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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네팔 순례기
부처님의 삶, 나의 존귀함을 찾는 길 | 역사와 문화, 철학을 아우르는 순례자의 기록
34,200원
각전 저자
민족사 · 2020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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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코로나 시대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아 짐짓 마음이 무거워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인생을 가장 짧은 시간에 바꾸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라 했다. 실제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행복을 충전시키는 일 중 여행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 시대의 여행 대안 중 하나가 집에서 떠나는 여행, 도서관에서 떠나는 여행이다. 책을 통한 순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딱 맞는 책이 출간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도 네팔 순례기》가 바로 그 화제의 책. 이 책은 선방에서 수행하는 각전 스님이 해제 철에 구도의 연장선상에서 다녀온 인도 네팔의 성지 순례, 그 깨달음의 여정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그려 놓은 책이다.
‘부처님의 삶, 나의 존귀함을 찾는 길’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스님과 함께 인도 네팔 순례를 하다 보면 여행이 인생을 바꾸듯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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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글) 각전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정치철학 전공)을 졸업하였다. 39회 행정고시 합격,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하다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를 단행하였다.
대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범어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고,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였다. 직지사 선원 등에서 정진하였으며, 대장경 천년축전 해인사 준비위원, 〈해인〉지 편집장을 잠시 동안 맡아 활동하다 다시 선원으로 돌아와 수행, 국제적 안목을 넓히기 위해 미얀마의 쉐우민 국제명상센터에 다녀왔다.
현재 동화사, 통도사, 범어사, 쌍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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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일진화一塵話 _ 일해덕민 004
모든 불자들이 환히 알아야 할 필독서 _ 여천무비 007
옛과 중간과 지금이 하나로 어우러지니 _ 인각 008
여행 내내 마음이 자라는 것을 느끼면서 _ 수불 009
여는글 |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며 011
참고문헌 | 665
아침 햇살에 연꽃잎 벌어지듯 신심이 피어나다
제1장 | 인도 종교의 결집지 델리
다른 문화ㆍ낯선 거리를 마주하다 031
불교 경전 상의 델리-쿠루 033
종교의 결집지-델리 035
인도의 수도-델리 037
델리 박물관의 부처님 진신사리 041
아우랑가바드와 마하라슈트라주 047
비비카막바라 050
적멸의 세계로 떠났으되 사바에 그대로 계신 부처님
제2장 | 경이로움의 아잔타 석굴
드디어 아잔타 석굴로 055
고대 벽화의 절정-제1굴 065
닮은꼴의 벽화굴-제2굴 079
최대 굴-제4굴 086
유일한 2층 굴-제6굴 088
최초의 법당굴-제10굴 090
닮은꼴의 법당굴-제9굴 095
안타까움의 제16굴 098
벽화의 보고-제17굴 110
조각의 보고-제26굴 123
가장 아름다운 조각 굴-제19굴 136
그 밖의 석굴 144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아름다운 화단을 만들고
제3장 | 세 종교가 공존하는 엘로라 석굴
엘로라 불교 석굴 159
힌두교 석굴-카일라사나타 173
자이나교 석굴 181
만마드역 가는 길 189
천상과 신들의 수호 속에서 풍요로운 생명력이 솟아나고
제4장 | 아름다운 탑문 부조의 산치 대탑
산치 대탑을 향하여 199
산치 제1탑의 탑문에 대하여 210
산치 제1탑의 북문 213
산치 제1탑의 동문 234
산치 제1탑의 남문 247
산치 제1탑의 서문 260
산치 대탑 주변 유적들 279
보팔에서 아그라로 289
인도의 문화적 자긍심은 문화적 독자성을 위한 원동력
제5장 | 마지막 왕조의 옛 도읍 아그라
무굴 제국의 옛 도읍-아그라 307
인도판 로미오와 줄리엣-타지마할 308
역대 황제들의 거처-아그라 성 315
왕가의 기둥-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321
아그라의 밤 323
최초의 사자후! 비구들이여, 두 가지 극단을 버려라
제6장 | 최초 설법 사르나트와 갠지스강
툰달라역의 바라나시행 밤기차 329
영적인 빛의 도시-바라나시 334
사르나트의 영불탑 336
사르나트 박물관 340
초전법륜지-녹야원 346
갠지스강의 낮과 밤 355
모든 분별이 소멸하는 곳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다
제7장 | 깨달음의 보드가야
깨달음의 보드가야 371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다 375
마하보디 사원의 역사 383
마하보디 사원의 유물들 388
인도→송→고려 393
전정각산과 유영굴 397
마하보디 사원에서 삼보일배 400
수자타 공양탑 402
부처님의 법이 이어져 다시 나에게로 연결되니
제8장 | 법륜이 구르는 라즈기르
마가다국의 수도-라즈기르 409
영축산 산정 법단 412
빔비사라왕의 감옥터 416
제1차 경전 결집-칠엽굴 420
최초의 절-죽림정사 430
불교 최대 대학-날란다 435
청결과 신심, 베풂과 자애로 전염병을 극복하다
제9장 | 최초의 여성 출가지 바이샬리
아소카왕의 수도-파트나 463
시대를 앞서 갔던 바이샬리 469
근본 8탑의 하나-근본불탑 477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대림정사 482
부처님의 삭발염의처-케사리아 불탑 491
인도의 결혼식 문화 497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제10장 |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
전륜성왕의 도시-쿠시나가르 505
마지막 유행 507
쿠시나가르에서의 반열반 511
쿠시나가르의 유적 514
열반당에서 가사 공양 518
세존의 다비-라마바르 탑 521
무릇 있는 바 모든 상은 허망한 것이니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라
제11장 | 금강경 설법처 쉬라바스티
쉬라바스티 가는 길 529
코살라국의 수도-쉬라바스티 536
기원정사 538
앙굴리말라 스투파와 수닷타 장자 스투파 545
쉬라바스티의 대신변과 주변 유적 548
룸비니 가는 길 550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제12장 | 탄생의 룸비니
인도 네팔 국경을 넘어 559
석가족의 기원-카필라바스투 561
부처님의 탄생지-룸비니 577
마야데비 사원 581
아소카왕석주의 룸민데이 법칙 586
순백의 거대한 자연이 주는 정화의 힘
제13장 | 네팔의 불교문화유산
히말라야 속으로 593
네팔의 역사, 그리고 종교와 문화 609
카트만두의 문화유적 614
네팔의 불교문화와 석가족 629
네팔 최초 사원-스와얌부 나트 647
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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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일해덕민 (불국사 승가대학장)
기행문을 잘 쓴 사람은 무수히 보아왔지만 한 수행인의 낮은 자세에서 사람 냄새 나는 연민의 정, 애련의 정이 넘치는 글은 드물었다. 각전 선승의 정진여가의 순례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여천무비 (전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불자들이 환히 알아야 할 필독서이며 훌륭한 공부 자료이다. 인도 갈 때 모름지기 세 번 읽고 가야 할 것이고, 옷 하나는 빼고 가더라도 이 책만은 반드시 휴대해야 할 것이다.
인각 (금정총림 범어사 수좌)
자세한 것은 쉽고, 복잡한 것은 간단하고, 평범한 것은 그 이면을 드러내 주고, 옛과 중간과 지금이 하나로 어우러지니 참선 정진으로 단련된 밝은 눈이 아니면 불가한 일이다.
수불 (안국선원장)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성지 참배를 보다 쉽고 힘들이지 않고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고, 스님 스스로도 여행 내내 마음이 자라는 것을 느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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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13
생에 생을 거듭하면서 마음과 몸에 내려앉아 잘 지워지지도 않는 많은 때와 스스로 만든 온갖 정신적 굴레,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을 포함한 모든 타자他者와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우리의 삶은 순간적 즐거움의 끝에 길기만한 고단한 시간의 연속입니다. 실존 자체가 어리석음과 어둠, 그리고 고통 속에 잠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죽음이라는 종결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 온갖 고苦를 떨치고자 일어서는 것, 그리하여 수행자로서 거듭나는 것, 마침내 해탈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본래의 존귀함을 찾고 확립하는 것, 이것이 삶의 제1 과제이자 핵심이라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선결 과제이자 최우선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시자마자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선포한 바로 그 진리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절박함의 의미입니다. 어찌 절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p.13~14
여행은 대화인 듯합니다. 여행은 낯선 환경, 낯선 거리, 낯선 시간,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 낯선 존재들은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만남의 과정에서 스스로 역시 낯선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여행은 즐겁고 환희롭습니다.
순례는 더욱 이러한 성격이 강화되는 것 같습니다. 순례지의 유적 그 자체, 옛 선인들의 자취, 세월이 남긴 색채의 변이, 공기의 맛과 분위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풍기는 인상들이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떠올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상들이 내게 전하는 말들이라 봅니다.
여행은 친구와 같습니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모든 존재들이 새로운 친구가 되어 줍니다. 그 친구는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가 나의 삶의 지평을 개척하고 넓혀 줍니다. 성지순례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친구들에는 부처님과 그 위대한 제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다시 밟고, 그분들이 숨 쉬던 공기를 다시 들이마십니다.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것에서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까지 농축시켜 다시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어루만져 봅니다.
pp.14~15
여행이 내게 해 줄 이야기들에 생기生氣를 불어넣고, 쌓여 있는 벽돌들의 군집群集에 새로운 현장감을 부여하는 일,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과거 활동의 아련한 모습들에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숨 쉬게 하고, 그리하여 매양 흐트러져 다시 다잡아야 하는 우리네 신심에 확신의 폭포수를 붓고, 깨침을 향해 가는 길에 끊임없는 돌진의 동력을 배가시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쓰는 데 가장 고려된 사항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는 바로 아잔타-엘로라 석굴과 산치 대탑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와 부조에 들어 있는 부처님 일대기와 본생담이었습니다. 벽화의 오래된 색채들과 돌 부조의 패이고 드러난 요철들은 2,500여 년 전 과거라는 시간의 범위를 벗어나고, 책 속에 갇힌 활자들의 틀을 깨고, 그러한 작품들을 남긴 화공과 장인들의 신심과 예술혼을 느끼게 하고, 멀리 그곳을 찾아간 우리 순례객들의 마음에 접목되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우리의 현대적 삶 안으로 비집고 들어옵니다.
p.15
이러한 내용들이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로부터 시작되어 나머지 성지순례에서 그 이야기들이 발생했던 현장을 방문하고 그것들이 남긴 유적들을 만남으로써 이번 순례가 주는 대화의 밀도는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또한 5세기 초의 법현 스님, 7세기 중엽의 현장 스님, 7세기 후반의 의정 스님, 8세기 초의 혜초 스님의 여행기들을 충분히 인용함으로써 1,600여 년 전~1,300여 년 전의 모습을 기록한 스님들의 감흥을 공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카트만두에서 예기치 않게 부처님 살아 계실 때 멸망한 석가(샤카)족들과 만나게 된 것은 부처님 전생담과 일대기로 시작한 대화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깊은 의미를 스스로 드러내게 하였습니다. 이보다 더한 대미의 장식은 여행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pp.31~32
인도는 무엇보다 부처님께서 살다 가신 나라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불자들에게 인도는 로망이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 성지를 순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자 가장 경험하고 싶은 일이다. 아무리 책에서 읽고 다른 이들로부터 듣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직접 체험을 대신할 것인가?
4대 성지의 참배는 부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신 이래 유구한 불교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4세기 중국의 구법승求法僧인 법현法顯 스님도 자신의 순례기인 《불국기佛國記》에서 “여래께서 열반하신 이후로도 4대탑이 있는 곳은 서로 전해져 끊이지 않는다. 4대탑이란 여래께서 탄생하신 곳, 득도하신 곳, 법륜을 굴리신 곳, 열반하신 곳이다”라고 쓰고 있다.
p.56
인도 석굴의 총 수는 1,200기 이상이며 약 75%가 불교 석굴이다. B.C.E. 1세기~C.E. 2세기에 개굴된 전기굴과 C.E. 5~8세기에 개굴된 후기굴로 크게 구분되고, 전기굴은 사타바하나 왕조와 연관이 깊고 대부분 불교 석굴이며, 후기굴은 굽타 왕조와 그 이후 시대로 불교 석굴 외에 힌두교 석굴이 많다. 자이나교 석굴은 소수이나 두 시기 모두 존재한다.
인도 대륙 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데칸 고원의 서남단인 마하라슈트라주에 대부분 집중된 석굴군은 1,000여 개에 이른다. 비하르주, 동해안의 오리사주 및 안드라주에는 부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만큼 데칸의 석굴 사원은 불교 건축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잔타 석굴은 후기의 불교 석굴 중에서는 가장 먼저 개착되었으며 규모가 큰 석굴로서, 불교를 떠나서 인도의 고대 문화예술의 백미白眉이다.
p.159
오늘의 순례지 엘로라 석굴은 아우랑가바드의 북서 34km 지점에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바위산 동쪽 사면 2km에 걸쳐 파여진 석굴 34개이다. 남쪽에서부터 번호를 차례로 붙여 올라오는데, 1굴에서 12굴까지는 불교 석굴로 6~8세기에 개굴되었다. 여기에 이어지는 13굴에서 29굴까지는 힌두교 석굴인데 6~8세기에 주로 개굴되었고, 늦은 것은 10세기까지도 조성되었다. 가장 북쪽의 다섯 개의 석굴(30굴~34굴)은 자이나교 석굴로 8세기 말~10세기에 만들어졌다. 엘로라 석굴은 10, 16, 29, 32굴 등이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10굴은 불교 석굴이고, 16, 29굴은 힌두교 석굴, 32굴은 자이나교 석굴이다. 불교 석굴은 1~5번 굴이 먼저 조성되었다고 보는 설이 일반적인데, 6번 굴이 최초라고 하기도 한다.
p.179
역사적으로 보면 힌두교는 많은 다른 사상들을 흡수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남근 숭배나 약샤, 약시 등 비非아리안적 기원을 가진 토착 신 앙들을 흡수한 것은 물론이고, 거대한 흡인력을 한껏 발휘, 불교의 위대 한 사상을 흡수하고 C.E. 5세기에 6파 철학을 등장시키면서, 정교하고도 고차원적인 이론 체계를 확립하고, 각종 힌두경전들을 확정했다. 이는 새로이 등장한 굽타 왕조의 제왕들에 의해 힌두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힌두교는 이러한 사상적 흡인에 그치지 않고 석가모니 불을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지명하면서 불교 교단 자체를 자신들 속으로 빨아들여 용해시켜 버리려고 하였다. 이에 때를 맞춰 편승한 이슬람의 군대가 불교 사원들을 파괴시켜 주니, 불교는 인도에서 멸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p.300
보조적 부조를 주제별로 보면, 보리수와 탑ㆍ법륜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천상계와 약샤는 불법의 수호와 보편성을, 동물은 불법의 위엄과 따르는 무리를, 여의덩굴도와 꽃문양은 생명력을, 약시목욕도는 풍요를 상징한다.
보리수, 탑, 법륜, 금강보좌 등 부처님의 상징 숫자를 세어보면 총 120점(상징도에만 66개에 61점의 내용도에 1점 당 1개 이상의 부처님 상징이 있으므로)이 넘는 많은 숫자이다. 이러한 숫자는 비록 부처님을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무불상시대이지만 부처님에 대한 표현의 욕구가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산치 대탑의 미얀마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불탑인 미얀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에도 산치 대탑의 동서남북 사방불의 위치에 감실형 전각을 마련하고 많은 불상을 모셨으며, 파고다를 둘러싼 회랑식 앞마당을 격하고 형성된 많은 전각에 수많은 불상들을 안치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불상 표현의 강력한 욕구의 역사적 발전 양상이라 할 것이다.
p.325
인도에서 짜이는 차 음료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래서 인도 호텔에서 짜이를 달라고 하면 홍차를 주거나 홍차에 우유를 타 준다. 마살라 향신료를 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유를 제대로 끓이지 않는 단순 밀크 티이다. 마살라 짜이를 마시고 싶으면 호텔 직원에게 마살라 짜이를 따로 주문해야 한다. 물론 무료이다. 인도의 길거리 짜이 가게에 가서 짜이를 달라고 하면 마살라 짜이를 준다. 마살라 짜이는 홍차와 우유, 인도식 향신료를 함께 넣고 끓인 음료이다. 그 인도 향신료를 마살라라고 한다. 마살라는 인도 요리에 사용되는 혼합 향신료를 일컫는 말로서 강황, 생강, 카라핀차, 코리앤더가 네 가지 기본 구성인데, 커리와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인도의 서민들의 길거리 음식인 마살라 짜이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우리에게 짜이라고 하면 마살라 짜이를 지칭한다.
p.364
갠지스강가에 있는 다샤슈와메드 가트에 도착, 머리를 길게 기르고 이마에 꽉 차도록 색색깔의 가로줄을 그려 넣은 사두들, 머리를 기른 바라문에게 축복 받고 있는 사람들, 머리카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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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역사와 문화, 철학을 아우르는 순례자의 기록
부처님의 삶, 나의 존귀함을 찾는 길
인도 네팔 순례기
코로나 시대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아 짐짓 마음이 무거워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인생을 가장 짧은 시간에 바꾸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라 했다. 실제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행복을 충전시키는 일 중 여행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 시대의 여행 대안 중 하나가 집에서 떠나는 여행, 도서관에서 떠나는 여행이다. 책을 통한 순례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딱 맞는 책이 출간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도 네팔 순례기》가 바로 그 화제의 책. 이 책은 선방에서 수행하는 각전 스님이 해제 철에 구도의 연장선상에서 다녀온 인도 네팔의 성지 순례, 그 깨달음의 여정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그려 놓은 책이다.
‘부처님의 삶, 나의 존귀함을 찾는 길’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스님과 함께 인도 네팔 순례를 하다 보면 여행이 인생을 바꾸듯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 철학을 아우르는 순례자의 기록
“각전 스님의 인도 성지 순례기를 읽고 깨달음과 감명의 눈물을 흘렸다. 아잔타 석굴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석가족을 찾아가는 발길은 선지식을 찾아가는 선재동자처럼 수행인의 선풍을 잃지 않고, 마멸되고 사장되어 가는 어둠 속에서 불보살을 친견하려는 두타 정진의 발걸음이었다.”
- 덕민 스님의 추천사 중에서
668쪽, 다소 방대한 분량의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독자들 역시 순례자가 되어 각전 스님을 따라 한 발 한 발 깨달음의 여정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각전 스님은 진리로 가는 구도의 길에 느끼고 사랑하고 소중히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자상하게 알려준다. 스님은 인도의 주름진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자비심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인도와 네팔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유적, 생활상에 대해 따스한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그동안 인도 네팔 순례기는 다수 출간되었으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사와 문화, 철학을 아우르는 순례자의 기록은 이 책이 최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이 내게 해 줄 이야기들에 생기生氣를 불어넣고, 쌓여 있는 벽돌들의 군집群集에 새로운 현장감을 부여하는 일,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과거 활동의 아련한 모습들에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숨 쉬게 하고, 그리하여 매양 흐트러져 다시 다잡아야 하는 우리네 신심에 확신의 폭포수를 붓고, 깨침을 향해 가는 길에 끊임없는 돌진의 동력을 배가시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쓰는 데 가장 고려된 사항입니다.”라는 머리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불교의 문외한이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경전과 어록의 전거를 대어 소상하게 설명해 준다. 각전 스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참 자아와 만나게 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행복이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책이다.
인도 고대 불교 예술에 대한 안목을 열어주는 책
“자세한 것은 쉽고, 복잡한 것은 간단하고, 평범한 것은 그 이면을 드러내 주고, 옛과 중간과 지금이 하나로 어우러지니 참선 정진으로 단련된 밝은 눈이 아니면 불가한 일이다. 부처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곳마다 관찰력이 짚고 넘어가야 할 곳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긁어주지 않는 데가 없으니 참으로 시원하고 또 시원하다. 산치 대탑의 탑문 부조를 모조리 이름 붙이고 그림 그려 설명하고 수백 년 후의 아잔타의 벽화들과 비교한 것은 과연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경탄이 저절로 나온다.”
-인각(금정총림 범어사 수좌)
순례하면서 온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각전 스님, 스님은 인도 네팔의 자연과 인간과 교감하고, 역사와 예술을 공감하게 해 주면서 인도 고대 불교 예술에 대한 안목을 열어주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 한편 인각 스님의 찬사처럼 이 책은 참선 정진으로 단련된 선방 수행자이기에 가능한 순례기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아잔타 벽화굴(1, 2, 16, 17굴)의 벽화를 모두 해설, 분석하고, 산치 대탑의 부조와 비교 분석한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소장할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부처님의 혈족인 석가족의 모습과 생활상을 소개하는 등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부처님의 삶, 나의 존귀함을 찾는 길
각전 스님의 인도 네팔 순례기의 여정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는 초지일관, 부처님의 삶을 따라 순례하면서 우리 자신의 존귀함을 회복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각전 스님은 이 책에서 처음부터 중간, 끝까지 “온갖 고를 떨치고자 일어서는 것, 그리하여 수행자로서 거듭나는 것, 마침내 해탈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본래의 존귀함을 찾고 확립하는 것, 이것이 삶의 제1과제이자 핵심”임을 일깨워 준다.
실로 고단한 삶, 뻔한 일상에 찌든 삶, 여행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행보다 더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각전 스님의 인도 네팔 순례기, 그래서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하신 무비 큰스님께서는 “불자들이 환히 알아야 할 필독서이며, 훌륭한 공부 자료이다. 인도 갈 때 모름지기 세 번 읽고 가야 할 것이고, 옷 하나는 빼고 가더라도 이 책만은 반드시 휴대해야 할 것이다”라고 이 책을 적극 추천해 주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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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9791189269760
발행(출시)일자 2020년 12월 10일
쪽수 668쪽
크기
150 * 219 * 47 mm / 943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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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객 각전 스님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법보신문 2021.03.29.
“성지순례는 균열된 신심과 꺼져가는 불심을 되살려줍니다”
서울대서 정치학 전공
행시 패스 후 잠시 공직
궁극 진리 찾기 위해
범어사서 삭발염의
아잔타 연화수보살
친견하며 자비 체득
‘부처 삶’ 도저한 천착으로
쓴 ‘인도네팔순례기’ 역작
아잔타·엘로라·산치대탑
관통하는 자타카 ‘압권’
부처님 그리울 때
책 열면 환희 충만
“비교 습관 멈춰 보시라!
내 안 행복 건질 수 있어”
각전 스님은 “일상에 젖고 세파에 흔들리다 보면 단단할 것만 같았던 신심에 균열이 난다”며 “그때, 우리는 부처님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른빛 나는 보석이 박힌 보관을 쓰고, 목걸이를 하고, 허리와 목을 꺾은 삼곡(三曲) 자세를 취해 부처님을 시봉하고, 왼쪽 팔뚝에는 끈을 묶어 고귀함을 상징하고, 오른쪽 손에는 하얀 연꽃을 들고 아래를 그윽하게 내려다보시는 보살의 시선은 거룩한 침묵 속에서, 온 중생들을 연민해 마지않는 대비(大悲)의 모습 그 자체이다.’(각전 스님 저서 ‘인도 네팔 순례기’ 중)
‘인도 서부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의 아잔타 석굴(Ajanta Caves)에 들어섰다. 가로 35.7m, 세로 27.6m 규모의 제1굴. 중앙광장을 둘러싼 20개의 기둥과 천장, 벽면에는 자타카(jātaka·부처님 본생경)를 소재로 한 부조와 벽화들로 가득했다. 선염법(渲染法)으로 표출된 화려한 색감에 생동감마저 더해진 고대 벽화의 웅장함에 사로잡힐 만도 한데 무소의 뿔처럼 더 깊이 들어갔다.
석실 입구 맞은편에 위치한 벽화 두 점! 대자대비(大慈大悲)·선정지혜(禪定智慧)를 농축시킨, ‘인도 고대미술의 보고 아잔타’라는 명성을 안겨준 그 연화수(蓮華手·Padmapani)·금강장(金剛藏·Vajragarba) 보살도다. 시선은 왼쪽 벽면의 연화수보살도에 한없이 머물렀다.
고등학교 교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화집 한 권이 자신의 책상에 올려 있기에 무심코 열었다. 그윽한 시선, 거룩한 침묵! 화보 속 보살은 청년의 온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불교에 대한 교리·지식이 전무 했음에도 한 생각이 스쳐갔다.
‘부처님이나 성인은 저런 풍모를 지니셨구나!’
너무도 강렬했던 그 첫 인상 가슴에서 떠난 적이 없다.
민주화 물결이 도도히 흐르던 시대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칼 마르크스(Karl Marx)를 만났다. 잉여와 착취,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모순을 설파한 ‘자본론’을 들여다보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서 일어나는 괴리로 인해 내적 갈등은 깊어져만 갔다. 심적 방랑을 잡아줄 부동의 진리가 필요했다. 성서와 도경을 펼쳤지만 답을 얻지 못했는데, 대학 4학년 때 접한 불경에서 ‘진리의 사다리’를 발견했다. 출가하려는 마음이 처음 인 건 그 때였다.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해양수산부라는 굵직한 기관에서 근무했다. 6개월쯤 흘렀을까?
‘출가하자!’
부처님께서 왕성을 떠나 길을 걸었듯, ‘궁극의 진리’를 향해 걷고 또 걷고 싶었다. 그 길 끝에서 직면할 게 무엇인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뒤늦게 출가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님 가슴에는 태산보다 무거운 바위가 앉았다. 어머니가 범어사로 찾아왔지만 돌아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중국 도안(道安) 법사의 유계(遺誡)가 전한 그 ‘의지’ 굳건했음이다.
‘그대 이미 출가하여 태어난 바 어기고는, 머리 깎아 모습 헐고 법복 몸에 걸쳤구나, 어버이를 버리던 날 위아래가 울음바다, 애욕 끊고 도(道) 받드니 그 의지는 하늘이라.’
범어사 대정 스님(1931∼2021)을 은사로 산문에 들었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후 쌍계사, 범어사, 직지사, 통도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2012년 인도 성지순례를 처음 다녀왔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향훈을 직접 느낄 수 있어 좋았는데 뭔가 허전했다. 불교의 원천인 인도역사·철학·미술에 천착해 초기·대승불교를 되짚어가며 좀 더 촘촘히 꿰어갔다. 2년 후인 2014년 다시 성지순례를 떠난 것인데 아잔타 석굴을 첫 일정으로 잡았다. 고교시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연화수보살 앞에 삭발염의하고 선 것이다. 30여년 만의 일이다.
인도 고대미술의 보고인 아잔타 석굴에 이어 34개의 석굴마다 불교·힌두교·자이나교의 정취가 뚜렷이 드러난 엘로라 석굴, 인도 아소카왕이 세운 탑 중 가장 아름다운 산치대탑을 꼼꼼히 살폈다. 순례는 부처님 최초 설법지 사르나트와 깨달음의 보드가야를 거쳐 열반의 땅 쿠시나가르, 탄생지 룸비니로 이어졌고, 히말라야 속의 네팔에서 마무리 됐다.
'인도 네팔 순례기'
인도 대륙의 데칸고원 서쪽에서 갠지스강 동쪽을 거쳐 히말라야에 이르는 그 여정을 ‘인도 네팔 순례기’(민족사)에 올곧이 담아 2020년 12월 출간했다. 순례에서 돌아온 직후 원고를 쓰기 시작해 3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했는데, 두문불출한 채 하루 한 끼 반(과일) 공양으로 버티며 집필한 결과다. 벽화, 조각, 건축이 함축한 독창적 양식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부처님 전생과 생애, 말씀을 유려한 필치로 써 내려갔다. 방대한 양의 유물유적 사진은 모두 각전 스님이 촬영한 것인데 투박해 보이지만 불심의 앵글로 잡아낸 ‘작품’이다. 초기·대승 경전과 고서·논문 등을 넘나들며 전한 상세한 설명에 책은 668쪽에 이를 만큼 두꺼워졌다.
한역·팔리어·산스크리트어·티베트어 등으로 번역된 자타카는 900편이 넘는데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547편이다. 각전 스님은 여느 답사·순례기에서는 보기 어려운 ‘자타카’를 밀도 있게 그려냈는데, 아잔타·엘로라 석굴과 산치대탑을 관통하는 그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타카에 빠져들다 보면 나 외의 꽃, 나무, 원숭이 같은 뭇 생명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합니다. 선인락과(善因樂果)·악인고과(惡因苦果)가 절절이 다가오기에 ‘아, 지금처럼 살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합니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비유로 가득한 자타카는 부처님의 전·현생에 흥미를 돋게하고 감동케하여 그 속에 담긴 지혜를 깨우치도록 유도합니다. 인간의 심성을 단 시간 내에 순화시키는 힘이 자타카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잔타·엘로라 석굴만도 60여개인데 불교·힌두교·자이나교 작품들이 혼재되어 있다. 교학에 해박하지 않으면 구분조차 어려울 터인데 난다 삭발도, 육아백상(六牙白象)도, 사마 본생도 등은 물론 연등부처님 발밑의 머리 풀어 절하는 선혜보살, 석가모니부처님에게 유산을 달라는 라훌라 등의 작은 조각까지 포착했다.
최초의 불탑 산치대탑.
최초의 불탑인 산치대탑에 이르러서는 학술탐사하듯 파헤쳐 갔다. 들보와 기둥에 표현된 부조들을 일일이 관찰한 후 ‘산치탑문 부조 전체·상세표’를 작성해 냈고, 부조 배치에 담긴 의미 및 부처님 생애와의 상관성을 고찰했다. ‘소논문’이라고 해도 좋을 ‘보록’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했다. 산치대탑 북문의 기둥과 들보에 표현된 ‘배산타라 본생담’에 유독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배산타라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집에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보시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나눔에 남다른 원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뭄에 힘겨워하는 이웃나라 바라문들의 청으로 자신과 함께 태어난 비 내리는 코끼리를 빌려 주었다가 왕국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700마리씩의 코끼리, 말, 소, 700대의 마차, 700가지의 음식 등을 보시한 왕자입니다. 배산타라 왕자의 생을 마지막으로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나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 앉아 깨달으셨습니다. 이처럼 성불과 이타행은 자신이 마주한 고난을 팔정도 육바라밀로 슬기롭게 극복할 때 실현될 수 있음을 자타카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유념에 두어야 할 건 적멸에 드신 부처님을 향한 그리움, 그 가르침을 기억하려는 마음이 ‘자타카’를 빚었다는 사실입니다.”
산치대탑 북문의 들보에 부조된 ‘배산타라 본생담’.
석굴과 산치대탑은 물론 사르나트, 보드가야, 룸비니 등의 성지에서 예불을 올린 것도 부처님의 삶과 법을 마음에 되새기며 ‘이 몸을 바쳐 불도를 이루겠다’는 원력을 다져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4대 성지를 믿음 있는 사람들이 친견해야 할 장소로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스럽기 때문에 가야 할 장소가 아니라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로 제시하셨습니다. 온갖 고(苦)를 떨치고 일어서려는 의지의 사무침이 절박함입니다. 수행자로 거듭나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그 간절함입니다.”
중국 동진(東晋)의 법현(法顯), 당(唐)의 현장(玄奘·602?∼664), 신라의 혜초(慧超·704∼787) 스님도 절박했기에 인도로 길을 떠났었다. 인도로 떠난 중국 최초의 승려로 기록된 법현 스님이 길을 떠나(399?)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카슈미르,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도착(402?)했을 때는 세납 60살을 훌쩍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 여정이 어찌했을 지는 저서 ‘불국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하늘에는 새가 없고, 땅에는 짐승이 없다. 오직 앞서간 사람들의 뼈와 해골이 이정표다.’
“법현 스님은 불타 버린 기원정사의 7층 건물을 기록하면서, 함께 왔던 도반들 중 ‘그냥 돌아간 사람과 도중에 불귀의 객이 된 사람이 있는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또한 세존께서 계시지 않음에 슬퍼함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하셨습니다. 부처님을 향한 그리움의 사무침이 전해져 옵니다.”
궁극의 진리를 찾아 출가한 스님에게 부다가야는 여느 성지보다 더 특별했을 터다. 그 감회가 궁금했다.
“저의 전부입니다!”
성지에서 새삼 새겨 본 법음을 청했다.
“사르나트(녹야원)에서는 아늑했고 평화로웠습니다.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께서는 그곳에서 첫 사자후를 토해내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두 극단을 버려라!’”
불교의 경전·역사·문화에 대한 도저한 천착으로 부처님이 전하신 뜻을 풀어낸 이 순례기는 역작이다. ‘부처님의 삶, 나의 존귀함을 찾는 길’이라 붙인 부제처럼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고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이끌고 있는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단연 ‘신심’에서 솟아날 터다.
“부처님 법에 따라 살고자 해도 일상에 젖고 세파에 흔들리다 보면 단단할 것만 같았던 신심에 균열이 납니다. 그때, 우리는 부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인도의 성지로 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지금, 아니 당분간은 인도로 떠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인도 네팔 순례기’는 그 아쉬움과 허전함을 채워주고도 남는다.
각전 스님은 현재 경주의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토굴에 머무르고 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정진하는 건 출가 후 처음이라고 한다. 향후 계획을 여쭈니 “성지에 스민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강연에 나서보겠다”며 “집필 시간도 가져보려 한다”고 했다. 선원 수좌가 짚어가는 출세간의 이야기에 기대감이 커진다. ‘행복 이르는 길’ 묘책 하나를 청했다.
“저도 묘책은 없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비교하려는 마음을 멈춰 보세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립니다. 행복은 거기서 건져낼 수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역대 선지식이 증명했습니다.”
순례 길에서 얻은 ‘보물’을 여쭈니 ‘환한 미소’만 보였다. ‘인도 네팔 순례기’에 담긴 연화수보살도 소감에 그 답의 실마리가 있을 법하다.
‘잔잔하고 고요하면서 한량없는 중생들의 고된 삶을 측은해하는 보살의 모습으로 자꾸만 빨려간다. 내세움 없이 오히려 반걸음 물러선 듯, 그러나 중생을 위하는 크나 큰 마음을 끝없이 발산하고 계신 분!’
이 지상에 울릴 각전 스님의 숭고한 법음에 귀 기울여 봄직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각전 스님은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39회 행정고시 합격,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하다 대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후 직지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해인’지 편집장을 맡기도 했던 스님은 현재 경주의 산 중턱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다.
[1579호 / 2021년 3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