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기기 최철주의 독거노남
80여명이 죽음을 준비했다, 건대입구역 실버타운 에디터
한 70대 노인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서명하러 왔다”고 했다. “인생 마지막 가는 길에 쓰는 서약서가 있지 않으냐”며. 연명 의료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 노인처럼 60대든, 80대든 이 서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최근 찾았던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무실에선 대충 말해도 의향서인 줄 알아듣고 상담해 주니 말이다.
“그 70대 노인이 의향서를 다 작성하고 난 다음 가족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나 구슬픈지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열 살 손자가 난치병을 오래 앓다 최근 상태가 더 나빠져 인공호흡기를 끼게 됐는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가족회의를 열었답니다. 그 손자의 편안한 삶을 위해 호흡기를 떼기로 결정한 순간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더군요. 그리고 본인 역시 언젠가 삶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 손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소를 찾았다는 겁니다. 서류에 서명하고 나서 통곡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혼났어요. 서류를 접수한 저뿐 아니라 옆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도 다들 훌쩍거리고.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느낀 죄책감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사랑과 절망의 끝이 맞닿으면 그리도 슬프게 눈물이 쏟아지나 봐요.”
이 모임 공동대표 홍양희(74)씨의 설명이었다. 자원봉사로 웰다잉 운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이런 감동이 70대 중반 나이에도 매일 일어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사회복지단체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웰다잉 강사를 길러내기 위한 기초교육을 해 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이런 활동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봉사활동 폭은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 위의 70대 노인처럼 상담소를 찾아오는 중노년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