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러다 울 엄니 운다.
나는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진짜 울 엄니 노래를 나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평생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난 분인데 가끔 무슨 타령 같은 것을 흥얼거리는 정도가 내가 들은 노래 전부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부른 것은 아니고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혼자 밭을 맬 때면 나오는 소리였다.
엄니는 차만 탔다 하면 멀미를 심하게 하고, 육고기와 비린 생선을 아예 입에 대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노년에 자주 가는 관광도 한사코 사양을 했는데 언젠가 형수님이 하도 설득을 해서 동네 분들과 단체로 관광을 갔더란다.
버스 안에서 차례로 노래를 부르는 여흥 시간에 자기 순서가 되면 자동으로 나오던 노래가 어머니 차례에서 딱 멈췄다.
사회자가 아무리 불러도 엄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니는 아는 노래가 없다고 했고 끝내 부르지를 않자 벌금으로 천 원을 내라고 했더니 얼른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건넸다.
두 번째 노래 차례에서도 엄니는 지갑부터 열었다고 한다. 어느 땐가 왜 노래를 안 부르냐고 내가 물어 본 적이 있다.
엄니는 부끄럽다고 했다. 어떻게 부끄러워서 남들 다 쳐다 보는데 노래를 부르냐는 말이었다.
내가 평생 엄니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듯이 어머니는 이 말씀을 끝까지 지켰다. 오늘의 노래 사연이다.
엄니는 환갑과 칠순을 건너 뛰고 팔순 잔치를 했다. 환갑은 그냥 건넌다쳐도 칠순은 해드리려고 했으나 엄니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했다.
나이 먹은 것이 무슨 감투고 자랑거리냐면서 칠순 잔치를 완강히 거절했다.
팔순 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팔순 잔치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영국에 살 때인데 누이와 매형들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어머니 팔순 만큼은 꼭 해드릴 생각이었기에 누이와 함께 꾀를 냈다.
내가 알려준 대로 누이가 그랬단다.
"엄니, 팔순 잔치를 혀야만 외국 나간 막둥이를 볼 거 아녀유."
"글구, 얼마전에 점을 봤는데 엄니는 팔순 잔치를 꼭 혀야만 건강히 장수 하신다네유."
말년에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엄니는 이 말을 듣고 슬쩍 당신 팔순 잔치를 받아들였다. 평소 엄니는 오래 살아 뭐하냐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팔순 잔치는 세 누이와 매형들이 주도해서 준비를 했고 나는 곁다리였다.
엄니 팔순 잔치 사회를 내 친구가 봤다. 칠순 잔치 사회를 봐 주기로 했었는데 10년 늦게 드디어 사회를 보게 된 것이다.
내 친구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분위기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있다. 그 덕에 잔치는 왁자지껄 화기애애 시종 즐겁게 흘렀다.
드디어 울 엄니 노래 차례가 왔다. 짓궂은 내 친구 왈, 오늘 같은 날 주인공인 최OO 여사의 노래를 듣지 않을 수 없단다.
내 친구가 별의별 우스갯소리를 보태 노래 부르기를 유도했으나 엄니는 꿈쩍을 하지 않는다.
손사래를 치다가 아예 옆으로 고개를 돌려 버린 엄니, 그래도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을 했고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나는 테이블에 있는 냅킨에다 메모를 해서 슬쩍 친구 앞에 놓고 왔다.
<이러다 울 엄니 운다>.
내 누이가 자원하고 나서 엄니 대신 노래를 불렀다. 여자의 일생이었다.
왜 기쁜 날에 이렇게 슬픈 노래를 부르냐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누이는 이 노래를 엄니가 평소 가장 좋아했던 노래라는 걸 안다.
슬픈 노래임에도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자 잠시 식었던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나는 엄니의 표정이 밝아진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엄니는 팔순 잔치를 무사히 마쳤고, 8년 후에 먼 곳으로 떠났다.
내 가슴에 담고 사는 이 노래의 자초지종이다.
2.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하리.
오늘 친한 후배 어머니 팔순 잔치에 다녀왔다. 내가 오늘 울 엄니 노래 사연에 보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아버님도 아직 살아 계신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여섯 살이 많은데 젊을 때 아내 속을 많이 썩힌 듯했다.
나도 대충 알지만 세세한 사정은 생략하고 오늘 사회자도 팔순 잔치 주인공에게 노래를 부탁했으나 한사코 노래 부르는 것을 사양했다.
생전의 내 어머니도 이랬기에 나는 유심히 지켜봤다. 역시나 짓궂은 사회자 끝까지 시킬 셈인지 설득이 집요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자원을 했다. 알뜰한 당신을 불렀다. 이 노래를 남자가 부르는 것을 나는 처음 듣는 듯하다. 그럼에도 아주 잘 어울렸고 멋드러지게 불렀다.
숫기 없는 아내에 비해 남편은 무척 활달했다.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가 어머니한테 다시 태어나면 지금 남편과 결혼하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박장대소, 이번에는 아버지한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보탰다.
<여보,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소>.
그럼에도 아내는 고개를 더 크게 젓는다. 다시 전부 박장대소, 아주 유쾌한 팔순 잔치였다. 나는 마치 내 어머니처럼 여겨졌고 만수무강을 진심으로 빌며 맘껏 분위기를 즐겼다.
적당히 들어간 알콜 탓일까. 이렇게 따뜻한 가족이라면 이 추운 겨울날도 무난히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화기애애한 가족이다.
첫댓글 일찌감치 나의 안식처 황토 침대에 누워
가슴이 따뜻해지는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같은 경수필 두편을 단숨에 읽었네요
어머니란 단어
언제들어도 그리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사한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겠지요
감사합니다~^^
해병대 아자씨 큰아들의 아내의 아들의 작은 어머니의 남편의 아들의 할머니
그이름도 찬란한 명문의 자손
경희라는 글자가 주민증에 있겠지요
님도 어머니이니 사랑 많이 나눠 주세요 ㅎㅎ
ㅎ 오늘 이 글을 어디에다 올리나 잠시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훑어봤더랬지요. 신기하게도 이렇게 많은 방이 있음에도 나같은 나그네 체질은 막상 갈 데가 없을 때도 있더군요.
톡수방에 하경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가히 공감력의 여왕답네요. 글 올린 후에 지금까지 부실한 내용 수정하느라 이제서야 댓글 답니다. 쓸 때 신경을 씀에도 엉뚱한 오타는 왜 이리 많은지,,ㅎ
저한테는 어머니가 마르지 않는 추억의 샘입니다. 그립지만 만날 수 없기에 더욱 가슴이 시리지요. 하경님, 평온한 밤 되세요.
@유현덕 카페
참 많은 게시판이 있다는걸 안지가 얼마되진 않았답니다
제가 살짝 자폐성경향이 밌어 한곳을보면
다른곳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구요
톡방에
이런 글
버블샴푸처럼
마음을 부풀리게 하는글에
늘 목마르는. 1인이랍니다
책을 읽지 않는탓에
카페에서 읽히는
생활이야기 글이
때른 나의 위안이 되었다가
때론 내가 내다보는 세상이 되기도 하지요
늘
유현덕님의 글
기다립니다~^^
@하경
답글 달고 싶게 만드는 댓글이네요.ㅎ
인생이 날마다 즐겁지만은 않듯이 카페 각 방도 다양한 글이 있으면 좋겠지요. 웃긴 글, 슬픈 글, 진지한 글, 심심풀이 글 등등,,
저 또한 마음 둘 곳 없을 때 소통할 수 있는 톡수방이 있어 다행으로 여깁니다. 하경님처럼 공감력 뛰어난 분이 있어서 힘도 나구요.ㅎ
글쓰기가 제겐 거울이면서 창(窓)이기도 하기에 하경님 생각과 제가 비슷합니다. 책 대신까지는 아닐지라도 조금이나마 마음에 남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굿밤 되세요.ㅎ
가슴 찡하네요
어머니 치매로 7년을 요양원
계시다 100세 되는해
시골동네서 친했던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놀면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올까봐
준비중 생신을 보름 남기고
멀리 혼자만 여행 떠나셨답니다
100세에 돌아가셨군요
장수 하셨네요
어머님도
골드훅님도 고생하셨습니다ᆢ
살아생전엔
늘 엄마는 그렇게라도 누워계시면 누워계신채로
앉아계심 앉아계시는 채로
천년만년이라도
늘 내가 달려가면 볼 수 있는 그자리에 그대로 계실줄만 알고
내자식 키우느라
내 살기바쁘다고
제대로 엄마에게 효도한번 못 한게
아니 제대로
껴안아 드리지도 못 한게
늘
두고두고 후회되는군요
이제사ᆢ
지금 살아계시면
내가라도 돌봐드릴텐데
하나마나한 생각에 홀로 가슴저미지요ᆢ
@하경 그생각 만으로도 효녀 입니다
돌아가신뒤에 울고불고
제삿상에 멋지게 차려봐야 소용 없다는 생각에
살아계실때 한번이라도 더
손 잡아 드리는게 좋겠다 싶어 한달 한번은 꼭 전남 순천 어머니 계신 요양원을 찾았답니다
@골드훅
골드훅님 댓글도 가슴이 찡합니다.
어머님이 말년에 치매셨다니 자식들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그래도 골드훅 선배님은 효자셨습니다.
제 어머니는 88세에 먼길 떠나셨는데 밤에 주무시다 가셨답니다. 형수님이 아침에 발견했는데 진짜 주무시고 계신 것 같음 모습이었답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슴이 시려오나 봅니다. 저는 오랜 외국 생활 탓에 자주 뵙지를 못해 더하답니다. 평화로운 주말 밤 되시기 바랍니다.
@골드훅 골드훅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잘 하셨어요
전라도가 고향인
남자분들이 정이 참. 많은거 같아요
표현도 잘하고ᆢ
우리 톡방분들이
골드훅님을 좋아하는것
다 이유가 있었네요
편안한 주말밤되세요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오래 톡방에서 만나요~^^
@유현덕 벌써 어머니 생각에 글 읽으며 눈물 맺혔는걸요
@하경 아니 톡방분들이 저를 좋아 한다고여?
금시 처음 듣는 얘긴데~?
@골드훅 ㅎ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마음이니까 그러는거 아닌가요?
미워하면서 어떻게 반갑게 댓글을 다느냐구요%?
ㅋㅋㅋ
좋아하시는거
다 보이는데 ᆢ
ㅋㅋ
@하경 옴마야 경희씨 감사감사
좋은 사람은 다 알아보지요
해병대 아자씨랑 황홀한 밤
보내시옵소서
@하경 하경님은 유현덕님 못 보셨죠?
얼굴도 핸섬하고 성격도 유하고 글도 잘쓰는
멋진 남자랍니다
@골드훅 글 잘 쓰시고
멋지시다고 골드훅님이 인정해주시니
유현덕님은 진짜 멋진 분이신가 봅니다
저는 오프의 사람들보다
이렇게 글로 전해주는 사람들이 더욱 좋답니다
저에게 카페는
궂이 시간을 내어 떠나지 않아도. 되기에
그리고 더더욱
이렇게
마음가는 글. 을 따라
글길을 걷는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골드훅 그리고
우리 옆침대의 해병대 아저씨는
벌써 꿈나라 여행중이랍니다~^^
@하경 푸하하하하하하하
옆에가서 살포시 안아 주세요
다음 모임때 오시면 멋진 유현덕님 소개 해 드릴께요
@하경 년식이 있어 군기가 빠졌네요
아직 마나님 취침전인데
먼저 잠자리에 들다니~"~
애틋한 어머님 이야기는
들려주는이 듣는이도
가슴 뭉클하게하지요.
노래를 안하시겠다는
어머님~^
사회보는 친구에게
슬쩍 준 메모
♡이러다 우리엄니운다♡
힘들게 사셨지만
여리고여린 소녀같으신
어머님이셨을것같으네요.
대부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연 몇 가지는 담고 살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막내라서 그런지 유독 더하지 싶기도 하구요.ㅎ
일찍 혼자 되어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억척스럽게 살았는데 노래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듣는 것을 좋아하셨던 모양입니다.
아침에 산책 겸 근처 체육공원을 올라갔다 왔는데 날씨가 추워선지 사람이 별로 없데요. 갑자기 추워져서 더 매운 추위로 느껴집니다.
바다사랑님, 건강 잘 챙기시고 무탈하게 겨울 나셨으면 합니다. 평온한 일요일 되세요.
유현덕님 글을 읽고 있자니 제가 어렸을 적 따오기등 동요를 많이 가르쳐 주셨던 지금은 제 곁에 계시지 않는 저의 어머님 생각이 떠오릅니다.
유현덕님 글 가슴으로 읽고 갑니다.
ㅎ수피님, 공감천리란 말이 있다더니 수피님이 여기까지 오셔서 댓글 주셨네요.
동요를 가르쳐준 수피님 어머님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저한테도 온전히 전해져 옵니다. 저는 섬집아기를 들을 때면 꼭 제 엄니 마음 같아서 자주 듣는 동요지요.
부족한 글에 수피님이 공감하셨다니 글 쓴 보람이 있습니다. 고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