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이래 국제 금융재벌의 돈에 대한 인식에는 또 한 번의 비약적 전환이 있었다.
기존의 잉글랜드은행 모델은 국채를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고 정부의 채권과 은행의 발권을 연동시켜 채무 규모를 점점 확대시킴으로써 은행가들이 거액의 수익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금본위 체제에서 은행가들은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반대했다.
어떤 화폐라도 평가절하되면 은행가의 이자 수입에 직접적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구상은 대출업으로 이자를 챙기는 비교적 원시적 방법으로, 재산의 축적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결함이 있었다.
설사 지급준비금 제도를 사용하더라도 금융재벌들의 날로 커지는 배를 채우기에는 여전히 모자랐다.
특히 황금과 백은이 천천히 증가하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금 총량에 상한선을 책정 해놓은 셈이었다.
드디어 중앙 은행의 사기극 지급준비금 제도(reserve fund system)가 시작되었다.
은행 예금의 일정 비율을 지급준비금으로서 중앙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그 비율을 상하로 조절해 통화량을 조정하는 제도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할 무렵, 유럽의 은행재벌들은 이미 더 효과적이고 더 복잡한 법정화폐 체제를 모색하고 있었다. 법정화폐(fiat money)는 황금과 백은이 대출 총량에 상당한 제약을 미치는 국면에서 완전히 탈피해 훨씬 융통성 있고 은밀하게 화폐를 통제할 수 있게 했다.
화폐 공급을 무한대로 늘려 얻는 수익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대출 이자의 손실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알게 된 은행가들은 갑자기 법정화폐의 가장 열렬한 제창자로 변신했다.
그들은 화폐 유통량을 급증시켜 저축자들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빼앗았다.
통화 팽창은 은행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제 경매하는 방식보다 훨씬 그럴듯했으므로 국민의 저항감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그런 사실을 잘 모르게 할 수도 있었다.
은행재벌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인플레이션 관련 경제학 연구는 순수 수학 게임의 궤도로 진입해갔다.
지폐 발행의 증가에 따른 통화 팽창(currency inflation)의 개념은 오늘날 가격 상승에 따른 통화 팽창(price inflation) 개념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이제 은행재벌의 치부 수단에는 원래의 지급준비금 제도, 화폐와 국채의 연동 외에 또 하나의 강력한 도구인 인플레이션이 추가되었다.
이때부터 은행은 황금의 수호자에서 황금의 천적으로 드라마틱한 변신을 한 것이다.
통화 팽창에 대해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John Keynes)는 따끔하게 꼬집었다.
“정부는 이 방법을 이용해 눈에 띄지 않게 국민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100만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이러한 절도 행위를 발견해내기 어렵다.”
엄밀히 말해 미국에서 이 방법을 사용하는 기관은 FRB이지 정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