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선이란 / 진제스님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수행법'입니다.
마음은 모든 부처님이나 모든 중생이나 조금도 차별이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은 마음광명이 뚜렷이 밝아 있는 분이요, 중생은 번뇌의 구름에 가리워져 마음이 어둡고 미(迷)할 따름입니다.
이 마음은 모든 중생이 다 갖고 있어 일상생활에 쓰고 있습니다.
쓰고 있지만 그 광명을 밝히지 못한 고로, 각자의 업을 좇아서 천 갈래 만 갈래의 번뇌가 휘몰아칩니다.
아만심, 교만심, 시기심, 질투심, 탐심, 애정, 공포, 불안.. 이러한 등등의 잡된 생각이 마음 가운데 쉴 날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음은 만 가지 진리법의 주인입니다.
이 마음을 깨달아 알 것 같으면 만법에 임의자재 할 수 있지만, 깨닫지 못할 때에는 온갖 무명업식으로 인해 번뇌가 쉴 날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선수행을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이 마음을 밝혀서 만법의 당당한 주인이 되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참선법을 익혀서 꾸준히 정진해 나가면 중생의 온갖 악조건인 마음의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번뇌가 다한 거기에서 마음광명이 뚜렷이 밝아지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항시 밝아서 즐겁고, 온갖 업(業)의 장애가 다 소멸된 고로 세상사 모든 것이 원(願)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참선법은 누구라도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서 선지식이 지도하는 대로 행(行)해 나간다면, 금생에 다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여 나고 날 적마다 멋진 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요즈음 세간(世間)에서는 흔히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는데, 그것은 빨간 거짓말입니다.
마음은 절대 생각이나 말로 비운다고 해서 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다겁(多劫)의 많은 생(生)에 지어온 습기에 중중(重重)으로 얽혀 있습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를 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여자들은 또 잘난 남자를 보면 좋게 느껴지고,
또, 돈을 보면 욕심이 생기고, 좋은 물건 보면 가지고 싶고, 시기, 질투, 공포, 불안, 등등.
이러한 것들은 무수 생(生)을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축생으로도 태어나고, 육도를 돌고 돌면서 익히고 익혀온 습기(習氣)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고질적인 습기를 어찌 생각으로써 '안 해야지' 한다고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한량없는 신고(辛苦)의 정진을 통해서만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구하는 화두일념이 현전되어 모든 외경계, 내경계를 몰록 다 잊어버리는 사심경계(死心境界)가 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야 됩니다.
죽은 송장과도 같고 돌사람과도 같은 사심(死心)의 경계가 되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좋은 경계를 대하든 나쁜 경계를 대하든 무심(無心)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것은 무한한 수행 끝에 얻어지는 결과이지, 세상 사람들이 쉽게 말하듯이 생각이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
바른 참선법
우리가 이 참선 수행법을 익히는 데 있어서는 먼저, 좌선시에 참구하는 자세가 반듯해야 합니다.
참선하는 바른 자세는, 평좌(반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가슴과 어깨를 활짝 펴고, 허리를 반듯이 하고, 양손을 모아 배꼽 밑에다 붙이고, 눈은 보통으로 뜨고(눈을 감으면 안됩니다), 화두는 눈 앞 2미터 아래에다 두어야 합니다.
2미터 아래에다 화두를 두면 고개가 반듯하게 되고 상기가 방지됩니다.
만약 앉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거나 가슴이 오므라지거나 하면, 앉아서 여러 시간 참구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화두 참구는 맑은 생각에 무한한 정신집중이 되어야 하는데,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정신집중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앉아서 1시간 보내는 것조차도 아주 지겹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좌를 하고 반듯하게 앉는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화두를 눈 앞 아래에다 두고 참구해야 합니다.
머리에다 두고 화두를 참구하다 보면 힘이 들어가서 상기(上氣)가 되는데, 기(氣)가 위로 올라가게 되면 머리가 무거워져서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화두를 눈 앞 아래에다 두고,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라든가,
'만 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라든가 각자 선지식께 받은 화두를 간절히 챙겨야 합니다.
화두를 챙길 때는 화두 전체를 분명하게 들어 놓고 의심을 지어가고, 의심을 지어가다가 화두가 희미해지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게 되면, 다시 화두를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다 챙겨놓고 의심을 지으면 됩니다.
홀연히 비명(非命)에 간 삼대독자 외아들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과도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챙겨야, 혼침(昏沈)도 없어지고 이 생각 저 생각도 나지 않게 됩니다.
혼침이 오고 망상이 떠오르는 것은 화두 참구하는 한 생각이 간절하지 않고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고귀한 법을 만난 김에 금생에 결정코 견성을 해야 되겠다.' 하는 작심을 단단히 하고 간절하게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혼침과 망상과 온갖 보고 듣는 것에 끄달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애쓰고 애쓰다 보면 참의심이 돈발(頓發)하여 발동이 걸리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한 생각이 성성(惺惺)하게 흐르게 됩니다.
한 생각이 성성하게 흐르는 그 가운데 의심이 철두철미해야 되고, 의심이 철두철미한 가운데 화두 전체가 분명한 상태로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가야, 보고 듣는 데 끄달림이 없게 됩니다.
가족이 함께 한방에서 밥을 먹는다든가 한화잡담(閑話雜談)을 하고 있는 중이라도,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할 때는 옆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더 강도 있게 화두를 챙기면서 의심하고 의심하면서 챙길 것 같으면, 보고 듣는 것이 다 마비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아주 간절한 한 생각만 흐르는 물과 같이 끊이지 않고 흐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진수인 선(禪)을 참구하는 참선 수행법입니다.
🍀
발원의 중요성
금생에 이 일을 결정코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시 조석(朝夕)으로 예불할 때 부처님 전에 발원을 해야 합니다.
"화두가 일념이 지속이 되어서 대오견성 하여지이다."
항시 이렇게 발원을 하면 모든 습기와 헛점이 다 차단되게 됩니다.
예전 도인 스님들께서도 수행하실 때 항시 원(願)을 세우셨습니다.
"우선지식(遇善知識)하여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돈망생사(頓忘生死) 활연대오(豁然大悟) 해서 속불혜명(續佛慧命) 광도중생(廣度衆生) 하여지이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이러한 발원을 해서 불과(佛果)를 이루셨고, 역대 조사 스님들께서도 그러하셨고,
지금 대도(大道)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젊은 납자 스님네들도 그렇게 해야 대도를 성취할 수 있고, 처사님네, 보살님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심과 용맹과 발원, 이 세 가지가 항시 공부와 일치되어서 모든 헛점을 다 씻어 없애 버려야 공부가 순일되어 일념이 지속되게 됩니다.
일념이 지속되기만 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음광명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만 열어젖히면, 그 마음 가운데에 팔만 사천 지혜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부처가 되고 부처님과 동일한 위력을 발(發)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제법원선사
첫댓글 감사합니다 () () ()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