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09〉
■ 솔개 (김종길, 1926~2017)
- 안동에서 -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 제사밥 같은,
그런 것들을 詩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臨淸閣) 기왓골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陸史)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노을 속,
깃털을 곤두세우고
찬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 1997년 시집 <달맞이꽃> (민음사)
*낙동강변에 위치한 경북 안동(安東)은, 퇴계 이황을 비롯 예로부터 선비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로 알려져 왔습니다.
보물 제182호인 ‘임청각(臨淸閣)’은 항일운동에 헌신한 임시정부 초기 초대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의 생가이자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가문의 종가입니다. 아울러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1904~1944)의 고향으로 그의 출생지에는 이육사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문학관 앞에는 유명한 詩 작품인 <절정>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詩는 안동의 이러한 지조 높고 기품있는 지사(志士)들의 풍모를 본받아서, 詩를 쓸 때 아픔 없이 가볍고 쉽게 쓰지 말고, 임청각의 절개와 육사의 <절정>에 인용된 ‘강철로 된 무지개’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써야 한다고 다짐하는 작품입니다. 더욱이 그는 안동이 고향이기 때문에 찬 바람을 거스르는 솔개처럼 긴장하면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시인은 특히 지사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고고한 ‘학’이 아니라 거친 창공에 높이 떠서 지상을 날카롭게 굽어보는‘솔개’를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저 임청각의 선비나 이육사를 본받아, 가식적인 詩가 아니라 북방의 찬바람에도 꿋꿋하게 맞서는 솔개처럼 詩 창작을 하고, 굳건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군요.
그나저나 날씨가 추워지니, 10월까지도 창공을 유유히 날아다니던 주변의 솔개들도 자취를 감추었는지 모습이 통 보이지 않는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