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과 함께 새벽 5시에 예불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북한 전문가 분들을 맞이했습니다.
북한의 식량 사정과 물가 변동이 어떠한지 함께 점검하면서 북한의 식량 부족 상황이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고, 새터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비공식적인 송금도 아주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경은 봉쇄되어 있고, 남북관계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정부는 ICBM(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서 남북 관계를 긴장시키고 있고, 국제 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서로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면서 북한 전문가 모임을 마쳤습니다.
오전 11시에는 일산에 있는 EBS 방송국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시대 다양한 분야의 명사를 초대해 그의 철학과 인생,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EBS 초대석’에 스님이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느끼는 불안과 갈등에 공감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은 어디에 있는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질문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한 시간 동안의 녹화를 마쳤습니다.
오늘 녹화한 내용은 EBS 1TV에서 5월 6일(금) 밤 12시 10분에, EBS 2TV에서 7일(토) 저녁 8시 20분에 각각 본방송이 나갈 예정입니다.
녹화를 마치고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오후 4시에 서울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 30분 동안 고속도로 위를 달려 저녁 7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일 금요 즉문즉설에서 소개하지 못한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제사 때문에 시어머니와 형제 사이에 갈등, 어떻게 풀죠?
“저는 재혼을 했는데, 남편이 4형제 중 장남입니다. 그동안 맏며느리가 없어서 둘째 동서가 15년 동안 시댁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제가 결혼하면서 시어머님이 이제 장남이 제사를 지내라고 권유했고 그 뜻에 따라 제가 제사를 모시게 되었어요. 그동안 집 안의 맏며느리 역할을 해왔던 동서가 그때부터 저를 몹시 못마땅해하면서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갈등이 심해졌고, 형제들 사이도 나빠졌습니다. 시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올 초에는 끝내 집에서 명절을 지내지 못하고 4형제들만 산소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왔습니다. 악화된 동서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다가올 제사와 명절을 기존대로 저희가 지내도 되는 건지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서로 제사를 안 지내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이지, 서로 지내겠다고 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먼저 남편하고 합의를 본 후 그다음에 시어머니께 이렇게 말씀을 드려보세요.
‘그동안 동서가 맏며느리 역할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하니까 그냥 둘째가 제사를 지내면 어떻겠습니까. 제사를 누구 집에서 지내느냐보다 가족이 화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조상이 볼 때도 제사에 모인 자손들이 화목한 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닙니까. 둘째가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한다면 둘째가 지내도록 하고, 재정적인 부담은 조금씩 나눠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사의 주된 목적은 자손들의 화목이지 누가 지내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요즘은 재산도 딸과 아들이 똑같이 상속이 되고,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을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그러니 이제는 남자 형제 중에 누가 첫째냐 둘째냐 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둘째가 제사를 지내기를 원한다면 둘째가 지내고, 만약에 나중에 둘째가 아프거나 어려워서 제사를 못 지내겠다고 하면 그때 질문자 부부가 기꺼이 제사를 지내면 되죠. 이렇게 제안해서 둘째가 제사를 지내도록 하면 됩니다.
남자 순위로 따지면 동서 지간에 질문자가 첫째이지만, 이 집에 시집 온 순서로 따지면 질문자는 막내입니다. 그러니 남자에 빌붙어서 ‘내가 첫째다’ 이렇게 주장하는 건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에요. 여자들끼리 순서를 따져서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세요.
‘그래, 동서가 먼저 시집왔으니 형님 해라. 내가 늦게 들어왔으니까 내가 동생 할게.’
이렇게 집 안의 화목을 추구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어머니와 남편이 먼저 동의를 해야 합니다. 나 혼자 그러고 싶다고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순서 상 남편한테 먼저 동의를 구하고, 두 번째로 남편이 어머니한테 얘기하든지 질문자와 남편이 같이 어머니한테 얘기해서 어머니를 설득해 보세요.
가족이 화목한 게 중요하니까 둘째가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도 제사를 안 지내면 더 좋지 않아요? 시어머니가 장손이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고 하면서 시어머니 핑계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의 화목이 중요하다는 명분도 있고, 동서도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하니까, 제사를 동서에게 넘겨주는 게 좋습니다. 제사를 넘기면 뭐가 고민이 될 것 같아요?”
“남편의 동생인 둘째가 호적 상 아버님 형제 중 한 분의 양자로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자식을 못 낳은 분이 있어서요. 그런데 동서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제사가 저희한테 넘어왔습니다. 어머니는 제사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니까, 안정적으로 있는 장손인 너희가 지내라 이렇게 얘기가 됐거든요.”
“물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제사를 안정적으로 모시고 싶죠. 그런데 집 안의 화목이 더 중요하지, 양자로 간 것이나 제사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어머니한테 가서 ‘스님한테 물어보니까 제사를 옮기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뭐든지 다 아는 게 귀신이잖아요.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사실을 다 아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귀신 같이 아네’ 이렇게 말하듯이 귀신은 뭐든지 다 압니다. 제사를 이 집에서 지내든 저 집에서 지내든, 이 시간에 지내든 저 시간에 지내든, 오늘 여기서 지내고 내일 저기서 지내든, 다 아는 게 귀신이에요. 그걸 모르면 귀신이 아닙니다. (웃음)
동서가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되는데, 질문자가 뭣 때문에 제사를 지내겠다고 고집해요? 속으로 ‘잘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 제사를 넘기면 되죠. 그렇다고 질문자가 너무 좋아하면 시어머니가 ‘제사 지내기 싫어서 저러나’ 하고 의심을 하니까 표정 관리는 하면서 명분은 집 안의 화목을 내세우고 둘째 동서에게 제사를 넘겨주세요.
그러다 둘째 동서가 ‘도저히 못 하겠어요. 큰 형님이 하세요’라고 하면, 그때는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마땅히 우리가 해야 되는데 수고가 많았어. 다음부터는 우리가 수고할게’ 하고 말해주는 게 좋습니다.”
“동서가 처음부터 저에 대해 못마땅해했거든요. 장소를 불문하고 저한테 막 소리를 지르고, 제가 대화를 하려고 하면 그냥 가버려요. 여러 차례 그런 일이 있어서 저한테 우울증이 왔고, 저는 혼자 낯선 객지에 시집와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괄시를 받는데 재혼을 왜 했어요? (웃음) 동서는 시집온 순서대로 계산해서 자기가 맏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동서 입장에서는 질문자를 볼 때 ‘이제 들어와서 며칠 되지도 않은 게 큰 소리를 치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나빠하는 것이니까 그 마음을 그냥 받아주면 돼요. 겉으로는 아랫사람을 윗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속으로는 ‘형님, 알았어요’ 이런 마음으로 대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질문자가 속으로 ‘어디 버릇없이 이러냐’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니까 힘든 거예요. ‘좀 텃세를 부리는구나’ 하고 인정하면 돼요. 동서는 그 집에 시집온 지 몇 년 됐어요?”
“거기도 재혼을 한 지 10년 넘었습니다.”
“질문자는요?”
“6년 됐습니다.”
“4년이면 큰 차이입니다. 밥그릇 수로 계산해도 십 리는 되겠어요.” (웃음)
“밖에서 사람들 있는 데서도 저한테 고함을 치고 함부로 대하니까 힘듭니다.”
“고함을 치고 함부로 대할 때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죠’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욕을 먹는 사람은 동서가 돼요. 질문자도 토라지고 속상해하면 똑같은 사람이 되지만, ‘알았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동서를 오히려 두둔해 주면 현명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잘 안 됩니다.”
“그렇게 안 되는 건 질문자의 문제죠. 그렇게 될 수 있게 질문자가 마음공부를 해야 해요. 그렇게 안 되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해지면 병원에도 다녀야 되고, 문제는 해결 안 되고, 질문자의 이미지만 나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을 바꾸면 완전히 상황이 달라져요.
‘그래, 밥그릇 수가 많다는 거구나. 네가 하루라도 먼저 와서 다행이다. 나보다 4년 먼저 왔으니까 형님 해라.’
이런 마음을 턱 내면 내 마음이 편해집니다. ‘나나 너나 재혼했는데 네가 뭐 큰 소리냐’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요. 질문자가 웃을수록 사람들한테 욕을 얻어먹는 건 동서예요. 이렇게 하면 질문자의 이미지도 좋게 되고, 제사도 떠넘길 수 있습니다. 너무 형님 행세를 하려고 집착하지 말고 좀 현명하게 행동해야 해요. 옛날 유교 시대에는 명분을 중요시했지만, 현대 사회에는 실리가 중요해요. 형님이 되면 뭐가 좋아요? 그냥 동생을 하는 게 더 이익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새로 시집온 여자가 나보다 스무 살이 어리더라도, 그 사람의 남편이 나이가 많으면 남자 나이 순서대로 윗사람 대우를 했습니다. 조카의 나이가 스무 살이 많아도 나이 상관없이 반말을 했고요. 그러나 요즘은 그러면 안 돼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런 문화는 다 없애야 됩니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인데 왜 여자를 남자의 순서를 갖고 아래위를 따지나요. 질문자와 동서 두 사람 나이를 따져보고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라 그럴 수 있고, 동서가 나보다 먼저 들어왔으면 선배 취급을 해주고요. 남편이 장남이라고 해서 남자 나이 순서로 아래위를 따지는 건 남자 핑계를 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생각을 탁 버려야 돼요. 남자 옆에 붙어서 순서를 매기는 건 다 옛날 생각이에요. 동서 나이가 질문자보다 많아요?”
“제가 많습니다.”
“그러면 남편의 형제들 나이 순서대로 따져서 내가 형님이라고 하지 말고,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언니 대접을 하라고 얘기해보세요. 아니면 ‘네가 비록 나이가 적어도 나보다 시집을 먼저 왔으니까 시집 온 순서대로 언니 대접을 해주겠다’ 이렇게 팍 양보를 해버려요.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얘기하세요.
‘이 집에서 순서를 어떻게 따질래? 남자로 따질래, 나이로 따질래, 들어온 순서로 따질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나이로 따지면 내가 언니다. 남자로 따져도 내가 너보다 위다. 들어온 순서로 따질래? 그럼 내가 너를 언니로 대우해 줄게. 네가 오케이 하면 내가 시어머니와 가족들한테 다 공표를 할게.’
이렇게 깨 놓고 얘기하면 되잖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겁을 찔찔 내고 그래요.” (웃음)
“그러게요. 그런데 그렇게 말을 못 하겠어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미워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웃으면서 딱 깨 놓고 얘기를 한 번 해봐요.”
“그런데 동서는 저하고 대화를 안 하고 그냥 가버려요.”
“가버리면 말을 안 하면 되죠. 가버리는데 신경 쓸 게 뭐 있어요.”
“지금 냉전 상태거든요.”
“냉전이 아니죠. 자기가 가버린 거죠. 내가 상대를 미워하면 냉전이에요. 그러나 내가 안 미워하면 냉전이 아닙니다.”
“그럼 이대로 지내야 되나요?”
“이대로 안 지내고 어떻게 지내려고요?”
“그러면 이렇게 있다가 제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제사는 동서한테 물어보세요.”
“대화가 안 되는데요.”
“그러면 시어머니한테 사정을 얘기하면 되죠, ‘어머니 둘째한테 물어보세요. 그쪽에서 제사 지내고 싶다면 거기서 지내게 하세요’ 이렇게요. 그리고 그쪽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질문자는 가지 말고 남편만 가라고 하면 되잖아요. 대신 봉투에 돈을 넣어서 제사 비용 하라고 보내드리고요. 질문자가 동서하고 타협하지 마세요. 동서와 타협하는 건 시어머니한테 요청하세요.
‘어머니, 형제간에 우애가 중요하니까 어머니가 얘기해서 둘째 쪽으로 제사를 넘겨주세요. 동서가 제사 때문에 자꾸 신경을 쓰니까 어머니가 물어봐 주면 좋겠어요. 동서가 지낸다고 하면 바로 넘겨주고, 안 지내겠다고 하면 제가 지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대화가 잘 안 될 때는 간접 대화를 하면 됩니다. 직접 대화를 할 필요가 없어요.”
“예. 현명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웃음)
“바보가 도트는 소리를 하네요. 나이가 몇이에요?”
“52세입니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고, 결혼을 한 번 한 것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해보면서, 아직도 집안사람에 대해 정리를 못 하고 어떻게 살아요? 결혼을 한 번도 안 해본 저보다도 못 하면 어떡해요? 결혼을 한 번 더 해봐야 능수능란해지겠어요? (웃음)
첫 번째 집도 아니고 두 번째로 재혼한 집인데, 뭣 때문에 눈치 보고 살아요.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사세요.”
“맞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겠습니다.”
“그래요. 당당하게 사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누가 제사를 지내냐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동서는 안 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남편은 안 보고 살 수 없고, 시어머니는 안 보고 살기 어려워요. 그런데 내가 ‘안 보겠다’ 생각하면 내가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상대가 싫어서 나를 안 보겠다고 하는 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것이니까 상대가 괴롭겠죠. 내가 그 사람을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맞닥뜨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제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나는 제사를 지내러 가지 말고 남편만 가라고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질문자가 ‘가기 싫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본인이 속박을 받는 거예요. 남편이 ‘제사에 왜 안 가냐?’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저도 가고 싶지만 제가 가면 동서가 화를 내니까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제가 빠져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사는 조상을 생각하면서 자손들이 만나서 화합하는 것인데, 거기 가서 분란이 인다면 조상을 뵐 면목이 없지 않습니까. 가고 싶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가기 싫어서 ‘거기 가면 불편해’ 이렇게 말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말을 지혜롭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상임 천일준비위원회 회의, 정토불교대학 실무준비 회의, 전국법사 회의를 연이어하고, 오전과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