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4: 7 여호와의 아시는 날 ( 2 ) - 슥 14: 8 생 수 ( 1 )
② 노아의 때와 같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하심도 노아의 때와 방불하여 홍수의 심판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도 홍수가 나서 저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이처럼 예수의 재림 시에도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져 교회의 문이 닫히고 불의 심판이 나타나는 그 최후의 순간까지 깨닫지 못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이 천년만년 갈 줄 알고 평안하다 생각하여 세상의 일만 경영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종말은 없다고 믿고 있으며, 육체적 향락에서 만족을 찾고 있다.
노아 시대보다 더 타락해 가고 있다. 성도들은 이 세대에 물들지 말고 노아처럼 의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③ 도둑같이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시기 때문이다.
만일 도둑이 언제쯤 침입할지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깨어 있어 방비하고 있기에 도둑이 그 집을 뚫지 못하는 것처럼 항상 주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면 생각지 않은 때에 주께서 오실지라도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다.
마치 충성되고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예수께서 승천하시며 부탁하신 성도들을 맡아 때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경건한 종이 있다면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복이 있다고 하셨다.
주께서는 그러한 종들에게 천국의 모든 직무를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반대로 사악하고 사특한 종과도 같아서 주의 재림이 더딜 것이라 짐작하고 동역자들을 오해하고 비속한 종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타락한 생활을 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께서 재림하사 징벌하시고 바리새인들과 같은 위선자들이 받는 형벌대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여기 '생각지 않은 때에'는 '상상하지 않은 때에'로서 안일과 방탕에 빠져 있는 순간의 만족이 깨어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 대망의 신앙을 간직하여야 한다.
* 딤후 4: 8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빛의 갑옷을 입고, 술취하지 않고 방탕하지 않아야 한다.
* 롬 13: 12-14 –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④ 한 사람은 버려두고 한 사람은 데려가기 때문이다.
재림의 그날에 두 사람이 밭에서 함께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
두 여자가 밭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노아처럼 준비하는 사람은 구원받고 예비치 않은 사람은 심판받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주의 재림 때에 구원을 받을 자들도 있고, 구원받지 못할 자들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성도들과 불신자들이 육신의 사업에 있어서는 함께 활동한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가 이 세상의 육신의 사업을 하는 중에 주님의 재림이 있으니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범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비하라고 경계하셨다.
그러므로 준비되지 않고 깨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주의 재림이 멸망의 그날이 되지만 준비한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은혜의 날이 될 것이다.
(3)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전통 사본에는 '아들도'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마가복음 본문엔 전통 사본에도 이 말이 들어 있다.
어떤 이들은 '아들도 모른다.'는 말은 재림의 시간을 알리는 것이 아들이 전달하라고 받은 내용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달하라고 무엇을 받지 못했다는 말과 무엇을 모른다는 말은 확실히 서로 다르다. 오히려 우리는 크리소스톰이나 칼뱅과 같이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으로는 전지(全知)하시지만, 인성으로는 지식에 제한성을 가지신다.
그가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신다는 것도 그 제한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아버지의 뜻은 주의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 행 1: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만일 2천 년 전에 재림의 시간을 2천년 후라고 알려주셨더라면, 많은 성도가 해이해지거나 혹은 낙망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비밀은 오히려 성도들에게 유익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 날이 확실히 오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2]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함은 황혼 빛 곧 희미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이 불안정의 시기, 환난의 때를 상징한다.
이와 같은 시기가 있다가 그 끝에 구원이 임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고 한다(Calvin).
그러므로 신자들은 어려울 때에 낙심할 필요가 없다. 어두워지려 할 때에 바로 빛이 오리라는 하나님의 미쁘신 약속이 있지 않은가!
슥 14: 8 생 수 -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
생수가 예루살렘 성에서 솟아날 것이라는 예언은 하나님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구원 운동, 생명 운동을 가리킨다고 본다.
1]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1) 생수
"생수"라는 말은 성령을 상징한다.
물은 깨끗케 함과 해갈시켜 주는 두 가지 역할을 함과 같이 성령도 그리하신다(Calvin).
이렇게 성령으로 사람들을 살리는 역사에 대하여는, 구약이 많이 예언하고 있다
* 사 44: 3 –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 겔 36: 25 -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 예루살렘
생명 운동, 구원 운동은 예루살렘 성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에스겔 47장에 기록된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성전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온 땅에 넘치는 강물이 된 환상과 같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 눅 24: 47 - 또 그의[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3) 동해와 서해
"동해"는 '바사해'를 말하고, "서해"는 '지중해'를 말한다고 하나 생수가 멀리 또는 대량으로 흐르리라 함은 신약시대와 주님의 재림 시에 성령의 은혜가 풍성할 것을 가리킨다.
그 쏟아난 생수의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며, 동해는 염해와 동양 전체를 가리키고, 서해는 지중해와 서양 전체를 가리킨 것 같다.
즉 이 말씀은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