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 하원의원 라울 그리잘바(민주)가 암 치료 후유증으로 77세 삶을 접었다고 영국 BBC가 그의 의원실 성명을 인용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20년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그는 지난해 4월 암 진단을 받아 투병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어느 부위의 암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성명은 "오랫동안 용감한 투병을 해 온" 고인이 이날 아침 숨을 거뒀다고 적시했다.
그가 처음 하원에 입성한 것은 2002년이었다. 투손, 유마, 노갈레스 등을 지역구로 뒀던 그는 초지일관 애리조나주의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커뮤니티 조직자로 정치를 시작한 그는 특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뒤, 민주당의 하원 천연자원 위원장으로 봉직했다.
고인은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 TV 토론에서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이 죽을 쑤자 로이드 도겟(텍사스)에 이어 두 번째로 중도 퇴진을 촉구한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물론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미국 민주주의에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의원실 성명은 "그리잘바 하원의원의 친절하며 겸손한 천성은 많은 이에게 알려져 있다"면서 "그는 사람들이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접근에 열려 있었다. 그는 선물을 주는 일, 사무실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일, 그들이 누구인지 사람들이 알게 하는 일을 좋아했다"고 돌아봤다.
그리잘바는 하원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 이민 이슈들, 아동교육 확대 같은 문제들에 집중했다. 의원실은 "이 소식을 접하고 상심했지만 고인의 유업을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보궐선거는 물론, 입법 노력을 돕는 데 진력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잘바는 1948년 애리조나주 피마 카운티에서 멕시코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농장에서 일했다. 애리조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리잘바는 일찌감치 이민자 및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등에 눈을 떴다. 그는 지역사회와 대학 등에서 히스패닉 학생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그리잘바는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2월 그는 동료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함께 한반도 종전 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당시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임박한 시점이어서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23년 3월 워싱턴에 있는 6·25 전쟁 기념 조형물 일부인 미군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이름 상당수가 틀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파문이 일었다. 자칫 한미 동맹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는 악재였다. 이에 그리잘바는 당시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에게 “진상 규명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고인의 부음을 접하고 “하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 중 한 명”으로 규정하며 “미국 노동자 가정을 위해 싸우는 데 평생을 바친 고인이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