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 상큼함보다는 바람 불어 서늘한 오늘 아침.
이번 주간은 아무래도 쉬는 게 남는 그런 날들이 많아 모처럼 쉬어가기로 했다.
스케줄은 밀어두고 그저 마음가는 대로 놀아볼 그런 날이 주어진다는 것, 요즘 일상에서는 행운처럼 여겨질 터.
어쨋거나 비오기 전날에 텃밭 정리들을 해두고 모종들을 사다 지극 정성으로 심었다.
비록 아주 많거나 다양한 종류들은 아닐지라도 내 앞의 야채 마켓은 될만큼 조촐한 야채군단들을 심었다는 말이다.
물론 고라니나 멧돼지 출몰에 대비하여 울타리를 만들고 그들이 탐내는 채소들은 울타리로 부터 멀찍이 심어놓았다.
하였어도 번번이 산짐승들의 공격에 초토화 되어버리는 밭은 어쩔 수 없어 포기할만도 하련만 특히나 감자, 고구마.
그래도 꿋꿋하게 텃밭을 일구는 이유는 그저 산골의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만 식탐을 부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산짐승들로 인해 마구 헤쳐져버리면 또 그런대로 주어지는 만큼의 욕심만 취득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부쩍 세월값을 넘겨버린 채로 우리 부부는 끙끙대며 같잖은 텃밭을 일구고 뿌듯해 하면서
모자란 야채는 추후 다시 구입하기로 하고 일단 텃밭 일굼을 마무리 하였다.
다양한 고추종류와 토마토 종류, 오이 , 가지, 상추들과 쑥갓, 치커리, 아스파라거스와 이미 자라는 중인 부추와 방풍...
첫날 미처 사오지 못한 옥수수와 바질과 루꼴라, 근대, 아욱, 시금치, 겨자채, 궁채...그리고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린 당귀까지.
이런 종류들이 우리 텃밭의 주인이 될 참이고 무설재 쥔장들은 그 채소들이 잘자라도록 관심과 애정도를 발휘하여
물부족이 오지 않도록 혹은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함이 마땅하나
요즘은 개인적인 일상이 분주하므로 과연 올해도 작년만큼 해낼 수 있을까 싶긴 하다.
암튼 엊그제 그렇게 텃밭 관리를 하고 나니 오늘은 마음도 뿌듯하고 하여 일찌감치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헌데 산책을 가기도 전에 어디선가 연기와 더불어 코를 찌르는 듯한 매캐한 탄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살펴보자니 바로 곁자락에 새로 생긴 비닐하우스 근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였다.
해서 한달음에 달려가자니 그렇게 바람이 엄청 불어제끼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비닐하우스 남자가 불을 피워놓았다.
순간 성질이 욱하고 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저씨...오늘같이 바람부는 날에 웬 불을 피웠다는 거에요? 불티가 날아가면 어쩌려고"
"잔불인데 어때요? 이 정도면 괜찮지"
"어머나, 이 아저씨가 무슨 소리예요? 빨리 물 떠와요....큰 일 날 소리를 하고계시네. 그 곁자락 풀들도 말랐구만"
하지만 난 물 떠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연기가 풀풀나도록 발로 이미 불을 끄기 시작하고 있었고
"빨리 물을 가져오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아, 미칠 지경인데 왜 저렿게 행동은 굼뜬 것인지.
"이봐요...저 흔들리는 나뭇가지 보세요, 바람이 저렇게 거세게 부는데 뭐 잔불이라 괜찮다구요?"
정말이지 그때는 확 돌아버리는지 알았다.
하도 서슬퍼렇게 소리지르고 발로 불을 끄고 있으려니 동작도 느린 그 아저씨는 겨우 물을 가져온다.
"빨리 확 부어버려요. 그리고 삽으로 흙을 퍼와서 덮으라구요"
기어이 그 느려터진 남자에게 쏘아부치고 이장네 집으로 발을 옮겼다.
그런데 그 이장 역시 불티가 날리도록 가마솥 불을 지피고 있어 그야말로 소리를 빽 질렀다.
"무슨 이유로 가마솥 불을 피우는지 모르겠지만 불티가 날아가지 않게 막던가 잘 살펴보고 있어야지
저거 보세요...저런 것이 날아가면 이 산자락이 어찌 되겠어요? "
어이가 없다.
마을을 책임지는 이장까지도 불에 대한 개념이 없다니 싶어
"여긴 소방차도 못들어오는 그런 곳인데 어째 그렇게 마구 방심하면서 불을 때시는 거에요?
그리고 저 아래 비닐하우스 남자도 지금 불을 피우고 있어서 한바탕 하고 오는 길인데 이장님까지?
정말 환장하겠네요....그렇게 개념이 없으신가?
여하튼 일단 불 정리 잘 하시고 마을도 잘 살펴보세요. 누가 아무 생각도 없이 불 피울 수 있으니 다녀보시라구요"
기가 막혀도 한참이다.
사실은 신고 하고픈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겨우 참고 이장한테 갔더니 그 모양이다.
그야말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산불인지라 민감사안인데 어찌 저리도 개념이 없다는 말인지 어이가 없다.
요즘 여기저기서 불 났다는 소리에 신경도 예민해지긴 했지만 이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처럼 산골살이 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건조한 날씨에 바람부는 날은 정말 조심해야 하거늘
어째서 생각도 없고 개념도 없더라는 것인지 짜증이 확 올라와서 산책은 무슨, 마음만 상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치미는 부아를 가라 앉히고 이제 겨우 불조심 경고등을 켜는 중이다.
제발,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봄바람에는 개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수십년 일궈진 숲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른다는 것인지.
늘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에 저런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지천이라니 정말 짜증이 인다.
무튼 산책길은 망했어도 다시 풀 뽑으러 나가야겠다.
텃밭의 부족한 모종을 사러간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첫댓글 정말 요즘 건조한 정도가 불나기 딱 좋은데...
안전 불감증 이네요.
에효효효
정말이지 왕짜증 그 자체....
어찌 그리 안전불감증이더라는 것인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