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31) - 푸르른 날에 찾은 고향과 명승
오늘(11월 22일)은 겨울기운이 체감되는 소설(小說), 두터운 옷차림이 자연스럽다. 이를 아쉬워하듯 하늘 푸르고 단풍 짙게 물든 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고향을 찾아 가문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고 자연과 문화의 기품이 우뚝한 명승을 찾아 삶의 활력과 역사의 숨결을 확인한 발걸음이 뜻깊다. ‘눈이 부시게 푸르르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시구처럼 우리 모두 나름의 그리움을 아로새기자.
단풍 아름답게 물든 명승
1. 고향에서 새긴 현숙한 삶
지난 토요일(11월 16일), 고향마을에서 둘째 숙모님의 20주기 및 송덕비건립행사를 은혜롭게 치렀다. 참가자는 경향각지에서 달려온 가족과 친척 등 50여명, 겨울 문턱의 늦가을인데도 포근한 날씨가 뜻깊은 행사를 축하하는 듯 모든 일정을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음도 큰 축복이었다. 이날 행사는 고택 뜰에 건립한 송덕비 앞에서의 예배와 마을회관에 마련한 잔치에 이어 인근의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아 이웃고을에 있는 선영 참배의 순서, 사재를 들여 송덕비 건립에 큰 몫을 감당한 종친의 배려와 뜻깊은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한 인척들의 노고가 고맙다. 이를 계기로 가문의 특장인 화목과 우애를 더 증진하는 날들로 나아갔으면.
송덕비 건립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
행사에서 전한 메시지의 제목은 ‘현숙한 여인의 표상’, 그 요지를 살펴보자.
‘하늘 푸르고 단풍 짙게 물든 좋은 계절, 우애 깊고 화목 가득한 가문의 올가을 행사를 고향마을의 고택에서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숙모님의 20주기 및 송덕비건립예배로 성대하게 치르게 된 것을 경축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우리 가족의 자랑이신 숙모님은 2004년에 우리 곁을 떠나시기까지 78년의 험난한 여정을 신혼시절에는 유복하게, 중년에는 치열하게, 말년에는 품위 있게 사시면서 가문의 긍지와 품격을 높이시고 사해에 귀감이 될 현숙한 여인의 표상이 되셨다. 온 겨레를 풍비박산의 비극으로 몰아넣은 6‧25전쟁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삶의 터전이던 서울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졌고 이곳 고향마을은 그 고통을 헤쳐 나가는 출발점, 그러나 침묵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75년이 훌쩍 지난 오늘 우리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 공덕을 길이 새기는 굳건한 반석을 마련하셨다.
우리는 숙모님 생전에 그 기초를 닦았다. 가문에서는 2,000년 12월, 숙모님이 홀로 자녀들을 양육하기 시작하여 50년 세월을 굳건하게 견딘 공덕을 기려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장한 어머니’ 패를 바쳤다.
‘님께서는 1950년 민족적 비극인 6‧25전쟁으로 남편과 생이별한 체 홀로 어린 삼남매를 키우시어 나라와 사회의 중진으로 성장시키셨습니다. 효성과 인격이 높으신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큰 긍지를 지닌 저희들은 님께서 가문의 존엄과 명예를 드높이신 정절과 승리의 삶에 대하여 한없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새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에 님의 75회 생신을 맞이하여 그 숭고한 정신과 공덕을 기리는 뜻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2014년은 숙모님의 10주기, 이때 숙모님의 공덕을 기린 자녀와 가족들은 ‘그리운 어머니! 당신의 향기를 떠올리며 이글을 바칩니다.’는 헌사와 함께 400여 쪽 분량의 추모문집, ‘어머니의 향기’를 펴낸 바 있다.
비문에는 앞서 말씀드린 숙모님의 행적과 함께 어려운 중에도 푼푼이 모은 재산을 젊은이들의 장학금으로 쾌척한 일, 후손들이 한데 모여 노래하고 잔치하라는 뜻을 담아 거액의 기금을 남기신 일 등 보통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큰 덕을 새겼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언 31장 10, 31절)는 말씀에 벗어남이 없는 숙모님의 공덕을 떳떳하게 새길 수 있음이 자랑스럽다. 성경은 이렇게 교훈한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잠언 27장 2절) 이를 실천하듯 가족 대신 건실한 종친이자 중견사업가인 인척이 숙모님의 송덕비를 건립하는 일에 앞장서서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은 하늘의 섭리이자 문중의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다 같이 그 갸륵한 뜻을 박수로 기리자.’
2. 자연과 문화유산이 빼어난 명승 탐방
내내 따뜻하던 날씨가 쌀쌀해진 주초 사흘간, 오랜 교분의 동호인들과 함께 경관 수려하고 문화적 유산 빼어난 충청북도 단양 일원을 탐방하였다. 먼저 탐방길에 나선 동호인들은 제천 지역을 거쳐 단양으로 이동, 월요일(11월 18일)에 이들과 합류하였다. 열차편으로 단양역에 도착하니 10시 반,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우람한 산세와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물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살피며 걷는 발걸음이 뿌듯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읍내의 조촐한 식당에서 점심을 든 후 남한강 잔도길 따라 명승 탐사에 나섰다.
쾌적한 유람길, 남한강 따라 여러 개의 느림보강물길이 조성되어 있다. 데크 길과 낙엽 쌓인 오솔길 밟으며 한 시간여 만에 이른 곳은 선사와 역사를 잇는 고리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전시관의 팸플릿에 이렇게 적혀 있다.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朝陽)에서 시작, 연단(鍊丹)은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며 조양(朝陽)은 빛이 골고루 따뜻하게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란다. 면적은 780평방km, 인구는 27,500여명. 남한강 유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선사문명의 발상지인 것을 일깨는 전시관을 돌아본 후 인근의 버스정류장에 이르니 두 시간여 만에 한 번꼴인 군내버스가 이내 도착한다. 버스로 지나는 터널이 현란하고 강변 따라 길게 뻗은 도심을 한 눈에 살피는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 종점인 터미널에서 내려 강변길 따라 걷다가 들른 상설시장(구경시장)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우람한 산세 옆에 끼고 이어지는 강변산책로가 절경의 연속, 걷는 도중 아들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단양일대를 탐방중이라니 얼마 전에 와본 적 있다며 엄지 척.
우람한 산세와 느림보 강물이 어울어진 단양 풍광
둘째 날, 아침 일찍 군내버스에 올라 20여km 거리에 있는 옛 단양의 중심이었던 단성면 소재지 지나 선암계곡으로 향하였다. 먼저 온 일행이 고수동굴과 도담삼봉 돌아보며 지역주민으로부터 추천받은 코스, 계곡 길에 접어드니 승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걷기 출발지점은 상선암, 잠시 후 중선암 거쳐 하선암에 이르는 6.5km 계곡길이 한편으로 운치 있고 곳곳의 낙엽길이 위태롭다. 옛적에도 아름다운 계곡이었던가,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 중 즐겨 찾았다는 안내문이 여럿이다. 퇴계는 율곡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성리학의 대가, 젊은 시절 덕망 높으신 외종조부께서 이들이 공맹(孔孟)에 버금가는 아성(亞聖)이라며 그 학문과 인품을 닮으라서 은연 중 가슴에 새긴 선현. 일찍이 강릉 오죽헌과 안동 도산서원에 들러 그 발자취를 살핀 적이 있는데 퇴계가 단양군수로 재직하며 절조 있는 관기 두향과의 애틋한 일화를 간직한 터전을 뒤늦게 밟아보는 감회가 별다르다. 선암계곡로 벗어나 이어 걸은 길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옥순봉까지 20여km의 월악산국립공원을 끼고 걷는 코스, 금년 단풍이 늦어져 제대로 살피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행복한 길이어라.(단양 8경 중 5경이 오늘 코스에 들어 있다.) 최근 들어 걷기속도가 줄어들고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모처럼의 호젓한 트레킹이 활력을 북돋누나. 옥순봉과 구담봉이 인접한 장회나루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0분 후에 출발하는 버스 다음은 두 시간 후라서 서둘러 귀로에 올랐다. 예상 밖의 충실한 탐사코스가 아름다워라.
셋째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단양역까지 한 시간여 걸어서 귀가 길에 올랐다. 읍내를 벗어나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상지대교를 건너는 발걸음이 가벼워라. 일행의 처소는 부산, 광주, 청주로 갈 길이 꽤 멀다. 부산은 하행선, 청주와 광주는 상행선이라 단양역에서 아쉬운 작별인사. 8년 전 대만일주를 같이 한 일행과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함께 걸었는데 언제 다시 걸으려나. 내내 건강하고 밝은 날들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