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시킨후 표가 나지않게 마치 칼로 두부를 썬듯 뚜껑을 쐐기형 나무격자로
정교히 만든 땅굴 비상구의 출구
평상시 땅굴의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알수없는 숲길
구찌땅굴내부 터널에 들어가본 관광객.
베트남전 당시 지뢰에 파괴된 구찌땅굴 주변의 미군 M-41 워커불독 전차
부비트랩용 쇠꼬챙이를 제작하는 장면을 담은 전시용 인형
전시의 땅굴내부 단면을 묘사한 축소형 홍보물
게릴라들이 땅굴 출입시 바깥쪽을 은폐시키며 들어가는 모습을 재현하는 베트남 여행지 가이드
1차적으로 적의 땅굴 진입을 막게끔 고안된 월맹군의 쇠꼬챙이 부비트랩
구찌땅굴의 비상구
구찌땅굴의 분포지역을 표기한 지도 photo by: choo tse chien
유사이래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나라가 승리한 예는 극히 드물다.
물론 예외적이긴 하나 6.25 남침 전쟁을 벌여 정전협정을 맺은 북한과 미국,멕시코
전쟁시의 알라모요새 함락같은 예도 있기는하다.
그러나 2차대전시 미국이 유럽에서 사용한 폭탄사용량을 훨씬 능가한 베트남전은
명백히 두손들고 말았던 전쟁이었다.
B-52 폭격기의 융단폭격도 소용이 없었던것은 다름아닌 베트남인의 지형지물을
교묘히 이용한 전술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그것은 베트남인들이 정글속에 거미줄같이 엮어 만든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
때문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구찌땅굴은 호치민(구 사이공)시 북서쪽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아이러니 한 사실은 월남전당시 월맹군의 지하요새였던 이곳은 현재 베트남의
대표적인 관광지코스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어있는 장소인것이다.
구찌땅굴의 규모는 지하3~8m의 깊이에 그 길이만도 무려280km에 달한다.
땅굴내부에는 장기적 게릴라전에 대비한 회의실,병원,창고등이 비치되어있으며
이곳은 거의 호미와 소쿠리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월남전당시 이곳 인근에는 미군기지가 있었으나 나뭇잎으로 교묘히 위장하여
땅굴의 존재자체를 일절 미군이 눈치채지 못하게끔 하였다.
예로부터 이러한 땅굴을 전투에 이용한 역사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볼수있었다.
얼마전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물자 보급망으로
땅굴을 파서 이용하다가 이스라엘 공군의 벙커버스터폭탄 세례를 받아 폭파된바도 있다.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때에도 관군은 접근하기가 어렵던 적군의 거점에 땅굴을 파
들어가서 폭약을 터뜨려 홍경래의 반군이 점령했던 평안도 정주성을 함락시킨바 있었다.
또한 근자의 1980년대 초 전두환정권의 5공 당시에는 북한의 수많은 땅굴이
발견되기도 했었다.
그당시 북한이 남한을 향해 파놓은 땅굴의 발견은 전두환정권의 대단히 큰 치적으로
여겨져 연일 대남 침투용 땅굴이 독재정권유지용의 더할나위 없는 재료가 되기도 했었다.
이에 땅굴의 위력은 국민들로 하여금 군사독재 전두환정권을 유지하는데 지속시킬
안보차원의 홍보용으로 십분 활용되었다.
또한 이러한 땅굴사건을 소재를 다룬 패러디 또한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코미디소재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80년 당시 뽀식이로 인기있었던 코미디언 이용식은 모 방송국의
쇼프로그램에서 가수 계은숙의 [노래하며 춤추며] 를 개사하여 북한에서 제일 유행하는
남한가요 1위곡이라고 노랫말을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모여 흥겨웁게 땅굴 팝시 따우,라고 이용식이 불렀는데
다음날 TV 쇼프로그램을 보았던 동네 꼬마들은 일제히 그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했었다.
[ 옮긴 글입니다 ]
그런데 북한의 땅굴은 현재 우리에게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일까요?
소위 ' 화성 땅굴 '은 헛소문인가요?
지금 이런 중대한 문제를 안고있는 한국에서
' 땅굴 '은 한낱 코미디의 소재밖에 안되는 것일까요?
모든 국민이 함께 생각할 문제입니다!! |
첫댓글 이글을 읽으며 분단국의 경각심을 가져야 것네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구국의 일념을 가져야 것네유 잘 보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