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본문에서의 배경이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위시해서 태초의 에덴동산, 또한 오늘 이 땅에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 더 나아가 하나님 보좌가 있는 하늘나라, 심지어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을 입고 살게 될 요한계시록 21장에 약속되고 계시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등에 있어서의 모든 공통은 바로 말씀인 것이고, 오직 제대로 된 말씀의 사람들이 온전히 맛볼 수 있으면서 실제로 그 가운데 거하며 생생하고 강렬하며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실상 아래 본문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이 참 귀하고 구별되며 아주 대단한 이유, 특히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라 불리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본이 될 수 있는 이유,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과 함께 그 당시의 계수된 장정들 중 그들만이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을 밟게 된 것일 뿐만 아니라 여러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기이하고도 생생하게 계속해서 경험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단적으로 말하라면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직결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모든 것들보다, 진정 다른 그 어떠한 것들보다도, 심지어는 생명보다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장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믿으면서 어떠한 상황들 속에서도, 참으로 아래 본문의 상황에서만 해도 여러 현실적 어려움들이 컸었고 인간적으로는 믿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목숨까지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실상들이었고, 게다가 실제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반대하고 살벌하게 거역함으로 인해 당장에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위협까지 된 상황들 속에서도 변함없이 전적으로 말씀 그대로 믿고 외치며 끝까지 실행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참으로 그 어떤 상황과 형편들에서든 가나안 땅에서와 같은 승리들이나 에덴동산에서와 같은 은총들을 누리고, 무엇보다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힘과 은혜와 응답과 사건들을 실질적으로 풍성하게 경험하며, 특히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강렬하심들을 생생하게 맛보게 되는 이들은 다른 그 누구보다 진정한 말씀의 사람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뿐만 아니라 모든 진실한 믿음의 선배들처럼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사모하며, 더 나아가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고 실천하며 몸부림치는, 오직 말씀으로 살고 죽는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상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신 특별한 경우들이나 사람들이나 사례들이 아닌 한 우리 인생들은 대게, 진정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도 적지 아니 그러한 말씀보다는 죄와 유혹, 세속, 정욕, 자기 소견, 우상 등과 같은 다양한 악과 허물과 불신앙들로 살기 쉽고, 중간 중간에 잘 넘어지고 종종 실족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믿음의 대선배들인 다윗이나 솔로몬,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도 한 때긴 했지만 작지 아니 그러했던 것을, 심지어는 사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악들까지 범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인데..
그와 같이 허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 말씀의 살아 있는 신앙으로 인한 하늘의 신령한 힘과 은혜와 역사들보다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어 오히려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같은 징계들에 빠지곤 하며, 그와 함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생각 이상으로 막히고 꼬이며 아프고 깨어지며 멀리 돌아가게 되고, 근심이나 두려움들이 다양하게 엄습하며, 그러면서 낙망이나 위기들에 빠지는 경우들도 참 많은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스러우며 감격스럽게도 그보다 더욱 분명한 것은 바로 그러한 허물과 한계들, 또한 그로 인한 문제와 상황들 이상으로, 심지어는 그 어떠한 위기와 절망들에 빠지게 된다고 한들 하나님께서는 더 크시고, 하늘의 힘과 은혜들이 상상 이상으로 실질적으로 예비되어 있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성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이들은 언제나 그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실제로 역사하시기에 정말 능히 감당하고 이길 수 있으며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그 어떤 문제와 형편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도 얼마든지 될 수 있으며, 회복되고 새로워지며, 생각지도 못할 터닝 포인트나 반전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그러한 어려움과 역경들이 클수록 더 치열하며 견고하고 살아 있는 말씀의 열정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더욱 더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들과 함께 하는 역사들, 곧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들,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면서 더더욱 이기고 극복하게 됨과 함께..
심지어는 폭풍과 홍수와 같은 문제와 심각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으로 인한 방법들이 있게 되며 보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이며, 실제로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절망이나 불가능,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마른 뼈들과 같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으며, 완전히 역전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종합해서 좀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면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의 시간에 따라 악한 세상, 연약한 인생들을 위해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들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문제와 연약함들, 죄악과 진노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 모든 절망과 심판들, 음부와 사탄의 권세들, 심지어는 사망과 영벌과 불가능들에 있어서까지 대속과 대신들, 나음과 화평들 등을 위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루셨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진정 이 세상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구원의 일들을 다 이루셨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누구든..
진정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처럼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전적인 은혜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거듭나면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역사와 경험에 의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변화되고 확정될 수 있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사람으로 완전히 뒤바뀌고 새로워지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어떤 식으로든 온전히 누리게 됨에 있어서 모든 전제와 우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주님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삶의 자리들,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 속에서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사랑과 은혜와 능력의 이치, 원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실제로 그 속에 예비되고, 특히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로 인해 순간순간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이길 수도 있으며, 혹 범한 죄악들은 자복하며 돌이킬 수도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회개와 자복들이 사함과 효력들도 될 수도 있게 되며, 더 나아가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치열한 말씀의 신앙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그러한 말씀의 결단과 몸부림들마다 생생한 효력과 능력들도 되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과 열정들은 영적으로는 산 제물과 같고 예배의 삶과 같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들, 은혜와 능력들, 책임져 주심과 예비하심들 등이 뒤따르게 되는 것인데..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 충만해 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더 성화되어 지며 더욱 큰 믿음이 되고,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더욱 강력한 권능들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함께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해 오늘 내가 안고 있는 인간적 어려움들이나 상황적 한계들보다 더 크고 그 어떤 절망들이나 광풍들보다도 더 강력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생생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바로 그러한 신앙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아래 본문의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살아 있고 깨어 있는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원론적으로는 말씀의 땅,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나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말로 표현 다 못할 하늘의 은혜와 능력들이 또 다른 모양으로 함께 하게 되며 누리게 되고 계속해서 예비되어 있는 것이며..
심지어는 구주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의 때에 친히 보이시고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2000년 교회사에 있어서도 차고 넘쳤던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등과 같은 역사들이 오늘도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진실되고 복된 믿음, 곧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갈수록 더 생생하고 풍성하며 온 지경에 가득하게 되고, 실제로 강렬하게 보고 맛보며 경험케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점점 더 확장케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14:6~10)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5월 1일(수)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