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대표, 이번에 골프 스윙 자세를 바꿨어요. 그랬더니 드라이버 거리가 20야드는 더 나가요." 이 말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더군다나 그 말을 한 분이 골프 방송 사회도 보시고 골프 칼럼도 쓰신 분이니 자세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마음으로는 그의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그분과 같이 골프 라운딩을 하는데 정확하게 이븐, 72타를 치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어 그분의 골프 실력에 대한 신뢰는 100%인 상태였습니다.
능변가인 그답게 청산유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3년간 공직을 하는 동안 골프를 못 치다가 다시 골프를 쳐보니 무엇인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허리도 굵어져 잘 돌아가지 않고 따라서 거리도 많이 줄었습니다. 고민과 연구가 거듭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발견하였습니다. 골프는 허리가 먼저 돌고 손이 따라 돌면서 백스윙을 하였다가 다시 허리를 먼저 돌리고 채를 쥔 손이 따라 돌면서 스윙이 이루어지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채로 공을 맞힌다는 의미의 '힛팅'라고 하지 않고 채가 몸을 따라 돌아간다는 의미로 '스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유연성이 떨어지니 허리는 돌지 않은 상태에서 손만 돌아 백스윙을 하고, 다운스윙 때는 허리는 돌지 않아 스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가 되다 보니 허리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손으로만 때리게 됩니다. 즉 '힛트'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고개를 드는 헤드 업을 비롯해 갖가지 잘못된 동작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결국 정타로 스윙이 되지 않아 거리와 방향에 모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허리가 돌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허리를 돌리지 말고 손으로 채를 들어 올렸다가 손으로 스윙이 아닌 힛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입니다. 자! 상상해 보십시오. 다리로 땅을 굳건히 디디고 허리는 가만히 둔 채 골프채를 든 손을 몸에서 최대한 떨어지게 하고 손을 들어 백스윙을 합니다. 이때 눈은 매처럼 공의 뒤쪽을 노려봅니다. 허리가 돌아가지 않으니 백스윙은 자연스럽게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손을 들었다가 다운스윙할 때 골프채의 헤드(끝 부분)로 골을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이때 핵심은 공을 계속 노려봅니다. 마치 야구할 때처럼 말입니다. 헤드는 타격 방향 기준으로 1시 방향으로 멀리 던지듯이 때립니다. 그러면 공을 때린 후 자연스럽게 채가 멀리 던져지니 원심력으로 몸이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힛팅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공을 때릴 때(임팩트) 골프 헤드에 힘이 실려 거리가 더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을 끝까지 보니 공을 정확하게 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백스윙을 하면서 허리를 돌리느라 대개 공을 눈에서 떼게 되고 다운스윙 때도 헤드 업을 하느라 공을 보지 못하고 공을 정타로 맞추지 못해 거리가 형편없이 적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론은 완벽한 듯하였습니다. 적어도 저로서는 그의 이론에 반대할 논거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허리가 신통치 않은 저로서는 허리를 쓰지 않고 치는 타법이라니 얼마나 축복입니까? 그분의 설명을 듣고 후반전부터 그 타법대로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라이버뿐만 아니라 모든 채를 그 타법대로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두 번 공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더니 세 번째부터는 공이 똑바로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동반하신 모든 분들이 놀라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공을 치는 제 자신이 골프가 너무 쉽게 느껴졌습니다. 골프에 복음이 내린 듯하였습니다. 당연히 스코어도 좋았습니다.
집에 와서 이 기쁜 소식을 가만히 둘 리 없습니다. "여보 놀라운 타법을 배웠어요. 이제 골프는 끝났어요. 당신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드라이버 20야드는 더 나가게 해 줄게요." 그러나 아내는 저의 이 말을 곧이듣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제가 86년부터 30년을 골프를 치면서 골프 스윙에 대해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이 적어도 100번은 더 되었으니까요. 드라이버 스윙, 아이언 스윙, 퍼팅 등 각종 부문에서 타법을 발견하고 각종 채를 제작하기도 하는 등 골프를 연구하는 자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제가 골프를 연구하지 말고 그 자세로 연습하였더라면 지금쯤 선수가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또 골프 스윙을 완성했어요? 이번이 몇 번째인 줄 알아요."하는 아내의 구시렁거림에 굴복할 제가 아닙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아직 인간이 발견하지 않은 궁극의 골프 타법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저의 골프 30년은 그 타법을 발견하기 위한 구도의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구도자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저의 골프 스코어는 줄지 않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타법을 발견할 때마다 저에게 훌륭한 제자가 있다면 제가 타이거 우즈의 스승인 리드베타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또 다른 궁극의 타법이 어느 현인에 의해 전수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실제로 그 타법은 저의 몸을 통해 효용성이 입증되기까지 하였으니 저의 희열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아내는 반신반의하며 저의 가르침대로 거실 카펫 위에서 따라 해봅니다. 착한 아내는 이번에도 저의 위대한 발견에 결국 동의하고야 맙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 골프 복음을 전하기 바빴습니다. 다들 그 현인의 골프 실력을 잘 아는지라 저의 타법 설명에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저는 점점 힘이 났습니다. 시니어 골프 계에 대파란이 일어날 것 같은 환상에 빠졌습니다. 일주일 후 다시 골프 라운딩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그 위대한 힛팅타법으로 한 타 한 타 쳐나갔고 즉석에서 받아들인 또 한 명의 제자도 힛팅타법으로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샷이 평소 실력보다 훨씬 정확하고 멀리 날아갔습니다. 의심을 하던 또 다른 동반자도 슬그머니 관심을 보입니다. 결국은 저를 따라 한두 번 쳐봅니다. 예상대로 공이 멀리 날아갑니다.
그런데 그 골퍼가 툭 한마디 던집니다.
"이 타법이 공이 잘 맞는 것은 분명한데 이 타법으로 계속 치면 오른쪽 팔꿈치 엘보가 고장 날 텐데요."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골프는 이렇게 힛팅타법의 평정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오른쪽 팔꿈치가 아파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통증이려니 하였는데 점점 아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평소 허리나 무릎이 아플 때마다 신세를 지는 정형외과를 방문하였습니다. 김원장은 제 아픈 부위를 설명 듣자마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배님 혹시 골프 치실 때 야구 타법으로 치지 않으셨나요. 오른쪽 팔꿈치를 허리에서 띄우고 치셨지요. 그렇게 하면 십중팔구 선배님처럼 오른쪽 팔꿈치에 무리가 생깁니다. 이를 테니스 할 때 많이 생긴다고 '테니스 엘보'라고 합니다."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귀신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원장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팔은 무엇에 힘을 줄 때 팔꿈치를 구부리고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팔을 펴고 무엇을 때리면 엘보에 무리가 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골프가 팔꿈치를 구부리고 허리에 붙이고 운동하게 설계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팔을 펴고 팔꿈치를 허리에서 떼고 허공에서 힘을 주니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는 것이지요."
힛팅타법이 복음에서 재앙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팔꿈치 치료를 시작하였고 당분간 골프를 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테니스 엘보로 고생한다는 말을 들은 어느 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조 대표, 이제는 본인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골프를 더 잘 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즐기세요." 이 말이 메아리처럼 가슴속에서 계속 울려댑니다. 그러나 수긍하기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학파가 있다고 합니다. <역사는 반복한다> 학파와 <이번만은 달라> 학파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번만은 달라> 학파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점점 나이가 들면 <역사는 반복한다> 학파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저의 이 소동도 결국은 정통 골프 타법이 승리 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 또 한번 더 <역사는 반복한다> 학파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이번만은 달라> 학파에서 활동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학파 소속이십니까?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6.29.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