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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김성한 기자 마라톤 풀코스 도전
42.195㎞ 5시간56분14초
처음으로 타협하지 않는 나를 만났다
두달의 짧은 준비, 첫 도전…
반도 못 가 골반이 뒤틀렸다
힘들면 걸으면 될 줄 알았지만
서 있기마저 힘든 순간도 있다
따라잡겠다는 조바심을 버리니 편안하다
잠시 코스를 이탈해도 돌아오면 그뿐
6000여명이 출발했지만 결국 혼자
마라톤의 꼴찌는 꼴찌가 아니었다
마라톤은 인생 그 자체다
"까짓, 안되면 걷죠 뭐."
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염려해주던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응수했다. 정말 그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17km 지점, 하프 반환점을 지날 때 시큰거렸던 왼쪽 골반이 드디어 탈이 났다. 마치 칼로 인대를 도려내는 듯한 통증. 걷기는커녕 가만 서 있을 수조차 없다. 머리 속이 휑해지고 눈앞도 가물거렸다. '이러다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빠졌다.
서럽도록 파아란 가을하늘, 따가운 햇살 아래 누렇게 익어 가는 들녘, 코스모스 꽃길의 서정 그리고 그 풍경화 속의 작은 나. 드라마의 시작은 이때부터 였다.
# 심청이의 고향길을 달리다
둘러멘 배낭이 풀코스 내내 어깨를 옥죄여 왔다. 배낭 안에는 (사진기자와 통화를 위한)휴대전화와 취재노트가 담겨 있었다.
지난 24일 '심청의 고향' 전라남도 곡성군. 관공서를 빼면 3층 이상 건물 찾기가 어려운 이 시골마을에 전국에서 6000여 명의 건각들이 마라톤을 위해 모여 들었다. 재일교포 등 일본인 31명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풀코스 1위도 일본인이 차지했다). 섬진강 지류에서 날아든 백로들이 한가로이 운동장 위를 날아 다녔다. 마라톤만 아니라면 한폭의 동양화에 파묻혀 잠시 세상사를 잊기에 그만인 곳이다.
스타트 라인에 들어서자 시험장의 수험생 모양 가슴이 쿵쾅거렸다. 첫 풀코스 도전이다. 두 달 남짓 짧은 준비 기간에 '부적절한' 체중과 심폐량 등. 이전 두 번의 하프 완주 경험은 심적 안정감을 찾는데 별 도움이 되질 못했다.
'기사도 좋지만 이건 미친 짓이야. 굳이 이럴 것까진 없잖아. 그래,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거야'. 꼬리를 물고 거듭된 번뇌는 출발 축포가 울려서야 사그라들었다.
한적한 시골길에 쏟아진 알록달록 마라토너들의 긴 행렬.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날씨. 코스 아래로는 옥빛 머금은 섬진강이 흐르고 길가에는 코스모스 군락이 가없이 도열해 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꽃. "요즘 집값이…." "다음 정모는 그 횟집에서…." 누가 마라톤을 '고독한 레이스'라 했던가. 적어도 하프 반환점까지는 풀코스도 딱 '시장 마라톤'이었다. 옆사람에게 안부 묻는데 정신이 팔린 러너가 있는가 하면, 같이 참가한 아내에게 곡성과 백령도의 심청전 원조 논쟁을 들려주며 부부애를 과시하는 커플도 있었다.
도심 마라톤과 달리 '연도에 늘어 선 시민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검게 그을린 촌로들이다. "목마른 이들에게 갈증을 풀게 하소서"라며 전도에 나선 할머니, 집에서 만든 떡과 부침개를 돌리는 아낙 등. 좀체 사람 구경하기 힘든 시골에서 마라톤은 동네잔치가 된지 오래였다.
하프 반환점(10.54㎞)을 지나자 뒤섞여 함께 달리던 하프 주자들이 빠지면서 코스가 휑하니 넓어졌다. 동시에 웃음소리가 잦아 들면서 묘한 적막감이 흘렀다. 진짜 마라톤이 시작된 것이다(자전거를 타며 나를 촬영하던 사진기자는 다른 급한 취재 때문에 하프 반환점에서 철수해야 했다.)
# 마라톤은 인생의 미니어처
하프 반환점의 음수대는 하프·풀코스 주자들이 뒤섞여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진짜 마라톤이 시작된 것은 이 이후부터였다.
초반 페이스는 양호했다. 고저없이 평탄한 길. 연습 때와 달리 호흡도 안정적이었고 체력 소모도 많지 않았다. '이거 잘하면 없는 기록도 깨겠는 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17㎞ 조금 못미친 곳에서 벌써 반환점을 돌아 나를 향해 달려오는 선두권과 마주쳤다. 그 가운데 찰나처럼 스쳐가는 한 사람. 양 손목이 없다. 아, 그에 비하면 내가 치뤄야 하는 고통은 얼마나 과장일까. 숙연함과 존경심이 교차됐다.
문제의 17㎞.
"무리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라"는 레이스 패트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계속 가기로 결정했다.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어정어정 걸었다. 고통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길 10여분. 감각이 무뎌진걸까, 통증이 어느정도 사라졌다. 다시 달렸다. 하지만 현격이 떨어진 속력.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멀찌감치 앞서 갔다. 마치 혼자서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다.
드디어 반환점. 이제는 갈 길이 왔던 길보다 짧다. 언제나 이때까지가 고비다. 허기가 몰려 왔다. 음수대에서 물, 바나나, 초코파이, 김밥 등을 끝도 없이 삼켰다. '이 많은 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다 들어가는걸까'.
반환점을 기점으로 다리의 통증은 10분 간격으로 들락날락 찾아왔다. 그것도 오른쪽·왼쪽 사이좋게 교대로. 결국 남은 구간 전체를 10분 간 뛰고 걷고를 반복해야 했다. 여전히 길은 멀고 아득하다.
어느덧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서너명의 주자가 아직 내 뒤에 있었지만, 사실상 꼴찌다. 그러나 따라붙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사라지면서 알 듯 모를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렇다. 삶이 피폐해지고 행·불행의 잣대 모두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이 비우니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우리네 인생. 마라톤은 우리 삶의 미니어처였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대가없는 결과는 없다 △어떤 것(완주·기록)을 가지려면 나머지(체중·생활습관)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도 인생과 너무 닮았다.
# 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뜩이나 인적 드문 시골길은 경찰의 차량통제로 공허감마저 몰려 왔다. 구도자의 수행같은 '나홀로 마라톤'. 그러나 진공 같은 이곳에서도 만남과 헤어짐은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 24㎞ 지점. 뛰는 듯 걷는 듯 내 앞으로 힘겹게 달려 오는 마지막 주자가 보였다. 나보다 5㎞이상 뒤처져 있다. 반가운 나머지 한마디를 던졌다. "(반환점 얼마 안남았으니) 힘내세요." 꼴찌가 또 다른 꼴찌에게 힘을 주다니, 우습다. 그래도 뿌듯했다. 추석 선물세트 광고문구 같지만, 역시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샛길에서 길이 헷갈렸다. 이런 창피가, 마라토너가 길을 잃다니…. 마침, 도로변 원두막에서 자원봉사 나온 마을주민들이 모여 술잔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따 (뒤에서)일등이구먼 대단하요" "고생 많은디 한잔 걸치쇼." 엉겁결에 맥주 두 잔으로 목을 축이고 방향을 물은 뒤 다시 길을 재촉했다. 시골마라톤 대회에서나 있음직한 해프닝이다.
마을을 벗어나 다시 작은 돌다리를 건너자, 어디서 온지 모를 백구 한 마리가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외모로 보아 썩 뼈대있는 혈통 같지는 않다. 잠시 멈춰,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길동무가 되려는 듯 녀석은 나를 따라붙었다. 그렇게 '곡성의 파트라슈'와 함께 잠시 외로운 레이스를 잊었다.
# 아름다운 꼴찌는 있다
출발한지 4시간, 32㎞ 지점. 엎치락뒤치락하며 동행하던 마지막 여자 러너가 막판 피치를 올리며 나를 따돌리고, 저 멀리 시선 너머로 사라졌다. 내 뒤의 나머지들은 일찌감치 회수 차량에 몸을 실었다. 이제 진짜 '꼴찌'가 된 것이다.
이날 풀코스 완주 포기자는 100여 명. 시간이 흐를수록 회수 버스의 유혹은 달콤하고 강렬했다. 여기서 그만둔들 아무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결정하든 선택은 내 속에 있었다. 하지만 걷고 또 뛰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온 길인데…. 나에게 허락된 6시간(제한시간). 아직 2시간 남짓 남아 있다.
후들대던 다리는 완전히 맛이 갔다. 이제 뛰어도 뛰는 것이 아니다. 마치 트레드밀 위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같다.
자원봉사단과 경찰이 철수를 시작하면서 2.5㎞ 마다 놓여진 음수대는 거의 파장 분위기다. 터덜터덜 달려오는 나를 보자 짐짓 놀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더 이상의 주자는 없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곧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갈채. 경관 한 명은 조용히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지나가던 버스 승객들도 연신 "파이팅"을 외쳐댔다. 멋쩍었지만 손을 흔들며 미소로 응답할 수밖에.
차량 탑승 권유를 더는 체념한 듯, 패트롤카와 경찰수송버스(닭장차) 그리고 앰뷸런스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안전도 우려됐지만 규정상 최후의 주자까지 에스코트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이다. 본의 아니게 경찰 1개 소대와 앰뷸런스의 철통 호위를 받는 귀하신 몸이 됐다. 내가 가야 그들이 가고, 내가 서면 그들도 멈춰야 했다. 수시로 만나는 주민들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야 하는 나. '무슨 미스코리아도 아니고'. 이런 부담스러운 카퍼레이드는 '숨어 있던 또 다른 꼴찌'가 발견되기 전까지 한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순서는 있되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 게 마라톤이다. 꼴찌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 이건 마라톤만의 마술이야~.
#그대, 왜 달리려 하는가
'살아가는 데 있어 꼭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이유일 수도 있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사막이 있고 거기에는 나만의 신기루가 있다. 그 속에선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풍요롭다. 지치고 외로울 때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신기루 하나가 있다는 것. 그것은 나이 마흔다섯에 얻은 신기한 선물이다(사하라사막마라톤을 완주한 최초의 한국인 박중헌 씨의 이야기를 다룬 KBS 일요스페셜)'.
뛰다걷다를 반복하며 지나온 39㎞(5시간30분). 제한시간을 맞추려면 남은 3㎞를 30분내에 주파해야 한다. 물론 평소였다면 식은 죽먹기만큼 쉬운 거리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제부터 마지막 투혼이 필요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재빨리 몸을 풀었다. 모자를 꾹 눌러 쓴 채 아스팔트의 백색 실선만 응시하고 무작정 달렸다.
40㎞….
41㎞….
나머지 1㎞를 남겨뒀을 때 대회에 함께 참가한 신문사 선배가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괜히 사서 고생"이라며 혀를 차는 그에게서 남은 구간을 에스코트 받았다.
시간이 촉박하다. '끙~' 고통에 절인 몸뚱이에서 신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고통의 수치값이 극한으로 치닫았다. 드디어 피니시 라인. 순간 눌러 쓴 모자 밑으로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배번호 7535번을 달고 떠난 42.195㎞의 여행은 5시간56분14초만에 막이 내렸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러고도 마라톤이냐'고. 또 누구는 말할지 모른다. '그건 마라톤이 아니라 자학'이라고. 옳은 말이다.
'그대, 왜 달리려 하는가'.
러너라면 누구나 받는 질문이며, 동시에 던지고 싶은 물음이다. 때론 달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 달리는 이도 있다. 모든 러너들에겐 달리는 그만의 이유가 존재한다.
마라톤 취재, 그것은 핑계였다. 우리는 곧잘 '최선(最善)'이란 말을 남발하며 살아가지는 않을까. 누군가 그랬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할 만했다'거나 '다시 한다면 더 잘할 텐데'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고. 최선이란 더 나아갈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려졌음에도 타협을 거부하는 순수한 자신과의 대면일 게다. 마치 벼랑 끝에 서서 떨리는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 것처럼. 이것이 내가 달린 이유이며, 취재하고자 한 목적이다.
먼 훗날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느냐' 누군가 물어 온다면 주저없이 그날 섬진강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덧붙여 서른일곱 나이에 나도 언제고 꺼내 볼 수 있는 나만의 신기루 하나가 생겼다고.
첫댓글 너무 좋은 글이기에 옮겨왔습니다.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이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순서는 있되 서열은 존재하지 않는다....`최선`을 다한 골찌의 완주기...동병상련의 마음이 되어 잘 읽었습다.
9월 한달 내내 대회에 참가하고 달리면서 많은 일도 있었고 많은것도 깨달았습니다.. 삶을...주위사람을... 자신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된 힘든만큼 얻은것도 많지요... 내일 행복한 달리기를 하겠습니다..
풀을 한번이라도 달려본 마라토너라면 구구절절 와닿는 글입니다.로제형님이 동반주좀 해주시지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