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팔여탐라회 경남 함양 심진동, 화림동 계곡 야유 안내
*노정-오전 9시 00분 대공원역 3출구 출발-지산범물동, 앞산터널 경유-대곡역-화원옥포IC 진입-대구광주 고속도로 주행-고령, 합천 경유-거창 IC 진출-마리면-용추계곡 도착(117Km, 1시간 35분 소요)
1. 용추계곡과 용추폭포, 용추사(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용추계곡)[대공원역에서 117km, 1시간 35분 소요].
옛날 안의현(安義縣)에는 세 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삼동(三洞") 이라 전한다.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심진동(尋眞洞)" 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심진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심원정(尋源亭)이 있다. 유학자 정지영(鄭芝榮)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고종 3년 (1806년)에 세운 것으로 수수하고 고풍스런 정자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심원정을 지나 3km가량 더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뒤로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장수사(長水寺) 일주문 조계문(曺溪門이) 외롭게 솟아있다. 신라 소지왕(炤智王) 9년 각연(覺然)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 그러나, 장수사의 흔적은 일주문만을 남긴 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으로 소실되고, 복원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사찰의 흔적을 찾아 "용추사"에 들르면 절 앞에서 들리는 우뢰와 같은 소리, 용추폭포다. 용추계곡의 깊은 곳에서 모이고 모여서 이룬 물이 용호로 떨어지니 이곳에 서면 여름더위는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화난 용이 몸부림 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을 이루고 폭포 앞에 서 있으면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2. 용추사(龍湫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각연(覺然)이 창건하였고, 고려 말 무학(無學)이 중수한 뒤 은거하여 수행하였다. 그 뒤 1681년(숙종 7)에 운흡(雲洽)과 전 주지 수오(秀悟) 등이 합심하여 절을 아래쪽으로 이전하였고, 1684년에는 문찬(文贊)이 법당을 지었으며, 다음해에는 문감(文鑑)이 소상(塑像)을 이룩하고 사주 이영생(李英生)이 시왕상(十王像)을 조각하였다. 또, 1686년에는 김상운(金尙雲)이 누각을 지었고, 다음해 지찰(智察)이 팔상전과 팔상탱화를 조성하였으며, 천왕문과 요사채를 이룩하였다. 1734년(영조 10)에는 실화로 인하여 대웅전과 서상실(西上室)·향각(香閣) 등이 타버렸는데, 호경(護敬)을 중심으로 두인(斗仁)·영우(靈祐)·삼준(三俊)·광연(廣衍) 등이 합심하여 같은 해에 불탄 전각을 모두 중건하였다. 또, 『법화경』 등 100여 권을 찍어 두개의 목함 속에 잘 장식하여 보관하였다. 산내 암자로는 동쪽에 도솔암, 서쪽에 백련암이 있고, 북쪽으로는 용추암·서흥암·원적암·견성암·영악암·보제암·천진암·무주암 등의 유허지가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된 일주문이 폭포로 드는 초입에 있다.
3. 연암(燕巖) 물레방아 공원(경남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로 361)[용추폭포에서 3km, 5분 소요]
용추계곡이 있는 함양 안의면은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곳이라 그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청나라에 다녀온 연암은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 물레방아를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최초로 안심마을(안의면 신안리)에 물레방아를 설치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용추계곡 입구에 연암 물레방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매년 함양 물레방아골축제가 열리고 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 후기에 새로운 시대 사상으로 등장한 실학사상의 한 조류인 북학 사상을 배태시키고 북학 운동을 시작한 북학파의 영수이다. 북학파는 18세기 이후 청나라의 새로운 시대 학문인 고증학과 기술 문명을 배우자고 주장한 학파로서 연행사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집권층의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다. 북학 운동은 병자호란(1636) 이후 조선 후기 사회의 국가대의로 기능하던 북벌론의 시의성이 퇴색하고 선진화하는청나라의 현실을 인정한 결과였다.
4. 중식-안의 원조갈비찜(경남 함양군 안의면 광풍로 127-2)[[연암공원에서 5.8Km, 9분 소요][☎055-962-0666], 4인 8만원.
5.안의(安義) 광풍루(光風樓)(경남 함양군 안의면 강변로 303)[연암공원에서 5.8Km, 9분 소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금호천(錦湖川)의 강가에 우뚝 서 있는 우람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이 누각은 1412년(태종 12) 이안현감(利安縣監) 전우(全遇)가 지은 것으로서 그 당시에는 선화루(宣化樓)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425년(세종 7)에 김홍의(金洪毅)가 현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1494년(성종 25)에 현감이었던 정여창(鄭汝昌)이 중수하여 이름도 광풍루로 고쳐 불렀다. 정유재란 때에 불타버린 것을 1602년(선조 35) 현감 심종진(沈宗진)이 복원하고, 3년 뒤인 1605년에 현감 장세남(張世男)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6.농월정(弄月亭)(경남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안의갈비찜에서 4.2km, 8분 소요].국민관광지. 국가명승 제86호
농월정은 수많은 반석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 수많은 너럭바위 위를 혹은 옆을 쉴 새 없이 흐르는 투명한 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선 선조때 문과에 급제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시 분전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이다. 농월정 정자는 후세 사람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정자인데 이름 그대로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의 풍류에 대한 면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곳 이기도 하다 농월정은 그 경관이 너무나 뛰어나 지금은 국민관광단지로 지정이 되어 날로 늘어나는 탐방객들의 편리 도모를 위하여 군에서 개발하고 있는 곳이다 농월정의 윗부분에는 창인 청소년 수련원 이 있는데 년중 각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화림동 계곡탐방과 정신 수련으로 붐빈다. 수련원의 옆에는 황암사 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는 정유재란시 황석산 의 산성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 장렬히 순직한 인근의 주민들과 관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던 사당을 함양군에서 2001년도에 복원한 것으로 저절로 우리 조상들의 순국정신에 머리가 숙여지는 곳이다.
7.거연정(居然亭)(경남 함양군 서하면 육십령로 2567)[농월정에서 5Km, 5분 소요]
거연정은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가 지은 정자다. 1640년(인조 18)경 그는 서산서원을 짓고 거연정의 위치에 억새로 만든 초정을 처음 지었다. 화림교 앞에 세워져 있는 ‘화림재전공유허비’에는 “옛 안의현 서쪽 화림동에 새들마을이 있으니 임천이 그윽하고 깊으며 산수가 맑고 아름답다. 화림재 전공이 세상이 어지러워 이곳에 은거했다”라고 쓰여 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산서원은 훼철되었다. 이후 1872년 전시서의 7대 손인 전재학이 억새로 된 초정을 철거하고,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중수해 오늘에 이르렀다.
거연정은 우리나라 별서(別墅)정원의 전통적 형식인 계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처럼 계곡 주위에 정자와 더불어 약간의 정원 시설을 조성한 이러한 고정원이 계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원의 원형은 정자다. 별서는 본래 아름다운 산수 속에 자리한 소박한 정자로 거연정이 계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거연정을 비롯해 화림동계곡에 줄지어 있는 정자들은 각각의 작은 계원을 계속 연결하고 있어, 화림동천을 거대한 하나의 계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8. 동호정(東湖亭)(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거연정에서 11km, 12분 소요]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義州) 몽진(蒙塵)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으로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5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동호정은 함양군 안의면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전주방향으로 7km 정도의 거리에 국도와 연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동호정은 남강천 담소중의 하나인 옥녀담에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강 가운데에는 노래 부르는 장소(영가대), 악기를 연주하는 곳(금적암), 술을 마시며 즐기던 곳(차일암)을 포함하며,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수백평의 널찍한 암반이 있어 이 곳이 풍류를 즐기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동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단동의 중층 누각건물이다. 내부에는 배면의 중앙칸을 막아 구성한 판벽이 남아 있는데, 거연정과 마찬가지로 방을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면의 좌측으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을 두어 누로 오르게 하였고, 4면 모두 기둥의 바깥쪽으로 약 30cm 정도를 연장하여 계자난간을 둘렀다. 마루는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것도 원래는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으로 현재 함양군에서 원형복구를 추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