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광주민중항쟁 80518 원문보기 글쓴이: Uranus
(1) 1987년 12월 1일 KAL폭파 용의자 김승일이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하고, 김현희는 음독증세로 중태에 빠지자 마자, 그 다음날인 12월 2 일자 국내 언론에서는 김승일, 김현희일행의 오스트리아 빈-> 유고 베오그라드-> 바그다드-> 아부다비-> 바레인의 행적을 아주 소상히,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 내용에는 이들의 위조 여권번호와 1987년 11월 18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암파크링 호텔』에 투숙했던 사실과, 오스트리아 항공사에 찾아가 바레인까지 항공편을 예약한 사실과, 11월 23일 베오그라드에 도착하여 『 메트로폴 호텔』에 투숙한 사실 , 또 수상한 동양인으로부터 『콤포지션 4』폭발물을 전달 받았다는 내용도 상세히 보도된다.
더욱더 놀랍게도 국내언론은 KAL858기가 아부다비에 도착 『 6시간후면 KAL기는 폭발 』한다고 보도했다. 그것도 대문짝 만하게 보도했다. 그런데 11월 29일 KAL기가 아부다비 공항 도착(한국시각 오전 7시 40분)후 6시간이면 미얀마 안다만 해상 토리스(TOLIS) 부근이 KAL기가 폭파, 실종된 지점이 되며, 이는 1991년 김현희의 수기에서 밝힌 폭파 시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김현희가 바레인에서 체포되고, 서울로 압송되어 사건전모를 자백하기 전까지는 KAL858기를 폭파하기 위한 폭발물의 종류나, KAL기가 폭파되는 정확한 『세팅 조작 시간』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에는 아부다비 공항 29일 7시 10분 '6시간후면 KAL기는 폭발'로 되어있다. 이 헤드라인 시각으로 계산해본다면 KAL기가 폭파되는 시간은 30분 앞당겨져, 1987년 12월 29일 한국시각으로 오후 1시 10분경이 되어, 미얀마 안다만 해상 TOLIS 부근 보다 휠씬 서쪽인 안시트(ANSIT) 부근이 KAL기가 폭파, 실종된 지점이 될 것이다.
(2)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위 국내 언론의 보도기사들을 신뢰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1987년 12월 2일 이후 김현희, 김승일의 지나온 행적과 범행사실 그리고 칼기 폭파에 사용된 『콤포지션 4』폭약등, 국내언론의 보도 내용들은 한결같이 일치하며, 김현희가 1987년 12월 15일 대통령선거 전날에 서울로 압송되어, 도착 8일만에 『 범행전모 』를 자백하고, 그후 1988년 1월 15일 안기부가 발표한 칼기 폭파 수사 발표문 내용과 거의 전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1987년 12월 2일자 국내 조간신문은 KAL858기의 폭파시점을 정확히 보도했다. 즉,아부다비 공항 도착 '6시간후면 KAL기는 폭발'했을 것이며, 따라서 칼기가 폭파되어 실종된 지점은 미얀마 안다만 해상 토리스(TOLIS) 부근이 된다. 이는 일본언론에서 미얀마 랭군 관제소에 확인한 KAL858기 최종 교신지점인 토리스와도 일치한다.
그런데 왜 KAL858기 정부 합동 구조,수색 대책반은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 수색본부를 차리고, 엉터리 루머에 따라 태국과 미얀마 접경의 칸챠나부리 열대 밀림지대 수색에 열을 올렸을까? 실종된 KAL858기의 블랙박스를 절대로 찾아서는 아니되고, 행여나 안다만 해상에 생존해 있을 지도 모를 탑승자, 승무원을 구조해서는 안되는 그 무슨 이유라도 있었을까?
(3) 교체승무원의 주장에 의하면 김현희, 김승일 두사람은 KAL858기 탑승 후, 보딩카드를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각각 요청하자 이들은 아무런 대답없이 보딩카드를 여승무원에게 건네주는 수상한 짓은 물론이며, 탑승카드제출 요청시 카드작성은 아예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또 승무원이 샌드위치를 서비스 했으나 일체 손을 대지 않았고, 커피를 제공하자 사양했으며, 말을 붙이려 하자 귀찮다고 표정을 짓는 등 승무원들이 보기에도 전혀 부자연스러운 , 의심스러운 행동만 골라서 했으며, 이들은 또 화장실을 다녀온 후 좌석 7B, 7C를 바꾸어 않았다.
결국 기내에서 이들의 수상한 행동은 승무원들의 눈에 쉽게 뛰 뛸 수 밖에 없었으며, 안기부가 발표한 해외 적응 실습훈련을 받고 또 대한항공기 폭파 지령을 받아 특수 폭파 훈련을 받는 등 7년 8개월의 훈련과정을 받은 정예 공작원의 행동인가 의심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다가 KAL858기 기내 좌석 위치도를 보았을 때, 이 들의 수상한 행동은 이미 우리 승무원들에 의해서 일일이 체크 되었으며, 또 체크 될 수 밖에 없는 좌석에 위치하였다. 그런 가운데 아부다비에서 폭발물이 든 쇼핑백을 놓고 내릴 수 있었을까? 대한항공은 기내 검색이 철저한 것으로 알려 졌다. 아부다비에서 교체된 박길영 사무장은 이들이 놓고 내린 물건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4) 과연 이들이 소지한 쇼핑백속에는 『콤포지션 4』폭발물이 들어간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모델명 RF-085)와 술병으로 위장한 액체 폭발물임에 틀림 없을까?
안기부가 발표한 위 사진에서도 보듯이,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에 350그램의 『콤포지션 4』폭약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라디오 회로기판, 스피커등, 부속품 거의 전부를 제거하고 공간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콤포지션 4』350그램이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350그램의 『콤포지션 4』폭약이 들어간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는 폭발물이지, 라디오로서는 전혀 기능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현희 자필 진술서에 따르면, ' 바그다드공항에서 배터리라는 물건은 일체 가지고 비행기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김선생이 여기서만 특별히 개인 사품을 검열하고 단속한다며 『라디오를 켜 보이며 항의하자』 그들도 좀 미안한지 가지고 가라고 승낙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소지한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는 소리가 나오는 정상적인 라디오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국정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폭약이 든 라디오가 바그다드공항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그 문제는 바그다드공항측이 답변해야 할 사항이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바그다드공항이 두 사람의 소지품을 조사한 것은 사실이었다. 소지품을 조사한 바그다드 보안요원은 자파르 모하마드(Zafar Mohamad·남)와 사미라(Sam ira·여)였는데, 훗날 조사에서 두 사람은 ‘X레이 투시기에 이상 없는 것으로 나타난 데다 라디오가 정상 작동해 통과시켰다’고 해명했다. (신동아 2004년 1월호)
즉, 소지품을 조사한 바그다드 보안요원 두 사람은 ‘X레이 투시기에 이상 없는 것으로 나타난 데다 라디오가 정상 작동해 통과시켰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현희, 김승일 일행이 바그다드 공항을 통과하여 칼기에 들고간 라디오는 정상적인 라디오였다고 답변한 것이다.
커다란 문제는 안기부가 문제의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가 『콤포지션 4』 폭약을 장착한 폭발물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김현희 진술서와 당시 바그다드 보안요원의 주장을 살펴 보면 그 라디오는 내외부가 정상적인 라디오였을 뿐이지, 폭발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안기부는 김현희 일행이 소지한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가 『콤포지션 4』350그램이 들어간 폭발물이 었다고 주장하는가? 단지 『콤포지션 4』폭약이 인천공항의 X레이 장비로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슨 근거로 국정원 관계자는 그런 주장을 하는가? 그것은 공항마다 사정이 다를 뿐이다 !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가 『콤포지션 4』 폭약을 장착하고, 유고 베오그라드 공항을 거쳐, 당시 전쟁상태로 공항 검색이 엄격한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과연 무사히 통과 할 수 있었을까?
유고 베오그라드 공항당국은 안기부의 수사발표 후, 1월 16일 즉각 성명을 내어 공항당국의 완전한 검사를 뚫고 폭발물을 반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02.9월 김현희 KAL기 사건 전면재조사를위한 국회청원문. )
(5) 김현희의 서울압송 이후, 안기부의 수사는 역시 『밀실』에서 변호사의 입회도 없이 은밀하게 이뤄졌다. 만일 김현희가 소지한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가 평범한 라디오였다`고 주장했다라면, 이에 대하여 안기부가 반박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김현희가 소지했다는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가『콤포지션 4』폭발물이었다고 안기부가 입증하기는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김현희 진술서 내용과 유고 베오그라드 공항당국, 바그다드 공항당국자의 증언에 따르면 일체의 폭발물 반입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정상적인 라디오 였을 뿐이다. 실제로 테러리스트가 승객을 가장하여, 폭발물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뒤 기내에 반입시켜, 유치하게도 그 폭발물을 기내 선반에 올려놓고 내리는 수법으로 항공기 폭파 테러를 저지른 사건은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바레인 수사당국에 의해 밝혀진대로, 사망한 김승일의 허리띠(전대)와 김현희 옷가지에서 발견된『TNT』 화약흔적은 또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이들에게서 발견되어야 할 화학성분은 『콤포지션 4』이지『 TNT』 성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6) 하나의 결론을 내려보자.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하여, 아부다비에서 잠시 기착하고, 태국 방콕을 향하던 대한항공858기가 이륙 9시간후에 미얀마 안다만 해상에서 공중 폭발된다.
그런데 당시 군사정부는 칼858기에 탑승했던 수상한 두 일본인을 신속히 추적한 끝에, 이들이 오스트리아 빈-> 유고 베오그라드-> 바그다드-> 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의 리전시 호텔 611호실에 투숙했으며, 이들의 여권을 일본 경시청에 조회한 결과 신속하게 위조여권임을 알아내고 즉시 이들을 여권법 위반으로 바레인 당국에 체포를 요청한다.
그리고 칼858기 폭파범으로 지목된 이들은 1987년 12월 1일 아침 바레인 공항에서, 출국 시도를 하던 중 위조된 일본여권 때문에 일본 대사관 직원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자, 소지한 담배속에 있던 『 청산앰풀 』을 깨물어 결국 김승일은 절명하고, 김현희는 음독자살을 시도하던 중 중태에 빠진다.
그러자 그 다음날 국내 조간신문에는 일본 위조여권을 지닌『 북괴 공작원 』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지나온 행적과 칼 폭파에 이용된『콤포지션 4』 폭발물등 범행사실이 낱낱히 보도된다. 한마디로 범인들의 입도 열리기도 전에 사건전모가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다.
한명의 음독자살한 범인과 또 한명의 혼수상태에 빠진 범인 김현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범행일체가 예사롭지 않게 순식간에 보도된 것이다. 그것은 김현희가 서울로 압송되어, 사건전모를 진술하고 또 안기부의 칼기 폭파 수사 발표문과 일치하는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사전 시나리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런 기괴한 일들이 짜여진 각본처럼 연속적으로 발생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체포된 범인 김현희는, 안기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대한항공858기를 폭파하기 위하여 7년 8개월 동안 고도의 훈련과정을 거친 『 북괴의 정예공작원』이다. 그런데 이 정예공작원은 체포당시 지나온 행적과 향후 행적을 알려주는 여러장의 항공권은 물론이고, 카메라와 사진등 무려 495종에 이르는 소지품들을 전혀 인멸하지 않고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 김현희는 대한항공858기를 폭파범으로서 『콤포지션 4』350그램이 들어갔다는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를 기내에 놓고 내렸다. 그런데 그녀가 보인 기내모습은 한마디로 상식밖의 의심스런 행동뿐이었으며, 승무원들이 수상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되게 행동했다. 그리고 외진 섬나라, 의지할 곳 없는(?) 바레인으로 도망치면서도 쑈핑과 관광을 즐겼다고 진술했다.
이 정도면 김현희, 김승일 일행의 행적은 대한항공858기를 폭파범으로 가장한 『바람잡이』 역할자이자, 그들의 온갖 증거와 행적을 훌륭히 드러냄으로서, KAL858기 사건의 진상을 국민에게 호도하기 위한 하나의『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7) 안기부도 인정했듯이 이들이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이라는 확실한 물증은 없으며, 오로지 밀실에서 이루어진 김현희의 진술(증거 능력이 없는)만이 있을 뿐이다. 이 사건을 기소했던 검찰 역시 김현희가 대한항공858기를 폭파했다는 『 범행을 입증하기 위한 직접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희는 비공개 재판끝에, 국가에 의해서 공인된 대한항공858기 폭파범이다. 언제 법치주의 국가에서의 재판이 『증거 제일주의』에서 『자백 제일주의로』뒤 바뀌어 졌나? 동서고금을 통틀어, 물증하나 없이 오로지 피의자의 자백만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왜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 될 수 밖에 없었나? 게다가 대법원 판결 한달도 안되어 김현희는『 특별사면 』 된다!
안기부가 발표한 KAL858기 폭파사건 수사 발표문이 객관적인 물증에 입각한 사실은 없다. 그 내용 조차도 알마든지 당시 안기부가 밀실에서 어렵지 않게 그럴듯하게 조작할 수 있는 내용들 뿐이다. 그 낱낱의 내용도 따지고 들어가면 객관적인 사실과도 어긋나며,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혹은 지난 17년 동안 증폭되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안기부 (현 국정원)스스로가 KAL858기 폭파사건의 모든 진실을 털어 놓을 때도 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사건의 진실을 숨길 만한 이유도 없고, 그럴 형편도 안 된다. 조속한 시일안에 KAL858기 폭파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전면적인 재조사 만이 전체 국민과 정부 사이에 가로놓인 불신의 장벽을 제거하는 첩경이 될 뿐이다.
1987년 12월 2일자 관련기사 다운로드 : 아래클릭
http://www.kal858.or.kr/ez2000/ezboard.cgi?db=pds&action=read&dbf=374&page=0&depth=1
PDF파일. 100% 확대로 보면 잘 보임.
KAL858기 실종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http://www.kal858.or.kr
KAL858기 진상규명 카페모임 http://cafe.daum.net/kal858notice
첫댓글 국정원은 김대중 정부의 불법도청만 발표할 게 아닙니다.. KAL858기 유족들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눈물로 보내고 있습니다...국정원은 국민과 유족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상발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