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왜 사느냐고 묻거든 - 살기 위해 행복하지요
우리는 한때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이런 우스갯소리들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농사일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생업의 일들로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는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제때 식사는 챙겨 먹어야지' 라는 말로 충고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끼 식사를 놓치면 평생 찾아먹지 못한다'는 말로, 마치 먹고사는 일이 삶의 목표나 되는 것처럼 강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먹는 일에 너무 강조하는 말들을 듣다 보면 사람이 식충이도 아닐진대 저렇게 먹는 문제로 떠들어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아무튼 인간이 식충이든 말든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고 또 세상이 시끄러운 것도 각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밥그릇 싸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도 생겨났을까 싶게 지금은 거대 나라의 지도자들까지도 노골적인 밥그릇 싸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아무튼 인간들은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일을 위해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각자가 누려야 할 모든 행복권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역설적인 현상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인간들은 먹고살기 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업이란 이름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먹는 일은 뒷전이 되고 일을 위해서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실 시간도 없고 잘 시간도 없다면 인간이 마치 일을 위해 태어난 살아 있는 로보트요 스스로가 일의 노예가 되어 일의 명령으로 일 앞에서 절대복종해야 하는 뮌가가 주종이 뒤바뀐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五慾오욕이란 본능이 있다. 식욕, 색욕, 수면욕, 소유욕, 명예욕의 5욕이다. 배고플 매 먹고 싶은 것이 식욕이요. 외로울 때 친구가 필요함이 색욕이요. 졸리고 피곤할 때 쉬고 싶은 것이 수면욕이요. 행복을 위해 갖고 싶은 것이 소유욕이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명예욕이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5욕을 설명할 때 색욕을 단순하게 성적인 욕구만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성에 대한 성적 욕구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우정과 사랑이 더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성적 불만족은 견딜 수 있어도 고독과 외로움은 더 견디기 힘든 아픔이 된다. 5욕의 소유욕을 재물욕으로 표현하지만 인간이 반드시 재물만을 탐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우정, 사랑, 취미, 일들에 대한 소유욕이 더 중요하단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대 인류들은 과거 인류와 달리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설명함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행복을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그 행복의 쟁취를 위해서 많은 행복들이 손상되고 행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불행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설명을 듣다 보면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핑게도 역설이요,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핑게도 역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살기위해 행복을 추구한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려고 열심히 노력한다지만 살기 위해 행복해야 한다. 사람은 생존의 본능으로 5욕을 추구한다. 사람의 5욕이란 짐승의 에고이즘과 결탁하면 추악한 탐욕이 되지만 이성과 결탁한 이성적 5욕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항이 된다. 보편적으로 이성적 5욕의 만족을 행복이라 한다.
살기 위해 살아야 하는 인생은 살기 위해 5욕의 충족이 필요하고, 5욕의 충족을 통해 행복을 축하하며, 행복을 추구함으로 인하여 살기 위해 살아감이 된다. 곧 인생이란 행복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이 필요하다. 인간은 살기 위해 살고 생존을 위해서 행복이 필요하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불행이라고 하며 불행한 삶은 살아가는 자체가 지옥이 된다. 인간은 불행이란 이름으로 존재함 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그 생명이 생명의 가치를 향유하며 살아갈 행복이란 이름의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 흔히들 생명이란 그 존재할 자체로서 존귀하다고 하지만 그래서 병상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에게 그 맹목적 생명유지가 필요한가, 어떤가 생명윤리 법을 따져 의견이 분분하지만 불행하고 괴로운 삶까지도 존귀한 생명의 이름을 붙이는 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아닌 모독일 수있다. 인생은 살기 위해 살아감이 정답이지만 살기 위해 행복함이 필수다. 결국 인생이란 목표는 '행복한 삶'이다.
살아가는가? 그렇다면 행복 하라.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행복 하라. 한은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오히려 가장 높다고 한다. 그 가난함이 행복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이루지 못할 높은 행복의 가치를 포기한 마음들의 자아 격려 현상일 것이다. 마음 하나 내려놓으니 근심도 덜어지더라는 욕심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행복지수일 것이다. 만약에 가난하고 찌든 삶 속에서 마음 하나 비워 놓을 수 없는 불만족과 불만의 연속된 삶이라면 살아감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불가능한 성취욕을 포기하고 마음을 내려놓아 물질지수로 불가능한 행복지수를 높이며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살아갈 것이다.
행복은 누구나 추구할 권리가 있고 가난한 자의 행복지수와 부유한 자의 행복지수가 다르지도 않으며 극한 상황의 고된 삶 속에서도 인간은 생존권의 차원에서 행복권이 보장된다. 그만큼 행복권은 생존권에 앞서 소중하며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자들은 누구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행복 가치를 발굴하여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내가 관계하고 있는 인연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내가 가담하고 있는 조직의 생태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래도 그것을 추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는 아프지만,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미래에 다가올 행복을 위해 참고 견딘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지 않는가. 희망이 곧 행복의 씨앗이다. 희망의 불씨는 꿈이다 현재는 힘들고 어렵지만 미래에 다가올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희망이 있다면 가난과 배고품과 힘든 상황들이 행복이다. 그 행복의 잔을 마실 때 삶의 에너지가 충전된다. 그러므로 희망을 생존의 불씨라 한다. 어렵고 험난한 백척간두 상황에서 당장에라도 손을 털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다가올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꿈이며 희망이다. 그 꿈과 희망으로 인하여 스스로 위로받으며 행복이란 온기를 가슴에 품게 된다. 어떤 어려움과 아픔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미래에 다가올 성공을 기다리며 참고 기다리는 삶, 그래서 얼마든지 견디고 참을 수 있는 희망이란 결코 불행이 아니라 행복인 것이다. 진정한 고통과 불행이란 미래를 기다리는 희망이 없고 절망적인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것도 없는 캄캄하고 절망적인 삶에 처한 상황을 불행이라 한다면 과연 그 캄캄한 절망 속에서 진정으로 건저 올릴 수 있는 희망의 불씨는 전무할 것인가? 살기 위해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 실의와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이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결단력에서 시작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길이 열리기 마련인데 완전한 절망이란 완전한 포기로부터 시작된다. 완전히 포기한 자에게는 주변의 어떤 도움도 무용지물이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가르침이 진리다. 진짜 위대한 영웅이란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은 자이다. 희망만 손에 쥐고 있으면 어떤 불행, 어떤 고통이라도 참고 견딜 수 있으며 어둠 속에서도 방황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기뿔 때만 웃지 말고 슬플 때도 웃어보라. 남을 위해 슬픔을 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지탱할 힘을 주기 위해 일부러라도 담담하고 그 일굴의 미소를 잃지 말아라. 불행한 삶도 억울하기 마련인데 불행한 삶을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억울하다. 현실은 좀 불행하더라도 마음은 불행하게 살지 말자. 현실은 행복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행복하게 살자. 어차피 한 번 온 인생이다. 한 번 온 인생인데 스스로 불행한 인생을 만들지 말자.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건, 현실의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다. 남보다 덜 가져서 행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많이 가질 수 없어 불행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행복은 마음으로 찾는 것이지 물질로 찾는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자신의 삶을 살펴보면 불행한 조건보다 행복한 조건이 더 많다 우리의 삶은 마음을 어떻게 가질 것이냐에 따라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행복하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느끼는 마음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느끼는 마음이다. 삶의 의미를 느낄 때 살아있는 목숨이다.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 살아 있으나 의미 없는 목숨이다. 흔히들 가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이야기할 때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 한다.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존재들은 무엇이나 쓸모가 있어 태어났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찾아보면 요긴하게 쓸모가 있다 . 스스로 쓸모없다고 비관하니까 쓸 데를 발견하지 못한다. 못 배워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나이 들어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가진 것 없어 못한다고 하지 말고 몸이 약하고 불구라서 못한다고 하지 말라 쓸모없는 자신을 남들이 먼저 다가와 써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쓸모 있는 일을 찾아 쓸모 있게 살아가라. 스스로 쓸모 있다고 느껴지면 잃어비린 행복을 찾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아무 가치 없이 세월만 낭비하는 건 살아 있으나 식물인간에 지나지 않다. 살아가는 가치를 발휘할 때 인생은 행복하다. 살기를 각오하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살기를 각오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살고 싶거든 행복하라 행복은 숨겨져 있는 보물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 모는 행복이란 화려한 모습도 아니고 행복의 가치만큼 대단한 모습으로 꾸며있지 않다. 사람들은 행복이란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대단한 것들을 대상으로 행복을 찾으니까 행복의 파랑새를 잡지 못한다.
너무 평범하고 어디서나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장소의 소박함이 행복이다. 거창한 행복은 수명이 짧고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소박한 행복일수록 수명이 길고 지루하지 않다. 새것이라고 좋아했는데 나중엔 헌 것 되고 최고라고 뽐내는 것도 나중엔 고물 된다. 소박한 것들은 언제나 소박하고 그 소박한 행복이 오래오래 귀하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 소박한 행복을 살자.
마음의 향기香氣를 찾아서 2권 중
도선당 저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