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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편 1-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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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은 모세와 더불어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입니다. 다윗왕은 위대한 군주의 표상이었고, 구원자를 탄생시킬 왕의 계보를 이을 중심인물이 되었지만, 그는 일평생 하나님 앞에 두 가지 큰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국방이 튼튼해지고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소위 아주 잘 나갈 때, 자신의 부하 장수인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일입니다. 불륜으로 인한 치정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통치 말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인구조사를 감행한 탓에, 3일 동안 전염병이 창궐하여 무려 7만 명이나 목숨을 잃은 일입니다.
오늘 시편 51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부정한 일을 저지른 후에,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로 왔을 때, 진실로 참회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죄를 철저하게 시인하고, 죄를 도말(塗抹, 칠하여 지워 없애거나 위에 덧발라서 가림)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심령의 갱신과 회복을 호소하며 간구합니다. 용서와 회복을 해주시면, 하나님앞에 올바른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겠다는 서원도 합니다. 다윗이 참회하며 간구하는 내용은 진심이었고,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하는 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은 동일한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형태의 죄악들을 행하고 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고백하고 돌이키면 편안해 지고, 부끄러움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숨기고, 거짓말하고, 버티다가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찾으시는 것은 죄인의 상태를 용납해서가 아닙니다. 회개할 것을 촉구 하시며, 회개 후의 변화된 모습을 보시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영혼이 가장 아름답고, 회개하는 현장이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스펄전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No coming to Heaven with dry eyes, 메마른 눈으로 천국에 들어올 자는 아무도 없다” 회개하지 않고는 죄 문제 해결 안 됩니다. 천국에 입성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가 부어지고, 거룩하고 정결한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다윗이, 어떻게 회개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진실성에 기초 합니다. 정말 자신이 지은 죄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강요가 아닌, 자진하는 마음에서 회개해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이 있는가?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진실로 참회 하는지, 마지못해 거짓으로 흉내만 내는 참회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진실한 회개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회개를 받아 주시고, 용서하시고, 씻어주시는 참회를 드려야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는 혼자만의 셀프 회개는 백번을 드려도 쓸모없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내용은 1-9절 까지 입니다. 죄 고백의 중심 내용은 3-4절입니다. “내가 나의 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이 보는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다윗은 부끄럽지만 진실 되고 거짓이 없이 자신이 지은 죄의 내용을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시인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이 죄 고백의 앞과 뒤에 “죄를 씻어 주옵소서”라는 간구를 반복합니다. 2절에,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라고 한 후에, 6절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나를 씻어 주소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 죄의 모든 내용을 낱낱이 드러나게 한 후에, 깨끗하게 씻어 달라는 간구를 끊임없이 드리는 것이 진정한 참회의 방법입니다.
참회하는 자리에서조차 죄를 시인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인과 인정은 더럽고 불결하고 부끄러운 죄악을 자신의 입술로 끄집어내는 일입니다. 본인이 죄를 지었지만, 자신이 한 일을 낱낱이 드러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 사람을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저런 죄를,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행했던 것을 인정 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죄의 고백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진심이 통하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실 것인지, 좀 더 지켜볼 것인지를 결정하실 겁니다.
다윗이, 씻어 달라는 간구를 계속 반복적으로 한 것은, 하나님의 권세로 죄를 씻어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입니다. “죄 고백했으니, 하나님이 당연히 용서해 주시고, 죄를 씻어 주시겠지, 덮어 주시겠지”, 이렇게 앞서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죄 사함의 권세를 자기스스로 판단해 버리는 매우 불경한 일입니다. 1절에서 보듯이, 은혜와 긍휼하심이 아니면 우리의 죄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하노라, 다시는 범죄 하지 말라”라는 음성이 들려질 때까지 오직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죄를 씻어 달라는 간구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진실한 회개는 주님이 다 용서 하십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 동안 겸비함으로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를 결정하시면 죄 문제는 단 번에 해결되고, 찌꺼기 하나 남김없이 다 덮어져 버립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말씀 하셨습니다. 다윗과 같은 음란과, 음행의 범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하여도,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참회와 용서를 구한 다윗과 같이, 즉시 시인하고, 거짓 없이 다 인정하고, 새롭게 씻김 받기를 간구하는 사람이 천국 문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삶이 건강한 신앙 체질을 만듭니다. 돌이키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죄를 쌓아 놓으면 한꺼번에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일주일만 지나도 기억에서 지워져 버려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조차 모릅니다.
매일 매일 하루의 삶을 끝내시고, 주무시기 전에, 반드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습관화 하십시오. 잠들기 전에 항상 나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하루 동안 지었던 죄들을 전부 말해 준다는 부담감을 가지십시오. 회개하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는 문구도 베게 맡에 붙여 놓아 보십시오. 제대로 회개하고, 깨끗하게 씻김 받아서, 우리가 지은 수많은 죄악을, 주님이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다윗은, 회개하면서 무엇을 간구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감시자를 보내 주셨는데, 그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우리 육체의 정욕을 억제 시키고, 우리의 자아를 교만하지 않게 잡아 주셔서, 죄의 유혹을 이겨내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성령의 도우심, 지켜 주심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순간적인 음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죄를 범한 것은, 감시자인 성령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시인하고, 인정하여 씻김을 받았으면, 이제 죄에 허물어졌던 심령의 갱신, 심령의 회복을 구해야 합니다.
10-12절은 다윗이 죄의 고백 후에 심령의 갱신과 회복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세 절 모두 아름다운 기도문이 되기에, 암송하셔도 좋습니다. 기도하실 때 이 구절들을 사용하시면, 성령을 구하는 자연스러운 기도문이 됩니다. 다윗이 심령의 갱신과 회복을 구하는 이 기도문의 공통점이,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채워 달라는 간구입니다. 10절에, “정직한 영”, 11절에, “주의 성령”, 12절에, “자원하는 심령(표준 새번역, 너그러운 영)”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이 성령의 소멸, 성령의 부재함 속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특히, 12절에, “주의 성령을 내게 거두지 마소서”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옵소서”라는 간절함을 드러냅니다. 성령이 떠나게 되면, 성령이 나에게 관심을 끄게 되면, 왕이라고 하여도,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 없는 인생은 그저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불쌍한 영혼에 불과 합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버려진 자들입니다. 신학적으로 ‘유기된 자들’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은 ‘택함 받은 자들’의 반대 부류로 취급합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다’는 표현이 세 번이나(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고,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시고, 타락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시고) 나옵니다. 영적인 무감각 속에서 죄를 탐하는 자들을 육체의 정욕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예전에 프랑스의 한 여배우가 한국의 개고기 식용문화를 미개하다고 비판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여배우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개고기를 식용으로 즐기는 중국에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우리나라에만 트집을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여배우의 나라 프랑스는 매년 휴가철만 되면 수 만 마리의 유기견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한 달 이상 휴가기간이 길다보니 애완견을 돌봐줄 사람이 없자, 밖에 몰래 내다 버립니다. 버려진 유기견들은 사진을 찍어서 1~2주일 동안 공고를 한 후에, 주인의 연락이 없으면 안락사 시킵니다. 버려진 죽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다윗이,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간구한 것이 얼마나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인지 짐작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너희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6:16),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말씀을 기억해 보면, 성령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성령이 없으면, 죄의 반복을 행하다가, 버려지게 되고, 육체로 마치는 불행한 코스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을 네게 거두지 마소서” 오늘 설교 제목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핵심 내용입니다.
여러분, 적당히 죄 짓고 살고 싶으신 분 없으시죠? 하나님의 눈 밖에 나서 버려지는 일을 당하고 싶지 않으시죠? 힘들고 지칠 때 위로 받고 싶으시죠?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 받고 싶으시죠? 험한 일을 당할 때 보호를 받고 싶으시죠? 견딜 수 없는 죄의 유혹을 끊어내고 싶으시죠? 경쟁과 성공과 돈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으시죠? 기도하기만 하면, 팍팍 응답 받는 기쁨을 누리고 싶으시죠?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고 싶으시죠? 이 모든 상황의 해결 자가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행하시기 위해 우리 심령에 친히 찾아 오셔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윗과 같이 심령의 갱신과 회복을 위해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입니다. 00교회도, 00교회 모든 성도도 정말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할 때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여러분, 성령을 소멸하지 마시고, 성령을 외면하지 마시고, 마음 중심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다윗은, 회개한 후에 무엇을 서원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은 회개와 심령의 회복을 구한 후에, 죄 사함의 은혜를 내려 주신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범죄자들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겠습니다”, “피 흘려 구원해 해 주신 주님의 의를 노래 하겠습니다”, “주를 찬양하며 전파하겠습니다”, “주께서 바라시는 제서(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온전한 제물을 제단에 드리겠습니다” 얼핏 보기에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원을 합니다. 다윗은 이 많은 서원을 그냥 쏟아 내듯이,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모든 서원을 지키는 것을 일생의 신념으로 살고,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비록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 앞에 두 번의 큰 범죄를 저질렀지만, 눈물로 회개하고, 성령으로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 드려진 서원들을 착실하게 지켜 감으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윗 보다 강하거나 정직하다고 자부하지 못합니다. 오늘 다짐하고도 내일 다시 넘어지고 범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연약함입니다. 다윗의 회개를 본보기로 삼아서, 우리가 진실하게 회개하면 다시는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며, 온전히 회복시켜 주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온전한 제물(신약에서는 연보)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며 살아가는데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강력한 능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회개와 성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화를 하나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영국 시인 토마스 무어(Thomas Moor)가 지은, 『낙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벌을 받고 세상으로 쫓겨난 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 과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것을 찾아서, 그걸 들고 낙원 입구에서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천사는 시장 바닥과 골목 등을 누비며 이것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따스한 봄날 아침,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동네 입구에 세워진 지계표(地界標, boundary stone) 위에서 한 아낙네가 칭얼대는 아이를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생각 했습니다. “아가페 사랑의 그림자로 일컬어지는 모성애가 듬뿍 깃든 저 젖 한 방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지” 천사는 아낙에게서 젖 한 방울을 얻어 낙원 문에 다다랐지만, 문지기에게 거절당했습니다.
낙심 속에서 또 다시 방랑길에 오른 천사는 어느 무더운 여름 한 낮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한 전쟁터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생각 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초개 같이 사르는 애국지사, 그가 흘린 마지막 피 한방이야 말로 가장 존귀할거야” 죽어가는 병사의 몸에서 식어가는 피 한울을 조심스럽게 찍어 낙원 문에 도달 했으나, 대답은 역시 “아니오”였습니다.
실망을 안고 또 한 번 여행길에 오른 천사는 어느 겨울 저녁 날 산등성이에 있는 조그만 시골교회를 들르게 되었습니다. 주일도, 수요일도 아닌 평일 저녁, 약한 불빛 사이로 새어나오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천사는 깨달았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어머니의 젖과 애국지사가 흘린 피는 이 세상에서는 더 없이 귀한 것이지만 노인의 참회하는 눈물 한 방울이야말로 낙원에서 가장 귀한 것이지!” 천사는 참회하는 노인의 눈물 한 방울을 들고 가서 비로소 낙원으로 들어가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죄 때문에 목숨까지 내 놓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천국 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참회의 눈물을 바탕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죄와 싸워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죄 문제를 담판 짓지 못하면 구원의 은혜도 바랄 수 없습니다. 다윗이 흘린 참회의 눈물, 그리고 시골 교회에서 남 몰래 흘리는 무명 노인의 참회의 눈물을 기억 하십시오. 참회하고, 또 참회 하면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주지 마소서” 심령의 회복을 간구하는 간절함 속에서, 거룩하고 정결한 행실로, 마지막 날 주님 앞에 흠 없는 자로 당당하게 서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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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죄인 된 우리가 진실로 참회하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죄를 진실 되게 고백하게 하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간구하며, 성령 충만을 받아, 천국 가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깨끗게 씻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