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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자극은 선택할 수 없다
인생은 끝없는 대인관계의 연속이며 대인관계는 늘 가해 오는 자극이 있다. 즉, 남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언행이 자극이다. 그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살 것인가 그것이 바로 자아의 인간 됨을 결정한다. 자극은 외적인 현상이고 반응은 내적인 현상이다. 자극은 외부의 현상이고 반응은 내부의 현상이다. 자극은 자기에 대한 타인의 결정이고 반응은 타인에 대한 자기의 결정이다. 죄를 죄로 갚는 건 똑같은 죄악이다. 인간들은 살아서 활동하는 동안 사람들과의 끝없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또한 끝없는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 인생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극이다. 곧 사람은 끝없이 타인들로 인한 외부의 자극을 받는다. 사람들이 주는 외부의 자극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이 외부의 자극은 선량한 자극도 있고 외부의 자극은 불량한 자극도 있다. 외부의 자극은 기분 좋은 자극도 있고 외부의 자극은 기분 나쁜 자극도 있다.
자극을 받으면 반드시 반응하는 것이 사람이다. 외부의 자극은 타인이 자신에게 전달해주고 자신의 반응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 앞에 어떤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 선업이 되기도 하고 악업이 되기도 한다. 상대가 나에게 악업을 지은 것도 아닌데 내가 반응을 잘못해서 악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지나가다 누군가에게 발을 밟힐 경우가 있다. 상대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실수였는데 그 실수에 반응하는 나의 언행이 나쁘면 악업이 된다. 반대로 시장통에서 어느 술주정뱅이로부터 억울한 욕설을 들었다고 하자 욕설을 든고도 참아버리면 상대는 악업을 짓고 나는 선업도 악업도 아닌 무업을 쌓은 셈이 된다. 지하철을 지나다 입구에서 걸인을 만났다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냥 지나치면 무업이요 동정하면 선업이다. 비스를 타고 가다 다른 옆 좌석에서 떠드는 손님이 있다. 떠드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시비를 걸있다. 상대도 가만있지 않고 같이 시비를 걸어온다. 그러다 서로 싸움이 나고 버스 안이 시끄러워진다. 악업이 악업을 불러 버스 안 전체가 악업 열풍이 몰아친다. 누군가 남에게 누명을 씌위 악담을 퍼뜨린다. 내용도 모르면서 남의 말만 듣고 그 악담을 또 퍼뜨려준다. 악담은 소리 없이 퍼져 나간다. 악업의 미풍이 악업의 열풍으로 변한다. 가만히 앉아 당하는 사람은 죄 없는 죄인이 되고 너무 억울한 마음을 참지 못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억울한 악담 한마디에 악업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씻을 수 없는 척신들의 난동을 부추긴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말이 있다. 남의 말만 듣고 내용도 모르면서 동조하고 아무 소신도 없이 남을따라 하며 가벼운 언행을 일삼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가짜 뉴스란 말들이 SNS를 통해 넘치고 있다. 그야말로 근거도 없는 설들이 설설 난무한다. 소신이 있는 자들은 근거 없이 떠도는 가짜 뉴스에 동조하며 부화뇌동하고 마치 남이 모르는 새로운 소식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 퍼뜨린다. 남을 칭찬하는 좋은 소식은 가짜라 하더라도 입에 올려 나쁘지 않다. 남을 험담하는 나쁜 소식들은 진짜라 할지라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남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남의 소식을 함부로 전달하는 사람치고 입이 가볍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입이 가벼운 사람들은 저절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입이 가볍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한다. 속에 든 것이 없을수록 입이 가볍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입이 무거울수록 실수하는 일이 없고, 남에게 책잡히지 않는다. 남에게 책잡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악업을 짓게 한다. 부화뇌동한다는 뜻은 '주변의 자극을 받고 가법게 동조한다'는 뜻이다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주로 좋은 일에 대한 반응은 느리고 나쁜 일들에만 반응이 빠르다.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좋은 일에 대한 가담은 더디고 나쁜 일에 대한 가담은 신속하다. 세상이 덜 시끄러워도 될 일을 부화뇌동하고 소신 없는 자들 때문에 더욱 시끄러워지며 악업의 열풍을 불게 하고 척신 난동을 일으킨다.
모든 재앙과 화는 입으로 나가고 입으로 들어온다. 세 치 혀가 천하를 불태운다. 세 치 혀로 천하를 훔칠 수도 있다. 세 치 혀가 자기 몸을 베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현의 반응에서 벌어진다. 혀를 통해 좋은 반응을 보여주면 세상이 환영하고 혀를 통해 나쁜 반응을 보여주면 세상이 저항한다.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가장 먼저 반응이 일어나는 곳이 감정선이다. 감정선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극받은 내용이 가슴에 쌓이고감정선이 움직이민 생각이 움직이고 혀가 움직여진다. 좋은 감정을 자극받으면 혀가 아름답게 움직이고 나쁜 감정을 자극받으면 혀가 거칠게 움직인다. 혀를 아름답게 움직이면 선업이 쌓이고 혀를 거칠게 움직이면 악업이 쌓인다. 혀의 주요 기능은 음식 맛을 느끼는 것인데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천하를 움직이는 위력이 된다. 입속에 숨겨져 있는 작고 부드러운 혀 하나가 천하를 움직이는 위력을 발휘한다면 그 혀 하나 잘 움직여서 위대한 세상을 건설하는 밑천으로 활용함이 지혜일 것이다. 혀로서 좋은 자극을 일으키고 좋은 반응을 일으키면 천하를 움직이고 천하를 얻게 되는 비결이 혀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간은 세상으로부터 끝없는 자극을 받는다. 자극은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인간은 스스로 일어나는 감정에 의해서도 자극을 받는다. 인간은 자극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자극을 주기도 한다. 좋은 자극을 남에게 주민 선업이요. 나쁜 자극을 남에게 주민 악업이다. 선업은 쌓일수록 복이 들어오고 악업은 쌓일수록 화가 들어온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선업을 쌓기 위함이다. 악업을 지으려고 세상을 찾아온 영혼들은 아무도 없다. 선업과 악업이 잃어나는 경로는 단 하나다. 좋은 자극과 좋은 반응을 보이고 살면 선업을 쌓는 것이고, 나쁜 자극과 나쁜 반응을 보이고 살면 음료 악업을 쌓는 것이다. 자극과 반응은 내부 감정선에서 만들어진다. 좋은 감정선이 발달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평온하다. 나쁜 감정선이 발달하면 세상을 대하는 눈이 공격적이다. 공격적인 감성의 소유자들은 그만큼 적이 많다는 결론이다. 적이 많으면 늘 불안하고 자기 수호와 방어에 지치게 된다. 좋은 감정선을 발달시키러면 늘 겸손의 미덕이 중요하다. 검손한 자는 작은 미덕을 발견하고도 감동을 잘한다. 겸손한 자는 작은 은혜를 입고도 크게 감사한다. 나쁜 감정의 소유자는 늘 교만하다. 세상을 항상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의인은 자기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좋은 감정선을 발달시키려면 늘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이 필요하다. 약자 앞에서 힘을 과시하지 말고, 병든 자 앞에서 건강을 과시하지 말고 하찮은 미물의 생명체라도 함부로 살생하지 않으며 도움을 청할 때 외면하지 말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자에게 사랑과 배려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늘 마음에 측은지심이 떠나지 않으면 고약한 심술이나 메마른 감성으로 감정선이 손상되지 않는다. 감정선이 건강해야 세상을 향해서 좋은 자극을 일으킨다. 좋은 자극을 일으켜야 좋은 반응들이 일어나고 좋은 반응들이 일어나야 세상이 밝아지고 활기차게 변한다.
마음에 고약한 심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건 스스로의 삶이 힘들뿐더러 자신과 관련 있는 이웃을 힘들게 한다. 고약한 심보는 세상이 늘 힘들다. 고약한 심보는 세상에 아름다운 것도 없고 맘에 드는 것도 없어 늘 마음속에 불만이 자라고 감정 폭발을 잘 일으킨다. 인생이란 자극을 주고 반응을 일으키는 삶의 연속이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자극과 반응에 따라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이 결정된다. 남에게 아름다운 자극을 주면 행복한 반응이 돌아온다. 남에게 험악한 자극을 주면 괴로운 반응이 돌아온다, 인간의 참 행복이란 남에게서 행복 반응이 돌아올 때다. 행복 반응들이 돌아오면 사는 맛이 달라진다. 행복 반응이 돌아오면 없던 힘도 살아나고 삶에 대한 무한한 가지가 느껴지며 저절로 몸속에서 의욕이 솟구친다. 현명한 자들은 항상 거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깊은 통찰력을 발휘하며 신중한 삶을 살아가련만 거시안목과 깊은 통찰력을 발휘하는 현명한 지도자는 언제쯤 나타나 어지러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나갈 것인지 기다려진다. 자극과 반응은 인연의 법칙으로 그 현상이 나타난다 사랑으로 자극하면 사랑 반응이 나타난다 증오감으로 자극하면 증오 반응이 나타난다. 그 원인으로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이며 콩 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 심은 데는 팔이 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극과 반응의 현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으로부터 좋은 반응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가만히 앉아서 행운의 반응을 기다리는 건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저절로 입속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과 같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행운이 결과라면 그 행운의 결과를 실어다 줄 원인이 있어야 한다. 행운의 열매는 반드시 행운의 씨앗이 자란 행운의 나무에서 열린다. 행운이 열리게 할 행운의 씨앗은 무엇일까? 행운의 자극을 남에게 베풀어야 행운의 반응이 나타나 돌아온다. 행운의 자극이 아닌 고통의 자극을 남에게 베푼다면 역시 돌아오는 건 고통의 반응만 돌아올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감에 가장 지혜로움은 사랑의 자극을 세상에 베풀며 살아감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신분고하,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한결같은 기다림은 사랑의 자극일 것이다. 사랑의 자극을 주면 돌아오는 반응은 무엇일까? 역시 사랑의 반응이 돌아올 이치는 뻔하다. 사랑의 자극 앞에서는 모든 마음들이 열린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건 배려함이요, 이해함이요, 격려이다. 현대인들이 세상을 살아감은 녹록지 않다. 세상은 애정과 달리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무엇 하나 쉬운 게 있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이런저런 격정거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일수록 서로 마음을 열고 서로 힘이 되고 보탬이 되는 순수함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삭막한 세상에서도 어렵고 힘들 때 마음을 보듬어 주고 부축을 받을 수 있는 의지처가 생긴다는 건 누구나 반기고 기다려지는 축복일 것이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자신이 되어본다면 세상은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가? 세상을 보람 있게 산다는 건 세상이 기다리는 자극제가 되어주는 것이다. 세상이 기다리는 자극제는 진실을 담은 사랑이다. 음식에서 입맛을 돈우는 자극제는 당연히 조미료일 것이다. 음식의 조미료 같은 존재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극제가 있다면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일 것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는 중요한 밑반찬이기도 하고 한국인의 입맛을 돋아주는 자극제 조미료이기도 하다. 한국의 밑반찬은 비싼 요리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수수하고 꾸밈이 필요 없는 반찬 조미료이면서 빈부귀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의 입맛에나 맞다. 진실함이 묻어나는 사랑이란,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같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기호에 부합되는삶의 자극제다. 사랑의 자극제를 제외하고 우리들 삶의 행복을 꿈꾸기란 불가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되, 사랑이 넘치는 행복을 꿈꾼다. 사랑이란 거창한 이름의 사랑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뜨거운 열정이니, 목숨을 건 사랑이니. 죽고 못 살 것 같다는 그런 인스턴트식품 같은 사랑이 아니라 아무리 오래두이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우리나라 토속 음식의 맛을 풍기는 순수하고 진실하미 소박함이 넘치는 사랑이 누구나 기다리는 사랑이며 삶의 촉매제다.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의 몸을 제물로 바친 숭고한 사랑 그래서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사랑'일지 모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성경의 구약성경을 읽노라면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자비와 관용과 사랑이 바닥이다 또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자처하는 창조주조차도 사랑의 냄새가 풍기는 하느님이 아니라 엄격한 율법의 잣대로 백성들을 다스리며 작은 실수조차도 무서운 형벌로 다스리는 엄격함이 있다. 구약성경의 율법은 사랑이 아닌 잔혹함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값음해 주는 형법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과 모세가 펼치던 율법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값음해주는 이스라엘 형법은 다름 아닌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여호와가 지시한 율법이었다. 그렇게 강한 율법정신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쉬지 않고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고 온 백성들이 4백 년 동안 외국에 끌려가 종살이를 하기도 하고, 돌아온 땅에서 악독한 율법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악업을 생산하며 어 비극의 역사를 자업자득의 운명처럼 펼쳐가고 있었다. 모든 백성이 애급의 노예로 끌려갔다가 다스 4백 년 만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주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패망의 율법을 치국의 이념으로 삼다가 다시 로마의 침략을 받고 로마의 속국이 되어 희망 잃은 백성들의 신세가 되어 갔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 예수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내세우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잔인한 율법들을 뜯어고쳐 나갔다. 예수는 다시 전통적 사랑의 율법을 세우고 구약시대의 기득권자들과 싸워나갔다. 끝내 예수는 사랑의 율법인, 율법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기득권자들의 모략에 의해 십자가의 형틀로 사라졌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은 예수가 처형되고 40년 후 은 백성들이 나라에서 추방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렇게 창조주의 자녀들이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다시 나라 잃고 세상을 유랑하며 살아야 할 비운을 겪게 된다. 조국에서 쫓겨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그마치 2천 년을 떠돌다 돌아오는 신세가 되었다. 세상을 유랑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유대인이라 불렀고 유대인들의 대명사는 고리대금업자들이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이미지는 세상 어느 곳에서나 악명이 높았고 이들을 가장 싫어했던 히틀러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말살 정책을 실시하여 자그마치 6백만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한 비극들을 겪으며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결국 자신들이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2천년 후에 귀향할 수 있었다. 구약성경의 엄격한 율법에 관한 이야기에 이런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출애급기에 나오는 구절 중에 어느 가난한 백성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안식일 날 산에서 물감 나무를 구해왔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이 나온다. 안식일의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이 이유였다. 오른손으로 범죄 하면 오른손을 잘라버리고 눈으로 범죄 하면 눈을 도려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죄목이 적용되면 신체 어느 부위라도 안전할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 구약시대 율법이었다.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여호와 신이 통치하는 그 민족들에겐 사랑과 자비와는 거리가 먼 잔혹한 법률과 형벌이 횡행하고 있었다. 세상의 이치는 악은 악을 부르고 죄는 다시 죄를 낳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저지른 악업으로 인해 창조주 여호와의 선민했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이 세상 어떤 민족도 겪을 없는 수난의 역사를 자초하며 살았다 그 악업과 척신 난동으로 얼룩진 역사를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살아가는 4차원 문명시대 우주시민들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죄를 죄로 갚으면 반드시 더 큰 재앙이 따라오는 것이 진리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다.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일부러 의도적으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극을 주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는 부주의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극도 할 것이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그 자극에 반응하는건 당한 자의 선택이다.
기분 나쁜 자극이라도 선량하게 반웅하면 서로의 관계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뿐더러, 그 자아는 선량한 본성을 유지한다. 기분 나쁜 자극에 불량하게 반응하면 서로의 관계는 악화되고 더 큰 자극들이 오가며 그 자아의 본성은 추하게 변질된다. 대인이란 남의 자극 앞에 초연함을 잃지 않음이다. 소인이란 남들의 작은 자극에도 견디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내는 추함이다. 대인으로 사는 길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행복과 대망을 이루기 위해 대인으로 사는 삶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냄비 근성을 싫어한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화를 참지 못하며 기분 나쁜 감정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자들을 사람들이 멀리한다. 그런 소인배들은 자신이 잘못 행동해서 멀어지는 이웃들의 상처받은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기피하는 이웃들에 대해서 험담을 하고 있지도 않은 악소문을 만들어 퍼뜨린다. 악업은 악업을 낳고 악업이 쌓여서 최신 난동이 일어난다. 누구든지 먼저 나서서 악업을 중단함이 현명한 삶이다. 내가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늦은 후에 후회한다. 스스로를 희생하기 위해 악업을 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먼저 악업을 끊어야 한다. 세상은 어차피 불완전한 세상이요 불완전한 세상에 살면서 남들이 완전무결하기를 기다림은 무리다.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로서, 그 불완전함을 용서받을 수 있는 비결이 남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용서함일 것이다. 남의 불완전함에 너그러움으로 반응하고 자신이 먼저 사랑의 자극을 실천하며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같은 소박한 품성을 잃지 않을 때 세상은 서로 사랑의 자극과 사랑의 반응 속에서 행복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향기香氣를 찾아서 2권 중
도선당 저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