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1년 겨울 방학 어느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줄곧 발을 디딘 곳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나의 발자국이 희미해 지지만..
여유가 있을 때이면 그 시간 모두를 그곳에서 보낸다.
충북 음성에 자리 잡고 있는 "꽃동네"란 곳이다.
그곳엔 세상에서 상처받고 버림 받은 많은 가족분들이 있다.
갓 태어난 간난이부터 정신박아, 선천성 기형아, 소아.뇌성마비자
정신질환자, 치매 노인등...
세상 속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누구 하나 그들을 위해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이 있을까...
하지만, 그곳에서는 다르다. 그들과 손을 잡고 웃으며 나란히 동행하는
모습을 아주 자연스레이 볼 수 있다.
육신은 고통받고 보잘것 없지만,
그들의 영혼은 맑다. 살아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정이
오고 간다.
고교 2학년 겨울 방학때 였었다.
나는 줄곧 꽃동네 노인 요양원에서 임종을 앞두신 할머님과 치매에 걸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님들의 기저귀를 봐 드리고, 식사 수발, 심부름등.. 그러한 일들을 하였다. 또한 그 날은 할머니들의 목욕이 있었던 날이었다.
목욕날이면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여야 하고 일하기가 가장 힘이 든 날이었다.
서너 시간의 힘든 일이 끝나고 잠시 방에서 쉬고 있을 무렵,
수사님(천주교 수도자)과 함께 한 청년이 현관으로 왔다.
그 청년의 손에는 첼로가 들여져 있었다.
할머님들을 위해 그 청년이 독주회를 한단다.
중앙 거실에 할머니들이 모여 앉으셨다.
할머님들은 그 악기가 무엇인 줄도 모르시고 어느 곡을 연주하는 지도 알지 못하신다.
하지만, 진지하게 청년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 하신다.
그 틈에 나는 잠시 고단한 몸을 누워서 쉬어도 되었는데, 나도 할머니들 틈에 끼어서 청년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 때 청년이 연주했던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잘 차려 입은 검은 턱시도에 우아한 자태를 풍기는
권위있는 예술가는 아니었다. 수많은 좌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돈좀 있고 꽤 많이 배우고 공부한 지식인층이겠지...
하지만 그곳은 단지 카페트 위에 빙 둘러 앉은 한 가운데, 청바지 차림에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있었다.
관객 역시 배우지도 못했고 클래식을 들어 본 적도 없는 할머니들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연주회는 처음 보았다.
피곤한 몸과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 왔다.
누군가를 위해서, 아니 그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할머니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그 청년은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후로 이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때의 일들을 기억하곤 한다. 아름다운 청년과 함께...
------ 토 막 생 각 -------
;; 인사동 뒷골목엔 티벳이나 인도에서 건너온 거리의 악사들이 있다.
긴 갈대피리를 꺾어 손수 그들이 연주할 악기를 만들어
우리에게 자연의 소리를 들려 준다. 마치 바람이 춤을 추듯이...
그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 소리에 맞춰 관객들과 함께 삥 둘러 앉아 호응을 보낸다. 진정한 예술가란 인간을 동요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청각을 흥분시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아 주는 것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