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 평화대회 준비위원회를 열고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2004생명평화대회 : 참회와 성찰의 길
■ 개 요
■주제 : 2004생명평화대회 - 참회와 성찰의 길 ■일정 : 2004. 10. 15(금)~10월 17일(일) ■장소 : 지리산 실상사 일대 ■주최 :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주관 : 2004생명평화대회 준비위원회
■ 프로그램
<첫째날> 삶나누기 -도법스님을 비롯하여 순례단과 함께 나누는 순례이야기 등 -지역별 등불마당 -지역간 대화도 자유로이 펼치기로 해요
<둘째날> 12시이전 도착/접수 (생명의 나무 가꾸기)
1. 여는마당(정화의식) 걷기명상 -> 108배 -> 부정거리와 해원굿
2. 학술마당 : 왜 생명평화인가 - 기조강연:왜생명평화인가(참회와 성찰의 길) - 영상물 : 전세계의 전쟁과 폭력 -> 자연과 환경파괴 -> 인간들의 헌신과 노력 - 생각나누기 : 나의 변화 세상의 변화 (크고 작은 실천방안 내놓기)
3. 저녁식사 : 발우공양을 성만찬 의식과의 결합 등으로 식사의식
4. 문화마당 : 한 팀을 섭외해서 진행 +영상으로 보는 생명평화탁발순례 +지역등불들의 소개와 공연도 함께 펼침
5. 신명풀이
<셋째날>
1. 화백회의 시연
2. 사업보고 및 결의 - 사업보고 (영상) - 결의와 선언문 - 생명평화서약문 낭독 - 대국민호소문 - 결단의식
3. 생명문화체험마당
■ 참여 및 홍보방안 ※조직적 참여방안 (기존 순례지역은 9월중으로 지역운영위원모임, 지역모임을 갖도록 한다)
※홍보방안 (생략)
※참가비 : 개인 2만원, 가족 3만원 이미 등불회비도 내고 계신데 참가비를 책정하는 것이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요. 그렇지만 현재로선 우리 평화결사의 재정이 이런 행사를 거뜬히 치러낼 만큼이 안 되어요. 이제 겨우 경상비를 안정화시켜가는 선상에 있기 때문이죠. 후원사나 협찬 이야기도 나왔지만, 각자가 생명평화를 가꾸는 서약을 한 결사조직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지역에서나 등불님들이 후원하시겠다고 하는 것은 예외고요.^^ 그래서 참가비를 받기로 했습니다. 식비, 숙박비, 행사비로 쓰여지겠지요.
(개인참가비와 가족참가비에 차등을 두기로 했어요. 당일 긴급하게 맺어지는 가족들도 있으면 좋겠다... 특히 결혼 못한 총각, 처녀들... 이런 이야기 하면서 웃었어요)
지리산 평화결사 http://www.lifepeace.org
|
첫댓글 핫~~ 나두 가고파..... 가족 만들어서...^^;;
ㅋㅋㅋ..그날 저는 참석 못합니다....그러나 재미와 의미는 좋을거 같아요...많이 참석해서 가족 만들어 보세염^^
해원굿은 어울리지않는 것같습니다....<사견입니다..>
왜 안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셨다고 믿기에 / 범어사(?) 모 스님이 칠성각을 없앤 일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제 생각에는 무방 하다고 생각 합니다.원래 굿이란 (요즘 무속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고 성향이 변질이 된점이 많지만)우리민족의 넋풀이 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종교란 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지역에 맞게 아우러져 조금씩 다듬어져 갑니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것은 우리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며 최초의 부처가 전달하고자 했던 삼라만상의 군상이 이치를 제대로 알고자 합입니다.그러나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또한 산자들과 대물림되는 삶속에서 어떠한 행위는 분명히 일어나고 또한 행위를 하다 가야 됩니다.
어떠한 의식적인 행위를 하는것은 천.지.인 을 하나로 묶어주는 어울림의 공동체의 실현이라고 생각 합니다.또한 "평화"라는 취지는 어느것 하나 거스르지 않고 같이 가는것이라고 생각 합니다.이 모임이 단순히 불교인의 모임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이건되고 저건 안되고가 아니라 얼마나 잘 둥굴게 굴러갈수
있냐의 문제 이겠지요.또한 어떠한 단체나 모임이 결성이 되면 너무 자기들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달려온 세대이지만 이제 모든것을 행할때는 정말 대화만이 가능 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시대의 모습을 글러서 정화된것이 문화요 우리가 본받아야할 유산입니다...서양의 유명사회학자 베버가 남긴 저서에서 우리의 불교모습은 무속의 미신적 치부였다는 것에서 두가지의 교훈이 있는것같습니다..첫째는 조선인의 무지/비국제화에 있지 안았을까요
둘째는 한국불교에 널리 퍼져있는 비불교적/미신적요소에관한 개혁의 부재 이러한사실은 비단 불교뿐만아니라 너내할것없이 우리사회전반에 걸친내용이겠지요 베버가 쓴 책에서 지적한 반페이지도 안되는 한국불교사(내용) 곧 우리 역사기술....차암 부끄러웠지요 얼마나 우리 성찰과 참회가 필요한지요 큰 가르침입니다
평화는 혼돈이 아닌 정리된 질서이겠지요 이런점에서 실상사가 펼치는 생명평화결사는 우리에게 소중하지요
최근 KBS국영방송에서 기독교의 우리현대사에 끼친영향과 부저적인면에관하여 상당히 개관적인관점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우리 기독인들이 행하는 물량주의 대형화 이웃을 돌보지않게 되어 버린 것에대한 비판을 겸허이 받아들여
한국현대사에 가장 영향을 끼쳤다는 객관적인 비평에 맞게 잘못된 점에관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어 지속적인 기독교 자기갱신이 필요하겠지요...
무속은 사라진게 아니라 불교와 융합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요.절집에서 행해지는 의식은 원래불교에는 없었던 무속적인 (그러니까 우리의 오랜 의식들)사례가 굉장히 많습니다.절에도 각각 추구하는 수행법이 달라 스님들이 맡아서 하는 분야도 다름니다.선을 수행하시는분,염불을 하시는분,포교당을 하시는분..등
다양합니다.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무속을 껴안을수밖에 없었던것은 삶과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지금의 무속이 어떤지는 몰라도 그 시대에는 무속이 결코 하등한 종교는 아니었다고 생각 합니다.어찌보면 불교가 들어와서 무속을 하나로 통일 했다고
볼수도 있겠지요.좀더 인간들이 신들이나 귀신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능동적으로 살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그러다 또다시 유교가 들어와 제사라는 것이 중요해져서 제사가 전부인 때도 있었지요.종교란 인간이 만들어 낸것이고 그 인간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해가고 수용하고 다듬어 집니다.
이제 세계의 정보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이 시점에 종교도 변화가 일어 나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어우르고 아울러지는 공동체화 되어가는것은 소외되고 삭막했던 도시문명의 대한 반격 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것은 불교는 무속만큼은 (무당이나 무당집)철저히 배척 한다는 것입니다.무속을 수용했는데 왜,무속은 무속 나름대로 자생해가고 있는 걸까요...어느나라나 무속이 존재 하지만(사이비 신앙과는 별개로 치부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함)우리나라의 무속은 각 지방을 막론하고 그 의식이나 진행 되어진
형태는 비슷 합니다.우리는 무속을 외면하지 못하면서도 싫어하고 또한 어떠한 두려운 대상이기도 합니다.이제는 음지화 되어 있는 무속이 제대로 정리되어져 올바른 인식하에 노출이 되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불교와 무속의 구분이 애매하여(또한 혼동하며 믿는 사람들도 많은듯 하여)무속집에가도 부처상이
있고 또한 무속인들도 절집이나 등등의 기도를 하러 다님니다.무속인은 자기의 신을 모시고 있으면서 부처님을 또한 섬깁니다.또한 무속에는 도교적인 냄새도 많이 풍깁니다.불교가 무속을 부분발췌 한것인지 무속이 잡식성인지 그 경계가 참으로 애매 합니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보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근접하여 쓴 글입니다.원시 공동체(문화의 태동기)에서 이제는 탈 공동체(문화적 결합)화 되어가고 있는 손으로 잡을수는 없으나 어떠한 흐름이 느껴지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正見을 가지면 굿판도 佛法이 됩니다. 正見을 갖지 못하면 불법도 邪法이됩니다. 무엇이 정견입니까? 緣起 와 無我 입니다.
후박나무님 만법귀일인가요?.....().....조은 행사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