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 31 세례를 베푸는 것 - 요 1: 33 나에게 말씀하시되
요 1: 31 세례를 베푸는 것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
세례 요한은 물 세례를 통해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아를 드러내고 증언하려 했다.
그의 임무는 두 가지이었는데, 하나는 사람들로 죄를 회개케 하여 메시아께 대한 믿음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예수와 세례 요한은 친족 관계다.
* 눅 1: 36 –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따라서 세례 요한이 예수를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세례 요한의 진술은 바로 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본문의 원문인 '카고우크 에데인 아우톤'(*)을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먼저 '카고'란 일반 사람들이나 무지한 종교 지도자들처럼 '나 역시도'라는 뜻이다. 그리고 '알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데인'은 경험에 입각한 앎을 뜻하는 '기노스코'(*)와는 달리 '영적인 앎'을 주로 의미한다.
* 막 1: 24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 고전 2: 2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본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함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즉 세례 요한의 사역의 골자(骨子)는 메시아의 도래를 예비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의 시행에 있다.
* 겔 36: 25 -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 슥 13: 1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당시의 세례는 개종자나 참회자를 물속에 완전히 잠갔다가 일으키는, 현대적 표현으로 하면 '침례'였다.
* 요 3: 23 –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 행 8: 36-38 –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그러나 이와 같은 '침례형 세례'는 물이 부족한 지역이나 지역별 관습상의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 (물뿌리기, 관수식, 침례)로 병행되어 왔다.
특히 세례에 관해 언급한 최초의 문서인 [디다케]에 보면, 물의 양이 충분하지 못 할 경우 세 사람이 함께 침례 의식을 받는 일과 물을 머리에 붓는 일도 허용되었다(the Didache 제7장).
이것은 기독교의 세례가 형식의 고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본질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마 28: 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롬 6: 4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 골 2: 11-12 –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요 1: 32 성령이 비둘기같이 -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
1]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라는 것을 증언하였다.
물세례는 죄 사함의 상징이며 성령 세례는 그 실체이다.
* 엡 5: 26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실제로 죄인들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새 생명을 주신다. 그것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행하시는 중생(重生)의 사역이다.
* 요 3: 5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딛 3: 5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2]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하늘'(*, 우라노스)은 일반적으로 지상과 대칭되는 창공과 우주를 의미한다.
그리이스인들은 하늘을 신들의 거처인 올림푸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란
(1) 하나님에 의해 피조 된 창공을 의미한다.
* 창 1: 6-8 –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 행 4: 24 -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의미한다.
* 전 5: 2 -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 마 5: 16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막 11: 25 -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위의 두 개념은 엄밀하게 말해서 서로 판이하다. 즉 피조 된 이 세상과 영원한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나라는 동일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의 '하늘'은 후자를 가리킨다. 이는 그리스도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듯 성령도 함께 계셨음을 나타낸다.
여기서 성령의 강림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증(保證)하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성령이 '불이 혀'(행 2: 3)로 상징된 것과는 달리 예수의 수세(受洗)시에 비둘기로 상징되어 강림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죄에 대해서 순결하신 그리스도의 본성.
* 마 10: 16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 히 4: 15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 온유하신 그리스도의 성품.
* 마 11: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
* 아 1: 15 -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 마 3: 17 -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막 1: 11 -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눅 3: 22 -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께 임한 성령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세례 요한이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임하였음이 분명하다(33, 34절).
요 1: 33 나에게 말씀하시되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
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앞 구절과 연관되어 세례 요한의 예언자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이 표현 방식은 계시를 전달할 때 선지자들이 주로 사용한 양식이었다.
* 사 1: 2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사 25: 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 렘 2: 2 –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 렘 6: 16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 겔 3: 24 –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이는 세례 요한이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증언한 것처럼 자신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이 그리스도의 도래(到來)를 예언하고 준비하는 자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2]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32절의 반복적 증언으로서, 32절이 요한의 목격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본문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근거한다.
3]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성령 세례란 성도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함께 거듭나는 중생의 경험을 가리킨다.
이 근본적인 변화의 체험을 통해 어두움의 자녀가 빛의 자녀로(12절), 그리스도의 지체로 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전 12: 13-14, 27 –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여기서 물과 성령은 서로 대조적인 관계에서 언급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설교한 모든 것이나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눅 3: 3)는 궁극적으로 모두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까지 제한성을 가졌다는 것 뿐이다.
* 행 2: 8 -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결국 요한의 세례는 성령세례를 예표하고 준비시키는 의의를 지닌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