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29) - 꿈결 같은 세월, 엄혹한 세상
어제(11월 7일)는 입동(立冬),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날씨가 겨울이 턱밑에 다가왔음을 일깬다. 지인이 보내온 메시지, 점점 쌀쌀해져가는 나날 ~~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건강한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러하소서!
주초, 오랜만에 고향(전라북도 고창)을 찾아 중학교 동창들과 오붓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금년으로 졸업 65년, 풋풋한 소년들이 어느덧 8순을 훌쩍 넘긴 황혼에 접어들었다. 참석자는 15명, 서울을 비롯한 원거리거주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읍내에서 점심을 들고 숙소(고향의 명찰 선운사 경내)에 여장을 푼 후 산사를 한 바퀴 돌아보는 발걸음이 가볍다. 초등학교 소풍 길에 처음 찾은 선운사는 틈 날 때마다 자주 찾는 고찰, 지난봄에도 가족행사로 1박하는 등 언제 들러도 정겨운 곳이다. 전설이 서린 도솔암을 찾으니 마애석불 앞에 새로 지은 미륵전이 완공상태, 태고의 자연 앞에 바짝 붙은 구조물이 낯설다. 사연 깃든 장사송도 살핀 후 역사가 깊은 대웅전 뜰에 들어서니 가끔 차 한 잔 나누던 만세루(조선시대에 건립한 대규모 누각)의 보수공사가 한 창이다. 전면보수중인 외벽에 새긴 선운사(禪雲寺)의 유래,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선운사를 수십 차례 지나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새기기는 처음, 비행 중 공중에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를 살피며 운평선(雲平線)이라 나 홀로 명명한 구름예찬의 감흥이 반가워라.
전설이 깃든 도솔암을 찾아서
선운사 일대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잡히는 풍천장어의 명산지, 그러나 전통의 풍천장어는 사라지고 먼 바다에서 채취한 치어들을 대량으로 양식하는 형태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곳곳에 풍천장어 이름이 남아 있다. 대신 선택한 메뉴는 싱싱한 생선매운탕, 저녁식사 후 숙소근처 노래방에 들러 한 시간여 여흥을 즐기는 노익장의 열정이 아름다워라. 늦은 시간까지 정담을 나눈 후 취침, 한창 떠오르던 소년일 때 한 방에서 자취하던 동무와 황혼녘에 같이 한 잠자리가 뜻깊어라. 인생사 한낱 꿈결인가!
다음날 오전, 사찰 주변의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각기 용무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일행 중 일가친척인 초등학교 동창들과 새만금간척지 탐방, 부안에 사는 초등학교 여성동창이 안내역을 자임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새만금 일원의 풍광이 빼어난 경승이라, 오랜만에 동창들과 함께 한 고향나들이가 이래저래 화려한 외출이로다. 몸은 점점 굳어지는데 마음은 꺼질 줄 모르는 불꽃이런가. 노익장의 동무들이여, 남은 때 더욱 건승하시라.
새만금의 정자항에서
꿈결 같은 고향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살피니 여러 달 동안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했던 미국대통령선거가 트럼프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나고 예의주시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국민설득에 한참 못 미치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한 언론이 사설로 다룬 미국대선 평가 한 대목,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결정적 원인은 고물가로 인한 경제난이 꼽힌다. 함께 이슈가 된 불법이민문제도 결국 미국서민층의 일자리와 직결된 경제 사안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밥상, 외식물가는 2~3년 전보다 수십 %씩 올랐다. 어느 나라든 먹고사는 문제가 최상의 가치이고, 민심의 흐름까지 좌우한다.
신문의 만평으로 살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반응
트럼프는 다루기 힘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그럼에도 그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과 결정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명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됨을 주시하고 위정자는 물론 온 국민이 이에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리라. 찾아보면 트럼프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친한 인사나 한국의 숨은 일꾼들도 있을 터, 갈라진 국론이나 여야대립을 뒤로하고 우리 앞에 펼쳐진 미증유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안목과 역량을 갖추자.
대선에서 승리한 후 모습을 드러낸 트럼프 부부
* 미국의 이번 선거는 정부통령은 물론 상원의 일부, 하원 전체를 새롭게 뽑는 선거로 트럼프의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에서도 다수의석을 차지하여 주요정책결정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가뭄 속의 단비 같은 희소식 하나, 이민 2세로 한국계 최초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의 사연을 살펴보자.
‘한국계 최초로 美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대선 후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상이 높다. 주별로 2명씩 총 100명으로 하원의원(435명)보다 숫자는 적은 반면 임기는 3배인 6년이다. 이 중 백인이 80여 명, 아시아계는 현재 일본계(하와이)와 태국계(일리노이) 여성 의원 2명이 있다. 5일 한국계 앤디 김 민주당 하원의원(42)이 당선되면서 아시아계가 3명으로 늘었다. 아시아계로는 동부지역 최초 상원의원이고, 120여 년 한국 재미교포 역사상 첫 상원의원이다.
이민 2세대인 앤디 김은 외교 분야 전문가다. 시카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 국무부에서 이라크 전문가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버락 오바마 정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지냈다. 2018년 뉴저지주 제3선거구에서 공화당 현역 의원을 꺾고 첫 아시아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했다. 하원의원으로서 78만 지역구 주민을 대표하던 그는 이제 상원의원으로서 900만 뉴저지 주민을 대표하게 됐다. 뉴저지주 토박이인 그는 우리 가족에게 기회를 준 뉴저지와 미국을 위해 일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기득권에 도전하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취임하면 세 번째로 젊은 상원의원이 된다.
소아마비 환자로 한국 보육원에서 자란 그의 부친은 국비 장학생이 돼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에서 유학하고 암과 알츠하이머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 누나는 역사학자로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다. 앤디 김은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관여하도록 돕고 싶다면서도 한국계뿐만 아니라 미국인을 대표하는 리더가 되겠다고 했다. 이민자 가족의 대를 잇는 성공 스토리는 대선 한 번 치르려면 감시 드론 띄우고 저격수 배치해야 할 정도로 불안해진 미국의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2024. 11. 7 동아일보 횡설수설, ‘한국계 최초로 美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