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8월 8일 11시 강정마을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 중에 경찰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성체 훼손 소식을 전해 듣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겉으로는 상생과 사회통합을 말하면서도 불통으로 일관해 왔던 현 정권의 일방통행이 끝을 모르고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이 땅의 수많은 이들이 그토록 걱정하며 지키고자 했던 구럼비 바위를 막무가내로 발파하기 시작한 정부는 ‘민군’이 아닌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공사 추진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이번 성체 훼손 사건으로 상징되는 숱한 폭력과 위법을 저질러 이제 그들 스스로도 해명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해군과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여론에 상관없이 현 정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목적으로 더욱 공사를 서두르고, 경찰과 검찰은 용납하기 어려울 만큼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빵과 포도주를 두고 성체요 성혈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예수의 실천을 머리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새기고 따르겠다는 상징이다. 가톨릭교회는 이웃을 위해 제 몸과 피를 내어주고 쏟는 거기에 하느님이 함께 계심을 고백하는 신앙이다. 우리의 몸과 피, 우리의 전 존재를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과 더불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내어주고 쏟아낼 때 세상을 향해 열린 우리의 신앙은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사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을 기억하고 예수의 사랑을 기억하며 따를 뿐 아니라,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신앙인들의 고유한 방식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 뜻을 거슬러 강행하는 국책사업은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국가권력이 결정했다고 해서 모든 사업이 정당하다는 논리는 전제주의 시대에나 있음직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강정 주민들의 의사에 거슬러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자초하지 말고,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민주정부로서 국민 앞에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라는 복음의 요청에 따라 성체훼손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우리의 입장과 요구>
하나, 8월 8일 성체훼손 사건이 고의적 행위가 아니었다는 경찰의 주장은 매일 현장에서 미사가 진행되었던 점에 비춰볼 때 사태의 심각성을 두려워 한 경찰의 변명일 뿐이다. 이에 경찰 책임자의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한다.
둘, 강정 주민, 평화 활동가들의 사과 요청에 성체 훼손 당사자 경관이 사과를 하려 했음에도 이는 상관에 의해 묵살되었고 항의하는 이들의 연행으로 이어졌다. 이는 거룩해야 할 종교 행사를 한낱 업무 방해 행위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경찰의 태도와도 관련이 깊다. 향후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서귀포 경찰 현장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고, 향후 종교예식이 아무런 방해 없이 진행될 수 있는 안전 조치를 강구하라.
셋, 이미 절차적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지역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며, 환경적 영향, 군사전략, 입지조건 등 다방면에서 기지건설의 타당성이 의심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건설 사업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실시하라.
2012년 8월 1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가톨릭청년연대, 사단법인 우리신학연구소,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가톨릭농민회, 천정연 목포연합), 예수살이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