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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공포…분노…기쁨…차분함…따스함…진정성
근대 이후 독일사를 꿰뚫는 내밀한 시선
감정, 시대가 낳되 시대를 움직이다
훗날 21세기 초반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읽어낼까. 정치적 이견으로 핏줄 간에도 반목하는 지금의 사회를 두고 모르긴 몰라도 ‘분노사회’ 혹은 ‘혐오사회’로 규정하지 않을까. 이처럼 역사의 추동 요인으로 감정의 중요성은 날로 커진다.
하지만 감정사는 서양 학계에서도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 연구되기 시작한 신생 분야다. 나치즘 연구에 몰두해왔던 지은이는 이 낯선 분야에 뛰어들어 16세기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독일사의 숨은 동인動因을 성찰했다.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값지지만 연구 불모지라 할 독일 감정사 연구를 위해 시대별로 중요한 사료를 골라 분석한 내공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은 곧 도덕감정이어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종교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도덕공동체 수립의 핵심기제로 작동하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 경제의 영역으로 이동하되 그 도덕성은 여전히 함축하여, 그 후 감정이 곧 생산요소인 동시에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통찰은 정말 탁월하고 신선하다.
지은이는 1970년대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참신한 해석을 제시한다. 심리치료가 의료보험에 포함됨에 따라 심리 상담 및 치료가 일반인으로 확대되고 우울증 약 등이 처방되면서 감정이 제약회사의 화학실험실과 대학의 화학공학에 의해 조절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따스함은 기업의 영역으로 이동하여 생산요소이자 자본주의의 버팀목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지은이는 감정이 덮어놓고 긍정하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지배와 저항의 차원에서 성찰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 저자 소개
김학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치즘과 동성애―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2013)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감정 이론, 감정사, 프랑스혁명》(2016), 마르틴 브로샤트의 《히틀러국가―나치 정치혁명의 이념과 현실》(2011) 등이 있다.
📜 목차
프롤로그
1장 근대 초 의학의 신성한 공포
1_예언서와 괴물의 세기
2_인간 파라켈수스와 그의 의료 화학
3_매독과 페스트와 감정
4_춤추는 정신병과 감정
2장 30년전쟁의 고통과 감정의 해방
1_농촌 수공업자 헤베를레의 존경심
2_용병 병사 하겐도르프의 무감동
3_궁정인 하페의 분노
3장 경건주의 목사들의 형제애와 분노
1_경건주의 감정
2_감성주의 감정 혁명
3_목사 한의 분노와 내면
4장 세계 기업 지멘스의 감정
1_가족과 국가
2_신뢰와 충성
3_행동력, 명예, ‘노동의 기쁨’
5장 일상의 나치즘,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6장 나치 독일의 ‘노동의 기쁨’
1_바이마르 노동과학과 ‘노동의 기쁨’
2_나치 노동관계의 감정
3_열광 뒤의 차분함
7장 나치 독일의 ‘독서의 기쁨’
1_소비경제와 문화 소비
2_나치 독일의 베스트셀러
3_슈푀를의 코미디 소설
4_공포와 혐오
8장 서독인들의 공포와 새로운 감정 레짐
1_마녀의 귀환
2_히틀러국가의 망령
3_심리 열풍
에필로그
후기
참고문헌
주
찾아보기
📖 책 속으로
시초에 공포가 있었다. 마르틴 루터를 근대 독일의 시작점으로 간주하는 한 그렇다. …… 루터가 1529년에 작성한 『소교리 문답』이다. 루터는 십계명의 조항 하나하나를 간결하게 해설한다. …… 제10계명까지 모든 계명에 대하여 루터는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반복한다
---p.26
루터는 공포를 달고 살았다. 그는 다반사로 철야기도를 했고, 부활절보다 고난의 사순절을 좋아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의 횟수가 동료들보다 3배나 많았다. 고해성사 시간도 6시간이나 걸렸다
---p.28
독일의 16세기는 공포의 시대였다. 예언서, 괴물, 마귀들림, 마녀, 점성술은 모두 임박한 재앙을 말했고, 루터는 그 공포를 반영하면서도 강화했으며, 그 적극적인 표현이 종말론이었다고 할 것이다
---p.34
공포와 종말을 언급한 루터의 인용들만을 모은 교육용 책들이 1550년대부터 쏟아졌다. 어떤 책은 루터의 예언에 따라 독일에 신의 처벌이 가해질 악의 목록을 작성했고, 또 다른 책은 성경 속 선지자들에 대한 루터의 해설에서 독일이 이스라엘과 유대 땅과 예루살렘처럼 파괴되어 황무지로 변할 그림을 그려냈다
---p.39
파라켈수스는 페스트에 대해서도 기이한 발언을 했다. “페스트 독이 만연한 곳에서 페스트에 걸릴까 두려워하면 실제로 페스트에 걸린다.” 실언이 아니었다. 그는 그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p.47
종말이 임박했다고 선언된 16세기에 인간은 외적인 경건성과 일상적 행동은 물론 내밀한 감정까지 단속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그 자신만만했던 르네상스인들을 겨냥한 규율화 및 도덕화 장치였을 것이다. 이 점에서 파라켈수스는 그가 거부했던 당대 종교개혁가들과 일치한다
---p.81
17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절대주의 국가의 대두와 종교적 획일화의 필요성이 교차하면서 16세기에 비해 전쟁이 무려 5배 증가했다
---p.84
헤베를레의 연대기에는 감정어가 몇 개만 등장한다. …… 비탄, 가슴 아픔, 공포, 경악, 용기, 기쁨, 신뢰 등이다. 눈에 띄는 것은 슬픔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가족의 죽음에 대한 …… 헤베를레는 단 한 번도 슬프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1634년 10월 7일 갓 태어난 둘째 아들이 죽었을 때 그는 썼다. “전능하신 신이시여, 심판 날에 그가 기쁘게 부활하게 하시고 그에게 영생을 주소서.” …… 그는 죽음 대부분을 그처럼 짧은 관용어로 표현했다. 종교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p.93
그는 이력서 속의 자아를 그토록 무감동한 인물로 내세웠던 것일까? 이는 그가 군인의 직무를 인간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사무적인 업무로 내세우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16세기에 용병 부대는 전근대적 사회 구성을 고스란히 복제하여 유사길드적인 단체로 작동했다. …… 대우와 급여와 규율과 징계에 대해서 장교는 단체로서의 사병들과 협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했다. 이것이 30년전쟁에서 무력화되었다. …… 이제 군인은 위계적인 관료제적 명령체계에 복종해야 했다
---p.118
1634년 11월과 12월에 하페가 아들과 딸이 하필이면 자신의 종교인 개신교 스웨덴 부대에 의하여 죽고 강간당할 위험에 처하고 …… 신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다 …… 그 직후 하페가 연대기에 가까운 장래에 “최후심판이 올 것이다”라고 썼고, …… 하페는 현실 업무에 집중하는 합리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으며, 종교적인 섭리 질서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130
신에 대한 루터의 사랑이 공포를 통해서 도착하는 감정이었다면, 경건주의가 보여주는 감정의 길은 사뭇 달랐다. …… 사랑이 공동체의 구성원들로 향할 때 그 감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지 황홀이니 눈물이니 전율이니 하는 표현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 프랑케가 …… 1701년에 발간된 소책자 『인간에 대한 공포』에서 그는 사랑이란 곧 “겸손”이라고 정의한다
---p.162
『슈테른하임』에 오면 일부일처제가 확정되고 그렇게 낭만적 사랑이 승리하지만, 두 소설에 형상화된 공동체는 모두 정치적이다. 현실의 신분사회가 해체되고 공동체의 주인이 지식과 노동이기 때문이다. 진정 부르주아적인 공동체다. 소설에서 표현된 감정은 놀랍도록 다채롭다. 궁정인은 의당 언제나 무감동한 반면에 주인공들은 지극히 감정적이다
---p.169
이전 시기에 ‘신뢰’는 언제나 신과 ‘진정한 기독교도’에게만 향했었다. 그 감정은 감성주의 소설에 와서 비로소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 계약적이고 위계적이었던 ‘충성’도 감성주의 소설에 와서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쾌감과 강도를 갖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언제나 공동체적인 덕의 구현이었고 중세에 와서 신의 은총이 추가되었던 ‘행복’ 감정 역시 감성주의에 와서 범속한 관계에 적용된다
---p.173
목사 한의 일기는 18세기 중후반의 독일 부르주아가 1세기 전 슈페너의 부르주아와 무척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천적 사랑, 온유함, 다정함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건설해야 하고 이를 위하여 분노를 억제해야 한다는 명제는 여전했다. …… 거시적으로 보자면, 17세기 중반 이후 …… 신분적 갈등과 계급적 갈등이 중첩되었고, 이는 전선을 복합화했으며, 그 귀결은 정당성 기준의 혼란이었다. 그 문제 상황은 갈수록 심화되어 18세기 중반에 이르자 슈페너의 온유함과 감성주의의 감성은 더이상 답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한은 그리도 자주 분노를 격렬하게 표출했을 것이다
---p.201
마이스터가 그처럼 중요했으니 베르너가 그들과의 신뢰와 충성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 유의할 점은 신뢰와 충성이 베르너가 아우들은 물론 아내에게도 요구한 감정이었고, 회사에서도 스스로 ‘노동’한 감정이었다는 데 있다. 아내와 동생들의 가부장이었던 그는 마이스터와 노동자들에게도 가부장이고자 했던 것이다
---p.232
자신의 사업을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기도 했던 것이다. 베르너는 ‘노동의 기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회고록과 편지에서 노동은 명백히 기쁨과 결합되었기에, 우리는 베르너에게서 노동이 기쁨으로 의미화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p.248
1911년에 노동자들의 ‘영혼’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배치되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신경쇠약이 염려되는 상황, 마이스터와 노동자가 혹은 실과장과 사원이 인간적으로 서로 못 견딜 때,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 개인이나 가족이 긴급 상황에 처했을 때 출동했다
---p.253
1890년대는 독일에서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크게 증가하는 시기다. 따라서 빈곤은 여전히 문제이기는 하지만 개선되리라 낙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탈영혼화에 어찌 대처할 것인가. …… 베르너 지멘스는 바로 그 시기에 노동을 기쁨과 등치시킨 것이다
---p.257
1938년이면 독일인의 3분의 2가 어느 것이든 나치 기구 하나에는 속해야 했다. 그저 적극적인 활동가인지 종이 회원인지가 달랐을 뿐이다
---p.271
노동자는 감수성, 분노, 사랑, 열광 등 감정적 존재로 정의된다. 그러나 인격으로서의 노동자와 가치가 삭제되자 노동자의 감정은 오로지 지도자의 태도에 따라 발생하는 반응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된다. 더욱이 그는 노동의 기쁨보다 “책임의 기쁨”을 강조했다
---p.318
나치 노동법은 감정 법이다. 법조문이 신뢰, 충성, 배려, 명예라는 감정들로 누벼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동법을 담당하는 기관들의 명칭이 ‘신뢰위원회’ ‘노동신탁위원’ ‘사회적 명예법원’이다
---p.328
1930년대 말 이후 아른홀트가 공급한 자본주의 정신이 드러난다. 그것은 경제와 노동의 영역을 기계라는 사물의 영역으로 치환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민족 정신의 구현으로 내세움으로써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담론은 현실에서 노동자와 노동을 기계의 법칙적 운동에 복속시키는 장치다. 노동자를 “영혼을 갖춘 모터”로 정의했으니 ……
---p.342
노동전선은 …… 부르주아들의 전유물이던 문화활동을 추가하고 기존의 활동량을 막대하게 증가시켰다. 1936년에 …… 노동전선이 조직한 여가활동에 체조, 육상, 권투, 합창, 체스, 만들기, 여행, 야영 외에 카 레이싱, 비행, 요트, 수상 스포츠, 승마, 테니스, 사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 노동전선은 연극, 오페라, 교향악, 카바레, 박물관, 버라이어티 공연의 ‘관람’을 조직했다. 노동전선이 …… 노동자들에게 할인된 가격의 입장권을 공급했던 것이다
---p.366
나치의 후원을 받으려면 원고를 사전에, 이미 출간된 경우에는 책을 제출해야 했다.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는 1934년 초에 히틀러로부터 ‘나치당 세계관 교육 지도자 위임관’이란 직함을 얻은 나치 이데올로그 알프레드 로젠베르크가 설치한 ‘문필국’이다
---p.377
나치는 물론 특정 도서를 후원하는 한편 책을 가혹하게 숙청했다. 나치는 …… 책을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1933년 4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70여 개의 도시에서 분서 행사가 93번 연출되었다
---p.378
나치 치하 독일인들이 히틀러에 열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 담론에 대한 분석은 정치적 열광 뒤에 차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서의 기쁨을 검토하자, 그 차분함이 공포의 이면이며, 공포와 차분함은 순환하면서 서로를 강화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p.402
작은 지역사회에서 일부는 해고되고 투옥되고 거세당하는 한편 다른 일부는 권력을 향유하다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운명이 뒤바뀌어 누군가가 자신의 나치 경력을 밀고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삶의 기억이며, 현재란 그 기억을 누르고 모르는 척 평범하게 인사하지만 인사를 건넨 바로 그 사람이 “악한 힘”일 수도 있는 현실이었다. 그로 인한 첨예한 감정적 긴장이 마녀재판의 폭발로 나타난 것이고, 그러한 마녀재판이 1950년대 중반의 독일에서 매년 100여 회에 달했던 것이다
---p.425
1961년에 위르겐 하버마스는 “전체주의 정당”이 “탈정치화의 베일”로 은폐되어 있지만, 곧 “무관심한 대중”이 “강력한 권위적 국가의 지휘”에 동원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전체주의를 우려했던 것이다
---p.438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1970년대 이후 감정 레짐의 핵심이었다는 사실, 그때 이상적인 애인은 더이상 터프가이가 아니라 부드러운 남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은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얻어지는 감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유의할 것은 심리 열풍이 신좌파 대안문화만으로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 1967년에 서독 연방의회가 심리치료를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시켰다
---p.455
🖋 출판사 서평
다채롭고 풍성한 사료를 읽는 재미
무엇보다 이 책에서 빛나는 대목은 바탕이 된 사료의 다양함이다. 16세기 독일을 휩쓴 공포를, 공포를 달고 산 마르틴 루터의 『소교리문답』, 서양 의학의 비조鼻祖로 꼽히는 파라켈수스의 저술로 풀어간다든지 17세기 무감동과 분노를 설명하기 위해 농촌 수공업자와 궁정인의 연대기 그리고 『스웨덴 백작부인 G의 삶』 같은 감성주의 소설 3편을 텍스트로 감정혁명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세계적 기업 지멘스의 창업자 베르너 지멘스의 회고록을 통해 중세 기독교에서 징벌이었던 노동이 19세기에 ‘기쁨’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 주거나 나치 시대 독일인들의 ‘차분한 열광’을 입증하기 위해 하인리히 슈푀를의 코믹소설 『가스검침관』을 분석하는 데 이르면 지은이의 학문적 면밀함과 깊이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러기에 1911년 독일에서 노동자의 ‘영혼’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배치되어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산업현장에 출동했다든가, 나치가 1933년 4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70여 개의 도시에서 문자 그대로 분서焚書 행사를 93번 연출했다는 등 흥미로운 사실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읽는 신선하고도 독특한 시선
사료의 나열만으로는 사료집에 그친다. 온전한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한데 이 점에서 이 책은 곳곳에서 빛난다. 공포는 지배와 동원을 도와주지만 동시에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생산성을 낮춘다는 데 착안해 ‘독일 기술노동교육연구소(딘타)’와 그 후신인 ‘노동전선’과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아른홀트의 활동을 통해 나치가 어떻게 새로운 노동담론을 제시했는지 분석하고는 산업합리화에 의해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1938년이면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 어디든 나치 기구의 하나에는 속했고, 노동전선 주도하에 각종 여가활동 및 문화행사 참여에 ‘배려’를 했음에도 독일인들이 히틀러에 대한 열광 뒤에 차분함을 감추고 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독일 학계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는 신선한 시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중반 독일에서 매년 100여 회의 마녀재판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이는 전쟁 중 전전긍긍했던 삶의 기억을 누르고 모르는 척 평범하게 인사하지만 인사를 건넨 그 사람이 ‘악한 힘’일 수도 있는” 첨예한 감정적 긴장이 폭발한 것이라는 해석도 마찬가지.
역사학은 성찰의 학문이라고 규정하는 지은이는 감정의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우리 감정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준다고, 자신의 감정에 시대의 흐름과 개인 차원의 저항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성찰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