을 피차(彼此), 저쪽이나 저편을 이르는 말을 피변(彼邊),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우리편을 피아(彼我), 저 사람을 이르는 말을 피인(彼人), 저 땅을 이르는 말을 피지(彼地), 저곳을 문어적으로 이르는 말을 피처(彼處), 소송 행위에서 당사자가 서로 상대편을 이르는 말을 피척(彼隻), 강의 건너편 기슭을 피안(彼岸), 저편과 이편의 사이를 이르는 말을 피차간(彼此間), 그와 나와의 사이를 이르는 말을 피아간(彼我間),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르다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저것은 옳고 이것은 그르다는 말을 피시차비(彼是此非), 저것이나 이것이나 마찬가지를 이르는 말을 피차일반(彼此一般), 이것이나 저것이나 또는 이러나 저러나를 이르는 말을 이차이피(以此以彼), 저기의 것을 걷어내어 이곳에 얽어 만듦을 이르는 말을 철피구차(撤彼搆此), 오늘 내일 하며 자꾸 기한을 늦춤을 이르는 말을 차일피일(此日彼日),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어쨌든 이라는 말을 어차어피(於此於彼),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말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자기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 동시에 남의 잘못을 욕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망담피단(罔談彼短) 등에 쓰인다.
▶️ 猶(오히려 유/원숭이 유, 움직일 요)는 ❶형성문자로 犹(유)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酋(유)로 이루어졌다. 원숭이의 일종으로 의심 많은 성질이 전(轉)하여, 의심, 망설임의 뜻이다. ❷형성문자로 猶자는 '오히려'나 '망설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猶자는 犬(개 견)자와 酋(묵은 술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酋자는 여기에서 '추, 유'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猶자는 본래 원숭이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猶자에 아직도 '원숭이'라는 뜻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와는 관계없이 '망설이다'나 '오히려'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어찌 보면 의심이 많은 원숭이의 특징이 반영된 글자라 생각된다. 그래서 猶(유, 요)는 ①오히려 ②가히 ③다만 ④이미 ⑤크게, 지나치게 ⑥~부터 ⑦그대로 ⑧마땅히 ⑨원숭이(구세계원숭잇과와 신세계원숭잇과의 총칭) ⑩태연(泰然)한 모양 ⑪허물 ⑫꾀하다 ⑬망설이다 ⑭머뭇거리다 ⑮말미암다 ⑯같다, 똑같다 ⑰그림을 그리다, 그리고 ⓐ움직이다(요) ⓑ흔들리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망설일 유(冘)이다. 용례로는 조카딸이나 형제자매의 딸을 유녀(猶女), 형제의 자손을 유손(猶孫), 조카나 편지에서 나이 많은 삼촌에게 자기를 일컫는 말을 유자(猶子),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을 유예(猶豫), 아버지의 형제를 유부(猶父), 아직도 모자람을 유부족(猶不足), 물고기와 물과의 관계처럼 임금과 신하 또는 부부 사이가 친밀함을 이르는 말을 유어유수(猶魚有水), 오히려 모자람 또는 싫증이 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유위부족(猶爲不足), 아니함보다는 나음을 일컫는 말을 유현호이(猶賢乎已), 조카들도 자기의 아이들과 같이 취급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유자비아(猶子比兒), 물건을 얻었으나 쓸모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획석전(猶獲石田), 두려워 할 바 못 됨을 이르는 말을 유공불급(猶恐不及), 다른 것보다는 오히려 훨씬 쉬운 편으로 앞으로 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속헐후(猶屬歇后), 아버지 같고 자식 같다는 뜻으로 삼촌과 조카 사이를 일컫는 말을 유부유자(猶父猶子),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을 과유불급(過猶不及), 위급한 경우에는 짐승일지라도 적을 향해 싸우려 덤빈다는 뜻으로 곧 궁지에 빠지면 약한 자가 도리어 강한 자를 해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곤수유투(困獸猶鬪), 들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는 뜻으로 들은 말을 귓속에 담아 두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언유재이(言猶在耳) 등에 쓰인다.
▶️ 己(몸 기)는 ❶상형문자이나 지사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래 구불거리는 긴 끈의 모양을 본떴고, 굽은 것을 바로잡는 모양에서 일으키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일으키다의 뜻은 나중에 起(기)로 쓰고, 己(기)는 천간(天干)의 여섯번째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己자는 '몸'이나 '자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몸'이란 '나 자신'을 뜻한다. 己자의 유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사람이 몸을 구부린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굽의 있는 새끼줄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己자와 결합한 글자를 보면 새끼줄이 구부러져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다만 己자가 단독으로 쓰일 때는 여전히 '나 자신'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己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상용한자에서는 뜻과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새끼줄이나 구부러진 모양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니 상황에 따른 적절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己(기)는 ①몸 ②자기(自己), 자아(自我) ③여섯째 천간(天干) ④사욕(私慾) ⑤어조사(語助辭) ⑥다스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여섯 번째를 기사(己巳), 열여섯째를 기묘(己卯), 스물여섯째를 기축(己丑), 서른여섯째를 기해(己亥), 마흔여섯째 기유(己酉), 쉰여섯째를 기미(己未)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물건을 기물(己物), 자기 마음을 기심(己心), 자기가 낳은 자녀를 기출(己出), 자신의 의견이나 소견을 기견(己見), 자신의 초상을 기상(己喪), 자기의 소유를 기유(己有), 자기의 물건은 기물(己物), 제 몸이나 제 자신 또는 막연하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자기(自己), 자기 이익만 꾀함을 이기(利己), 자신의 몸을 닦음을 수기(修己), 안색을 바로잡아 엄정히 함 또는 자기자신을 다스림을 율기(律己), 자기 몸을 깨끗이 함을 결기(潔己), 몸을 가지거나 행동하는 일을 행기(行己), 신분이나 지위가 자기와 같음을 유기(類己), 자기를 사랑함을 애기(愛己), 자기 한 몸을 일기(一己), 자기에게 필요함 또는 그 일을 절기(切己), 자기가 굶주리고 자기가 물에 빠진 듯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일컫는 말을 기기기익(己飢己溺), 중종때 남곤 일파 조광조 등을 쫓아내어 죽인 사건을 일컫는 말을 기묘사화(己卯士禍), 기미년 3월1일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한국의 독립운동을 일컫는 말을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봄을 일컫는 말을 자기관찰(自己觀察), 모든 사고와 판단과 행동을 자기 중심으로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기본위(自己本位), 자기의 이해와 쾌락과 주장을 중심으로 삼고 남의 처지를 돌보지 않는 주의를 일컫는 말을 애기주의(愛己主義), 자기 존재를 인정 받으려고 남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심리적 경향을 일컫는 말을 자기과시(自己誇示), 스스로에게 황홀하게 빠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자기도취(自己陶醉), 자신의 생활은 검약하게 하고 남을 대접함에는 풍족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약기유물(約己裕物)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